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화 (8/16)

모자간의 금기 8부

한동안 명우의 품에 안기어 실컷 울었던게 도움이 되었던가. 지수는 오늘따라 기분이

상당히 상쾌하다는 것을 알수 있었다. 보이지 않는 뭔가를 덜어놓은듯한 그러면서

마구 헝클어져 있었던 뭔가를 약간이나마 풀어나간듯한 기분이었다. 그게 다 자신의

아들 덕분이라고 생각하며 지수는 부드러운 미소와 함께 정이 듬뿍 담긴 시선으로

앞에서 아침을 먹고 있는 명우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문득 지수는 오늘

아침에 자신의 조금은 창피한 장면이 기억났다.

'나도 참 주책이야. 아들의 몇마디에 눈물 흘리며 안기지 않나. 내가 그렇게

힘들었나?'

힘들었을지도 몰랐다. 남편이 죽은 뒤로는 한번도 누구에게 의지한적이 없었으니까.

얼마나 고생이 심했던가. 이리저리 바쁘게 오가며 일하던 모습이 떠올랐다.

그때마다 생각나던 죽은 남편의 정다웠던 모습이 이제는 가물가물했다. 그대신

점점 자리잡아 가고 있는 것은 어느새 다 큰 하나뿐인 아들의 어른스러운 모습

이었다.

'그래도 명우의 품은 참 따스했어.'

자신의 온몸에서 느껴졌던 명우의 품과 남성의 체취는 강렬하게 기억에 남아있었다.

오랜만이라고 할까. 남편 이후로는 한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남자의 단단하고 믿음직

스러운 품안이었다. 새삼 명우가 성숙했다는 것을 깨달을수 있었다.

"어? 엄마 아침 안드세요?"

그러다가 명우의 말에 지수는 자신의 상념에서 깨어나며 얼굴을 붉힐수 밖에 없었다.

순간이지만 자신이 무슨 생각을 했는지 이해할수 없었던 거에다가 명우의 얼굴을

보니 아침의 일이 새삼 다시 생각났기에 그녀는 당혹스러웠고 부끄러웠다.

"으,응. 먹어야지. 그래 천천히 꼭꼭 씹어 먹어라."

"엄마도 많이 드시고 언제나 건강하셔야죠. 옛말에도 있잖아요. 밥이 보약이다라고."

"후후....그래. 명우도 많이 먹고."

지수는 아들의 밝은 표정이 좋아 보이기에 살짝 웃으며 상념 때문에 멈췄던 수저를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지수와 명우는 할아버지의 병문안으로 과일 바구니를 사가지고 시댁으로 향하고 있었다.

지수와 명우에게는 아버지이자 남편이었던 이의 부재로 그다지 친밀하게 왕래하며

지내오지 않았던 시댁은 언제나 어려운 곳이였다. 더군다나 시골출신의 사람답게 상당히

할아버지는 엄했고 유교적인 사고가 강했던 사람이었다. 또한 지수와 명우 아버지의

결혼을 한때에는 반대했기 때문에 지수에게는 더욱 어려웠는지도 몰랐다.

할아버지댁에 가는 길은 그다지 험난하지는 않았지만 많은 시간을 잡아 먹었다.

시골에 살고 있는 할아버지댁까지는 대충 기차를 타고 내려서 다시 고속버스를

타야했기에 3시간정도의 시간이 걸렸다.

"오랜만에 기차를 타네요."

"그래, 오랜만이구나. 진짜로."

지수는 여태까지 항상 서점에 나갔다가 들어오기만을 반복했던 생활을 떠울리며

상당히 괜찮은 기분을 만끽하고 있었다. 진짜 오랜만에 느끼는 자유로움이라고 할까.

지수는 서울의 지저분한 대기를 벗어나 성큼 다가오는 지방의 깨끗한 공기를

폐속 깊숙히 마시며 시댁으로 내려가는 기차안을 즐겼다. 지수의 입가에는 밝은 미소가

오랜만에 떠올랐다.

명우는 일년에 두세번 타볼까하는 기차를 타고 할아버지댁으로 내려가는 길을 보며

상당히 즐거웠다. 그 역시 지수와 마찬가지로 바쁜 생활로 한번도 제대로된 자유라든지

시간을 가진적이 거의 없었던 것이였고 옆에는 밝은 미소를 띄고 있는 보기좋은

어머니가 있기에 좋았던 것이였다. 명우는 옆으로 고개를 돌려 자신의 어머니를 가만히

바라보며 싱긋 웃었다. 엄마의 모습이 너무도 귀여워 보였던 것이였다. 상쾌한 공기가

좋으신지 듬뿍 마실려고 하시는 행동이라든지 기분이 좋아 보이는 행동등이 그에게는

마냥 눈요기감을 선사했다. 그치만 이상했다.

'엄마가 귀여워 보인다라.....'

솔직히 귀여워 보인다라는 의미가 이렇게까지 쓰일줄은 몰랐다. 여태까지의 엄마는

항상 굳건하고 엄한 모습을 보였었다. 돌아가신 아버지 대신의 역활을 엄마 자신이

매꿀려고 했던 것이였다. 하지만 어제의 그런 엄마의 모습에서 명우는 한없이 보호하고픈

충동과 욕구를 느꼈고 자신의 품안에서 우는 엄마는 여태까지의 모습을 깨트렸었다.

그저 연약하고 가엾은 작은 몸체를 가진 여자였던 것이였다. 비록 엄마라고 칭하지만

그때만은 그런 생각이 들었다. 자신의 품속에 포옥 들어오는 그런 작은 체구의 여자.

명우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런 생각을 가진 자신이 이상하다고 생각되었고 엄마에게

왠지 죄스러움을 느꼈다. 명우는 자신의 쓸대없는 상념을 털어내며 옆에서 밝은 표정으로

있는 엄마를 부드럽게 쳐다보다가 손을 뻗어 지그시 엄마의 작은 손을 잡았다. 고왔던

손은 이제 거의 사라진 보드랍지만 연약하지 않는 손이였다.

지수는 명우의 손길을 느끼며 좋았던 기분이 배로 좋아지는 것을 느꼈다. 이러고 보니

꼭 죽은 남편과 같이 내려가던 기억이 곁쳐져 생각되어졌다.

'그래...옛날에도 남편과 이렇게 손을 잡고는 마냥 즐거워 했었지.....'

지수는 죽은 남편 생각이 떠오르자 좋았던 기분이 순간 가라앉으며 침울해졌고 명우의

손길이 느껴지던 손을 살며시 때어냈다. 남편이 죽을 당시만해도 남편을 생각하면

가슴이 찢어지듯이 아팠고 슬펐던게 이제는 그저 마음이 침울해지는 정도로만 끝날정도의

시간이 흘렀지만 지수에게는 언제나 남편의 일은 남을 것이였다. 추억으로든, 슬픔으로든.

명우는 자신이 잡았던 엄마의 손이 약간 느낌상 차가워지는 것 같더니 밝았던 표정이

우울해지고 자신의 손을 살며시 떨구어 내는게 이상했다. 평소 자주 잡지않았던 손

이지만 요 근래에는 서로의 손이 익숙해질 정도로 자주 잡았던 손이였었다. 그런데

엄마가 자신의 손을 거절한게 왠지 마음에 걸렸다.

'갑자기 무슨 생각이라도 떠오르셨나?'

그 의문은 곧 풀렸다. 명우는 알고 있었다. 저런 표정을 짓는 엄마는 대부분이 돌아가신

아버지를 떠올릴 때라는 것을. 화가났다. 엄마를 저렇게 만든 아버지에게. 명우는

입술을 꽉 깨물고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이제는 더 이상 아버지 생각을 나게 하고

싶지 않았다. 떠올려 봤자 항상 남는 것은 고통 뿐이었으니까.

"엄마....또 아버지 생각 하셨어요?"

지수는 흠찟 자신의 생각을 맞춘 명우의 소리에 놀랬다. 그리고는 자신이 지금 무슨

꼴을하고 있는지도 알았다. 이미 간 남편을 생각하며 우울해 하는  꼴이라니....한심스러 웠다.

'이제는 모습 조차 가물가물하건만.....'

14년의 세월은 지수에게 망각이라는 축복을 주었기에 지수는 쉽게 떨쳐버리고는 자신을

근심스럽게 그리고 왠지 모를 노기를 담은 시선으로 보는 명우의 얼굴을 보며 애써

밝은 미소를 지을려고 노력했다.

명우는 싫었다. 어렸을 때 수없이 보았던 엄마의 슬픈 얼굴이. 그리고 가끔씩 몰래몰래

보았던 울음이. 어제도 보았기에 더욱 그럴지도 몰랐다. 그러나 명우는 어쩔수가 없었다.

엄마에게 화를 낼수 있는 것도 아니였고 엄마의 침울한 얼굴을 보면 그럴 생각도 들지

않았다. 그저 걱정스러울 뿐이었다. 다행히 곧 엄마는 애쓰는 모습이 뚜렷했지만 그래도

밝게 미소지었기에 명우는 다시 한번 손을 뻗어 엄마의 손을 이번에는 꽈악 잡아주었다.

"엄마 그것 아세요?"

명우의 갑작스러운 말에 그녀는 방금 전까지의 생각은 잠시 뒤로 미루고 의아함을 담은

시선으로 명우를 보았다.

"응? 뭘?"

명우는 알수없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굿게 띄우고는 지수를 바라보며 가만히 그윽한

시선을 보냈다. 지수는 자신의 말에 대한 답은 하지 않고 조용히 자신을 정을 듬뿍

담고 보고있는 명우의 시선에 점차 시간이 지날수록 감당하기 힘들어짐을 느꼈다.

괜스레 가슴이 가빠지고 숨소리가 약간씩 거칠어 나갔다. 지수의 두눈동자도 역시

호흡과 같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명우의 시선은 아직까지도 너무나 뜨거워

보였다. 지수는 자신의 반응에 놀라며 곧 명우의 시선을 벗어나 눈을 아래로 내려

깔았고 그녀의 얼굴은 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부끄럽게 왜 저렇게 처다본데....아마 얼굴이 붉어있을 거야. 근데 내가

왜 이러지? 아들이 단지 나를 바랄 볼뿐인데...?'

지수는 다른 한손으로 자신의 뺨을 살짝 대었고 뺨에서 느껴지는 열기에 창피스러웠다.

그리고 자신의 상태에 대해 이상하게 생각했다. 얼마전만 해도 그렇지 않았던 자신의

모습이 낯설기만 했다.

"그만 그렇게 봐. 뭘 그리 뚜러지게 바라보니. 엄마 얼굴에 뭐가 묻었어?"

지수는 명우의 시선이 부담스러워 말을 다른쪽으로 흘렸지만 명우는 그저 계속 자신의

행동을 유지할 뿐이었다. 그리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의 입가에는 여전히 뜻있는

미소가 부드럽게 잡혀있었다.

"엄마는 참으로 예쁘세요. 제 엄마라서 하는 말이 아니에요. 그리고 엄마의 미소는

그런 엄마의 예쁜 얼굴을 더욱 예쁘게 만들어 준다는 것을 아세요? 모르셨죠.

그러니까 앞으로 우울한 얼굴 만들지 마세요. 저도 같이 슬퍼져요."

지수는 명우의 입에서 나온 평생 한번도 들어본적없는 말에 깜짝 놀랬다.

평소의 명우가 진중하며 성숙한 것을 알기에 이런 말을 할줄은 몰랐던 것이였다.

그러나 듣다보니 지수는 한없이 기쁨이 방금 전의 슬픔을 몰아내며 가슴 속 깊숙히

들어차는 것을 느낄수 있었다. 아들의 말이 그렇게 영향력이 있다는것에 놀랬다.

"......고맙구나....." 

지수는 아들의 낯부끄러운 소리에 기쁘면서도 창피했기에 고개를 숙이며 얼굴을

붉히고는 기어들어가는 소리로 살짝 명우에게 답해주었고 명우는 그런 엄마의 모습이

자신 또래의 소녀 처럼 산뜻하며 귀엽게 느껴져 더욱 진한 미소를 지었다.

"사실인데요. 그러니 웃으세요. 웃으면 오래 산다고도 하잖아요."

명우의 말에 지수는 이번에는 어색한 어거지 미소가 아닌 부드러운 진실된 미소를

명우를 향해 지어주었다. 지수는 감격스러웠다. 아들의 자신에 대한 세심한 마음과

정이 담긴 말에.

'어느새 저렇게 커가지고 이제는 이 늙은 엄마를 챙겨주고 아껴주는 구나.'

지수는 명우를 바라보며 명우의 어렸을 때의 모습이 생각났다. 어렸을 때의 그

귀엽고 활동적이던 아들의 모습이 눈에 선했다. 지수는 아들의 손을 꼭 잡았다.

그리고는 천천히 고개를 옆으로 숙이며 아들의 이제는 넓어진 어깨에 고개를

올리며 아들의 아침에 느꼈던 체취를 느끼고 싶어졌다. 그런 지수의 마음은

다시 오전의 햇살 처럼 푸근해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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