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인사를 나누고 금실로 봉황이 수놓아진 방석에 앉자 배사장이 옥빛의 도자기병을 들고 술을 따라준다.
“아닙니다. 사장님 제가 훨씬 어린데 먼저 받으셔야죠.”
“허허~..이사람~참~”
싫지 않은 듯 도자기 병을 민재에게 넘겨준 배사장이 너털웃음을 짓는다.
“이 팀장..두바이 정부의 공식적인 발표가 언제쯤이나 될 것 같은가?”
술잔을 받은 배사장이 급하게 물어온다.
“다음 달 중순에 모래준설선 입찰공고를 하고 입찰결과는 내년 2월쯤에 나올 것 같습니다.”
“엊그제 내가 장의원님에게 연락을 받고 직원들에게 밤샘 지시를 해서 대충 견적을 뽑아 봤는데 말일세..10만톤급 준설선이면 한척당 팔천오백만불 정도 견적이 나오더군..”
불도저라는 별명답게 성질이 급한 배사장이 벌써 견적을 뽑은 모양이다.
한척당 팔천오백만불 이라는 소리를 들은 장의원의 입이 떡하고 벌어진다.
열 척이면 한화로 일조원 가량이니 놀랄만도 하다.
“다른 선박회사에서도 그 정도 견적금액이 나올 겁니다. 그들보다 조금 낮춰 주셔야 ‘함단왕자’도 그리고 저도 일하기 편할 것 같은데요. 물론 나중에 공개입찰시에는 경쟁회사의 설계도와 견적금액까지 두바이측에서 미리 알려주기는 할 겁니다만.. 타 회사보다 매리트 있는 뭔가가 있어야하지 않겠습니까.”
“허어~..이거 참~”
“아! 배사장님. 우리 이팀장님 면목도 있고 한데..견적 금액을 조금 낮춰주시죠..”
배사장이 난처하다는 듯 헛기침을 하자 장의원이 한마디 보탠다.
하지만 ‘민재’의 눈에는 두사람의 짜고 치는 고스톱이 훤히 보인다.
이미 배사장과 장의원은 ‘민재’의 Reject(거부)를 예상했을 것이다.
‘늙은 능구렁이들..니들은 잘못 걸린거야..흐흐’
“허~..장의원님까지 그러시니..어쩔수 없지..직원들에게 견적을 다시 뽑도록 지시하지..그건 그렇고 두바이 정부측에 전할 리베이트는 몇%정도 예상하는가?”
짐짓 서운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배사장이 핵심을 찔러온다.
“총 매출액에 따라 달라지기는 할 겁니다만 중동지역에서의 공개입찰인 경우 통상적인 리베이트 퍼센티지가 10%정도니까...음~..”
민재가 말을 끊자 급하게 배사장이 달려든다.
“10%는 너무 높지 않나?..10%면 천억정도 될 텐데.. 7~8%선에서 한번 ‘함단 왕자’와 이야기 해보면 어떻겠나? 이팀장..”
“저도 한국 사람이고 또 대현그룹 소속이라 최대한 적게 줬으면 좋겠습니다만...하참~ 난처하군..이걸 말씀을 드려야 하나 어쩌나?...”
“뭔가? 어서 말해보게?” 몸이 달은 배사장이 급하게 물어온다.
“그럼 배사장님과 장의원님을 믿고 이야기 하겠습니다. 이건 대현그룹 소속인 저에게도 누워서 침 뱉기 같은 얘기입니다만..오늘 아침에 ‘함단 왕자’에게서 전화가 왔었습니다.
어제 두바이에 파견되어 있던 ‘대현건설’ 임원중 한사람이 수차례 왕자님에게 전화를 시도하고 심지어는 약속도 없이 별장까지 찾아 갔다가 왕자님은 만나지도 못하고 망신만 당하고 쫒겨 났다고 하더군요. 왕자님께서 노발대발 하시면서 ‘대체 ‘대현그룹’에서 자기를 찾아올 이유가 뭐냐?..내가 준설선의 입찰정보를 ‘이민재’에게 준 것이지 ‘대현’에 준것이 아니지 않느냐?
미스터 리도 대현조선에 대해 다시한번 생각해 봐라. 상대방의 비밀을 지켜주지 못하는 업체와 어떻게 거래를 하겠느냐?’ 며 언성을 높이시더군요. 제가 일단 확인해보고 연락을 한다고는 했지만....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민재가 비수를 꽂는다.
‘대현조선’에서 이민재와 장의원을 배제하고 직접 함단과 조인하여 수주를 따내려 했다가 당사자들에게 정통으로 걸려들은 셈이다.
대현조선에서는 민재와 함단의 관계를 잘못 파악하고 덤볐던 것이다.
함단과 민재는 사업상 동등하게 서로 주고받는 사이이지 일방적으로 민재가 받기만 하는 사이가 아니라는 것을 모른 것이다.
함단은 아침에 민재에게 전화해서 웃으면서 ‘어제 ‘대현’에서 임원중 한사람이 자기를 찾아 왔다가 못 만나고 갔다‘고만 얘기 했었다.
행간의 의미를 재빠르게 파악한 장의원의 표정이 싸늘해지고 배사장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해진다.
하지만 배사장은 심장에 칼을 맞은 상태에서도 이내 신색을 회복하고 사태를 수습해 나간다.
“죄송합니다. 장의원님.. 미안하네. 이팀장... 나이 먹은 내가 마음이 너무 기쁜 나머지 ‘대현건설’의 김이사를 통해서 함단왕자에게 작은 선물이나마 건네주려 했었는데..일이 그렇게 된 모양이네.. 내가 큰 실수를 했네. 용서해 주게 이팀장. 용서해 주십시오. 장의원님.”
나이 먹은 사람이 고개를 숙여 사과를 하는데 안 받아 드리는 것 또한 예의가 아니다.
역시 영업계통에서 잔뼈가 굵고 사장직까지 올라선 것이 그냥 된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민재’의 쓴 미소와 함께 든다.
“아닙니다. 배사장님께서 사과하실 일이 아니죠. 그 김이사라는 분이 실수한 것을.. ”
“허~참..김이사는 나도 아는데 ..그런 실수를 하다니..”
‘민재’와 ‘장의원’은 이렇게 말하는 도리 밖에 없었다.
아까보다는 약간 어색했지만 술잔이 다시 채워지고 술자리가 이어진다.
“아까 함단 왕자 이야기입니다만..”
“응? 으음!~”
갑자기 나오는 함단의 이야기에 민재가 따라주는 술을 받던 배사장의 몸이 흠칫 거린다.
“지금 대현조선에 불신을 가진 함단 왕자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서는 리베이트 비율을 높여줘야 할것 같습니다.”
“얼마나..말인가?”배사장의 말아 살짝 떨려나오는 것 같다.
“적어도 13~4%정도는 되어야 할것 같습니다.” 민재의 최후통첩이다.
“으음~” 배사장으로서는 거절할 명분도 없었고 거부해서도 않됐다. 거부한다는 것은 선박 수주를 포기한다는 말이었으니까.
“알겠네. 그렇게 하도록 하지. 추후에 함단 왕자의 두바이 대리 법인을 알려주게. 이제 사업이야기는 그만하고 기분 좋게 술이나 한잔 하세.하하하”
잠시 고민하던 배사장은 포기할 것은 시원하게 포기하는 배짱을 보이며 분위기를 바꿔나갔다.
속마음은 쓰리겠지만..
화기애애한 술자리가 이어졌다.
이미 함단과 리베이트 비율을 8%로 잠정 합의 한 바 있는 ‘민재’의 TKO승 이었다.
총 견적 금액의 5%가 ‘민재’의 몫으로 돌아오게 된 것이다.
하지만 ‘대현조선’입장에서도 손해나는 거래는 아니었다.
리베이트로 13%를 포기하더라도 나머지 금액만으로 충분히 기업이윤을 남길 수 있는 금액이었다.
더구나 장기적인 선박경기 불황 여파로 직원들의 정리해고 검토하라는 공문을 ‘대현그룹’ 구조조정본부에서 받은 ‘대현조선’에서는 이익이 없더라도 무조건 수주해서 근로자들의 정리해고 사태를 막아야 하는 형편이었다.
가뜩이나 강성노조인 ‘대현조선 노조’가 노조원들의 정리해고를 받아 들일리가 없기 때문이었다.
‘대현그룹’입장에서는 더욱 좋았다.
1조원대의 대형 선박을 수주하게 되면 근래 골머리를 썩이고 있는 금속노조를 다독일 수 있을 것이다.
선박 수주의 시너지 효과가 금속노조 산하인 ‘대현 철강’ ‘대현 중공업’등 철강계열사들 까지 이어지게 되면 당분간이겠지만 그들의 쟁의가 중단될 것이기 때문이다.
일행의 술자리가 끝나고 옷걸이에 걸어두었던 슈트를 찾아 입는 사이 미닫이문이 사르르 열리고 문 앞에는 그림처럼 아름다운 여인이 한복을 입고 기다리고 있었다.
“장의원님, 배사장님 이만 들어가시게요?”
“그래요 이사장. 다음에 또 뵙시다.”
“호호.. 자주 좀 들르세요. 장의원님...그런데 이 잘생기신 젊은 분은 처음 뵙네요. 저 명함 한장 주시겠어요.”
“하하하 저 같은 말단이 이곳에 들를 일이 있겠습니까?” 민재가 농담을 하며 명함을 건네주자 “저는 어쩐지 이 팀장님을 앞으로 자주 볼것 같은 예감이 드는데요. 호호호” 맞받아치며 자신의 명함을 꺼내주던 여인이 민재의 눈을 촉촉하게 바라보았다.
“우리 이사장님이 이팀장한테 반한 모양이군..허허허” 배사장의 농담과 함께 문을 나섰다.
그녀의 명함에는 –우미옥 ‘이 연주’ 010-3297-0000-이라고만 인쇄되어 있었다.
‘이연주’라는 이름을 보자 10년전 대학 신입생으로 브라운관에 혜성처럼 등장했다가 불과 1년만에 거물정치인과의 스캔들로 은퇴했던 여배우의 얼굴과 여인의 얼굴이 겹쳐진다.
배사장은 술자리가 끝난 후 차에 오르기 전에 두바이를 오가는 경비로 사용하라면서 ‘민재’에게 비자 골드카드하나를 내 주었다.
배사장은 그 카드가 대현조선 최고급 임원용 법인카드이며 5만달러 미화한도와 3천만원의 한화한도가 따로 적용되는 거라면서 매달 5일 영업비 명목으로 결재가 되니 걱정 말고 한도까지 써도 된다며 통 큰 사업가의 기질을 보였다.
‘민재’도 곧 있을 ‘함단’의 고급요트 대량 발주를 대현조선이 수주할 수 있게 힘쓰겠다고 화답해서 배사장을 좋은 기분으로 차에 타게 했다.
“장의원님..저희 큰아버님께서 의원님에게 전해드리라는 것이 있는데..그것이 의원님께서 굳이 아실 필요가 없는 것이어서...”
말끝을 흐리는 민재의 속내를 눈치 챈 장의원이 곧바로 대답을 한다.
“내일 우리 현주가 전화를 할 걸세..백부님에게 고맙다고 전해주게..그리고 내가 이런 말은 잘 안하네만 자네는 분명 크게 될 걸세..내 보증하지..하하”
“고맙습니다. 의원님”
배사장이 떠나고 난 뒤에 두 사람 사이에 이루어진 짧은 대화였다.
영수증 발행이 되지 않는 비자금을 직접 받는 정치인은 없는 법이다.
배사장이나 대현생명 홍회장 같은 기득권이 막강한 상어들이 우글거리는 한국 사회에서 민재는 아직 다 자라지 못한 작은 고래 새끼였다.
아직 자그마한 고래는 자신을 지키기 위해 장의원 같은 사람들의 울타리가 필요했다.
울타리도 당분간만 이겠지만....
대리 운전기사에게 운전대를 맡긴 ‘민재’는 ‘강민희’와 통화를 하고 그녀의 오피스텔 주소를 기사에게 알려 주었다.
목걸이를 선물받은 ‘민희’는 무척 기뻐했다.
비행기 타고 오느라 피곤하겠다며 ‘민재’를 욕실로 데리고 가서 머리를 감겨주고 거품타올로 민재의 몸을 깨끗이 씻겨 주었다.
침대에 누운 두 사람은 한동안 심각한 이야기를 나눈 후, ‘민희’의 여성상위 체위로 잔잔하지만 에로틱한 섹스를 나누었다.
‘민재’는 새로이 오픈하는 자신의 사무실로 ‘민희’를 보낼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민재는 ‘민희’가 자신의 성격처럼 오피스텔을 여성스럽고 아기자기하게 꾸며놓았다는 생각을 하며 그녀를 안고 잠이 들었다.
회사로 출근한 ‘민희’에게 홍재경 상무가 방금 외출했다는 연락을 받은 것은 목요일 오전 10시 경이었다.
‘대현생명’근처의 커피숖에서 ‘민희’의 전화를 받은 ‘민재’는 사무실에도 들르지 않고 곧바로 홍상무의 집무실로 올라갔다.
“어머! 팀장님! 언제 귀국하셨어요. 이번에도 통신사와 계약 하셨다면서요? 축하해요 팀장님.호호호”홍재경의 비서인 윤정이 호들갑스럽게 반긴다.
“고마워요. 윤정씨! 그리고 이거..약속했던 선물..” 진주 목걸이가 담긴 상자를 건네준다.
“뭘 매번 이렇게..정말 고마워요 이팀장님”
“상무님 안에 계시지?”
“어쩌죠?..조금 전에 대전으로 내려 가셨는데...”
“이거 참..난감하네..급하게 회장님에게 보고 드려야 할 사안이 있는데..?”
“잠깐만 기다려 보세요. 제가 회장님 비서실과 통화해 볼께요.”
‘민재’의 예상대로 선물에 홀랑 넘어간 ‘윤정’이 오지랖을 펼친다.
“회장님께서 지금 올라오라고 하셨다네요.”
사내 전화를 이용해 회장 비서와 통화를 끝낸 윤정이 배시시 웃으며 말한다.
“잘되었네요. 고마워요. 윤정씨. 그리고 상무님께 반드시 전화 드리세요. 상무님이 부재중이어서 제가 직접 회장님께 보고 드린다구요.”
“호호 걱정 마세요. 팀장님”
아직 홍재경이 숨기고 있는 것이 뭔지 파악하지 못한 상태에서 그를 만나는 것이 약간 껄끄럽기도 했고 매출 1조원의 고급정보를 홍재경에게 보고해서 중간에 가지고 노는 꼴을 보기도 싫었다.
하지만 회사에는 엄연히 절차와 단계라는 것이 존재하기에 ‘민재’가 편법을 쓴 것이다.
지금 민재는 엄연히 공식적인 휴가기간이고 직속상사인 홍상무는 외출 중이었기 때문에 절차를 건너뛰어서 회장에게 급한 사안을 직보한다고 해도 크게 문제될 것은 없었다.
“회장님 안녕하셨습니까? 홍상무님이 외근중이어서 실례를 무릅쓰고 직접 올라왔습니다.”
“아니야~ 뭐 어떤가? 이렇게 얼굴 한번 더보는거지..하하.. 내가 자네만 보면 무척 든든해. 허허 이번에도 레바논 통신사와 계약을 했다면서.. 정말 고생이 많았네..”
넓은 회장실의 소파에 앉아 있던 회장이 일어나서 악수를 청해오며 민재를 반긴다.
“아닙니다. 회장님 당연히 제가 해야 할 일을 한 것뿐인데요. 고생이라니요.”
“그런데 자네 이번 주까지 휴가 아니었나? 무슨 급한 일이기에 휴가 때 쉬지도 않고 출근했나?”
“네. 회장님! 사실은...”
민재가 ‘함단왕자’와의 옥스퍼드인연과 1조원대의 두바이 선박건을 자세하게 보고하자 한참을 듣고 앉았던 홍회장이 이윽고 말문을 연다.
“자네 정말 대단한 일을 하게 되었군. 정말 고생이 많아. 보험 영업도 힘겨울 텐데 이런 일까지... 그런데 이 건을 그룹 회장님이 지금 아시고 계신가?”
“모르시고 계실겁니다. 제가 대현조선 배사장님께 오늘 제가 회장님께 보고 드리기 전까지 그룹 회장님께는 보고하지 마시라고 부탁드렸거든요.”
“하하하..그래? 아주 잘했네. 정말 잘했어. 당연히 그래야지. 자네는 엄연히 ‘대한생명’소속인데.. 그런 커다란 정보를 물어온 직원의 오너인 내가 직접 그룹 회장님께 보고 드리는 것이 순리지. 하하하” 크게 웃던 홍 회장이 말을 잇는다.
“잠깐 기다리게. 정회장님과 통화를 좀 해야겠네.”
정회장..‘정 중헌’ 대현그룹 회장이다.
홍회장이 인터폰을 이용해 비서에게 그룹회장 비서실에 연락하라고 지시한 잠시후 탁자위의 전화가 울리고 정회장과 홍회장의 긴 통화가 이어졌다.
통화하던 홍회장이 간간이 민재에게 질문을 하고 민재의 답변을 정회장에게 전하며 20분 넘게 통화가 이어지고 나서야 홍회장이 전화기를 내려놓는다.
“정회장님이 무척 흡족해 하시는 군..자네 덕분에 나도 좋은 말을 들었네. 그리고 정회장님이 보고서와 영업계획서를 제출하라고 하시네..”
“보고서는 당연히 제출할 터이지만 ..영업계획서는 ‘대현조선’ 배사장님께서 정회장님께 제출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제가 주제넘게 어떻게 그걸..”
“대현조선에서도 받으시고 자네에게도 받으실 모양이야. 중복체크 하시겠다는 거지..자네의 영업력이 정회장님 눈에 들었어.. 보고서 잘 만들어 보게나. 하하”
“알겠습니다. 열심히 만들어 보겠습니다. 다음주중으로 회장님께 제출하도록 하겠습니다.”
“아니! 나에게 보고할 필요는 없네. 비밀리에 진행해야 할일 아닌가? 정회장님도 자네에게서 직접 보고를 원하시는 것 같고 말이야..”
“그래도 어떻게..”
“나는 신경 쓰지 말고 열심히 만들어 보게..대신 ‘대현생명’일을 소홀히 하면 않되네..허허”
요즘 그룹의 총회장인 40대의 젊은 정회장과 미묘한 알력이 있는 홍회장의 눈에 잠시 씁쓸한 기색이 감돈다.
“여부가 있겠습니까. 회장님”
홍회장과의 대화를 마치고 해외영업부 사무실로 내려오자 팀원을 비롯한 타부서의 영업부직원들이 여기저기서 레바논 통신사와의 계약 축하인사를 해온다.
대부분 질투와 견제섞인 시선의 축하속에 오직 중동팀의 수다토끼들만 진심으로 축하해 준다.
‘민재’는 수다 토끼들의 수다에 못이기고 결국 월요일날 출근해서 한턱 쏘기로 하고 사무실을 빠져 나왔다.
장만호과장은 무언가 찔리는 기색으로 어색하게 축하 인사를 했다.
‘기다려라..장만호..’
1.목격
그 사건은
우리 학교의 개교기념일이어서 친구 현경이네 집에 놀러 갔던 날 일어났다.
고3인 수험생 현경이와 나는 공부를 하다가 바람을 쏘이러 현경이네 집 근처의 공원을 한바퀴 돌고 있었다.
소변이 마려워진 내가 공원의 화장실에 들어갔을 때, 화장실 끝쪽의 칸에서 여자의 앓는 듯한 신음소리와 철썩 철썩하는 살이 부딪히는 소리가 들려왔다.
가지 말았어야 했지만 호기심 때문에 그쪽으로 간 나와 현경이는 그 사건을 목격하고 말았다.
두 남녀가 화장실문도 닫지 않고 섹스를 하고 있었다.
여자의 엉덩이 뒤쪽에서 남자가 삽입운동을 하는 중이었다.
스커트를 허리위로 걷어 올리고 사타구니 부분만 찢어진 팬티스타킹 사이로 보이는 여자의 질척한 보..지속으로 남자의 페니스..아니 자지가 들락거리는 광경이 눈에 가득 들어왔다.
새하얀 사타구니 중간에 수북한 여자의 검은보지털 사이로 보지물이 흥건하게 젖은 선홍빛 보지속살이 보였고 그 속살사이를 가르며 들어가는 핏줄이 툭툭 튀어나온 흉측하고 굵은 자지가 선명하게 눈에 들어왔다.
그것은 뭐라고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동물적이고 원초적인 본능을 건드리는 그런 광경이었다.
처음에는 남자의 너무나도 거친 모습에 혹시 여자가 강간당하는 것이 아닌가?라고도 생각했지만 “아흐~..오빠..죽을거 겉애..빨리..쎄게 박아줘요..아흑흑~”라는 여자의 소리를 듣는 순간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남자와 여자의 성기가 결합한 그곳에서는 연신 진흙밞는 질척한 소리가 들려왔다.
그곳에서 눈을 뗄수가 없었다.
현경이가 내 팔을 잡아 끌때까지 나는 숨도 안 쉬고 그 보지와 자지가 결합되고 움직이며 꿈틀거리는 광경을 넋놓고 보고 있었다.
현정이의 손에 이끌려 밖으로 나와서도 그 광경이 주는 느낌에 목이 말랐다.
현정이를 설득해 화장실의 창문을 통해 그들을 훔쳐보았다. 여자는 거의 미쳐가고 있었다.
미친듯이 비명을 지르며 더러운 화장실 변기 뚜껑에 머리를 박고 온몸을 와들와들 떨어댄다.
어느 순간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그 남자는 나와 눈이 마주친 상태에서도 한점의 동요도 없이 삽입운동을 계속했다.
남자의 눈과 아래 결합부분을 번갈아 가며 보던 어느순간 표정이 없던 남자의 눈가가 파르르 떨린다.
아래를 보니 남자의 자지가 여자의 보지 깊숙이 삽입되어 멈춘채 허벅지를 꿀럭 거리고 있었다.
여자의 보지에서 오줌이 줄줄 새어나와 허벅지를 타고 종아리로 흐르고 있었다.
연신 하이톤의 신음을 지르던 여자가 남자의 자지가 빠져 나가는 순간 찢어질듯한 비명과 함께 보지에서 오줌물을 좍좍 뿜어내고서 온 몸을 간질병 환자처럼 부들부들 떨며 더러운 화장실 바닥에 주저앉는다.
남자가 여자를 추스르고 화장실을 나올 때까지 그 자리에서 못이 박힌 것처럼 서 있었다.
화장실입구에서 정면으로 본 남자의 얼굴은 배우처럼 잘생겨 보였다.
은행원인 것처럼 차려입은 20대 중반쯤의 언니도 무척 예쁘고 섹시했다.
언니는 부끄러운지 얼굴이 빨개져서 고개를 숙였지만 남자는 화장실에서 손만 씻고 나온것처럼 당당하고 거침없이 내 앞을 스쳐 지나갔다.
싸~한 남자의 냄새가 코끝으로 밀려들어 왔다.
그길로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잠을 잤다.
꿈속에서 아까 본 광경이 재현되고 그 언니의 얼굴이 나로 바뀌었다.
그 남자의 자지가 들락거리는 내 보지에서 엄청난 쾌감이 느껴지고 무언가 보지속에서 빠져 나가는 느낌이 생생했다.
그 순간 나는 천국을 보았다.
잠에서 깼을 때 침대시트가 다 젖을 만큼 오줌을 쌌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한번도 섹스를 해 본적이 없다.
오늘 몽정에서 오르가즘을 경험한 내 이름은 ‘한지수’다.
‘민재’는 홍회장을 만난 그날,
자신에게 입국을 알리지 않은 것을 서운해 하는 ‘오연수’대리에게 자신의 아파트 주소를 휴대폰 메세지로 보내고 퇴근 후에 들리라고 했다.
퇴근하자마자 찾아온 연수와 밤을 함께 보냈다.
연수의 몸짓은 여전히 서툴렀지만 그 뜨거움만은 일품이었다.
월요일에 출근을 해서 업무에 복귀하고 제일 먼저 그룹 회장 비서실 e-amil로 보고서와 계획서를 발송했다.
저녁때 팀 회식을 했는데 ‘장만호’가 빠졌다.
‘죽산실업’의 장만호 관련 보고서에 이상한 것이 잡혔다.
장만호가 최고급 룸싸롱 수(秀)에 지난주 금요일도 들리고 어제도 회식에서 빠지고 그곳에 들른 것이 포착됐다.
그곳은 하루밤 술값이 수백만원이 나오는 곳이다.
직장인의 월급으로는 출입하기 힘든 곳을 일주일에 두번씩이나 출입했다.
더 파고들어 보니 그 룸싸롱의 ‘혜리’라는 아가씨에게 ‘만호’가 빠져 있다는 것이 드러난다.
‘혜리’라는 여자애를 잡으면 뭔가 나올 것 같았다.
화요일 퇴근후에 룸싸롱 수(秀)로 향했다.
입구의 새끼마담에게 ‘혜리’라는 애를 지명으로 넣어 달라고 말하고 룸에서 기다리자 술이 들어오고 잠시 후 청순하게 생긴 스무살쯤의 여자애가 들어온다.
“안녕 하세요. 혜리라고 해요”
인사를 하는 여자를 바라보는 민재의 입가에 싱긋 미소가 지어진다.
“엄다희씨! 이쪽으로 와보세요.”
“네! 팀장님..”
“쿠웨이트 건설회사의 보험료 산정이 잘못 됐잖아요.”
“뭐가요?...어디가요?”
‘다희’가 민재의 모니터에 얼굴을 바짝 들이민다.
바짝 붙어 있는 ‘다희’의 얼굴에서 풍기는 화장품 냄새와 상큼한 처녀의 살냄새가 ‘민재’의 콧속으로 파고든다.
“여기요. 시가 100억이 넘는 특수 크레인의 보험료가 너무 적게 산정 되었어요. 다시 찾아보고 정리해서 팀의 웹하드에 올리세요.”
“네. 팀장님~ ..”
상사에게 잘못을 지적당하고 있는데도 ‘다희’는 생글거리며 날아갈듯이 경쾌한 목소리로 대답한다.
저런 모습을 보면 알면서도 일부러 하나씩 고의로 틀리게 입력시키는 것이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 때도 있다.
“오전 중으로 올리세요.”
“넵! 알겠습니다. 팀장님! 오전중으로.. 실시~. 헤헤 오늘 팀장님 넥타이 너무 멋지세요. 히히”
부동자세를 취하며 군인 흉내를 내던 ‘다희’가 혀를 날름 하며 자리로 돌아간다.
팀내에서 막내 설수진과 더불어 ‘민재’의 싸늘한 표정이 먹히지 않는 유일한 존재가 ‘다희’이다.
가끔 덜렁대는 성격에 업무를 흘리는 모습을 종종 보이기도 하지만 자신이 맡은 일은 밤을 새서라도 해내는 승부근성과 악바리 기질도 있어서 팀내의 언니들에게 귀여움을 많이 받는다.
자리로 돌아가던 ‘다희’가 자신의 직속상관이기도 하고 대학 선배이기도 한 ‘오연수’대리의 화난 눈초리를 받고 당황한 표정으로 후다닥 자리로 돌아간다.
점심시간에 ‘다희’는 오늘 버릇없는 행동에 대해 오대리에게 한소리 들을 것이다.
‘민재’가 뭐라고 하지 않아도 여자들 끼리 알아서 규율을 잡아가고 있는 그런 모습들을 보며 자신에게 조금 버릇없는 행동을 하는 직원이 있어도 팀구성 초기와는 다르게 요즘은 그냥 웃고 넘어가는 편이다.
그룹 회장 비서실에서 민재의 휴대폰으로 연락이 온 것은 바로 그날, 수요일 퇴근시간 직전이었다.
새로 오픈할 사무실의 보안 프로그램 설치를 위해 이틀전에 입국한 ‘긴샴’과의 선약을 미루고
한남동으로 향했다.
정회장과의 약속장소는 바로 며칠전에 장의원 배사장과 만났었던 비밀요정 ‘우미옥’이었다.
우미옥의 여사장 ‘이연주’라는 여인의 예감이 맞았다.
우미옥의 대문에서 ‘민재’를 손수 기다리고 있던 ‘이연주’가 민재를 안내한 곳은 장의원과 술을 마시던 그 건물의 뒷편에 있는 또 다른 대문을 통과해야만 갈수 있는 고풍스런 한옥이었다.
아직 정회장은 도착하지 않은 듯 넓은 방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호호. 팀장님 제 예감이 정확하게 맞았네요.”
향긋한 내음이 풍기는 차를 한잔 따라준 여인의 살포시 웃는 눈꼬리에 요요로운 기색이 감돈다.
“그러네요. 제가 틀렸네요. 하하”
“팀장님! 휴대폰 가지고 오셨죠?”
“네..그런데요?”
“꺼두세요. 어차피 이곳에서는 휴대폰 통화가 않되긴 하지만.. 그리고 다음에 정회장님을 만나러 오실때는 휴대폰을 두고 오도록 하세요.”
민재가 휴대폰을 꺼내서 확인해 보니 통화권 이탈 이라는 글이 액정에 떠있다.
‘연주’의 말대로 휴대폰의 배터리를 분리했다.
“이 건물 내에서는 모든 전자기기가 작동 불능이 돼요. 눈에 보이지 않는 강한 전자기 펄스가 건물을 덮고 있죠. 일단 건물 내부로 들어서면 도청도 않돼고 촬영도 불가능해요.”
“그렇군요.”
“정회장님이 이곳을 자주 이용하시는 이유중의 하나예요. 현 대통령과 ‘대현’의 관계는 알고 계시죠? 현 정부와 정회장님 사이가 별로 좋지 않아요. 국정원과의 사이도 그렇고.. 그것 때문에 정회장님이 약간의 몸조심을 하시는 중이에요. 현정부 들어서 알게 모르게 ‘대현’이 불이익 당하는 면이 있거든요. 무슨 말씀인지는 아시죠?”
“그럼요....”
‘이 광박’ 현 대통령은 ‘대현그룹’ 계열사중 하나인 ‘대현건설’ 사장출신이다.
과거 ‘대현그룹’ 창업주인 ‘정두영’회장이 생존해 있을 때 사석에서 ‘이광박’ 당시 ‘대현건설’사장을 가리켜 자기집안의 ‘머슴’이라고 칭했다는 확인되지 않는 풍문이 있었다.
‘정두영’ 창업주의 친손주인 ‘정중헌’ 회장이 몸을 사릴 만도 한 시국이었다.
“호호호..그리고 이건 이팀장님이 잘생겨서 알려드리는 팁인데요... 정회장님께서 만약 뭔가를 물어보신다면 예의나 배려..뭐 그런 것 신경 쓰지 마시고 평소 생각해 왔던 주관대로 허심탄회하게 말씀드리세요. 그분은 입에 발린 소리를 하는 사람들을 별로 신뢰하지 않거든요.”
“알겠습니다. 고마워요. 이사장님”
“호호. 이야기가 잘되시면 나중에 영화나 한편 보여주세요..요즘 나오는 ‘트와일라잇 이클립스’ 그거 재미있다고들 하던데..저 영화본지 오래 됐거든요. 그리고 사장님이라고 부르지 마세요..아셨죠?”
“네..그렇게 할께요..”
‘연주’가 알쏭달쏭한 말을 남기고 방을 나간지 얼마돼지 않아서 ‘정회장’이 들어온다.
“반갑습니다. 이팀장님”
“처음 뵙겠습니다. 회장님! 이민재라고 합니다. 그리고 말씀 낮춰 주십시오.”
“차차 그렇게 하죠.”
45살의 정회장은 재벌3세 답지 않게 소탈하면서 정중한 모습을 보인다.
큰 교자상에 한가득 차린 항식이 들어오고 소소한 대화와 함께 식사가 시작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