소설리스트

20화 (20/20)

“전투의 기본도 모르는 멍청한 놈들이군.”

‘파에드’의 말을 뒤로 하고 방독면을 벗어 한손에 든 ‘민재’가 방바닥을 구르며 괴로워하는 ‘사디크’에게 다가간다.

“로라는 어디있나?”

“퉤~ 죽어버려. 개자식아!”

어깨를 감싸쥐고 자신에게 침을 뱉는 ‘사디크’를 차가운 눈으로 쳐다본 ‘민재’가 다리에 장착된 전투용 대검을 꺼낸다.

“아아악~ 악~”

“천천히 말해도 된다. 썰어내야 할 관절이 아직 많이 남았으니까?”

‘사디크’의 무릎관절 사이로 칼날을 밀어 넣으며 말하는 목소리에는 한점의 감정도 묻어나지 않는다.

“드드드득~”

“끄악~ 끄아아악”

연골을 파고 들어간 칼날을 비틀자 칼끝으로 뼈가 갈리는 소리가 들린다.

“헉~ 헉~..그만..말하겠다..제발..그만..끄윽~. 허윽~ ‘모나’라는 이름의..헉~헉~ 매춘 업소 지하에..술창고가 있다. 윽~윽~..그곳의 출입구 왼쪽에 쌓인 박스를 치우면 비밀 창고로 내려가는 문이 보인다...우윽~ 여자는 그 안에 있다.”

뼈를 긁어대는 고통으로 온몸에 경련을 일으키던 ‘사디크’가 더듬더듬 말한다.

밖에서 저격을 하던 ‘압둘’이 방안으로 들어와 ‘사디크’의 말을 ‘미하일’에게 알려준다.

“파예드.! 이놈을 ‘로라컴퍼니’의 비밀 창고로 후송하도록. 죽지 않도록 지혈해 주고..”

“네! 보스..”

오후 한시

헬기를 타고 급하게 돌아온 ‘민재’가 병원에 도착했을 때 ‘로라’는 수술중이었다.

“지하 창고에서 로라 대표님을 발견했을 때 복부에 총상을 입은채 하혈을 하고 계셨습니다. 의식은 없으셨구요. 죄송합니다. 보스! 저희가 조금 더 정밀하게 수색했어야 했는데...”

“네 잘못이 아니야! 미하일.. 놈들이 그만큼 철저하게 숨긴 탓이지...”

오후 다섯시

네시간 넘게 닫혀 있던 수술실의 문이 열리고 이동 침대에 누운 ‘로라’가 수술실 밖으로 나왔다.

다섯개의 링거병을 주렁주렁 매달고 의식이 없는 ‘로라’를 누인 이동침대는 수술실 위층의 중환자 실로 옮겨졌다.

“산탄총에 맞았습니다. 환자의 장기속에 흩어진 파편을 제거 하느라고 수술이 오래 걸렸습니다. 하지만 췌장속에 박힌 두개의 파편은 손대지 못했습니다. 오늘 밤이 고비입니다. 환자가 의식을 차리고 쇼크를 일으키지 않는다면 가능성이 있습니다. 저희가 할수 있는 것은 다 했습니다. 이제부터는 알라의 영역입니다. 그리고 아기는 유산됐습니다. 임신 2개월 째 더군요.”

차가운 은테 안경을 쓴 의사가 미안하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지난번 한국에 왔을때 로라가 임신한것 같았지만 ‘민재’는 그 말을 듣고서도 감정이 생기질 않는다.

밤 열한시 사십오분

‘로라’가 의식을 차렸다.

자신의 침대 곁에 서 있는 ‘민재’를 본 ‘로라’는

“제 믿음대로 구하러 와 주셨군요. 사랑해요. 민재. 그리고 행복했어요.”

말을 남기고 눈을 감았다.

‘민재’의 눈에서는 눈물이 흐르지 않았다.

당직의사와 간호원이 뛰어와 멈춘 심장을 되살리려는 노력을 할 때까지 ‘로라’의 하얀 손을 잡고 있었을 뿐이다.

밤 열두시 십분

심폐소생술을 멈춘 당직의사에 의해 로라의 공식적인 사망 확정 판결이 내려졌다.

2월 13일 일요일 오전 아홉시

검은 옷을 입은 ‘로라 컴퍼니’직원들과 ‘이영묵’이 ‘민재’와 함께 보고 있는 가운데 ‘로라’의 몸은 화장되어 한줌의 재로 변했다.

영국에서 날아온 ‘로라’의 부모님들은 ‘로라’를 영국으로 데려가기를 원했다.

화장터의 직원을 구슬러 반 정도의 ‘로라’의 흰 뼛가루를 따로 빼돌렸다.

2월의 바그다드 하늘은 잔뜩 흐려 있었다.

오전 열한시

빗물이 눈물처럼 민재의 볼을 타고 흘렀다.

‘로라 컴퍼니’임시 대표는 ‘미하일’이 맡기로 했다.

지난 6년간 ‘로라’의 바로 밑에서 부사장 역할을 능숙하게 수행해 온 ‘미하일’은 대표 역할을 하기에 충분했다.

‘사디크’는 사지의 관절이 모두 끊긴 상태로 사막에 버려졌다.

그곳은 쓰러진 동물들의 살을 파먹는 전갈과 지네들이 출몰하는 지역이었다.

‘사디크’는 산체로 자신의 살을 파먹는 벌레들을 보게 될 것이다.

‘사디크’의 입에서 ‘남태근’이라는 이름이 나왔다.

오후 세시

바그다드 공항에서 출발한 인천행 비행기를 타고 있는 ‘민재’의 뒷자리에는 ‘파예드’와 ‘압둘’이 나란히 앉아 있었다.

‘이 민재’가 e-mail로 신청한 일주일의 휴가신청은 의외로 박성재 비서실장의 신속한 결재에 의해 곧바로 처리 되었다.

신년 휴가와 설날휴가도 반납하고 외국으로 계속 출장을 다녀온 ‘민재’에 대한 나름의 배려 인것 같았다.

월요일 아침 대현 생명에 출근한 ‘민재’는 곧바로 ‘영업 지원본부’의 전체 회의를 주관하고 각 팀의 팀장들을 따로 불러 상세하게 업무지시를 한 후 일주일간의 휴가 사실을 공고하고 회사를 빠져 나왔다.

남태근의 주변을 조사중인 ‘로민 솔루션’ 정보팀의 활약과 ‘최경수’의 국정원 인맥 정보력에 힘입어 한길유통과 남태근에 대한 정보가 ‘민재’의 노트북에 차곡차곡 쌓이기 시작했다.

*남태근-54세. 폭력과 협박 갈취 전과 8범..80년대 전국적인 조직폭력 단체를 결성했던 ‘조 양은’조직의 간부 출신으로 현재는 한길유통, 남도 건설과 룸싸롱을 경영

1.한길유통- 미아리 길음동 주변의 밤거리를 장악한 폭력조직으로 그 일대의 룸싸롱과 단란 주점, 그리고 방석집 등에 주류등을 납품해 주고 한국인 접대부들과 러시 아계 여성 접대부들을 술집에 공급해 주는 업체임. 술집 사장들이 주류나 접대 부들의 공급을 거부할 경우 폭력조직원들을 동원하여 협박과 폭력을 일삼음.

2. 남도건설-주로 수도권 재개발 구역에 철거용역을 담당하는 회사로 수십명의 조직원들중 의 대부분이 10대 후반과 20대 초반으로 구성되어 있음. 일종의 폭력 조직원을 양성하는 교육기관 역할을 함. 이곳에서 두각을 나타낸 인물들은 한길유통의 조 직원으로 승급되어 미아리 일대 밤거리의 한 골목을 책임짐.

3.조직원들 중 핵심인물

오 병길-43세. 폭력전과 6범 , 남태근 조직의 2인자로 룸싸롱 4개를 경영중.

정 도수-35세, 전과 없음. 전국 대학 검도 대회 우승자출신으로 남태근을 근접 경호.

........

‘남태근’과 ‘로라’, ‘남태근’과 ‘로라컴퍼니’는 전혀 접점이 없었다.

‘로라 컴퍼니’와 접점이 있는 누군가가 남태근을 사주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럴만한 인물은 홍재경이나 홍회장 일가중의 하나일 가능성이 100%였다.

‘로민’의 정보팀 중 일부가 홍회장 일가에 대한 정밀 감시에 들어갔다.

화요일 밤

‘민재’와 함께 입국한 ‘파예드’와 ‘압둘’은 그 들보다 하루 늦게 입국한 ‘긴샴’과 함께 반월공단의 허름한 원룸 건물의 지하에 위치한 마스지드((Masjid- "엎드리는 장소"라는 의미의 아랍어. 이슬람 사원을 의미함)에서 미리 연통해 둔 걸프전 참전 이라크 군 출신 노동자들을 집결시키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앞에는 ‘긴샴’이 입국하며 반입한 커다란 우드박스가 놓여져 있었다.

박스를 뜯어내고 드러난 커다란 기계를 분해하자 그 속에 숨겨져 있던, 발포 비닐에 쌓인 소음기가 달린 권총들이 나타난다.

‘압둘’이 한사람, 한사람을 안아주며 소음 권총을 건네고 있다.

이번 전투에 참가하는 인물들은 작전이 종료된 후 곧바로 이라크로 출국해서 현지에 도착하면 상당한 액수의 달러를 손에 쥘 것이다.

더구나 그들중 대부분은 한국의 공장과 건설현장에서 노동자로 근무하며 한국인 관리자들에게 무시당하고 불이익을 받았기에 한국인중 누군가가 이라크 젊은 여인의 살해를 사주했다는 ‘파예드’의 선동에 상당한 분노를 느끼고 있는 상태였다.

전투원들의 사기와 분노는 최고조였다.

7.초혼(招魂)

며칠 동안 조마조마하고

초조한 심정으로

오빠의 아파트 창문에

불빛이 비치기만을 기다렸다.

‘아! 울 오빠는 왜 이렇게 출장을 자주 다닐까?

발렌타인 데이가 낼 모랜데..’

2월 14일 밤 10시

놀이터 그네에 앉아 있는 내 눈에

오빠의 아파트 창문에서 새어 나오는 불빛이 보였다.

‘아! 다행이다...’

“띵똥~”

초코렛 바구니를 들고 오빠의 아파트 초인종을 눌렀다.

‘아~ 작년에 발목이 다쳤을때 와보고 첨 오는 곳 인데..

오빠가 귀찮아하시지 않을까?’

아파트 문을 열어 주시는

오빠의 눈이 아파 보였다.

분명 시선이 나를 보고 있는데도..

오빠의 눈은

저 멀리 보이지 않는

무엇인가를 찾아 헤메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초콜렛 바구니를 탁자위에 올려놓는데

작고 하얀 항아리 하나가

놓여져 있는 것이 보였다.

“...작년에 니가 다쳤을 때 도와줬었던 언니..기억 나니?..‘로라’라고..”

“네!”

“그 언니가 죽었다. 화장을 했지..”

“어쩌다가?..”

“나 혼자 그녀를 보내려니까.. ‘로라’가 외로워 할 것 같더라..네가 같이 가줄수 있겠니?”

다음날 새벽 다섯시

오빠와 함께

양수리 근처 ‘두물머리’라는 곳으로 와서

얼음 사이로 흐르는 강물에

하얀 가루를 떠내려 보냈다.

“우리 부모님이 잠들어 있는 곳이란다.

이제 며느리 될 여자와 함께 계시니.. 두 분이 적적하시지는 않겠구나.”

오빠의 음성이 잔잔하게 들렸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찬바람이 부는 강가에서

하얀 가루를 모두 흘려보낸 오빠는

예전에 언니가 입고 있었던

하얀색 츄리닝을 차에서 꺼내 불을 붙였다.

검은 겨울 새벽을

발갛게 태우며

하얀 연기가 하늘로 올라갔다.

오빠의 입에서 슬프고 음울한 음률의 노래가 흘러 나왔다.

And the saddest thing

Under the sun above

Is to say goodbye

To the ones you love.

All the things

That I have known

Became my life

My very own.

But before you know,

You say goodbye, oh!

O, Time, goodbye!

It"s time to cry!

But I will

not weep

nor make

a scene.

I just say:

"Thank you, Life,

For having been."

And the hardest thing

Under the sun above

Is to say goodbye

To the ones you love.

(이 세상에서

가장 슬픈 일은

사랑하는 사람에게

‘안녕’이라고 말하는 것이죠.

내가 알고 지내는

모든 것들이

바로 ‘나 자신의 삶’이

되어 버렸어요.

하지만 당신이

‘안녕’이라는 말을 하기도 전에

좋은 시절은

이별을 고하는 군요.

울어야 하겠지만

난 눈물을 흘리지도 않고

법석을 떨지도 않았어요.

그냥..

‘그동안 고마웠어요.’

라고만 말할 거예요.

이 세상에서

가장 힘든 일은

사랑하는 사람에게

‘안녕’이라고

말하는 것이예요.)

나중에 인터넷으로 찾아보고서야

그때 오빠가 부른 노래가

Melanie Safka 가 부른

‘The Saddest Thing’ 이라는 것을 알았다.

들으면 들을수록 슬픔이 더욱 커지는 노래 였다.

오빠가 조금만 아프셨으면 좋겠다.

2월 15일은 새벽

‘민 수영’은 두물머리 강가에 있었다.

그날은 6년 전에 돌아가신 ‘수영’엄마의 기일이었다.

한 다발의 흰 백화를 한 송이씩 뽑아 강물에 흘려보내고 있었다.

소녀와 남자가 유골인 듯 보이는

하얀 가루를 강물에 흘려보내는 것을 보았다.

남자가 옷가지를 태우는 것도 보았다.

불현듯 담배가 피우고 싶어졌다.

라이터가 보이질 않았다.

남자에게 다가갔다.

“라이터 좀 빌려 주시겠어요?”

남자의 공허한 눈과 마주친 순간

‘수영’은 ‘운명’을 보았다.

목요일 새벽 한시 이십분

민재는 셔터가 내려진 ‘한길 유통’ 창고의 정문 앞에 서 있었다.

오늘은 한달에 한번 씩 있는 한길유통 중하급 조직원들의 점호가 있는 날이었다.

“긴샴! ‘파예드’와 ‘압둘’에게 작전 개시 하라고 해. 그리고 ‘남태근’과 ‘정도수’는 내가 맡는다. 너희들은 나머지 놈들을 한놈도 빠짐없이 제압하도록.”

검은 전투복을 입고 1m 정도 길이의 회백색 티타늄 봉을 들고 있는 ‘민재’의 뒤로 긴샴과 열한명의 검은 복면을 쓴 남자들이 서 있었다.

그들의 손에는 소음기가 달린 베레타 권총이 들려 있었다.

드르륵~

셧터문이 올라가고 남자들이 발소리도 없이 창고 안으로 뛰어 들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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