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하순의 베이루트 공항은 무더위의 계절이 지났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뜨거운 지중해의 바람이 불어와 한낮에는 기온이 30도 가까이 된다.
“호호~..팀장님 말씀대로 여름옷을 챙겨오길 잘 했네요...어유 더워~..”
긴 생머리를 찰랑거리며 ‘오연수’대리는 연신 손부채질을 한다.
인천 공항을 출발, 이스탄불을 경유해 베이루트에 도착할때까지 꼬박 10시간이 넘는 비행이었지만 ‘연수’는 아직 쌩쌩했다.
“후후~..어서 나갑시다. 오대리님..”
입국통로에서 기다리고 있던 ‘미하일’이 손을 흔들며 다가와 힘차게 포옹을 한다.
“오랜만이야..리”
“그래..일년이 넘었지..미하일..”
‘연수’와 인사를 나누고 그녀의 짐을 받아든 ‘미하일’이 주차장으로 두사람을 안내한다.
175정도의 키에 단단한 체구를 지닌 ‘미하일’은, 프랑스인 아버지와 레바논 여인 사이에 태어난 혼혈로, ‘민재’와는 10년전 프랑스의 비밀단체에서 처음 만났었다.
그 인연이 계속 이어져 지금은 ‘로라 컴퍼니’소속으로 베이루트에 거주하고 있다.
미리 예약한 ‘라 코모도레’ 호텔의 객실에 ‘민재’가 들어서고 ‘미하일’도 곧바로 따라 들어온다.
“보스.. 시간이 없습니다. ‘마론’이 내일 저녁 카이로행 비행기를 예약했습니다.”
아까와는 다른 공손한 목소리로 미하일이 말을 이어간다.
“준비는 모두 끝났습니다. 오늘 밤에 ‘마론’을 잡고 나면 내일 오후에 ‘하인즈’를 만나기로 약속을 했습니다.”
“마론의 현재 위치는?”
“호텔의 스카이라운지에서 이집트 대사를 만나고 있습니다. 경호원 두명이 함께있고 한명은 지하 주차장에서 대기하고 있습니다.”
두사람의 이야기는 한참동안 이어졌다.
“그럼 30분 후에 시작하도록 하지..”
“네..보스..”
미하일이 차에서 꺼내온 가방을 탁자위에 올려놓고 방을 나간다.
그런데 ‘민재’가 가지고 온 여행 가방은 분명히 하나 였는데 객실 쇼파에는 두개의 똑같은 가방이 놓여 있었다.
‘미하일’이 방을 나가자 민재는 객실의 전화기를 들고 ‘오연수’가 묵고 있는 객실의 번호를 누른다.
“오대리님..저녁 식사를 하셔야죠?..”
“네! 팀장님”
“이 호텔 스카이라운지가 멋지다고 하던데..그곳으로 모실까요?”
“호호..저야 고맙지요..”
“그럼 30분후에 엘리베이터 입구에서 뵙도록 하죠..”
엘리베이터 앞에서 ‘연수’를 기다리던 ‘민재’가 시계를 보더니 휴대폰을 꺼내 아랍어를 입력한다.
-작전 개시-
이 문자는 지하 주차장의 차에서 기다리고 있던 ‘미하일’과 호텔의 모니터 보안요원인 ‘긴샴’의 휴대폰으로 동시 전송되었다.
엘리베이터에 설치된 감시 카메라로 동양인 남녀가 스카이라운지로 올라가는 모습을 한동안 지켜보던 ‘긴샴’의 손이, ‘연수’의 등 뒤에 서 있던 ‘민재’가 엘리베이터 위쪽에 설치된 방향제를 만지는 순간부터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민재’가 방향제 통을 떼어내고 주머니에서 꺼낸 똑같은 모양의 방향제로 바꾸는 모습이 모니터에서 삭제되고 방금전에 미리 카피해 두었던 두사람이 정면을 보고 서있는 모습으로 덧 씌어졌다.
방향제를 바꿔치기 한 ‘민재’의 행동이 보안 기록에서 완전히 지워진 것이다.
로마 신화에 나오는 신들의 조각상을 군데군데 세워놓은 ‘라 코모도레’호텔의 스카이라운지에서 ‘민재’와 함께한 저녁식사와 와인은 정말 근사하다고 ‘연수’는 생각했다.
잔잔하게 웃어주며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민재’의 세련된 매너는, 머나먼 이국땅에서의 첫 밤을 설레어 하던 스물아홉살 여인의 마음을 흔들어 놓기에 충분했다.
깔끔한 스테이크도 맛있었고 달콤한 와인의 향도 좋았지만, 자신의 귀 가까이에서 조용하게 속삭여주는 남자의 목소리는 정말 좋았다.
그의 숨결이 귓가에 닿을 듯 말 듯 이야기할 때는 솜털이 곤두서는 것 같은 긴장감이 들었다가 부드러운 미소를 보고 있노라면 몸이 나른하게 풀어 졌다.
“오대리님..오늘은 이만하고 내일 계약서에 사인하게 되면 정말 진하게 마시도록 하죠..”
“네 ..그래요..팀장님..저녁 고마웠어요..와인도..그리고 재미있는 이야기도..”
“하하..즐거웠다니 다행이네요..”
두사람은 객실로 내려와 각각의 방으로 들어 갔다.
-하얀 곰이 움직이고 있음-
‘긴샴’의 메세지가 휴대폰의 액정에 나타난다.
옷을 갈아입고 대기하고 있던 ‘민재’가 방문을 나선다.
그의 손에는 자그마한 리모콘이 쥐어져 있었다.
‘마론’과 두명의 경호원이
호텔 스카이라운지에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있을 때, ‘민재’는 객실 승객용 엘리베이터의 문을 열고 지하 주차장으로 나서고 있었다.
감시 카메라의 사각 지대에 주차를 한 검은색의 승합차에 오르자 이미 준비를 완료하고 기다리고 있던 ‘미하일’이 방독면을 내민다.
‘미하일’과 같은 검은 옷으로 재빠르게 갈아입은 ‘민재’가 방독면을 착용한다.
-하얀곰, 15층에 도달..엘리베이터 내부에 일반인 없음..-
‘긴샴’의 메세지를 확인한 ‘민재’가 리모콘의 버튼을 누른다.
‘마론’이 타고 있는 엘리베이터 윗쪽에 붙어있던 방향제 통이 깜박거리며 무색의 수면가스를 방출한다.
세사람이 잠든 엘리베이터 내부의 광경을 모니터로 보고 있던 ‘긴샴’이, 키보드를 두드리자 엘리베이터 상단에 <점검중>이라는 글씨가 나타나고 엘리베이터는 한번의 멈춤도 없이 지하 주차장까지 내려온다.
차에서 대기하던 ‘마론’의 운전기사가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는 것을 확인하고 운전석의 문을 여는 순간 “슉~”하는 둔탁한 소리와 함께 조수석으로 쪽으로 고개를 떨군다.
검은 옷을 입고 방독면을 쓴 ‘미하일’의 손에 들린, 소움기가 장착된 베레타에서 흰 연기가 피어오른다.
‘민재’와 ‘긴샴’이 총에 맞은 ‘마론’의 경호원겸 운전기사를 포함해 엘리베이터 내부에 쓰러져 있는 세 명의 건장한 남자들을 검은색의 승합차로 옮기는데 걸린 시간은 불과 오분 남짓이었다.
검은색의 승합차가 호텔의 지하 주차장을 빠져나가는 것을 확인한 ‘긴샴’이 엘리베이터의 동영상 파일과 지하주차장 감시 카메라 동영상 녹화파일을 삭제하고 그 위에 ‘샤샤 그레이’의 포르노 동영상을 깔아 놓고 모니터실을 나선다.
‘샤샤 그레이’는 ‘긴샴’이 제일 좋아하는 포르노 배우다.
일주일 전
이번 작전을 위해 ‘라 코모도레’호텔 보안팀에 위장취업 했던 ‘긴샴’은 내일 아침에 바그다드행 비행기를 탈 것이다.
다음 작전이 시작될 때까지의 짧은 휴식을 위해..
‘긴샴’은 ‘로라 컴퍼니’소속의 프래그래머였다.
과거 레바논 내전에서 ‘시아’파의 전사들이 사용했던 폐쇄된 지하 벙커의 딱딱한 나무탁자에 팔과 다리를 묶이고 검은 안대로 눈을 가린 알몸의 ‘마론’이 정신을 차린 것은 새벽 한시쯤이었다.
축 늘어진 아랫배 밑에 바짝 쪼그라들은 페니스가 초라하다.
“촤악~”
“으억~”
차가운 물이 ‘마론’의 머리에 부어지고 아무것도 보지 못하는 ‘마론’은 공포의 비명을 지른다.
“정신 차렸나?..마론! 그럼 시작하지..”
“누..누구..?”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음산한 목소리가 흘러나오자 마론이 더듬거린다.
“누군지 알 필요는 없고.. 당신은 우리에게 납치된 거야..”
“뭐..뭐라고..”
‘마론’은 그제서야 자신의 처지가 이해되기 시작한다.
“여기서 살아 나가려면 판단을 잘하기 바란다.....우리가 요구하는 것은 두가지다.”
“어..어떤?”
앞이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 들리는, 감정이 전혀 섞이지 않은 남자의 목소리가 ‘마론’을 더욱 공포스럽게 만든다.
“첫번째는 당신이 관리하고 있는 ‘유니온 뱅크 스위스(Union Bank Switzerland-UBS)’에 계설된 ‘카다피’비자금의 12자리 인터넷 계좌 보안 아이디와 비밀번호..”
“헉..그..그걸 어떻게..?”
‘마론’의 입에서 경악의 소리가 튀어 나논다.
“질문은 받지 않는다. 여기에서 생을 마감하던지..번호를 말하든지..선택해라.”
“당신들..‘카다피’대통령이 이사실을 알면 무사하지 못할텐데..”
“멍청한 인간이군..요즘 리비아 시민 소요를 너무 단순하게 보는군..너는 카다피가 얼마나 더 버틸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나?”
“그..그건..”
‘마론’이 생각해 봐도 요즘 리비아의 문제는 심각했다.
“시끄러워..더 이상의 불필요한 말을 하지 마라..죽던지..아니면 말하던지 ..둘중의 하나를 선택해..”
“하지만 그것을 안다고 해도 UBS의 보안해제 프로그램이 없으면 소용없을 텐데..”
마론이 지푸라기라도 붙잡는 심정으로 말끝을 흐린다.
“걱정하지 마라..네가 애인처럼 품고 다니던 노트북을 챙겨 왔으니까..그리고 네가 카다피의 숨겨진 딸의 남편이라는 것도, 네 경호원들이 사실은 카다피가 파견한 감시인이라는 것도 알고 있지..후후”
상대방의 건조한 목소리가 들리자 ‘마론’은 절망한다.
“보안 아이디는 mad****... 비밀번호는 bps*****..”
자포자기한 ‘마론’의 목소리가 들리고 ‘민재’의 곁에서 노트북 모니터에 UBS의 보안해제 프로그램을 띄어놓고 있던 ‘긴샴’이 빠르게 영문과 숫자들을 입력한다.
잠시후 모니터에 UBS의 로고가 뜨고 화면이 바뀌면서 계좌의 잔액이 표기된다.
유로화로 420만이라는 숫자가 표시되어 있었고 그 아래에는 달러 표기로 500만이라는 숫자가 깜박인다.
‘민재’가 휴대폰을 들어 어디론가 메세지를 보내자 곧바로 답장이 온다.
‘민재’의 휴대폰을 받아든 ‘긴샴’이 휴대폰에 찍힌 계좌로 이체를 시작한다.
모나터 하단에 푸른색의 로딩창이 나타나고 바가 움직이며 이체를 시작한다.
5%..15%..47%..
계좌이체를 완료했다는 메세지가 깜박이고 ‘민재’가 휴대폰으로 또 한번 메세지를 보낸다.
이번일을 의뢰한 사람이 임시로 계설했던 방금전의 계좌는 곧 폐쇄될 것이고 이체된 달러와 유로화들은 몇군데의 계좌로 분산될 것이다.
그 중에는 레바논 정부가 비밀리에 관리하는 비밀계좌도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두번째 요구는 UBS비밀 금고번호와 출입 암호다...금고의 열쇠는 아까 찾았으니까 됐고..”
“헉~”
민재의 말에 ‘마론’은 기절할 것처럼 놀란다.
비밀금고의 존재는 자신과 카다피와 그의 최측근 인사 네명만이 알고 있는 비밀이다.
그 비밀을 이자들이 알고 있다는 것은 측근인사중의 누군가가 비밀을 누설했다는 말이다.
“도데체 그걸 어떻게 알았지?..설마..사인방 중의 누군가가 배신을...”
“쯧쯧..이제서야 사태 파악이 되는 모양이군.. 빨리 말해..배에 타야 하는데 남은 시간이 별로 없거든..”
절망속에 빠진 ‘마론’이 은행 금고의 출입 암호를 불러준다.
‘민재’가 신중한 표정으로 메모하고 ‘마론’에게 재차 확인을 한다.
“당신은 이제 잠을 자게 될거야..그리고 12시간후에 깨어나면 배를 타고 공해상에 있을테고..우리 관계자가 UBS은행의 비밀금고에서 내용물을 확인할 때까지 당신은 배에 있어야 해..당신이 알려준 암호가 사실로 판명되고 우리가 내용물을 입수하면 당신이 원하는 곳으로 데려다 줄거야..당신도 이제 카다피 대통령이 끝났다는 것을 알겠지?..그에게서 떨어져.. 당신이 그동안 모아놓은 돈을 가지고 조용하게 살도록 해..”
민재의 말이 끝나자 ‘마론’이 허탈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미하일’이 다가와 ‘마론’의 팔에 주사기를 꽂는다.
새벽 두시 반
베이루트 다운타운에 나타난 ‘민재’의 옷이 호텔 객실에서 나올 때의 옷차림으로 바뀌어 있었다.
술취한 젊은이들이 쉼 없이 들락거리는 클럽 ‘le petit prince’ 입구에는 건장한 흑인이 서 있었다.
그에게 다다간 ‘민재’가 뭐라고 귀엣말을 하자 문 안쪽을 향해 흑인이 큰소리로 외친다.
“한나!..이 손님 이층 특실로 안내해 드려,,”
잠시후 붉은 머리를 가진 아랍여인이 다가와 민재의 팔을 잡아끌고서 안쪽으로 데려간다.
번쩍거리는 미러볼과 산란되는 레이져의 광선속에서 시끄럽고 빠른 비트의 음악에 취해 몸을 흔드는 젊은이들 사이를 요리조리 빠져나가며 민재를 이끈 여자가 계단에 있는 문을 쿵쿵 두드리자 문 위쪽에 있는 직사각형의 작은 창이 살짝 열린다.
“무슨 일이야?”
“특실 손님이에요..”
육중한 철문이 열리자 기관총을 둘러맨 키가 큰 남자가 민재 앞에 나타난다.
“무기 가진것이 있으시면 저에게 주시기 바랍니다.”
문을 닫은 남자가 불어로 말하고 ‘민재’가 고개를 젓는다.
“실례 하겠습니다.”
무뚝뚝한 말투로 양해를 구하고 민재의 몸수색을 끝마친 남자가 커다란 방으로 안내한다.
길다란 탁자의 맞은편 붉은색 가죽 쇼파의 끝에는 60세 정도 되어 보이는 몸이 호리호리한 은발의 서양인이 앉아 있었다.
“반갑네..”
“반갑습니다. ‘리’ 입니다.”
“이쪽으로 앉지...와인 한잔 하겠나?”
“감사 합니다.”
프랑스인 인듯 불어 인사와 함께 악수를 마친 남자가 ‘민재’에게 자리를 권한다.
“다크 리(dark Lee)..그 친구와는 40여년 전부터 알고 지냈지.. 베트남 전쟁때부터..자네가 그의 조카라지?”
“네!..그렇습니다”
다크 리(dark Lee)..‘이 영묵’..‘민재’의 큰 아버지..항상 어두운 계열의 옷을 입고 다니는 그를, 지인들은 다크라는 별명으로 부른다.
“그친구는 이렇게 든든한 후계자를 두고 은퇴했는데.. 늙은 나는 아직도 이러고 다닌다네..하하”
“별말씀을 다하십니다...”
“그건 그렇고 일은 어떻게 되었나?”
“여기 있습니다.”
민재가 주머니에서 메모지와 은색의 열쇠를 은발의 노신사에게 건네준다.
한참을 복잡한 눈으로 열쇠를 들여다보던 노신사가 그것들을 챙겨 넣고 다른 주머니에서 메모지를 꺼내어 ‘민재’에게 건네어 준다.
“이 메모지에 적힌 베이루트 은행의 계좌는 내일 오후까지만 이체가 가능한 계좌야..그 후에는 계좌가 폐쇄되네..무슨말인지 알겠나?”
“네..”
“그리고..자네 백부에게 듣자하니.. 내일 오후에 다른 일 때문에 레바논 통신부 차관을 만날 계획이라면서?”
“네 오후에 ‘하인즈’차관님과의 점심식사 약속이 있습니다.”
“내 명함을 한장 줄테니까..가지고 가서 그에게 보여주게..도움이 될걸세..”
검은색의 명함에는 이름만 인쇄되어 있었다. ‘미카엘 팽숑’..
“감사합니다. 무슈 ‘팽숑’..”
‘하인즈’차관은 이번 레바논 통신사와의 보험계약 여부에 대한 전권을 쥐고 있는 사람이다.
‘미카엘 팽숑’ ...약간 마른듯한 이 노신사가 레바논과 시리아 정부를 막후에서 움직일 수 있는 숨은 실력자라는 것을 큰아버지에게 들어 익히 알고있던 ‘민재’다.
과거 레바논 내전 당시.. 기독교도와 무슬림 수니파, 시아파, 거기에 PLO까지 난맥상으로 얽혀 있던 복잡한 상황에서 끈질긴 교섭과 대화요구, 실력행사로 각파의 지도자들을 협상 테이블까지 나오게 하고 레바논의 평화를 이끌어 낸 숨은 공로자다.
기독교도 프랑스인을 부모님 밑에서 태어난 ‘팽숑’이 20대때 무슬림으로 개종한 것은, 과거 레바논과 시리아를 지배했던 프랑스인으로는 아주 희귀한 케이스다.
“자네.. 나와 술한잔 더 하겠나?..근래 들어 감시가 더욱 심해져서 한동안 외출을 삼갔었거든..오랜만에 밖에 나와서 마시니 와인향이 더욱 그윽하게 느껴지는 군.. 어떤가?”
“네..그렇게 하겠습니다. 저도 일이 깨끗하게 마감되어 기분이 좋군요..하하”
“요즘 CIA와 무슬림 극렬 분리 주의자들까지..나를 노리는 인간들이 아주 많다네..
얼마 전에는 집 안에서 도청기가 발견된 적도 있었다네..집에서도 맘 놓고 이야기 할수 없는 신세지..하하하“
“...”
“나라는 존재는 미국의 거대자본과 극렬 무슬림들.. 분리주의자들에게 눈에 가시같은 존재이지..그들이 획책하는 무슬림 분열기도를 번번히 무산시켜 왔었으니까..그런데 요즘에는 수니파에서도 나를 보는 눈이 곱지 않더군..아랍인도 아닌 내가 너무 설친다고 생각하는 것 같더라고.. 내 입장에서는 참 씁쓸하지만 그들을 이해 못하는 것도 아니야..하지만 40년 넘게 아랍인과 이슬람을 위해 살아 왔는데 그것이 폄하당하는 것은 정말 아프더군...내 얘기가 너무 지루한가?”
“아닙니다..”
“나는 이슬람을 사랑하고 그들의 역사와 정신을 존경한다네..그런데 20세기 들어서는 아랍인들의 그 빛나는 정신문명이 파괴되고 있어..종교라는 이름하에..가슴 아픈 일이지..자신들 스스로 몇천년동안 쌓아왔던 정신을 파괴하고 있으니 말이야..
자네 알고 있나?..이슬람 과격 무장단체의 뒤를 캐다보면 그 자금줄이 미국의 거대 석유회사나 무기 생산 업체와 연결된다는 것..아니면 유대인의 거대 자본에 닿아 있거나.. 정말 가슴 아픈 일이지.. 적들이 준 돈으로 무기를 사서 동족들에게 총질을 하다니..후우~..“
‘팽숑’은 한동안 슬픈 얼굴로 와인잔을 기울였다.
“자네! 카다피가 스위스 은행 비밀금고 안에 무엇을 넣어 놓았을지 궁금하지 않은가?..”
“무슈 ‘팽숑’께서는 알고 계시는 것처럼 말하시네요..”
“후후..알고 있지..금고 안에는 1억불이 넘는 금액의 무기명 채권이 들어 있다네..즉시 현금화 할수 있는 고액 채권들로만..”
“ 1억불이요?..”
민재가 경악을 한다.
“엄청난 금액이지..후후..그런데 그런 비밀금고가 한군데 더 있다네..그런데 그 금고 안에는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네..지난 40년간 카다피가 집권하면서 아랍국가의 정상들과 대화한 기록들이 그 안에 있다더군..공식적인 회담 자료외에도 엄청난 비밀들이 논의된 비공식적인 대화의 음성 파일까지 말일세.. 카다피는 그곳에 있는 엄청난 달러와 비밀자료들을 미국에 넘기고 자신의 정권연장을 담보 받으려는 계획이었다네..그 자료들이 미국에 넘어 갔다면 중동지역의 국가들에게는 엄청난 타격이 되었을 거야.. 다행이 카다피의 측근중 한 사람이 양심의 가책을 못이기고 그런 내용을 자신이 다니던 모스크의 한 울리마(이슬람 종교 지도자)에게 알려 주었고 그 내용이 비밀리에 아랍의 정상들에게 입수 되었지..”
“아~..그렇게 된 것이었군요..그런데 왜 국가 기관이 나서지 않고 저희 ‘로라 컴퍼니’로 의뢰를 하셨는지 궁금하네요?”
“하하하..핵심을 찌르는 질문이로구만..역시 자네는 다크의 말대로 무척 예리하군..”
“과찬이십니다.”
“그 이유는 말일세..불신 때문이라네..카다피건에 대해 각국의 지도자들은 종파를 막론하고 자료를 회수하기로 합의를 하였지만 ..문제는 그 일을 누구에게 맡길 것인가?..였다네.
그 자료를 입수한 국가의 지도자가 그것을 이용해서 자국의 이익을 취하려고 한다면 다른 국가들에게는 큰일이 아닌가?..그래서 이리저리 고민하던 국가 정상들이 선택한 인물이 바로 나일세..비록 국적은 레바논인 이지만 부모가 프랑스인이고 어느 종파에게 깊이 개입되어 있지 않은 나에게 의뢰가 온 것일세.. 내가 판단하기에 아랍권의 무장 단체나 이슬람 종교단체를 이용하는 것은 위험하다는 결론을 내렸고 자네의 백부님께 연락을 한 것일세..“
“그렇게 된 것이었군요..”
“내일 은행의 비밀금고에서 채권과 서류를 입수하면 채권은 공평하게 분배되어 이번 일에 참가한 국가들의 국고로 들어가게 될 것이고 서류들과 음성 파일이 들어 있는 usb는 각국의 참관안들이 모인 자리에서 내용을 확인하고 파기 될 걸세...”
“그런데 이런 이야기를 저에게 해주시는 이유가 뭔지요?”
“후후~역시 핵심을 찌르는 군..나는 앞으로 얼마 살지 못할거네..아까도 말했다시피 미국에서도 나를 노리고 여러 무장단체들 또한 그러하네. 그런데 이제는 아랍권 여러국가의 치부까지 알게 되었네. 그 국가에서는 내가 빨리 사라져 주기를 바랄걸세..후후후.. 내가 자네에게 이런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내가 죽고 사라저도 이 ‘미카엘 팽숑’이라는 인간이 아랍의 정신을 얼마나 존경했고 사막의 모래 바람을 얼마나 사랑했는지 한 사람이라도 알아주었으면 하는 마음에서 일세. 자네 백부에게 들었던, 아픈 과거를 이기기 위해 모래 바람속에서 10대를 보냈다는 자네라면 나의 마음을 이해하리라 생각해서 였다네..”
이방인으로 태어나 평생 이슬람 정신을 짝사랑해온 노신사의 쓸쓸한 미소가 내내 ‘민재’의 가슴에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