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5화 (15/20)

수중에 용해되어 있는 무기물은 거의 대부분 이온화되어 있다. 여기에 전극을 삽입하여 전류를 흐르게 하면 양이온은 음극으로 음이온은 양극으로 이동한다.

이 원리를 이용해 정수하려는 바닷물을 일정량 가두어 놓고 봉(棒)형태의 금속 전도체를 바닷물에 담그고 한쪽에는 음극을 다른 쪽에는 양극의 전류를 흘려보낸다.

그러면 바닷물 속에서 화학적으로 결합되어 있던 이온들이 분리되어 금속 막대쪽으로 분자 운동을 한다. Nacl은 Na(+)와 cl(-)로 나뉘고 CaSO4는 Ca(+)와 SO4(-)로 나뉘어 각 이온이 가지고 있는 전기성질의 반대쪽 전극의 막대로 움직이는 것이다.

각 이온을 잡아둘 수 있는 막(일종의 미세한 거름종이라고 이해하면 될 듯)을 전극 막대쪽에 담가두면 이온이 막대쪽으로 분자운동을 하다가 막에 걸러지는 방법을 이용하는 담수화 기술이 ED라고 불리우는 전기 투석식(Electrodialysis method) 방법이다.

위와 똑같은 원리이지만 전극막대나 이온 거름 막을 사용하지 않고 활성탄소전극 플레이트를 설치해 이온을 플레이트에 직접 흡착시키는 방식이 CDI라고 불리는 전기흡착식(Capacitive Deionization)이다.

12시쯤 되자 아까 민재와 통화했던 ‘지현우’의 코란도 차량이 두강개발 공장앞에 도착한다.

‘민재’의 백부 ‘이영묵’의 고향친구의 아들인 올해 37살의 ‘지현우’는 ‘대림산업’ 해외 플랜트설비 현장실무와 공사책임자를 맡아 10여년간 근무한 경력이 있는 베테랑 기계공사 관리자로, ‘민재’가 옥스퍼드에서 석사 학위를 받고 이라크로 돌아와 ‘로라컴퍼니’의 설립준비를 하던 5년전에 바그다드의 산업용 소각로 설비 공사현장의 책임자로 파견되어 있던 그와 백부님의 소개로 처음 만나게 되었고 그후로도 호형호제하며 친하게 지내고 있다.

그는 얼마전 ‘로민 솔루션’으로 들어오라는 ‘민재’의 부탁을 고민 없이 곧바로 ok하고 미련없이 대림산업에 사표를 내던진 의리의 사나이이기도 하다.

오사장은 지현우의 부탁으로 똑같은 내용의 설명을 다시한번 지현우 앞에서 해야 했다.

플랜트 기계설비에 관한한 최고의 실력을 가지고 있는 지현우와 역시 기계과 출신 오사장의 대화는 끝없이 이어졌다.

점심을 먹고 오자는 ‘민재’의 말이 있고서야 두 사람의 대화가 멈추었다.

식사 후에 공장으로 돌아와서도 오사장의 설명은 멈추지 않았다.

활성탄소플레이트는 한번 설치하면 반영구적으로 사용가능하고 설치비가 투석식에 비해 아주 저렴하다는 것이 오사장의 설명이었다.

오사장이 흡착식의 핵심이라고 보여준 것은 지름 20cm가량의 두개의 검은색 디스크였다,

바닷물에 강한 스테인레스 316재질로 가공을 하고 탄소코팅을 했다는 그 디스크들은 바로 바닷물의 짠 성분인 나트륨 양이온과 염소 음이온을 따로 흡착시키는 기능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며 지금 가동하는 설비에는 이와 똑같은 것들이 다섯개씩, 총 열개가 장착되어 바닷물이 흐르는 파이프 안쪽에서 회전하고 있다는 설명을 덧붙였다.

오사장이 설명을 마친 얼마후 기계의 출구라고 짐작되는 지름 30cm정도의 관에서 물이 줄줄줄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민재가 다가가서 살짝 혀를 대어 보니 입구로 들어갔던 바닷물이 짠맛이 하나도 느껴지지 않는 맹물이 되어 있었다.

민재의 눈이 놀람으로 커진다.

‘이 설비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다’

민재의 사업가 본능이 맹렬히 소리치고 있었다.

불과 4시간 만에 바닷물을 민물로 바꾸는 기술, 그리고 설비 금액은 기존 설비의 십분의 일 수준이면 충분하고 무엇보다도 가장 매력적인 것은 딜레이 타임 없이 담수가 계속 흘러나온다는 점이다.

설비를 가동하고 바닷물만 계속 공급해주면 4시간 후부터는 무한정의 담수가 샘처럼 솟아나는 것이다.

“오사장님! 아까 보여주신 활성탄소디스크의 지름을 더 키우면 시간대비 담수화 되는 양이 더 많아지겠지요?” 민재가 번뜩이는 눈으로 오사장을 쳐다본다.

“크기에 따라 담수되는 물의 양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납니다.. 디스크의 크기가 두배면 네배의 양을 담수화 할수 있고, 디스크가 네배의 크기라면 담수의 양은 열여섯배로 늘어나지요.”

“흐음~..”

한동안 생각에 잠겨 있던 ‘민재’가 오사장을 향해 진지한 목소리로 입을 연다.

“오 사장님! 제가 좀 긴하게 말씀드릴 것이 있습니다. 사무실로 자리를 옮겨서 말씀드리면 않되겠습니까?”

“그렇게 하시죠.” 오사장이 공장의 한켠에 마련된 작은 사무실로 일행을 안내한다.

사무실의 의자에 앉은 ‘민재’는 사우디아라비아의 발전소와 담수프로젝트에 관해 일행들에게 상세히 설명을 한다.

발전소 20억불 내외, 담수설비의 예상 규모가 10억불이라는 ‘민재’의 말에 세사람 모두 입이 벌어진다.

“수주를 하게 되면 발전소는 대현건설에서 공사를 하겠지만 해수담수화설비는 ‘로민솔루션’에서 진행할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다. 오사장님! 이번 프로젝트에 참여하시지 않겠습니까?”

“물론 하고는 싶지만...그런 큰 공사에 저희 같은 영세하고 작은 공장의 힘이 무슨 도움이 되겠습니까?”

“오사장님은 전기흡착식 담수화 기술만 가지고도 이번 건에 참여할 충분한 자격이 되십니다. 저희 회사의 기술고문으로 모시겠습니다. ‘삼정’이나 ‘대현’같은 대기업의 임원이상의 급여를 지급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사장님이 원하신다면 공장을 계속하셔도 좋고, 공장직원들도 모두 사장님 밑에서 근무할 수 있게끔 하겠습니다. 물론 담수화 연구는 계속 진행하셔야 겠지요? 연구에 필요한 모든 장비와 연구비를 제공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사장님이 개발하신 흡착식 담수화 기술을 전 세계에서 상용할 수 있게끔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거기에서 발생하는 이익도 적절하게 사장님께 분배하도록 하겠습니다. 허락해 주십시오. 이번 기회에 삼정중공업의 건방진 콧대를 한번 꺾어보지 않으시겠습니까?”

뜨거운 눈길을 한 열정적인 ‘민재’의 설득에 한동안 고민을 하던 오사장이 말문을 연다.

“갑자기 이런 제안을 받게 되어서 참 혼란스럽습니다만 보잘 것 없는 설비를 높이 평가해 주시는 ‘이민재’팀장님의 안목과 그 뜨거운 열정에 감복했습니다. 더구나 공장의 직원들까지 챙겨주는 모습에 이기적인 ‘삼정’과는 다르신 분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팀장님의 제의를 수락하겠습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월요일에 이곳으로 여기 계시는 ‘강민희‘ 총무팀장과 증권을 담당하는 ’로민 솔루션’ 직원을 내려 보내겠습니다. 주식의 등록과 서류문제들은 그 친구와 상의 하면 됩니다.”

오사장과 민재가 힘찬 악수를 나눈다.

단지 ‘삼정’의 입김이 미치지 않는 담수화설비를 찾기 위해 평택까지 내려온 ‘민재’에게 생각지도 않은 커다란 행운이 찾아온 것이다.

‘민희’와 ‘지현우’는 숨 쉴 틈도 없이 진행된 두 남자의 전격적인 합의를 멍한 표정으로 바라보고만 있었다.

“오사장님! 지른 1m정도의 디스크를 사용하면 하루에 어느 정도 양의 바닷물을 담수화할 수 있습니까?” 커피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던 지현우가 기술적인 질문을 한다.

“그동안 실험한 데이터로 추측해 보자면 1m 지름의 디스크 10개를 장착한 전기흡착식 담수화 기기 1기가 하루에 담수화 할 수 있는 양은 약 20톤 내외가 될 것 같습니다.”

“지름의 크기를 더 크게 할 수는 없습니까?”민재의 말이다.

“제가 아는 공작 선반이 가공할 수 있는 최대 크기가 지름1,5m 였습니다. 더 큰것도 물론 있겠지만요...”

“오 사장님 지름 1m 짜리 디스크를 장착한 담수설비를 제작하는 데 초대한 서두른다면 시간이 얼마나 걸릴까요?”민재가 무엇인가 생각났다는 투로 급하게 물어온다.

“원 자재 발주하고 가공하고.. 활성 탄소 코팅해서 디스크가 공장으로 입고되는 데 걸리는 시간이 대략 한달 반 정도 걸릴 거고, 디스크가 장착될 펌프 기계와 파이프등은 미리 용접하고 대기하다가 디스크가 입고되면 조립하고 테스트하는 시간까지 하면...음~.. 총 3개월가량 걸리겠네요.”

“사장님! 그럼 최대한 빠르게 기기 1기분에 소요되는 1m짜리 디스크를 발주 하십시요. 다른 자재들도요.”

“소요되는 자금이 만만치 않을 겁니다. 정확한 견적을 받아봐야 알겠지만 대략 15억원을 상회할겁니다. 그리고 저희 공장이 작아서 설치할 공간도 마땅치 않구요...”

오사장이 난색을 표한다.

“자금은 걱정하지 마십시오. 여기 ‘강민희’ 팀장님에게 자금 소요 내역서를 제출하시면 바로 처리해 드릴 겁니다. 그리고 설치 장소는...”

말을 끊은 ‘민재’가 세명을 향해 한번 씨익~ 미소를 지은 후 다음 말을 이어간다.

“설치장소는 사우디아라비아의 낙후되고 매년 물 부족에 시달리는 작은 해변마을에 설치될 겁니다. 무상으로 설치해 주는 거죠..후후.. 몇 개월만 지나면 그 마을은 우리 ‘로민 솔루션’과 오사장님의 전기흡착식 해수담수화설비를 세계전체에 알리는 아주 유명한 마을이 될 겁니다.

오사장님 사우디아라비아에 한번 나가고 싶지 않으십니까?“ 민재가 들뜬 얼굴로 일행을 바라보며 함빡 웃는다.

“아하~ 그런 계획이시군요. 하하하. 빨리 전자여권을 만들어야 겠군요. 그리고 공장의 기술직원들 서너명도 여권을 준비하라고 해야 겠어요. 하하하하”

“어허~ 나도 빨리 해외 기계건설팀을 꾸려야 겠는걸. 그나저나 쉬고 있는 용접팀과 배관팀들이 있을까 모르겠네. 담수화 설비를 작동시키려면 소형의 발전설비도 필요 하겠군.. 이거 엄청 바빠지겠는데..하하하”

그제서야 민재의 계획을 눈치 챈 오사장과 지현우가 파안대소를 한다.

‘민희’는 무슨 말인가? 하고 눈만 깜빡이면서 즐겁게 웃고 있는 세 남자를 바라만 보고 있었다.

"민재"는 두강개발을 나오면서 일행들 모두에게 비밀엄수를 몇번이나 다짐 받았다.

전기 흡착식 해수담수화 설비는  "삼정"은 물론 "대현"에서도 결코 알아서는 않되는 중요한 일이었다.

“모두 쉬시는 공휴일에 불러내서 무척 죄송스럽습니다...”

일요일 아침 ‘민재’는 ‘로민 솔로션’의 다섯명의 직원들을 사무실로 긴급 소집해 어제 두강개발 ‘오사장’과 나누었던 협의 내용을 상세하게 설명해 주고 사우디에 설치될 담수화 시험설비에 관해서도 말해 주었다.

로민 솔루션의 직원들은 드디어 본격적인 임무에 들어간다는 흥분 반 기대 반의 열기를 눈 속에 담고 있었다.

“사우디의 궁벽한 해변마을에 흡착식 담수화 설비가 성공적으로 설치되면 그 마을은..마을의 이름을 가칭 ‘로민 카운티’로 부르겠습니다. ‘로민 카운티’는 전 세계 매스컴의 주목을 받게 될 겁니다. 아니 주목을 받도록 만들겠습니다. 그리고 ‘로민 카운티’를 만든 저희 ‘로민솔루션’의 기업가치가 전 세계 해수담수화 계획이 있는 국가나 기업들의 관심을 받게 될 겁니다. 그 와중에 자연스럽게 사우디아라비아 젯다의 담수화설비를 저희가 수주 받게 될 것이고요. 그런데 문제는 해수담수화설비 수주실적 1위를 달리고 있는 ‘삼정중공업’에서 저희가 승승장구 하도록 방관하지는 않을 거란 것입니다. 그룹 차원에서 견제가 들어올 것입니다. 해서 저희는 그 견제를 피할 방안을 찾아놓아야 합니다. 먼저 강민희 총무팀장은 EU와 미국에 전기흡착식 담수화 설비 특허 출원에 매진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최 동건’증권 팀장은 창원에 있는 초대형 금속가공 전문업체 ‘태성정공’의 현 주주들의 실태를 파악하고 적대적M&A를 검토하고 보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지름 8M의 금속을 가공할 수 있는 설비를 갖춘 ‘태성정공’의 경영권을 적대적M&A를 통해 탈취하고 ‘로민 솔루션-머신’으로 명칭을 바꿔 흡착식 설비의 핵심 기술인 활성탄소디스크 생산공장으로 만들 것입니다. 삼정의 방해 공작이 통하지 못하도록 말입니다. 그리고 지현우 기계팀장님은 ‘로민 카운티’의 담수화설비 설치공사를 진행하시면서 ‘태성정공’의 핵심 기술자들과 미리 안면을 트시고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도록 힘써 주십시요. 추후에 저희 ‘로민 솔루션’이 경영권을 가졌을 때 회사를 이탈하는 기술자들의 숫자를 최소화 하는 것이 지현우 팀장님의 임무 입니다. 이상입니다. 모두 임무를 숙지 하셨습니까?”

“네!”

일요일 아침

‘로민 솔루션’ 간판이 걸려 있는 삼층의 창문에서 힘찬 대답소리가 들려 나온다.

다른 직장인들이 모두 쉬고 있는 일요일 이었지만 ‘로민 솔루션’ 사무실은 뜨거운 열기로 가득했다.

일요일 밤 12시가 가까워오는 시간

‘민재’는 ‘홍재경’의 그룹섹스 동영상을 일부 편집하고 장만호의 사직서를 워드 파일로 첨부하고 몇 사람의 e-mail로 전송시켰다.

내일..의 기상 예보..

월요일 아침에는 ‘대현 생명’ 전체 사무실에 태풍이 상륙할 예정이었다.

‘민재’에게서 동영상과 워드 파일을 전송받은 바그다드의 ‘긴샴’은 데스크 탑 PC에서 USB로 내용을 카피해 노트북으로 옮기고 ‘민재’가 미리 알려준 e-mail 주소 4곳으로 전송 예약을 했다.

그 동영상과 워드파일은 한국시간으로 월요일 아침 7시 정각에 수신완료 될 것이다.

한동안 노트북을 바라보던 ‘긴샴’은 그 노트북의 주인이 정말 멍청한 짓을 했다고 생각하며 노트북의 하드 디스크 포멧 프로그램을 작동 시켰다.

‘멍청하게도 보스 ’이민재‘를 속이려 하다니...’

금요일 아침까지 그 노트북을 가지고 있었던 장만호는 머리에 총알이 박힌 채로 사막의 모래 속에 묻히는 신세가 되어 버렸다.

누군가 메일이 전송된 IP를 추적하는 만약의 상황을 대비해서 ‘만호’의 노트북을 사용한 것이다.

‘로라’도 사무실의 의자에 앉아 ‘민재’가 지시한 내용대로 공문을 작성하고 팩스와 e-amil의 예약 전송 버튼을 눌렀다.

‘로라’의 공문은 월요일 아침 9시에 대현생명에 전송될 것이다.

영문으로 작성된 공문의 내용이 팩스로 카피되고 있었다.

협조 요청 공문

발신:(주) 로라 컴퍼니 대표이사 로라 패이니

수신:대한 생명 대표이사 및 재무 담당 임원

제목:이라크 석유회사 보험의 본계약서 송부요구 및 보험 납입금 완료 확인서 요청서

내용: 2010년 11월 15일 바그다드 표준시각으로 13시 30분에 귀사의 해외영업부 중동팀 소속 장만호 과장으로 부터 본사의 대표이사에게로 전송된 영문 메일이 접수되었습니다.

(수신된 영문 메일 파일 첨부-http//xxx......)

(대현생명 홍재경 상무의 서명이 들어간 입금확인증 사본 첨부)

첨부한 메일의 내용이 사실인지 확인해주시길 바라며 아울러 본계약서와 보험납입금 입 금 확인 증명서를 귀사의 대표이사님의 확인 후 공문으로 보내주시기를 요청합니다.

적절한 확인과 조치가 취해지지 않을 경우 국제 사법 재판소에 소송을 제기할 것임을 미리 밝혀두는 바입니다.

귀사의 무궁한 번영을 기원합니다.

2010년 11월 18일 (주)로라 컴퍼니 대표이사 로라 페이니 (서명)

월요일 오전 07:30

“잘 다녀오세요..”

“응..이따가 전화 할께..”

‘홍재경’은 아내인 ‘장현주’의 전송을 받으며 금요일부터 전화통화가 되지 않는 장만호 때문에 불안하고 초조한 기분으로 차에 오르고 있다.

08:17

30분전에 집무실로 출근한 ‘홍명진’회장이 메일과 동영상의 내용을 확인하고 차남 ‘홍재경’과 장남인 홍재국을 회장실로 급히 호출한다.

08:25

장덕호 의원의 비서인 ‘최 영란’은 메일에 첨부된 그룹섹스 동영상을 침을 꼴깍꼴깍 삼키며 두번이나 본 연후에야 장의원과 장현주에게 전화를 걸어 호들갑을 떨어댄다.

08:33

‘대현생명’이희도 사장이 메일을 확인하고 그룹 특별감사팀에 전화를 건다.

그의 입가에 통쾌한 미소가 걸려 있다.

08:40

10분전에 회사에 출근한 ‘한윤정’이 ‘홍재경 상무’에게 전송된 메일을 확인하다가 장만호에게서 온 동영상 파일을 열어보고 망연자실한 표정을 짓는다.

룸싸롱 수(秀)의 룸 안에서 촬영된 네명의 그룹섹스 동영상에서는 만호와 혜리의 얼굴만 모자이크한 상태고 자신과 홍재경의 얼굴은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었다.

08:45

“이게 어찌된 일인지 설명해봐..이 멍청한 놈아!” 홍명진의 얼굴이 벌겋게 상기되어 있다.

“아...아버지..그건 제가 지난주에 바그다드로 날아간 장만호에게 이미 천만 달러를 보내서 처리가 된 문제예요. 물론 제가 공금을 유용한 것은 잘못이지만..일은 잘 처리했어요. 아버지..”

“야!~~ 이 멍청한 자식아! 일을 잘 처리한 장만호가 이렇게 메일을 보내 사건을 터뜨리겠냐?

너 지금 장만호하고 연락돼?“

“그..그게..돈을 송금한 다음부터 전화를 안받아요..”

“이..이..이익~...어휴~”

“재경아! 임마..너 어쩌려고 그랬어?”홍재국이 한마디 한다.

“시끄러워~ 이 멍청한 놈들아! 아휴~~”

열을 내던 홍명진회장이 한숨을 내 쉬며 쇼파에 주저 안고 그 앞에 서 있는 홍재경과 홍재국은 어쩔 줄 몰라 하고 있다.

08:52

동영상을 확인하고 멍하니 앉아있던 한윤정이 입술을 깨물며 단호한 표정으로 상무실에 들어가 재경의 개인금고를 열고 통장하나를 꺼낸다.

그 통장은 한윤정 명의로 되어 있는 ‘홍재경’의 비자금 통장으로 4억원정도 예금이 되어 있는 통장이었다.

통장과 도장을 챙긴 한윤정이 외투를 걸치고 회사를 빠져 나온다.

‘2년 동안이나 파릇파릇한 젊은 몸을 판 댓가가 겨우 4억이면 너무 적은거 아닌가?’

40분 후 오피스텔로 돌아와 짐을 싸면서 한윤정이 한 생각이었다.

09:03

‘로라 컴퍼니’에서 전송된 협조공문 팩스본을 비서실 여직원이 받아 홍명진 회장에게 전달되었고 그 시간 ‘이희도’사장도 e-mail로 수신된 협조공문을 보며 웃고 있었다.

09:06

“이 서류와 동영상이 공개되면 내년 총선에서 공천 받기가 힘들어져.. 현주야! 잘 생각해봐라..내 판단으로는 사돈인 홍명진회장은 끝난 것 같다. 니 남편이 자기 아버지까지 똥구덩이로 끌어 드렸어. 그 구덩이 속에서 멀리 떨어져야 똥물이 안 튄다.”

의원 사무실에서 동영상과 횡령사실이 적힌 워드 파일을 확인한 장의원이 장현주를 돌아보며 말한다.

장현주는 창백한 얼굴로 입술을 꼭 깨문다.

어차피 사랑 때문에 한 결혼도 아니고 조건보고 한 결혼인데..남편이라는 작자 때문에 집안망신 당하게 생긴 것이다.

그리고 ‘대현생명’이라는 간판이 사라진 시댁은 더 이상 아버지의 정치 인생에 도움이 않된다.

현주의 눈에 결연한 빛이 흐른다.

“오변호사하고 상의를 해봐야 겠어요. 저 동영상이면 꽤 많은 위자료를 받을 수 있을 거에요.”

09:15

“재경이 네가 장만호에게 사기를 당한 것 같다. 이번 일이 회사 밖으로 새어 나가면 절대로 않된다. 일단 이 상황을 타개해 나가려면 모든 일을 장만호에게 뒤집어 씌워야해..재경이 너는 장만호가 가지고 온 가짜 입급증에 사인만 해 주었다고 발뺌하고..물론 직원들이 그 말을 믿지야 않겠지만.. 어떡하든 내 힘으로 이 일이 커지는 걸 막아 볼 테니까.. 그리고 경리부장하고 총무부에 있는 과장하고 미리 입을 맞춰 놓고..재국이 너도 임원들 분위기 흔들리지 않게 잘 구스르고..알았지?”

“네! 아버지..”

홍명진이 이렇게 대책을 강구하는 동안 이미 정국은 그들이 통제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서고 있었다.

그룹 특별 감사팀 12명이 대현 생명 빌딩 정문을 들어서고 있었던 것이다.

대현그룹 특별 감사팀..

그들은 대현그룹 내에서는 검찰청 보다 더한 위력을 발휘하는 곳이다.

그룹 구조조정 본부 직속인 그들은 오직 회장의 명령만 따른다.

계열사 한두곳이 며칠간 영업을 못하는 상황이 벌어져 몇백억의 영업 손실이 나는 상황이어도 정중헌 회장의 명만 있으면 모든 것을 무시하고 계열사 사무실을 통제하고 밤새워 감사를 하는 독종들이다.

6명의 전산 감사요원들은 일단 경리부의 모든 PC하드디스크와 입출금 내역이 명기된 각 은행과의 전산자료를 압수하고 대현생명 23층의 중역 회의실에다 감사캠프를 차렸다.

4병의 직원 감사담당 요원들은 대현 생명 경리부와 총무부 그리고 해외영업부 직원들을 캠프로 불러 올려 일대일 감사를 시작했다.

그리고 두명의 임원 담당 감사들이 대현 생명 회장실 문을 노크 한 것은 월요일 오전 10시였다.

회장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특별 감사요원들을 보는 홍명진 회장은 모든 것이 끝났다는 것을 알았다.

아침부터 메일을 읽으며 받은 충격과 천만 달러를 사기당한 허탈감 그리고 감사요원들까지.. 중첩적으로 충격이 누적된 홍회장의 뇌혈관이 부하를 못 이기고 터져 버렸다.

뇌출혈로 쓰러진 홍회장이 엠블런스를 타고 ‘대현병원’에 후송된 시각은 오전 11시 30분이었다.

검사결과 생명에는 지장이 없지만 반신 마비 판정이 나왔다.

홍회장의 뇌출혈 소동에도 불구하고 감사는 강도 높게 진행되었다.

화요일에는 홍재경이 하루종일 임원감사실에 붙들려 있었고 수요일은 홍재국부사장과 이희도 사장이 불려 올라갔다.

목요일에는 대현생명 상근 이사들이 조사를 받았다.

직원 감사실에서는 경리부장의 배임 사실과 총무과장의 서류조작 사실이 드러나고 홍회장과 두 아들이 접대비 명목으로 전횡한 십억원대의 부당 영수증 뭉치가 발견되기도 했다.

‘민재’가 직원 감사실이 아닌 임원 감사실로 불려 올라간 것은 금요일 오전 열시경이었다.

“이민재 팀장님이시죠? 저는 특별 감사팀장 곽경태 입니다.”

민재에게 악수를 청하는 감사팀장은 40대 중반의 배가 살짝 나온 푸근한 이상을 중년인 이었다.

“반갑습니다. 이민재 입니다.”

“박성재 비서실장님이 팀장님을 꼭 뵙고 오라고 하시더군요. 앞으로 ‘대현’의 핵심 인물이 되실 거라고 극찬하시면서요. 하하”

“박실장님이 과찬을 하셨네요. 별 능력도 없는 사람을..”

“대충 감사는 마무리 지었습니다. 보고서를 작성하는 중이죠..한번 읽어 보시겠습니까?”

“제가 읽으면 안되는 것 아닌가요? 그거 감사 원칙에 위배될 텐데요..”

“어차피 팀장님께서 모든 정국을 만드신 것 아닙니까? 그리고 팀장님도 감사를 받는 시늉은 해야 하니까.. 보고서나 읽으시면서 시간 좀 보내고 내려가세요. 거기에 덧붙일 내용이 있으시면 알려 주시구요..하하하”

‘민재’가 읽은 감사 보고서의 내용은 홍회장 일가는 물론이고 그동안 친 홍회장파로 분류되던 이사들의 비리까지도 낱낱이 기술하고 있었다.

대현생명 긴급 주주총회가 공고되었다.

안건은 홍명진 회장 해임과 대현생명 구조조정에 관한 건이었다.

총회일시 2010년 11월 25일 오전 10시로 명기된 공고문이 대현생명 정문에 공고 되고 각 이사들에게 메일로 전송되었다.

25일은 다음주 월요일 이었다.

월요일이면 ‘이민재’가 목표한 1차 계획의 성공여부가 가려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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