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자간의 금기 9부
지수는 가슴이 아파왔다. 비록 그이와의 결혼을 반대하셨던 분이셨고 엄하셨던
분이셨지만 저렇게 몸이 전에 보았을 적의 모습에서 상상할수 없을 정도로 많이
마르신 모습을 보니 그이의 생각과 그이의 아버지라는 생각이 지수를 슬프게 만들었다.
"그래, 우리 귀여운 손자와 며느리가 왔구나. 쿨럭...쿨럭..."
명우의 할아버지는 자리에서 일어날려고 했지만 워낙에 약해진 몸 때문에 일어날수가
없었다. 결국은 명우와 지수의 도움도 소용없이 다시 자리에 누웠다.
"에구...미안하구나. 일어나 맞아주었어야 하는데. 쿨럭..쿨럭...몸이 이러다 보니
이제는 자리에 앉는 것도 힘들구나."
명우는 자신을 아껴주시던 할아버지의 모습에 마음 깊숙히 안타까움을 느끼며
이상하게 느껴졌다. 몇달전에 있었던 추석때만 해도 할아버지는 이렇게까지 몸이
많이 상해있지 않았던 것이였다. 그때만 해도 명우의 할아버지는 명우에게 반가운
미소를 지으시며 이것저것 차례에 대한 여러가지 얘기들을 해주었던게 기억났다.
"아니에요. 아버님. 어서 건강해 지셨으면 좋겠어요."
"할아버지 어쩌다가....."
"글쎄다. 이제 가야 할때가 왔나 보지. 이렇게 갑작기 눕게 되다니 말이다."
할아버지의 씁쓸한 미소와 함께 나오는 노인 특유의 쉰 목소리가 기운없이 나왔다.
"할아버지 그 무슨 말씀을 그리 하세요. 어서어서 나으셔야죠. 그래야 설에도 제
세배를 받으시죠."
명우는 돌아가신 아버지 생각이 났기에 할아버지의 모습이 너무도 싫었다. 어서
나아서 자신을 옛날같이 맞아주기를 원했다.
"클클....명우 이녀석이 할애비 세뱃돈이 궁했나 보구나."
그런 할아버지는 오히려 명우에게 농담해가며 다정스럽게 말해주었다. 할아버지는
언제나 두 모자를 볼때마다 불쌍히 생각했고 죄스러웠다. 자신의 못난 아들이
부모에게도 불효해가며 먼저 떠나고는 더 고생하는 두모자의 모습을 보고서도
도와주지 못한게 그런 아들을 지아비로 아비로 두게 만든게 미안했다.
'못난녀석.....어떻게 이런 아내와 아들을 두고 부모에게 불효해가며 먼저 갈수가
있는지.....'
"아버님 죄송해요. 제가 얼른 내려와 시중이라도 해드렸어야 했는데."
지수는 고개를 푹 숙이며 자신의 시아버지에게 죄스러움을 느꼈다. 그러한 며느리의
모습에 명우의 할아버지는 며느리의 본성이 참으로 순수하며 착하다는 것을 알수가
있었다. 진작부터 알고는 있었지만 처음 보았을 때의 가늘고 약해보이던 며느리의
모습 때문에 인정하지 않았던 자신의 말이 끝내 걸렸고 그것으로 인해 여태까지
엄하게 항상 대해왔던게 마음 쓰였다. 자신이 조금이라도 마음을 인자하게 가졌다면
며느리는 조금이라도 고생을 덜하지 않았을까. 명우의 할아버지는 자리에 누워
있게 되니 더욱 그것이 거슬렸다. 마음 고생이 시댁에 올때마다 심했던 며느리가
가여웠고 불쌍했다. 자신의 아들 덕분에 더 고생하는 며느리.
"아니다. 아니야. 너도 바쁘고 고생이 심할텐데. 어떻게 그런 부탁을 하겠니. 아무리
염치없는 늙은이라도 그러면 안되는 거야. 그러니 마음쓰지 말거라."
지수의 시아버지는 옆에 얌전히 앉아있는 며느리의 많이 거칠어진 손을 잡고는
따스하게 말해주었고 지수는 그런 시아버지의 말이 마음에 닿았기에 저려왔다.
'아버님 죄송해요. 죄송해요. 제가 능력이 되었더라면......'
고생해도 마음대로 되지 않는 생활여건이 또 다시 억울하게 다가왔다. 여자이기에
애 딸린 과부이기에 고생하며 돈을 벌려고 해도 사회에서는 인정해 주지않았다.
오히려 그녀의 그런 모습에 동정은 커녕 도움도 주지않은게 사회였다. 남편이 죽으므로
생기는 그런 여건은 그녀에게 항상 원망과 억울함 그리고 고통만 주었을 뿐이었다.
"그래, 오늘 나때문에 서점 문도 닫고 왔겠구나. 미안하구나. 오늘 같은 날에는
서점문을 열었어야 한는건데."
"아니에요. 아버님. 그런 쓸데없는 신경쓰시지 마시고 어서 나으실 생각만 하세요."
"그래, 그래. 너희들을 보더라도 그래야 겠지."
한동안 지수와 명우와 할아버지는 여러 얘기들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가
명우의 할아버지는 지수와 명우에게 그만 가보라고 권했고 그들은 어쩔수없이
계속 권하는 할아버지의 성화에 못이겨 그만 인사 드리고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엄마...엄마는 오래오래 사세요."
돌아오는 길에 문득 지수는 명우의 말에 의아해 했지만 곧 있어 그 이유를 알수
있었기에 미소지었다.
"왜? 엄마가 일찍가는게 싫어?"
명우의 말을 듣고는 장난기가 든 지수는 짖굿게 명우에게 물었고 명우는 정색하며
당연하다는 듯이 고개를 강하게 끄덕였다.
"그럼요. 당연히 엄마를 제가 편안하게 해주기 위해서라도 오래사셔야죠."
명우의 말은 대견스럽고 흐뭇하게 들려왔다.
"그래. 명우를 봐서라도 오래 살아야지. 오래 살아서 명우 장가가고 손주보는 것도
보고 두고두고 괴롭히며 살아야지. 후후...."
"그래주시면 오히려 제가 고맙죠. 엄마가 괴롭히시는거야 아무것도 아니죠.
오래 사세요. 그래서 저를 두고두고 괴롭혀 주세요."
지수의 짓굿은 말은 명우에게 웃음을 주었고 두 모자는 돌아오는 길에 웃음을 터트리며 하루의 찜찜하고 침울했던 분위기를 소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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