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자간의 금기 5부
"엄마 저왔어요."
이제는 익숙해졌다. 처음 시작한 날로부터 이주라는 시간이 흘렀다. 그정도의 시간은
새로운 뭔가를 받아들이고 익숙해 질만한 시간이었다.
지수는 언제나 변함 없을 것 같은 밝은 미소를 지어주며 명우를 반겼다.
"그래, 어서 오너라."
명우는 지수의 미소 속에서 푸근함을 느끼며 부드럽게 엄마를 바라보았다.
잠시 자신을 맞이해 주고는 다시 하던 일을 계속 하시는 엄마의 뒷 모습은 언제나
안타까워 보였다. 저렇게 작은 체구를 자신을 여태까지 키워오신게 신기하게 느껴졌다.
명우는 어느새 그런 지수를 보다못해 다가가 하던 일을 반 강제적으로 빼앗듯이 해
자신이 대신 하기 시작했다. 지수는 그런 아들의 성화를 대충 못이기는 척하며
물러나 명우를 지켜보았다. 대견스러웠다. 그리고 언제나 느끼는 거지만 이제 명우는
자신의 품에 언제나 있을 것 같았던 그런 애가 아니였다. 어느새 자라서 커진 덩치며
키며 그는 어른이 가져야 할 성장의 육체를 가지고 있었다.
그런 아들이 고마웠다. 지수는 명우의 넓은 등을 한번 미소로 보고는 의자에 앉아
오늘 하루 느껴진 피로를 감당하고 있었다.
"요즘 학교는 힘들지 않니?"
그러다가 문득 명우가 고등학생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걱정되었다.
다른 부모들은 아들이 고등학생이 되었다고 학원이내 과외내 하며 이리저리
자식들 걱정으로 뭔가 할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주는데 자신은 엄마면서 오히려
아들 도움을 받으며 서점을 운영하겨 아들의 시간을 빼았고 있었다. 못마땅했다.
그러나 이주동안 느낀 것은 아들이 마중오는게 그렇게 기쁠수가 없다는 것이였다.
하루의 마지막을 아들의 얼굴을 보며 끝낸다는게 의미있었고 그 험한 버스 안에서
아들이 자신을 보호해주고 있다는게 그렇게 안심될수 없었다. 마치 아들이 그래주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사람같이 지수는 빠르게 익숙해지는 것에 의아해 했다.
"물론이죠. 성적표 보셨잖아요. 그다지 나쁘지 않았잖아요."
그랬다. 명우의 성적은 상위권에 있었다. 하루의 시간을 바쁘게 쪼개가며 일하기도
힘든 아들이 대견스럽게 상위권에 있다는 것이였다. 다른 애들 처럼 한번의
과외도 학원도 다닌적이 없었던 명우였다. 그러했기에 또한 아쉬웠다. 만약
학원이라든지 과외를 배우게 했으면 더 잘하지 않을까라는 기대감이랄까. 지수는
그런 생각들을 털며 지금의 생활에 만족했다. 아무 문제없이 커주는 아들과
힘들기는 하지만 커다란 일만 없으면 사는데 지장없는 생활.
"미안하구나. 남들 처럼 해주시 못해서."
그러다가 지수는 자신도 모르게 기운없는 말을 해버리고 말았다.
명우는 깜짝 놀랬다. 엄마가 저런 소리를 하신게 처음이였고 자신이 원했던 답도
아니였으니까. 그는 하던 일을 멈추고는 지수를 가만히 걱정스러운 눈으로 쳐다보았다.
엄마의 모습이 너무도 처량하게 다가왔다. 문득 저 모습에 명우는 달래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
걱정마세요. 라는 말을 삼키며 명우는 어느새 지수 앞에 가만히 무릎 굽혀 앉으며 살며시
지수를 안아주었다. 너무도 안타까웠다. 그는 한번도 엄마의 저런 모습을 생각한적도
없었으며 한번도 엄마를 탓해 본적도 없었다. 언제나 엄마만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만 했다.
그런 자신을 향해 저런 모습을 보이시는 엄마의 마음을 이해할수 있었다. 그리고
너무도 감사했다. 이런 엄마를 둘수 있었던 세상에. 그는 고달퍼도 좋다고 생각되었다.
엄마만 행복하면 될 거라고 생각했다.
지수는 서글프며 원망스러웠던 마음이 서서히 아들의 품에서 풀려나가는 것을 느꼈다.
이제는 다 커서 자신을 이렇게 감싸줄수 있는 어엿한 성인이 되었다는게 신기했다.
그리고 아들의 품이 참으로 따스하다고 느꼈다. 마치....이미 세상을 떠난 남편과 같이
넓고 단단했다.
".......미안하구나. 미안해......"
"아니에요. 그런 말씀 하실 필요없어요. 저는 엄마가 있다는 것만해도 행복하고 기뻐요.
저는 그런 것 바라지 않아요. 오직 엄마가 즐겁게 행복하게 사시기만을 바래요."
명우의 진실이 담긴 말에 지수는 하늘을 날듯한 행복감을 느꼈다. 아들이 한번도 이런
식으로 말을 해준적이 없었다. 그리고 뿌듯했다. 이런 아들을 자신이 가지고 있다는
것이 너무도 기뻤다. 나가서 지나가는 사람을 잡고 마구 자랑하고 싶었다.
지수는 자신을 안아주고 있는 명우를 살짝 고개 들어 애틋한 시선으로 바라보다가
두손을 명우의 얼굴에 살풋시 가져가 사랑을 담아 만졌다. 어렸을 때 알았던 그
앳되었던 얼굴은 어디가고 굵어진 선과 투박한 면들만이 있었다. 그래도 좋았다.
자신의 아들이였다.
"고맙구나....."
지수는 눈가에 물기가 고이는 것을 시선의 굴절로 알수가 있었다. 감격스러웠다.
또르륵 결국 고이던 눈물은 지수의 잔주름이 잔잔하게 잡힌 하얀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명우는 그런 모습에 깜짝 놀라며 얼른 엄마를 안고있던 팔을 풀어 닦아 줄려고 했지만
지수가 명우의 팔을 잡고 풀지않았기에 오히려 더욱 꽈악 엄마를 자신의 품속
깊숙히 안아주었다. 마지막 눈물이 빨리 흘러나오기 바라듯이. 엄마의 부드러운
몸이 느껴졌다. 비록 옷으로 가려져 있지만 알수있었다. 너무도 약한 엄마의 몸이였다.
바람이 불면 날릴 것 같고 툭 치면 부셔질 것 같은 엄마였다.
"엄마 걱정마세요. 저를 믿어주세요. 저는 항상 엄마 곁에 있을게요."
명우는 평소에 담아두고 있었던 말을 꺼냈다. 안그러면 엄마는 부셔질 것 같았다.
그리고 눈을 엄마의 고운 얼굴에 맞추었다.
지수는 얼굴에서 느껴지는 아들의 부드럽고 그윽한 시선을 받으며 약간 얼굴을
붉혔다. 숙여지는 고개 사이로 지수는 아들의 말을 들으며 행복했다. 아들의
사랑이 무한하게 느껴졌다. 자신이 울었다는게 평소같으면 아들에게 보일 꼴이
아니라며 부끄러워 했겠지만 지금은 오히려 보여주고 싶었다. 자신이 얼마큼
명우를 생각하고 있는지 알리고 싶었다. 지수는 내렸던 고개를 들어 명우의
시선을 받았다. 너무도 그윽해 빠져들 것만 같은 아들의 애틋한 시선은 지수에게
아들에 대한 사랑을 더욱 깊게 만들었다.
"그리고 저에 대해서 너무 많이 신경쓰실 필요없어요. 제가 어린애도 아니잖아요.
이제는 오히려 제가 엄마를 모시고 살아가야 할 나이인데요."
명우는 엄마를 안았던 팔을 은근슬쩍 풀어 엄마의 얼굴에 작은 슬픈 자국을 남기고
있는 것을 엄지 손가락으로 지그시 닦아주었고 나머지 한손으로는 토닥토닥 어렸을 때
엄마가 자신에게 해주듯이 달래주었다. 명우가 있다는 것을 각인시키듯이.
"그래.....그래....."
지수는 멍하니 말을 대풀이 할뿐이었다. 할말이 없었다. 모든 것은 이미 느낄수가
있었다. 아들의 진실된 말과 행동으로.
그녀에게는 하나뿐인 아들이 있었다.
그 무엇하고도 바꿀수 없는 하나뿐인 아들인 것이였다. 자신의 기대이자 희망인.
지수는 명우의 품에 잠시동안 더 안겨있고 싶었다. 오랜만에 자신을 안아주는 존재를
만나서 일까 아니면 여태까지 외로웠기에 그럴까? 모를 일이었다. 하지만 단 한가지는
알수 있었다. 명우의 품은 그 어떤 것보다도 따스했고 푸근했다는 것.
명우는 조용히 엄마의 등을 토닥여주며 달래주었다. 자신 때문에 흘린 눈물의 값어치를
그는 알고 있었다. 자신을 위하는 마음을 알고 있었다. 지금 하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였다.
자신이 아플 때나 외로울 때 항상 엄마가 곁에 있어주었다. 지금은 자신이 그럴 때 같다.
지수는 명우의 어깨에 고개를 대며 얌전히 있었고 명우는 지수를 안고 조용히 있었다.
두 사람의 숨소리만이 아무도 없는 늦은 시간의 서점안에서 들려왔을 뿐이었다.
그러나 곧 그들은 떨어질수 밖에 없었다.
"딸랑."
문에 달아놓은 작은 방울 소리가 울리며 한 사람이 들어왔다.
"저...아직 문 닫지 않은 거죠?"
작은 체구의 여자였다. 앳된 얼굴이 귀엽고 상큼해 보이는 개성을 가진 여자였다.
"예, 물론이죠."
명우는 얼른 지수를 안고있던 손을 풀고 자리에서 일어나며 친절히 손님을 맞이했고,
지수는 얼른 눈가를 훔치며 약간 얼굴을 붉혔다. 약간의 부끄러움이 일어난 것이였다.
알수없는 분위기가 잠시 돌았던 서점은 왠지 훈훈한 공기가 감도는 것 같았다.
'....내가 왜 그랬지?'
지수는 자신의 행동에 대한 의문이 생겼다. 갑자기 운 것 하며 아들의 팔을 붙들고
떨어지지 않게 한 것 하며. 아마도 외로워서 일거라고 생각되었다. 그리고 아들의
그 지극한 사랑을 알수 있었기에 그렇다고 생각했다. 누구라도 그런 진심이 담긴
소리를 들으며 다 감동할거라고.
혼자 명우를 키우며 살아온게 14년.
남편을 여의고 명우를 그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으며 여자혼자 바쁘게 움직이며
키워 왔던 것이였다. 남편을 여읜 슬픔도 달랠새 없이. 그래서 일까. 듬직하게
큰 명우의 가슴에 안기며 느꼈던 알수없는 그 포근함은 지수의 외로움과 쌓였던
슬픔도 사라지게 만드는 힘이 있었던 것 같았다. 그치만 왜? 알수없는 일이였다.
지수는 붉어진 눈시울로 방금 전의 일을 생각하며 상냥하게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이 한 사람의 역활을 해내는 명우의 뒷 모습을 가만히 주시했다.
'명우가 아빠의 만한가? 아니야, 더 큰 거 같아.'
이제는 떠올리려 해도 가물가물 떠오를까 말까하는 명우 아빠의 체격은 명우와
겹쳐지며 서서히 명우의 체격으로 변해갔다. 알수없는 명우 아빠의 체격은 명우
같았다. 넓은 뒷 모습은 언제나 믿음직 했고 다부진 덩치는 듬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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