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 있었어?" 미세하게 굳어지는 표정으로 가현이 정진에게 물었다.
"응 알고 있었지. 안방에 계시나? 엄마." 엄마를 부르며 안방 문을 열었다.
"아이구 우리 새끼 왔어? 고생했네 고생했어. 저녁먹자 오늘 네가 좋아하는 밑반찬 바리바리 싸왔다."
"정말? 우리 엄마 반찬이 세상 최곤데, 오늘 저녁 진짜 맛있겠네." 한 것 올라간 목소리로 정진과 시어머니가 대화를 나눴고 둘의 대화를 부엌에서 가현은 들으며 저녁 준비를 끝내갔다.
"오랜만에 엄마 반찬 먹네." 탁자에 모여 앉아 저녁을 먹기 시작했다. 시어머니는 애지중지하는 아들에게 반찬을 떠 올려주기도 하고 좋아하는 반찬을 앞으로 가져다 주었다.
"많이 먹어라 정진아, 얼굴 좀 봐. 얼마나 못 얻어 먹었으면 얼굴이 이러니."
"아냐, 엄마. 가현이가 잘 해줘. 맛 있는 것도 많이 해주고."
"팔불출아, 거울보고 네 얼굴이 어떤지 봐라. 맛 있는건 얼어죽을."
가현은 대화에 낄 수 없었다. 마치 자신은 그 자리에 존재하지 않는냥 둘이 대화를 나누는 것 같았다.
"가현아 이거 먹어봐. 우리 엄마가 반찬솜씨는 끝내주잖아." 정진이 반찬을 집어 가현의 입으로 가져갔다.
가현은 자기도 모르게 시어머니의 얼굴을 힐끔 쳐다보았다. 표정이 굳어져 있음이 명확히 보였다.
"아니야, 정진씨 먹어. 난 잘 먹고 있어."
"왜, 먹기 싫으니?" 시어머니가 말 했다.
"아니에요. 어머니 먹기 싫긴요." 정진의 젓가락에 걸린 음식을 받아 먹었다.
"맛있지? 맛있지?"
"응. 맛있어." 가현은 돌을 씹는지 음식을 씹는지 아무 맛도 느낄 수 없었다. 음식이 목구녕부터 걸려 안 넘어가는 느낌이었다. 식사를 마치고 가현은 설겆이를 시작했고 시어머니와 정진은 소파에 앉아 TV를 보기 시작했다. 뭐가 그렇게 재밌는지 그 둘은 박수까지 쳐가며 깔깔거리며 TV를 보았다. 설겆이를 마치고 과일을 깍아 소파 앞에 있는 탁자 위에 올려 놓았다.
"애미야, 웬만하면 일 그만두지 말아라."
"엄마? 그게 무슨 말이야. 가현이 일 그만두기로 했어. 우리가 알아서 할게."
"으이그, 이 칠푼아 넌 가만히 있어. 너네가 지금 외벌이 할 때니? 너 혼자 벌어서 언제 돈 모아서 더 큰 집 이사가고 애 키울 준비하니."
"..." 가현은 말을 할 수 없었다.
"어디가서 더 큰 돈 벌어 올거 아니면 꾸준히 다녀라. 그 뭐 힘든 일 한다고 카페에서 커피나 만드는 일이 뭐가 힘들다고. 그거 하나 못 버티면서 무슨 다른 일은 하겠니? 난 애 셋 키우면서 혼자서 일 다했다. 그래도 힘든거 모르고 자식 크는 맛에 일했어. 너도 엄마가 될 사람이고 이젠 며느리이자 아내인데. 너만 생각하면 안돼."
"아..엄마. 그만해. 우리가 알아서 한다니까 정말." 정진이 자신의 엄마를 막으려 했지만 택도 없는 일이었다. 정진의 말은 못 들었다는 듯 말을 이어가는 시어머니였다.
"일 계속하는 걸로 하고, 다른 일 생길 때까지나 아이가 생길 때까지는 계속 다녀라. 알겠니?
"..." 대답을 못하는 가현이었다.
"왜? 일하기 싫어? 그렇게 꼭 집에서 남편 등골 빼 먹으면서 집에서 퍼질러져 있어야 겠니?"
"아니에요. 어머니."
"그래, 그럼 일 계속 하는 걸로 알고 있으마."
"아..엄마, 참.." 정진은 곤란한 표정을 지었지만 가현에게 일을 안해도 좋다는 말을 하지는 않았다.
그날 밤 안방을 차지한 건 시어머니였다. 정진과 가현은 거실에 이불을 펴고 누웠다.
"아까, 엄마가 한 말 신경쓰지마. 일하기 싫으면 안해도 돼."
"그래도 어떻게 그래. 어머니 저렇게까지 말씀하시는데."
"아니야, 가현이 하고 싶은 대로 해. 일 하고 싶으면 하고 아니면 안 해도 돼."
"정진씨는 어떻게 생각해? 정말로? 내가 일 그만둬도 괜찮아?"
"그럼 난 괜찮지."
"근데 내가 안 벌면 돈이 조금 빠듯하잖아." 가현은 퇴직을 정진이 허락해준 것이 고마웠고 그 결정 변치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그거야 그렇긴 하지. 그래도 가현이가 힘들면..."
"그래도 내가 버는게 낫긴 하지.." 정진의 눈을 보며 가현이 말했다.
"그거야 그렇지. 사실 엄마 말대로 카페 일이 그렇게 힘든 것도 아니긴 하고.."
"후." 정진의 애매모호하고 우유부단한 말투에 가현은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안방에 있는 시어머니가 있기에 짜증을 내고 싸울 수가 없었다.
"아니, 가현이 하고 싶은 대로 해, 난 정말 괜찮아. 일을 해도 좋고 안 해도 좋고. 그냥 벌면 좋은거고 아니면 그냥 줄여쓰면 돼."
"알았어. 그렇게 알고 있을게." 가현은 차갑게 말하며 등을 돌렸다.
"가현아. 화났어?" 어깨를 만지며 정진이 다가왔다.
"아니야. 나 잘래. 당신도 빨리 자 일가야지." 가현은 정진과 조차도 말을 나누고 싶지 않았다. 빨리 내일이 오고 시어머니도 정진도 눈 앞에서 사라졌으면 좋겠다는 생각만 들 뿐이었다.
다음 날 아침 아침밥을 다 챙겨먹은 시어머니와 정진을 가현이 문 앞에서 마중했다.
"다녀 올께 가현아." 가현의 썩어가는 마음은 알지도 못 한채 실실 웃으며 인사하는 정진이었다.
"오늘, 당장가서 니네 사장한테 말해라 일 못 그만 둔다고." 끝까지 쌀살 맞은 태도로 일관하는 시어머니었다.
"네, 어머니. 조심히 들어가세요." 가현은 고개 숙여 시어머니에게 인사했다.
설거지를 하며 나오려는 눈물을 참아냈다. 가현은 최대한 신경쓰지 않고 아무 것도 생각하지 않으려 애썼다. 샤워를 하기전 무덤덤하게 임신테스트기를 사용했고 샤워를 마치고 아무 변화없는 테스트기를 확인했다. 카페에 도착해 문을 열고 평소처럼 장사를 시작할 준비를 마쳤다. 오늘도 승도는 얼굴을 비추지 않을 것 같았다. 시어머니의 마지막 말을 떠 올리며 휴대폰을 만지작 거렸다. 모든게 예전으로 돌아 갈 수 있었다고 믿었던 가현이었다. 어제까지만 하더라도 모든걸 만회 했고 어느정도는 홀가분한 기분도 느꼈던 가현이었다. 누군가, 특히 남편 정진이 알면 절대 용서하지 않을 추잡한 실수 였지만, 자신이 한 실수를 만회할 기회를 만들었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단 하루만에 자신의 실수를 만회하려던 노력이 물거품이 되어 날아가 버렸다. 시어머니만 아니었다면, 남편 정진이 조금만 더 자신을 위해 강하게 항변해 줬다면 모든게 이전 처럼 돌아 갈 수 있었을 거라는 생각을 떨쳐 낼 수 없었다.
휴대폰을 만지적 거리며 한참을 망설이던 가현의 손이 결심을 했다는 듯 문자를 치기 시작했다.
"사장님, 드릴 말씀이 있는데 오늘 시간 괜찮으신가요?"
문자를 보내자 마자 어떻게 자신이 한 말을 번복해야 될지, 이 난감한 상황을 어떻게 헤쳐나가야 할 지 더 고민되기 시작했다. 얼마 안있어 답장이 왔다.
"네. 조금 있다 갈게요."
가현은 간간히 오는 손님들을 상대하며 승도를 기다렸다. 승도가 도착했고 카운터 안으로 들어왔다.
"할 말이 뭔가요, 가현씨?" 의아한 표정으로 승도가 물어왔다.
"아...그게..."
"말씀하기 곤란하시면 사무실에서 말씀하세요." 카페 안에는 얼마 안되는 사람들이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승도와 가현은 사무실겸 창고로 쓰는 곳으로 들어갔다.
"편하게 말씀하세요." 승도는 다정다감한 말투였다.
"다른게 아니라 제가 계속 일을 해야 될 것 같아서요." 가현이 어렵게 입을 때었다.
"정말요?" 놀란 승도가 되 물었다.
"네. 조금 사정이 있어서요. 일을 계속 할 수 있을까 해서요. 죄송해요. 갑자기 말을 바꿔서. 안 된다고 하셔도 어쩔 수 없을 것 같아요."
울컥해 오는 감정을 억누르며 가현은 간신히 준비한 말들을 꺼내놓고 있었다.
"당연히 저야 좋죠! 가현씨만 좋다면 저는 계속 일 해줬으면 좋겠어요." 승도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네. 감사해요. 사장님." 겪지 않아도 될 상황을 의지와는 상관없이 겪어야 함에 올라오는 서럽고 억울했지만 가현은 감정들을 억눌러야만 했다.
"고맙긴요. 제가 고맙죠. 가현씨처럼 깔끔하고 성실한 사람 구하기 힘들어요. 게다가 가현씨도 아시겠지만, 가현씨 오고나서 매출도 올랐잖아요. 어디가서 가현씨 같은 분 또 못 구해요. 전 정말 대환영이에요. 제가 감사해요 정말. 어려운 결정일텐데, 무슨 사정인지는 모르겠지만 저는 쌍수를 들고 환영 합니다. 하하." 굳은 가현의 표정을 보며 승도가 말했다.
"무슨 일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우리 힘내요, 가현씨. 가현씨만큼 잘 해주는 사람 구하기 힘들어요. 가현씨만큼 믿음 가는 사람, 저는 여태 본 적 없어요. 카페에 꼭 필요한 사람이에요 그리고 저한테도."
가현의 눈에서 눈물이 떨어졌다. 억지로 참아온 감정이 복받쳐 올랐다. 눌러져있던 서운함과 억울함이 복받쳐 올라 더 이상 누를수가 없었다. 참으려 했지만 눈물이 흘렀고 어깨가 들썩 거렸다. 크게 걱정했던 승도의 반응이 되려 자신을 환영해주고 칭찬을 넘어 필요한 사람이라고 인정까지 해주니 안도감이 들고 긴장했던 마음도 풀렸기 때문이다. 승도의 칭찬과 응원에 어제 오늘 쌓인 응어리가 풀려 나가는 듯 했다. 마치 생판 남인 승도만이 자신의 편 같았다.
"왜 그래요. 가현씨 왜 울어요?" 승도가 당황해 하며 물었다.
"흐윽.아..아니..흑..에요..아.무..흑..." 울음을 멈추려 했지만 더 많은 눈물이 떨어질 뿐이었다.
그런 가현의 얼굴을 자신의 가슴에 대게 끔 어깨를 감싸 조심스레 끌어 당겼다. 가현은 울며 이전처럼 승도의 품에 얼굴을 묻고 서럽게 울었다.
"가현씨 울보네요. 벌써 제 앞에서 두 번이나 울었어요.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힘든 일 있으면 저한테 털어 놓으세요. 제가 응원도 해주고 위로도 해줄게요. 제가 고민 이런거 잘 들어주거든요."
남편에게서는 느낄 수 없는 다정함과 어른스러움이었다. 참으려 했던 울음이 더욱 터져나왔다. 원없이 울겠다는 사람처럼 가현은 승도의 가슴에 기대 울었다. 승도는 저번처럼 가현의 어깨를 토닥여주고 있었다. 가현의 울음소리가 작아질 때 즘 밖에서 사람을 찾는 소리가 들렸다.
"저, 가현씨 밖에 손님 왔나봐요. 제가 나가 볼테니까. 금방 올게요. 마음 추스리고 계세요. 여기 앉아 있어요."
컴퓨터 책상의 의자를 빼주고는 승도는 밖으로 나갔다.
가현은 승도가 빼준 의자에 앉아 훌쩍거리며 마음을 진정시켰다. 울음이 그쳐가자 창피한 생각이 들었고 괜히 또 승도에게 오해하게 끔 한건 아닌지 걱정이 들었다. 승도와 그런 일이 있었고 그 문제로 일까지 그만두려 했던 자신이 또 승도의 품에 안겨 울었다는 것이 부끄럽고 죄책감이 몰려왔다. 감정을 삭히며 사무실에서 빨리 나가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의자에서 일어나려고 하자 승도가 컵을 들고 들어왔다.
"이거 마셔요. 따뜻한 홍차에요. 레몬도 넣었어요. 이거 마시고 조금 쉬어요. 제가 밖에 보고 있을게요. 손님이 더 있네요."
책상 위에 홍차를 올려두고 승도는 밖으로 나갔다. 가현은 이상한 미안함을 승도에게 느꼈다. 승도가 자신의 행동을 오해하고 저번과 같은 일을 기대 했을 수도 있다고 예상한 것에 미안함 이었다. 본인을 진심으로 위로해주려던 사람에게 흑심을 품게한 건 아닌가 의심 한 것 같아 한 자신이 부끄러웠다. 가현은 승도가 가져다 준 홍차를 마셨다. 따뜻한 홍차가 목을 따라 가슴을 타고 흘렀다. 마음도 편안해지고 따뜻해지는 기분이 드는 가현이었다.
가현이 승도의 품에 운 뒤로 이 주의 시간이 흘렀다. 눈에는 보이지 않는 변화들이 조금 생겼지만 겉으로 보기에는 크게 달라진 것이 없었다. 시어머니가 돌아간 후 주말동안 가현은 정진을 냉대했고, 정진은 그런 가현에게 미안하다는 말로 죽는 시늉까지 해가며 용서를 빌었다. 시어머니는 가현이 다시 일하게 됐다는 것을 알면서도 칭찬 한 마디 없이 자기 아들 잘 챙기고 빨리 손주 보여 달라는 채근만 다시 할 뿐이었다. 가현이 다시 일하기로 결정한 날 후로도 승도는 가현이 일하는 시간에는 얼굴을 잘 비추지 않았다. 가끔 정말 필요 할 때만 들려서는 짧은 인사나 실없는 농담만 던지고 사라졌다.
가현에게 나타난 직접적인 변화는 카페를 이전보다 더 편하게 여겼고 일에 재미를 더 붙여 나가고 있다는 것 이었다. 승도와 마주치는 시간이 짧기는 했지만 걱정했던 것보다는 마음이 크게 불편하지도 않았다. 되려 불편하지 말라고 알아서 배려차원에서 자리를 비워주는 승도가 고맙기까지 했다. 그리고
가장 큰 변화는 남편 정진과 관계를 맺은 후에는 자위를 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몇 번 되지는 않지만 가현에게는 큰변화였다. 씻을 때 외에는 자신의 음부를 직접 만질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가현이었다. 남편이 잠이 든 후 샤워를 하며 자신의 클리토리스를 직접 만졌다. 클리토리스를 스스로 돌리며 승도가 안겨주었던 쾌락을 다시 갈구했다. 처음에는 쉽지 않았다. 당신의 기억을 떠 올리며 직접 만져 보았지만 잘 되지 않았다. 두 번째 자위에서야 클리토리스로 오르가즘을 느낄 수 있었다. 남편에게는 비밀로 쾌락을 느끼고 싶어 한다는 죄책감과 자위가 끝난 후 돌아오는 공허함이나 자괴감 같은 것이 남았다. 그만둬야 한다고 스스로를 설득하려 했다. 그럼에도 남편과 관계가 끝나고 샤워를 하게 되면 여지없이 자신의 음부에는 손이 올려져 있었다. 남편과의 관계가 불만족이었던 것은 아니다. 차마, 남편에게는 말하지 못 할 부족한 부분을 채워야만 했다.
여느 평일처럼 카페에는 몇 안되는 손님들이 앉아 있었다. 햇볕은 유리문을 통해 들어오고 있었고 초가을의 날씨는 카페에 안에 있는 가현의 기분까지도 기분좋게 만들어 주었다. 가현이 손님들이 남기고 흔적들을 치우고 잔을 모아 카운터로 돌아오고 있던 차에 한 명의 손님이 카페로 들어왔다.
늘씬한 외모에 선글라스를 낀 여성이었다. 키는 가현보다 조금 컸고 흰색 바지가 운동을 한 듯한 매끈한 다리를 잘 들어 내주고 있었다. 옷 또한 명품으로 치장되어 있었지만 과시하는 듯한 촌스러움은 없었다. 선글라스에 눈이 가려졌지만 어디서나 흔하게 보기 힘들 것 같은 미모는 가려지지 않았다.
카운터로 들어가 잔을 내려 놓은 가현이 웃으며 인사를 했다.
"어서오세요.주문 하시겠어요?"
"오빠, 나왔어요?" 도도한 말투였다.
"네?"
"오빠, 나왔냐고요." 조금 더 커진 목소리였다.
"죄송하지만, 무슨 말씀이신지..."
"여기 사장님, 승도 오빠 말이에요." 짜증이 섞여 들어있었다.
"아. 사장님이요. 사장님, 아직 안 오셨는데요."
"그래요? 언제 나와요?"
"글쎄요. 저도 사장님 오시는 시간은 잘 몰라서."
"아...대체 전화번호는 왜 바꾼거야." 들고 있던 휴대폰을 보며 짜증을 부리는 여자였다.
여자는 가현은 안중에도 없다는 듯이 돌아서며 카페 밖으로 나갔다. 무시를 당한 것 같은 기분에 가현은 기가찼다. 이상한 손님이 몇 번 있긴 했지만 이 정도는 아니였다. 자존심 긁힌 듯해 마음이 상했다. 하지만 한 편으로는 이 여자가 누구인지 궁금증이 생겨났다. 다른 손님들이 들어오기 시작했고 가현은 다시 바쁘게 일을 시작했다. 지윤이 오고나서 인수인계를 하며 아까 승도를 찾아 왔던 여자가 있었다고 전해주었다.
가현은 사무실에서 자신의 짐을 챙겨 나왔다.
"언니 수고하셨어요. 내일 뵈요."
"응. 그래, 지윤아. 고생하고. 내일 봐."
"네, 언니 들어가세요."
문으로 몸을 돌렸던 가현이 잠시 망설이다 지윤에게 물었다.
"혹시, 사장님 여자친구 생겼나?"
"네? 그 여자요? 왜요 여자친구 같았어요?"
"아니. 그냥 여자친구인가 해서."
"글쎄요, 난 들은게 없는데... 하긴, 사장님이 나이는 좀 있어도, 저 정도면 언제 여자친구 생겨도 이상하지 않죠. 사장님이 조금만 더 어렸어도 내가 대쉬했겠네. 하하"
"그런가. 하하. 그래, 아무튼 내일 봐 지윤아."
퇴근한 정진과 저녁을 먹으면서도, 웃으며 정진과 이야기를 나눌 때도, 잠자리에 들어 잠이 들기 전 까지 낮에 찾아왔던 그 여자가 가현의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남편을 출근시키고 카페에서 준비를 여느때 같이 했지만 평소와는 다르게 가현은 승도가 오기를 은근히 기대하고 있었다. 어제는 나타나지 않았으니 오늘은 올 법도 했다. 바빴던 점심시간이 지나고 승도가 가게물품을 들고 들어왔다.
"안녕하세요, 가현씨." 승도가 물건을 들고 사무실에 들어갔다.
"안녕하세요, 사장님."
사무실에서 나오며 승도가 가현에게 물었다.
"오늘 별일 없죠? 점심 때 많이 바빴어요?" 승도가 미소 띈 얼굴로 물었다.
"아니요. 할 만 했어요."
"다행이네요. 가현씨가 고생이 많아요. 힘들면 언제든지 말해요. 제가 바쁠 땐 나올게요." 이미 승도가 몇 번이고 반복 했던 말들이었지만 가현이 승도에게 도움을 요청한 적은 없었다.
"혼자서도 할 만해요." 가현이 밝은 표정으로 대답했다.
"알겠어요. 그럼 전 또 이만 가볼게요. 나중에 뵈요."
"네."
승도가 카운터를 나와 문쪽으로 걸어갔다.
"저.. 사장님."
"네?" 승도가 등을 돌려 가현을 쳐다 보았다.
"어제 지윤이 한테 말씀 들으셨어요? 지인분 왔다 가셨는데."
"아, 네. 들었어요."
"만나셨어요? 급하신 것 같던데 그 분." 억지 미소를 짓는 가현이었다.
"아니요. 신경쓰지 않아도 돼요. 그럼 가볼게요" 승도는 무미건조하게 대답하고는 카페를 빠져 나갔다.
누구냐고 묻고 싶었지만 도를 넘는 질문이었기에 차마 가현은 묻지 못 했다. 웬지 모르게 승도의 태도에도 야속함을 느꼈다.
그 여자가 다시 카페에 찾아 온건 또 다른 주말을 보내고 맞이한 평일 아침이었다.
발을 옮길 때마다 내는 또각 소리가 귀에 거슬렸다. 승도를 찾아 왔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래도 혹시 몰라 가현은 평소와 같이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