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화 (10/20)

부모가 비행기 사고로 일찍 세상을 떠난 ‘정회장’은 할아버지 밑에서 자랐다.

10년전에 ‘정두영’회장이 노환으로 별세하고 난후 33살의 젊은 나이에 기라성 같은 삼촌들을 젖히고 ‘대현그룹’의 회장직을 차지하고 ‘대현’에 새바람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정회장에 대한 세간의 평가는 상당히 좋은 편이다.

식사가 어느 정도 끝나고 후식으로 커피가 들어올 때 정회장의 입에서 본론이 나온다.

“이팀장님이 올리신 보고서와 계획서..상당히 예리하시더군요. 비서실에다 면밀히 검토하라고 지시 했었는데 오늘 결론이 나왔습니다. 내가 판단한 것처럼 ”대현조선‘의 계획서보다 훨씬 세밀하다는 결론과 함께 중동 여러 국가에 대한 정확한 실태 파악과 더불어서 선박 수주의 실현 가능성이 높다는 평가가 나왔어요. 계획서 작성하느라 수고했어요, 이팀장님.“

“과찬이십니다. 회장님”

“그리고 팀장님의 보고서 말인데요..제가 행간을 잘못 이해한 것인지는 모르겠는데 ‘대현생명’의 현재 영업방식에 대한 비판의 의미가 있는 구절이 있더군요. 맞습니까?”

역시 듣던 대로 정회장의 감각은 탁월했다.

보고서에 교묘하게 숨겨둔 행간의 의미를 제대로 파악한 정회장의 안목에 ‘민재’가 감탄했다.

“회장님이 보신 것이 정확합니다.”

“제가 오늘 이팀장을 만나자고 한 것이 그것 때문이에요. 물론 두바이 선박건에 대한것도 있었지만.. 이 팀장이 제안하는 보험영업의 방법을 듣기 위해서가 더 큰 이유입니다. 말씀해 보시지요. ”

“그럼 제 개인적인 소견이지만 말씀 드리겠습니다. 현재처럼 팜플릿을 들고 고객이나 회사 담당자를 찾아가거나 접대로서 영업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고객들의 각자특성에 맞는 상품을 개발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이 가려운 곳이 어디인지 명확히 파악한 후에 그곳을 긁어줄수 있는 상품을 만들어 찾아가는 그런 영업시스템이 만들어 져야 하고...”

민재의 설명이 길게 이어진다.

얼마후 민재의 설명을 모두 들은 정회장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한다.

“이 팀장 말이 구구절절 옳아요. 내 머리속에서 맴돌고만 있던 것을 이팀장이 정확하게 말로 표현을 해 주었네요. 그런데 문제는 현 ‘대현생명’의 늙은 시스템에 그런 획기적이고 창의적인 시스템을 어떻게 접목시키느냐는 것이죠..”

“제 판단도 그렇습니다.”

“이팀장 생각에는 ‘대현생명’ 홍회장님이 이 시스템을 받아드릴 것 같습니까?”

민재는 순간적으로 치고 들어오는 정회장의 공격에 아찔해졌다.

아까 ‘이 연주’가 말했던 팁의 순간이 바로 지금이었다.

“제 생각에는 힘들 것 같습니다. 홍회장님 개인이야 물론 능력이 있으시지만 주변의 사적인 관계를 무시하고 새로운 시스템을 받아들여서 끌고 가시기에는 무리라는 판단이 제 개인적인 소견입니다.”

사적인 관계란 아들들에게 회사를 물려주려는 홍회장의 욕심을 말함이다.

빠르게 답변을 한 민재의 얼굴을 물끄러미 한동안 보던 정회장이 입을 열었다.

“그렇군요. 이 팀장님 판단은 그러시군요.... 조만간 ‘대현생명’ 이희도 사장님께서 연락을 취해 오실 겁니다. 두분이 힘을 모아서 대현생명을 바꿔 보십시오. 그룹 지주회사인 ‘대현생명’이 정체되고 흔들리면 그룹전체에 그 여파가 퍼집니다. 무슨 말인지 아시죠?”

“네..”

“오늘 여기서 우리가 나눈 ‘대현생명’에 관한 이야기는 비밀로 해 주십시오. 그리고 앞으로 ‘대현’을 위해 많이 뛰어 주시길 바랍니다. 이팀장님!”

“네 알겠습니다.”

정회장은 나가면서 문제가 있거나 도움이 필요하면 연락하라면서 그룹 비서실장의 명함을 주고 갔다.

“팀장님. 제 팁이 도움이 되셨나요?”

‘민재’와 함께 대문까지 정회장 배웅을 나왔던 ‘이연주’가 정회장이 떠나자 웃으며 물어왔다.

“물론입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호호 잘되었다니 저도 기쁘네요..그럼 영화는 언제 보여주실 거예요?”

“주말에 아무때나 편하신 시간에 전화 주십시요..”

“호호호..알았어요.호호”

짤랑거리는 웃음소리가 밤하늘에 퍼진다.

민재가 며칠간 밤샘하며 노력해서 만든 보고서는 훌륭하게 그 역할을 다했다.

‘대현 생명’은 ‘대현그룹’의 지주회사다.

정중헌 회장 가족과 그의 최측근 인사들이 ‘대현생명’의 주식중 과반이상을 소유하고 기업재무및 인사권에 막강한 영향력을 휘두른다.

‘대현생명’은 그룹 계열 대현자동차와 대현전자의 주식을 소유하고 그 회사들을 지배한다.

대현자동차는 대현철강과 대현기계의 주식을 가지고 있고 대현전자는 증권과 대현건설의 주식을 소유한다.

이렇게 거미줄처럼 연결된 계열사간의 지배구조로 ‘정중헌’회장은 그룹전체주식의 2%도 안돼는 주식을 소유하고도 그룹전체를 강력하게 지배하는 것이다.

문제는 65세의 홍명진 대현생명회장이 정회장이 새롭게 추진하는 뉴리더쉽 플랜에 동참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이사회의를 통해 홍회장을 해임하면 간단하겠지만 그렇게 할 경우 문제는 두 사람이 인척관계라는 것에 대한 비난 여론(홍명진은 대현의 창업주 정두영회장의 막내처남이다.)과 지난 30년간 대현생명을 이끌면서 구축해온 그룹내부 홍회장 지지세력이 시끄럽게 떠들어댈 것이라는게 정회장의 고민이다.

현 정부에서 눈에 불을 켜고 ‘대현’을 주시하고 있는 현 시점에서 매스컴에 먹이를 던져주기가 껄끄러워서 정회장이 잠시 놓아두고 있는 사이 홍회장이 선을 넘어 버렸다.

능력이 출중한 이희도 대현생명사장의 권한을 축소하며 그의 두 아들에게 대현생명을 대물림하려는 움직임을 보인 것이다.

정회장이 ‘대현생명’에 손을 쓰려는 시점에 내부의 이민재의 보고서가 그의 눈에 띠었다.

보고서를 검토한 정회장의 계획은 이희도 사장과 이민재 두사람을 홍회장의 대항마로 내세워서 홍회장 해임에 관한 문제를 ‘대현생명’의 내부문제로 축소시키고 그 논란을 최소화 하는 것이다.

물고 물리는 진흙탕 싸움에서 누가 승리자가 되는지는 두고 볼 일이다.

정회장과의 저녁을 마친 민재가 공사가 끝나고 PC가 설치된 사무실로 온 시간이 반 열시경인데 그때까지 ‘긴샴’과 ‘오정식’은 보안프로그램을 테스트하고 있었다.

이틀전 입국한 ‘긴샴’이 맨 처음 ‘민재’에게 물은 것이 해커를 찾았느냐는 것이었다.

옥탑방에 감금 중이었던 ‘오정식’과 두시간정도 이야기를 나눈 ‘긴샴’은 ‘민재’에게 오정식을 그냥 풀어줘도 문제없을 거라고 했다.

“민재‘는 내심 찜찜한 상태로 오정식에게 자신 앞에서 장만호에게 전화를 걸어 로라 컴퍼니를 계속 해킹중이라고 통화를 하게끔 시키고 결박을 풀어준 후 죽산실업의 직원에게 철저하게 감시를 하라고 지시했다.

그 다음 날부터 오정식은 예수님을 따라다니던 베드로 같은 눈빛을 하고 ‘긴샴’을 졸졸 따라다녀 민재의 걱정이 기우였음을 증명했다.

비결을 묻는 민재에게 긴샴은 미국의 국무성을 털어버린 자신의 존재는 해커 세계에서는 팝계의 비틀즈 같은 존재라며 허풍을 쳤는데 오정식의 태도를 보면 영 허풍만은 아닌 것 같다.

‘한승희’는 결국 금융감독원 국장인 ‘최성규’와 헤어졌다.

7년간이나 만나온 정이 있어서 좋게 끝내려고 했지만 온갖 욕설을 퍼부으며 저주하는 ‘성규’에게 오만정이 다 떨어져 함께 악을 쓰며 대들다가 뺨까지 맞았다.

오기가 생긴 승희는 자신과의 관계를 금감원에 투서하겠다고 ‘성규’를 협박해 성규와 반씩 나눠 가지고 있던 자신이 살던 아파트의 등기권 전체를 넘겨받았다.

‘성규’의 꼬장으로 그렇지 않아도 그만두려고 했던 은행에 사표를 서둘러 제출한 후 아파트를 매물로 내놓고 ‘이카루스’와 가까운 아파트로 이사를 했다.

‘이카루스’에는 11월 부터 출근하기로 했다.

자신의 이사짐 정리를 도와주던 ‘민재’가 몇년이나 지난 통장들을 발견했다.

그 통장들은 예전에 ‘성규’가 만들어 달라고 해서 자신 명의와 친척 명의로 만들어서 ‘성규’에게 준 것이었는데 이삿짐을 싸면서 딸려온 모양이다.

‘민재’가 그 통장들에 대해 알아본다고 해서 그에게 주었다.

어차피 자신에게는 필요도 없는 통장이었다.

‘민재’로서는 아주 운 좋게도 우연히 ‘성규’의 뇌물수수 루트를 발견한 셈이다.

통장을 추적해보니 ‘건국생명’에서 승희 친척통장으로 거액의 돈이 들어 왔다가 승희의 통장으로 옮겨진 후 ‘최성규’의 아내통장과 ‘성규’의 통장으로 나뉘어져 입금된 뇌물의 경로가 한눈에 보인다.

이미 승희의 아파트에 장치했던 카메라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고 철거했다.

저장되었던 카메라 동영상에서 ‘승희’의 얼굴이 안 보이는 몇부분을 따로 캡쳐해 통장의 사본들과 함께 금감원장과 ‘성규’의 아내에게 택배로 보냈다.

금감원장에게는 최성규건을 제대로 처리하지 않으면 방송국으로 사진과 통장 사본을 보내고 금감원 게시판에 동영상을 올릴 거라는 내용의 편지도 동봉했다.

최성규라는 인간이 빠져나갈 구멍은 어디에도 없었다.

띵똥

-오늘 장과장이 홍전무하고 같아 온다는 연락을 받았어요. -혜리-

지난 화요일에 ‘민재’가 룸클럽 수(秀)에 찾아가서 장만호에 대한 이야기를 물었을 때 처음에 발뺌하던 혜리는 탁자위에 올려놓은 5백만원짜리 수표 두장의 위력에 곧바로 굴복하고 그녀와 만호 그리고 재경과 윤정까지 얽혀서 나누었던 난교 이야기를 적나라하게 들려주었다.

그리고 나중에 한가지 일을 더해주면 수표 두 장을 더 주겠다는 민재의 말에 그런일을 하면 수(秀)에서 더이상 일할 수 없다고 혜리는 난색을 표했지만 자신이 운영하는 고급스런 바의 코너중 하나를 주겠다는 말에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오빠! 휴대폰 그만 보고 술한잔 받으세요”

“민재씨 오늘 같은 날은 휴대폰 꺼놓고 편하게 좀 마셔. ”

11월 1일 금요일인 그 날은

승희가 ‘이카루스’의 실장으로 첫 출근하는 기념으로 ‘강형규’와 함께 셋이서 자축하는 술자리를 가진 날이었다.

띵똥

-동영상 확보 완료, 메일로 전송했습니다.-

혜리가 숨겨가지고 들어간 카메라로 룸 사롱에서의 난잡한 그룹섹스 동영상을 확보한 룸싸롱 근처에서 대기하고 있던 죽산 실업의 직원에게서 온 메세지였다.

“오빠! 들어오세요. 같이 씻어요”

술자리를 끝내고 민재의 아파트로 함께 온 승희의 목소리가 욕실에서 들린다.

샤워를 끝내고 나온 민재가 메일로 온 동영상을 침실에 설치된 대형 벽걸이 TV로 연동시키고

플레이 버튼을 클릭한다.

“저거 뭐예요. 오빠?”

“몰카야. 재밌을 걸..”

“오빠도 저런것 봐요?”

민재의 가슴에 턱을 올리고 손가락으로 귀두끝을 문지르던 승희가 뜨거운 입김을 내뿜는다.

화면 속에서 한동안 앉아서 웃고 떠들며 술을 마시던 네명의 남녀가 30분정도 지나자 키스를

하기 시작하면서 분위기가 끈적해지기 시작한다.

“어머~어머~”승희의 눈이 커지고 민재의 좆기둥을 잡은 손에 힘이 실린다.

앉아 있는 홍재경의 좆을 꺼내 오랄을 하는 윤정의 뒤에서 만호가 윤정의 팬티를 허벅지까지 내리고 엉덩이에 얼굴을 묻고 있다.

혜리는 재경의 옆자리에서 그에게 젖꼭지를 빨리며 윤정의 유방을 주무른다.

“저 여자애 이카루스에 데려다 놓을까?”

“저기 머리긴 여자애요? 오빠가 아는 애예요?”

승희가 가리킨 여자는 윤정이었다.

“응?..으응..둘 다.” 승희의 말을 들은 민재는 윤정도 이카루스에 데려다 놓으면 한몫 할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머! 저애 나이도 어려 보이는데 애널로도 하네..어후~ 정말..후우~” 앉은 재경의 허벅지에 올라타 삽입을 하고 있는 윤정의 뒤에서 만호가 항문으로 좆을 디밀고 있었다.

재경의 손목을 잡고 그의 손가락 두개로 자신의 보지를 찌르고 있던 혜리가 화면을 향해 야릇한 미소를 짓는다.

촬영당하고 있다는 것에 색다른 흥분을 느끼는 모양이다.

“창녀 같은년. 저렇게 박히고 싶어서 똥구멍하고 보지구멍이 벌렁거리지? 발정남 암캐 같은년.”

“아니예요. 오빠. 똥구멍으로는 한번도 안 해 봤어요. 아흐흐~”

화면속의 네남녀는 점점 절정을 향해 치닫고 있었다.

“니가 올라와서 보지를 까뒤집고 박아봐. 발정난 창녀처럼~”

민재의 하복부로 기어 올라오는 파랗게 빛나는 승희의 눈이 욕정으로 번들거리고 있었다.

“아흐흑~”

민재의 좆기둥이 뜨겁고 꼬물거리는 지옥의 열탕속으로 빠져 들어간다.

2.조우(遭遇)

야자를 끝마친 후 피곤한 몸으로 버스에서 내려 아파트 엘리베이터를 타고 버튼을 누르려는 순간 ‘잠깐만 같이 타고 가요. 학생’ 하고 들리는 여자의 목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예쁜 그 여자의 얼굴을 보는 순간 심장이 멎을 것처럼 놀랐다.

그 여자는 며칠 전에 화장실에서 본 바로 그 여자였다.

그리고 그 여자를 뒤따라 타는 그 남자역시 화장실의 남자였다.

꿈속에서 나를 오르가즘에 올려놓은 남자.. 그 남자가 바로 코앞에 있었다.

심장이 미친듯이 뛰고 있다.

“버튼 안눌러요? 학생”

깜짝 놀라 고개를 숙였다.

‘아~ 이게 무슨 꼴이람! 저 남자 앞에서’

그들이 누른 버튼은 13이었다. 우리 집은 12층이다.

바로 곁에 서있는 남자의 몸에서 수컷의 향기가 풍기는 것 같다.

“아흐~ 나는 오빠 아파트가 우리 집보다 더 편하고 좋아요.”

남자의 팔에 자기 가슴을 비비며 여자가 아양을 떨어 댄다.

내 팬티가 축축해지는 것이 느껴진다.

집으로 들어와 화장실로 직행했다.

소변을 보면서 팬티안쪽이 젖어 있는 것을 확인했다.

“과일 좀 깎아 줄까?”

“아니요. 오늘은 피곤해서 일찍 잘거에요.”

침대에 누워 천정을 바라보며 자위를 했다. 평소에는 손가락 하나를 넣는데 오늘은 두개를 넣었다.

바로 지금 그 남자는 내 방의 천정 위에서 여자의 보지속에 그 굵고 시커먼 자지를 박아대고 있을 거다.

내 보지에서 찔꺽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그 남자의 자지가 파고들어오는 환상 속에 무지개의 다리를 건넜다.

내일도 그 남자를 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과 함께 잠이 들었다.

“장과장님 쉬시는데 죄송합니다. 오늘 좀 만났으면 하는데요. 좀 급한 일이라서요.”

.....

“네~ 제가 장과장님 자택 근처에 가서 전화 드리겠습니다.”

장과장과의 통화를 끝낸 민재의 눈이 섬뜩하다.

토요일 오전

장만호의 아파트 근처의 ‘엔제리너스’라는 이름의 커피체인점에는 민재와 만호외의 손님은 하나도 없고 아르바이트 아가씨만 분주하게 움직인다.

“차장님! 아침 일찍 어쩐 일로...” 커피숖에 들어와서 간단한 인사만 나누고 10분째 침묵중인 민재를 불안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만호가 말끝을 흐린다.

“음~... 과장님, 그냥 단도직입적으로 묻겠습니다. ‘로라 컴퍼니’를 해킹한 목적이 무엇입니까?”

“차..차장님..무..무슨 말씀이신지..해킹 이라니?”

화들짝 놀란 장만호가 일단 발뺌을 해본다.

“과장님이 이런 식으로 나오면 제가 과장님을 도와드릴 방법이 없습니다.”

민재가 차갑게 말을 하고 휴대폰의 녹음저장 기능을 작동 시키자 해커 ‘오정식’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학교 선배 장만호가 시켜서 해킹을 했다는 내용의 말이..

‘만호’의 안색이 흙빛으로 변하며 고개를 떨군다.

“이제 말씀해 보시지요?” 한동안 침묵하던 민재가 말문을 연다.

“홍 상무님의 지시였습니다.”

“근래 들어 승승장구 하시는 홍상무님이 무슨 이유로 로라컴퍼니를 해킹하겠습니까? 장과장님이 거짓말 하는 것 아닙니까? 만약 홍상무님의 지시라면 그 이유가 있지 않겠습니까? 뭡니까?” 숨쉴 틈 없이 몰아붙이는 민재의 공격에 만호는 쩔쩔매고 있다.

“그..그건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장과장님이 이렇게 비협조적으로 나오신다면 어쩔 수 없군요. 월요일에 이 음성 파일을 인사위원회에 제출하고 상벌위원회 소집을 요구하겠습니다.”

싸늘하게 말을 끝낸 민재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만호의 머리가 무서운 속도로 회전을 한다.

‘만약 저 음성파일이 공개 된다면 해외 영업부에서 가장 핵심적 역할을 하는 협력업체를 해킹한 자신은 무조건 파면이다. 홍상무도 자신을 커버해주지 못한다. 아니 오히려 자신과의 관계를 끊으려고 할 것이다.’

“차‘’차장님 ..잠깐만요. 사실대로 말씀 드리겠습니다. 그러니 잠깐만 제 말좀 들어 보십시오.”

급하게 민재의 팔을 부여잡은 ‘만호’가 애원을 한다.

“말씀해 보시지요.”

“저.. 그러니까.. 올 봄에 홍상무님이 석유 시굴업체에 투자를 했었습니다...”

만호의 이야기가 술술 풀려 나온다.

만호의 이야기를 듣는 중 민재는 등골이 서늘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다.

홍재경이 일부러 자신을 쳐내려고 계획한 일은 아니겠지만 일이 잘못될 경우 책임소재가 자신에게 돌아올 것이 뻔 했다.

이라크 석유회사와의 보험 계약서에는 자신의 사인이 들어가 있다. 민재는 그 계약완료를 홍재경에게 구두 보고만 하고 계약서는 경리부에 넘겼었다.

일반적인 보험 계약서는 보험납입금이 완납될 때까지 가계약 상태로 경리부에서 보관하다가 납입완료가 되면 그 입금서류와 함께 총무부로 보내진다.

총무부에서 그 서류를 받아 최종확인을 하고 법률적인 검토를 거친 후에야 가계약 상태에서 벗어나 본계약이 되는 것이다.

가계약상태에서는 사고가 나도 보험료 지급의무가 없다. 지금껏 석유회사는 가계약 상태로 있는 것이다.

만약 민재가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석유회사와의 보험이 가계약 상태라는 것이 공개될 경우 제일 먼저 ‘로라 컴퍼니’쪽으로 의심의 시선이 쏠릴 것이고 ‘로라 컴퍼니’에서 입금확인서와 입금내역서를 찾느라 시간을 보내게 되면 홍상무는 경리부 공모자와 총무부에서 가계약 서류를 쥐고 있는 또 다른 공모자와 함께 서류를 조작해 민재를 희생양으로 만들었을 것이다.

홍상무는 최악의 경우 거기까지 계산을 하고 있을 것이다.

냉철하게 판단하고 대책을 수립해야 할 때였다.

“그럴리야 없겠지만 만약 ‘로라 컴퍼니’에서 홍상무님의 제의를 받아드린다고 가정 했을 때.. 홍상무님이 유용한 보험납입금 천만 달러는 어떤 방법으로 마련하실 생각이시랍니까?”

“잘은 모르겠지만..아마 증여 받으신 주식중의 일부를 처분 하실 생각인 것 같았습니다.”

“주식시장에 내 놓는다고 해도 단기간에 그만한 양을 팔기가 쉽지 않을 텐데요?”

“공개적으로 매도주문을 낼 수는 없으니까..주식시장의 현 시세보다 낮은 가격으로 살수있는 개인 투자자를 찾고 계신 것 같았습니다.”

만호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민재의 머리속에서 하나의 계획이 수립된다.

“과장님! 제가 이 음성 파일을 공개하면 과장님만 다치게 된다는 것 알고 계시죠? 과장님이 홍상무님의 지시로 해킹을 했다고 폭로해 봐야 홍상무님은 털끝하나 다치지 않을 겁니다.”

“네! 알고 있습니다.”

‘대현생명’ 오너인 홍회장이 장악하고 있는 사내 상벌위원회에서 그 아들인 홍상무를 건드리지는 못할 것이다.

나중에 홍재경이 홍회장에게 개인적으로 질책을 당하는 일이야 있겠지만 말이다.

“이 일은 그냥 넘어갈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만약 이라크 정유회사가 아직도 보험이 가계약 상태라는 것을 알게 된다면 ‘로라 컴퍼니’는 물론이고 ‘대현 생명’의 대외 신인도에 치명적인 타격을 입게 될 겁니다. 그렇게 되면 이과장님은 문서위조 혐의로 사법처리를 당하게 되고 민사소송에 손해배상까지 떠안게 되실 겁니다.”

“로라 컴퍼니에 보낸 입금확인증은 위조는 홍상무님께서 하신 일인데요?”

“홍상무가 그것을 시인 하겠습니까? 자기는 쏙 빠지고 장과장님에게 모든 것을 덮어씌우려고 할 겁니다. 외부의 시각 때문에 회사에서도 그렇게 몰아갈 거구요...”

“그럼 저는 어떻게 하면 되죠?”

잔뜩 겁을 집어 먹은 만호가 떨리는 음성으로 물어온다.

“사건이 커지면 저로서도 좋을 것은 없습니다. 최대한 조용히 해결해야지요..이렇게 하면 어떻겠습니까?...”

민재가 낮은 목소리로 한참동안 이야기 한 후 만호가 고개를 끄덕인다.

민재의 엄포에 잔뜩 겁을 집어먹은 만호는 동영상 이야기를 꺼내지도 않은 상태에서도 손쉽게 제압이 되었다.

숨겨져 있는 그룹섹스 동영상은 히든카드로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장과장에게 모종의 지시를 끝내고 싸늘한 바람이 부는 거리로 나와 한숨 돌린 ‘민재’는 그제서야 홍재경의 더러운 행태에 대한 분노가 끓어오르는 것이 느껴진다.

자신의 등 뒤에 비수를 겨눈 홍재경을 철저하게 부숴버리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죽산실업의 강형규와의 통화로 재경이 아직 비서 한윤정의 오피스텔에 머무르고 있다는 것을 확인한 민재는 홍재경의 자택 전화번호를 누른다.

“어머! 이팀장님 어쩐 일이세요? 전화를 다 주시고..호호호”

민재는 지난번 장의원과 대현조선 배사장과의 회동 다음날 현주를 따로 만나 50만 달러가 입금된 출금계좌를 장의원 후원금 명목으로 건네주었었다.

민재의 전화를 받는 현주의 목소리에 반가움이 묻어나는 것은 그 때문일 것이다.

“우리 친구하기로 하지 않았나요?..하하하..친구에게 전화하는 것이 꼭 용건이 있어야 하나요?.. 서운하네요.” 민재가 가벼운 농담으로 장현주를 놀린다.

“아유~..팀장님도 참~..제가 반가워서 그러죠. 호호호..이렇게 좋은 가을날에 멋진 남자의 전화를 받아서..즐거워서,,호호.”

“저도 날이 너무 좋아서 바람이나 쏘이러 나갈까 해서 전화 드렸어요. 재경형님하고 형수님 모시고 강화도에 가서 바닷바람 맞으며 전어회나 먹고 올까 해서요. 형님 계시죠?”

“어쩌죠? 골프약속이 있으시다면서 어제 밤에 지방으로 내려 가셨는데..저녁 늦게나 올라온다고 하셨어요.”

지방은 무슨?..지금쯤 한윤정 사타구니에 엎드려 낮거리 중일텐데..

“어쩔수 없죠. 뭐~.. 저 혼자서 바람이나 쐬고 와야겠네요..하하..”

“호호..혼자서 무슨 재미로 강화를 가요?..제가 동행해 드릴까요? 친구 자격으로..”

예상대로 현주가 낚시밥을 물어온다.

“그럼 저야 고맙죠.. 근데 나중에 형님한테 혼나는거 아닌지 몰라..하하”

“피~ 우리가 나쁜 짓을 하는 것도 아닌데..뭐 어때서요?”

민재의 의도 섞인 혼자말이 현주에 마음에 살랑거리는 가을바람을 불어 넣는다.

“농담이예요..하하..집 앞으로 모시러 갈께요 친구님! 예쁘게 하고 기다려요..하하하”

“알았어요. 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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