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8화 (18/20)

6.상처(傷處)

2010년 12월 9일 일요일 아침은

19년의 ‘한지수’인생 중 최악의 날로 기록될 것 같다.

그 날도 나는 새벽 6시에 일어나 위층의 오빠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만 기다리고 있었다.

6시 45분 드디어 오빠 아파트의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고 엘리베이터가 올라왔다.

재빨리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른 나는 잠시 후면 잘생긴 오빠를 볼 수 있다는 마음으로 무척 설레어 하고 있었다.

“띵똥~”

“안녕하세요~. 오빠”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는 순간 오빠의 얼굴도 확인하지 않고 고개를 숙인 내 두 귀로 두 사람의 목소리가 파고 든다.

“안녕! 고3~”

“헬로우~ 키티!”

‘굵은 목소리는 오빠인데 영어인사를 하는 예쁜 목소리의 주인공은 누구?..키티?..귀엽다는 뜻인데..감히 열아홉 처녀 보고 귀엽다고 하는 저 건방진 목소리는 누구?..’

고개를 들고 목소리의 주인공을 확인한 내 눈에 순간적으로 마비 증상이 왔다.

163cm인 내 키보다 조금 더 커 보이는 목소리의 주인공은 마치 인형처럼 아름다웠다.

백인 보다는 약간 유색이었지만 한국인 보다는 훨씬 하얀 얼굴을 가진 영어 목소리의 주인공은 조막만한 얼굴의 반쯤 차지할 것 커다란 눈망울과 오똑하고 상큼한 콧날을 가졌고 루즈 자국 하나 없는 작은 입술은 붉은 윤기가 흘렀다.

짙은 검은 머리를 뒤로 동여맨 그녀의 하얀 목은 사슴의 그것처럼 가늘고 길었고,

오빠의 검은 카파 트레이닝복과 커플룩처럼 보이는,

하얀 트레이닝 바지속에 감추어진 그녀의 다리는 내 다리보다 한배 반쯤 길어 보였다.

전에 보았었던 ‘예쁜 언니’나 ‘로망 언니’보다 200배쯤 더 예쁜것 같다.

스페인 영화배우인 ‘페넬로페 크루즈’와 흡사한 분위기를 풍기는 언니였다.

“안 탈거냐? 고3!”

“아..아니요..타요.”

‘으~..오늘도 오빠와의 만남은 변함없이 쪽팔림으로 시작하는 구나?’

“누..누구에요?..음..소...개..맞다 소개 안 시켜 줘요? 민재..”

‘어~ 한국말도 할줄 아네~’

“내 아파트 바로 밑에 사는 고3..”

“반가워요~ 고3! 저는 ‘로라’라고 해요.”

“저..저도 반가워요. 근데 제 이름은 고3이 아니고 지순데요. 한지수.”

“그럼 고 3은 닉네임인가요?”

“니 이름이 한지수였냐? 처음 알았네..”

‘으윽~ 이걸 어떻게 설명해 주지?’

15년 넘게 배워온 영어문장이 하나도 떠오르질 않는다.

띵똥~

‘엘리베이터가 나를 살렸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림과 동시에 오빠는 변함없이 빠른 속도로 뛰어 나간다.

그 뒤를 페넬로페 언니도 꽤나 빠른 속도로 ㅤㅉㅗㅈ아간다.

나도 비록 언니보다는 짧은 다리지만 운동 횟수를 높여 언니의 꽁무니를 따라 잡았다.

바로 뒤에서 보는 ‘페넬로페 언니’의 몸매는 정말 여지가 보기에도 반할만큼 아름다웠다.

긴 팔다리를 가볍게 움직이며 얇은 허리 아래로 육감적이고 탄력적으로 움직이는 엉덩이의 비율은 동양인의 체형에서는 결코 나올 수 없는 몸매였다.

우당탕~쿵~

“아악~”

언니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뛰다가 다리가 접질려 그대로 구르고 말았다.

눈앞에 별이 반짝이지만 아픈 것 보다 쪽팔림 때문에 얼굴을 들지 못하겠다.

“민재~~ 고3이 넘어졌어요~~”

언니가 오빠를 부른다.

‘아~씨~ 부르지 말지... 쪽팔리게~.글구 내 이름은 고3 아니라니까?’

“많이 다쳤냐? 한번 일어나 봐라.”

“아윽~”

오빠의 팔을 잡고 일어나 왼발을 내딛는 순간 발목이 시큰거리며 통증이 올라온다.

“안돼겠다, 업혀라!”

“저 괜찮은데...”

‘야호~~ 대박~~대박~~오빠 등에 업히다니..야~~호~~ 심봤다~~’

오빠가 내 엉덩이를 잡고 나를 업은 오빠가 몸을 일으키고 엘리베이터까지 걸어갈 동안 뽕브라에 감춰진 내 작은 가슴과 젖꼭지를 오빠의 어깨에 비빌 수 있었다.

또 보지물이 주르륵~ 흐른다.

“내 아파트에 삔 곳에 바르는 연고하고 파스가 있으니까. 일단 내 집으로 가서 응급치료하고 내려가라.”

“네~ 오빠! 정말 고마워요~”

‘야호오~ 완전 대박 ..오빠 집까지 들어가다니..오늘 완전 로또 맞았네..히히’

오빠 집에 있는 가구들은 무척 고급스러워 보였다.

지금 내가 앉아있는 이 쇼파도 천연 가죽인것 같다. 뭐~ 아님 말고..

“당분간 왼발 디딜 때 조심해라. 내일 아침에 일어나서 붓기가 가라안지 안으면 한방병원에 가서 침 맞아야 할 거야..”

“네~”

쇼파 앞에 쪼그리고 앉은 오빠가 내 발목에 연고를 바르고 압박붕대를 감으며 말한다.

오빠의 손가락이 내 발목을 스칠 때마다 보지에서 왈칵거리며 샘물을 내 보낸다.

“이제 다 됐다. 고3~”

“고맙습니다.~”

압박붕대를 다 감은 오빠가 약을 바르느라 무릎까지 걷어 올렸던 분홍빛 트레이닝 바지자락을 내려 주었다.

“근데..너..”

“저 뭐요?”

“너 쉬~ 했냐?”

“?”

“민재! 쉬~가 뭐야?”

내 사타구니를 내려다 본 순간 보지물이 팬티 밖까지 적셔서 분홍 트레이닝 바지의 사타구니 부분을 짙게 물들이고 있는 것이 눈에 왈칵 들어온다.

“아아아아악~”

그날이후로 약 한달 동안,

자살을 할까?..

아니면 아빠에게 졸라서 이사를 할까?..

하는 고민으로 하루 여덟시간씩 밖에 못자고 하루 세끼 밖에 못 먹었다.

결론은...

뭐~ 세월이 약이라는데..

오빠한테 보였던 내 모습도 오빠는 벌써 잊었을 거야.

그나저나 발렌타인데이에는 오빠에게 어떤 초콜렛을 선물해 줘야 할까?

새롭게 시작된 나 한지수의 고민...

“아! 이대표. 오늘 ‘알자지라’ 방송국 뉴스부와 ‘르몽드’지의 젯다 특파원이 현장 촬영을 나온다는 연락을 받았어. 오후 쯤 되어야 도착할 것 같은데..”

로밍된 휴대폰으로 ‘이민재’와 통화를 하고 있는 ‘지현우’의 등 뒤로 모래사장으로 밀려오는 하얀 파도가 포말과 함께 부서지고 있다.

강아지 ‘파라다’와 함께 마을을 뛰어 다니는 촌장의 딸인 11살 ‘알리마’의 모습이 지현우의 눈에 들어온다.

입가에 미소가 지어진다.

“알리마! 천천히 다녀. 넘어지겠다.”

요즘 나는 무척 신난다.

삼주일전에 한국 아저씨들이 바닷물을 민물로 바꾸는 요술을 부리고 그 민물을 모래바닥에 그냥 버리는 것을 아빠인 ‘촌장’에게 고자질하자 아빠는 아침밥도 안 드시고 마을 회관으로 마을의 어른들과 한국 아저씨들을 불러 모아 몇 시간 동안 회의를 하셨다.

그리고 그날부터 마을의 어른들은 곧바로 수로를 파기 시작했다.

집집마다 삽과 괭이를 들고 나와 물이 콸콸 흘러나오는 파이프 아래부터 마을로 이어지는 긴 수로를 만들기 시작했다.

바닥이 모래로 되어 있어 수로는 금방 완성이 됐지만 문제는 파이프에서 흘러나온 민물이 마을에 이르지 못하고 모래바닥 속으로 모두 스며들고 말았다는 것이다.

그것을 본 ‘자이드’의 할아버지가 해변에서 넓고 평평한 돌을 주어와 바닥에 깔아보라고 말을 했다.

‘자이드’의 할아버지는 여든이 넘으신 우리 마을에서 가장 나이가 많으신 어른이다.

사흘 동안 마을의 모든 사람들이 고기잡이도 나가지 않고 해변에서 돌을 주워 날랐다.

한국 아저씨들은 가지고 온 트럭 뒤에 한가득 돌을 싣고 해변에서 마을 까지 수십 번을 왕복하며 도와주었다.

할아버지의 말대로 평평한 돌들을 바닥에 깔고 둥글고 커다란 돌들로 수로의 양 옆면을 지탱하니 민물이 바닥으로 스며들지 않고 마을의 한가운데로 졸졸 흐르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본 한국 아저씨들 중 대장아저씨가 건물 안쪽으로 들어가 무엇인가를 만지자 파이프에서 쏟아져 나오는 민물의 양이 순식간에 두 배가 되었다.

내 발목 까지 밖에 안차던 수로의 물이 순식간에 종아리까지 차올랐다.

남자아이들은 수로를 첨벙거리며 뛰어다니고 서로 물을 뿌려대며 즐거워했다.

나도 그렇게 하고 싶었지만 11살이나 되어서 ‘이바야’를 벗고 다리를 보이면 아빠한테 ‘불결한 자식’이라는 욕설과 함께 채찍질을 당할 것이 뻔했으므로 참을 수밖에 없었다.

마을 언니들과 아줌마들은 이제 5km나 떨어져 있는 ‘칸프’ 마을의 우물까지 물을 길러 가지 않아도 된다.

한국의 대장 아저씨가 민물을 그냥 먹어도 된다고 했기 때문이다.

아침에 일어나면 민물이 쏟아지는 커다란 파이프로 양동이를 들고 가서 쏟아지는 민물을 받기만 하면 끝이었다.

‘하디야’의 엄마는 해변에서 평평하고 커다란 돌을 낑낑거리며 메고 와서 집 앞으로 흐르는 수로의 바로 옆에 내려놓고 그곳에서 빨래를 하셨다.

그 모습을 본 마을 누나들과 아줌마들은 모두 해변으로 달려 나갔다.

그날 저녁 마을회관 앞의 넓은 공터에서 동네아저씨들과 한국아저씨들이 축제를 벌였다.

마을에서는 양과 염소를 잡아 고기를 준비했고 한국 아저씨들은 자기들이 가지고 온 ‘소주’라는 술을 내어 놓았다.

아빠 몰래 ‘소주’라는 술을 한모금 마셔 봤는데 혓바닥이 타들어 가는 것 같아 얼른 뱉어 내고 말았다.

이런 것을 왜 마시는지 모르겠다.

술이 취해서 집에 돌아온 아빠는

“한국 사람들 무척 착하고 성실하더구나. 회사 이름이 로민 ..뭐라고 했는데..’알리마‘ 한국 사람들이 지은 창고 건물에 영어로 크게 쓰여진 걸 뭐라고 읽는 거지?”하고 물어 보셨다.

아빠는 영어를 읽지 못하신다.

“예~ 아빠 ..그건 ‘로민 솔루션’이 만든 ‘로민 카운티’라는 뜻이에요.”

“허허~ 알리마! 똑똑하구나. 이제 그만 자거라..” 오랜만에 듣는 아빠의 웃음소리와 함께 잠이 들었다.

“헉헉~ 알리마! 조금 쉬었다 가자. 너무 힘들어..”

“안돼~ 하디야! 앞으로 다섯 번 정도는 더 왕복해야 한단 말이야. 해지기 전에 빨리 서두르자.”

“아힝~ ..알았어...”

친구 ‘하디야’와 나는 마을에서 20분 정도 거리에 있는 야트막한 검은색의 바위산을 오르는 중이다.

바위산의 중간쯤에 있는 검은색의 바위 밑에는 하얀 꽃을 피우는 작은 야생 식물들이 살고 있다.

그리고 그 꽃을 피우는 바위 밑의 땅은 모래가 아닌 검은색 흙으로 이루어져 있다.

나와 ‘하디야’는 그 흙을 퍼다가 우리집 마당 앞의 수로 근처에 꽃밭을 만들 예정이다.

작년에도 한번 해본 적이 있었는데 꽃들이 모두 말라죽어 버렸다.

그때 ‘자이드’의 할아버지는 흙을 옮겨와도 수분이 모자라기 때문에 꽃이 살아날 수 없다고 말씀 하셨었다.

이번에는 수로도 있으니까 하얗고 예쁜 야생화들이 잘 살아날 수 있을 것 같다.

“하디야. 다 왔다. 얼른 자루를 열어 흙 담아가자. 꽃도 뿌리가 안 다치게 잘 파내고...”

“알리마! 뭐하는 거니?”

“꽃밭을 만드는 중이에요.”

“아저씨가 좀 도와줄까?”

“그럼 저야 고맙죠. 헤헤”

우리집과 한국 아저씨들의 창고... 아니 ‘마르지 않는 우물’은 무척 가깝다.

마을 사람들은 24시간 쉬지 않고 민물을 만들어 내는 기계가 있는 창고에 ‘마르지 않는 우물’이라는 이름을 붙여 주었다.

우리 아빠는 요즘 내가 한국 아저씨들하고 말을 나누는 것을 뭐라고 하지 않으신다.

그 아저씨들 중에서도 지금 화단 만드는 것을 도와주고 있는 ‘혀누’라는 이름을 가진 대장 아저씨하고 가장 많이 가까워 졌다.

“그런데 이 검은 흙은 어디서 파오는 거니?”

“우리 동네에서 ‘칸푸’ 마을 쪽으로 가다보면 검은 바위산이 있어요. 거기 중간쯤에 이런 흙들이 많아요.”

“흠~ 그래?”

그날 저녁 우리 집으로 찾아온 ‘혀누’아저씨는 아빠하고 오랫동안 이야기를 나누셨다.

다음날 바위산으로 흙을 가지러 갔던 나와 ‘하디야’는 바위산의 중간에서 커다란 바위들을 통째로 들어내고 있는 대형 포크레인을 보고 깜짝 놀랐다.

바위를 모두 들어내며 길을 만든 포크레인은 그 커다란 바가지로 검은 흙을 잔뜩 떠서 뒤따라 오던 덤프트럭의 짐칸을 가득 채웠다.

그 덤프트럭은 우리 마을로 향했다.

나와 ‘하디야’는 그 트럭을 따라 정신없이 달렸다.

마을로 가는 중간쯤에 다시 돌아오는 그 트럭이 스쳐 지나갔다.

마을회관의 공터에는 그 덤프트럭이 쏟아 놓고 간 검은 흙이 내 키보다 더 높게 쌓여 있었다.

하디야와 나는 미리 준비해 갔던 모래주머니에 그 흙을 잔뜩 담고서 우리집 마당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날 저녁 나는 하얀 꽃이 한가득 피어 있는 나만의 꽃밭을 만들 수 있었다.

이름도 없는 그 야생화 꽃잎들은 산에 있을 때보다 더 생기있는 모습으로 수로 옆에서 흩날리고 있었다.

공터에 쏟아놓은 검은 흙이 산더미처럼 쌓인 어느 날 저녁 ‘혀누’아저씨와 마을 어르신들이 우리집에 모였다.

어르신들과 아빠는 ‘대추야자나무’ 어쩌고 하며 ‘혀누’아저씨와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나는 그 이야기에 관심이 없다.

‘혀누’아저씨가 아까 나에게 선물로 준 ‘아이패드’라는 것에 푹 빠져 있었기 때문이다.

‘아이패드’는 학교 선생님들 중에서도 서너분만 가지고 있는 것인데 그들이 가진 것보다 ‘혀누’아저씨가 준 것이 훨씬 좋아 보인다.

내가 태어나기 몇십년 전에,

그러니까 아빠가 내 나이쯤 되었을 때 까지만 해도 우리 마을에 ‘대추야자나무’가 무척 많았었다고 한다.

그래서 마을 이름도 ‘대추야자나무가 나는 얀부’라는 의미의 ‘얀부 알 나킬’이란 이름이 붙여 졌다고 했는데 아빠가 스무살 때 쯤 커다란 지진이 일어난 후 마을중간에 있던 커다란 우물이 바짝 마르고 그후에 ‘대추야자나무’들도 서서히 말라 죽어갔다는 얘기를 ‘자이드’의 할아버지에게 들은 적이 있다.

지금은 ‘칸푸’마을로 가는 길가에 열매도 안 열리는 고목 같은 야자나무 몇 그루만 남아 있다.

내가 ‘아이패드’를 선물 받은 그 다음날 아빠와 ‘혀누’ 아저씨는 마을에서 120km정도 떨어진 행정관청에 다녀온다며 새벽부터 덤프트럭을 몰고 나가셨다.

저녁때 돌아온 ‘혀누’아저씨의 트럭 뒤에는 수백그루의 어린 묘목과 커다랗게 다 자란 ‘대추야자나무’ 세 그루가 실려 있었다.

커다란 ‘대추야자나무’는 우리 집 마당에 한 그루가 심어졌고 마을 회관에 두 그루가 심어졌다.

그 것들을 심을 때는 포크레인으로 모래구덩이를 깊게 파고 검은 흙을 한차정도 그 구덩이 속에 쏟아 부은 후에야 나무를 심었다.

어린 ‘대추야자나무’ 묘목들은 마을 사람들에게 나누어져서 집집마다 한두 그루씩 심어지게 되었다.

그런데 동네 아주머니들이 검은 흙을 서로 더 많이 가져가려고 싸워서 ‘혀누’아저씨는 돌려 보냈던 포크레인과 덤프트럭을 다시 불러와야했다.

아저씨에게 정말 미안 했다.

그리고 어제는 ‘알 자지라’방송국에서 나왔다는 사람들이 떼로 몰려다니며 온 마을을 촬영하고 마을 사람들을 인터뷰 했다.

안테나가 달린 방송차량이 내가 만든 꽃밭을 향해 달려올 때는 행여나 꽃들이 다치는 게 아닌가 하고 마음을 졸였지만 화단 주변을 검은 돌로 막아 놓아서 인지 다행히 차량은 화단을 뭉개지 않고 옆으로 스쳐 지나갔다.

나도 내 화단 옆에서 예쁜 기자언니와 함께 기념촬영을 하며 인터뷰를 했다.

꽃밭이 무척 예쁘다는 그 언니의 말이 나를 무척 기쁘게 만들었다.

기자언니는 내일 인터넷 신문과 사우디 국영방송에 우리 마을 기사가 실릴 거라면서 나에게 ‘알자지라’방송 사이트가 인쇄되어 있는 명함을 주고 갔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아이패드’ 전원을 켜고 사이트에 접속을 했다.

‘세상에~’

-‘로민 카운티’의 행복한 소녀 ‘알리마’-

라는 제목으로 내 사진과 함께 ‘마르지 않는 우물’의 정경이 대문짝만하게 ‘알자지라’ 뉴스 페이지를 장식하고 있었다.

“엄마! 아빠! 이것 좀 보세요.”

잠옷차림 그대로 아빠의 방으로 뛰어 갔다.

대현생명 25층 ‘중동지역 영업지원본부’ 본부장실의 집무 탁자에는 ‘본부장 이민재’라고 쓰여져 있던 명패가 사라지고 금박으로 새겨진 ‘이사 이민재’라는 큰 명패가 그 자리를 대신 차지하고 있다.

명패 옆에는 프랑스 신문인 ‘르 몽드’지와 영자 신문인 가디언 지가 접혀져 있다.

‘르 몽드’지의 해외 기사부분에

–젯다 근교의 시골 마을에 선보인 ‘로민 솔루션’의 해수 담수화 신기술-

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컬러 사진과 함께 크게 실려 있었다.

‘가디언’지의 문화 부문에는

-‘얀부’에서 ‘로민 카운티’로 이름을 바꾼 페르시아만의 시골마을-

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한면 전체를 차지하고 있었고

그 옆에 놓인 한국의 ‘경향 신문’ 1면에는 이런 제목의 기사가 실려 있었다.

-‘로민 솔루션’ 전기흡착식 이라는 해수담수화 신기술을 사우디에 선보이다.-

‘민재’는 유럽 각국의 메인 방송과 유력 신문의 기사에 ‘로민 솔루션’이라는 이름을 넣기 위해 지난 3주간 6백만 달러라는 돈을 뿌렸다.

UPI통신사에 근무하는 옥스퍼드 동창 ‘마이클’은 ‘민재’의 부탁을 훌륭하게 소화해 냈다.

아마 지금쯤 사우디 국왕과 왕세자는 ‘알자지라’신문에 실린 ‘알리마’의 기사를 읽고 있을 것이다.

민재가 뿌린 6백만 달러는 ‘젯다’의 10억불짜리 초대형 프로젝트인 해수담수화 설비를 ‘로민솔루션’에게 안겨주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민재’는 확신하고 있었다.

다음 주에 ‘민재’와 ‘마흐드’는 사우디 왕세자를 모시고 ‘로민 카운티’를 방문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바로 지금 이순간부터 ‘삼정중공업’과의 전쟁이 시작되는 것이다.

지금쯤 ‘삼정그룹’비서실에서는 ‘로민’의 정체를 파악하기 위해 자신들이 가진 모든 정보루트를 동원하고 있을 것이다.

전쟁은 시작 되었고 그 결과가 어떻게 될지는 오직 신만이 알 뿐이다.

싸움에 나선 전사는 묵묵히 적들을 향해 칼을 휘두르는 것이다.

하지만 ‘삼정’외에도 그를 노리는 또 하나의 시선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아직 ‘민재’는 모르고 있었다.

‘홍재경’이라는 이름의 그 독아(毒牙:독을 뿜어내는 뱀의 독 이빨)는 무척 가깝고 치명적으로 민재의 주변에 다가오고 있었다.

‘로민 솔루션’과 사우디 시골마을의 담수설비가 신문과 방송을 장식하던 그 날 저녁, ‘민재’는 우미옥의 안가에서 박성재 비서실장을 만나 두시간 동안 밀담을 나누고 헤어졌다.

박성재 실장은 내일 ‘신기남’대현건설 사장을 만나 20억불 규모의 젯다 발전소 프로젝트를 공개할 것이다.

최경수 ‘로민 솔루션’부사장이 새나라당 ‘장덕호’의원과 동행하여 강원도 도지사를 만나고 속초, 고성의 지역구 국회의원과 함께 해양심층수 개발에 대해 의논하던 2월9일 ‘이민재’는 사우디 젯다행 비행기를 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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