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은 착한 사람이었다. 결혼 전에도 결혼 후에도 말 다툼을 갖기도 했고 연애 때는 헤어져 보기도 했었다. 하지만 통상적으로 남편이 먼저 자신을 낮췄고 연애 때부터 대부분을 가현에게 맞춰주고 자상하게 해주려 노력했다. 서로 맞춰주고 받아주며 연애를 했고 가현은 남편 정진의 자상하고 꾸준한 모습에 사랑을 느끼고 결혼까지 결심하게 됐다. 가현과 정진은 큰무리 없이 결혼을 했고 두 사람의 사소한 다툼과 갈등을 빼면 큰문제 없는 결혼생활 이었다. 하지만 최근들어 가현과 정진에게 갈등이 깊어지는 문제가 있었다. 난임클리닉을 다니고 있지만 난임의 이유가 아무 것도 없었다.
결혼한 후부터 피임을 하지 않았지만 아이가 생기지 않았다. 처음엔 언젠가는 생기겠지라는 막연함만이 있었을 뿐 문제가 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 했다. 하지만 피임을 하지 않은지 1년이 지나가고 정진의 어머니가 언질을 주기 시작했다. 어째서 소식이 없는지 둘의 금슬이 나쁘진 않은지 직설적이진 않았지만 손주를 기다리고 있다는 압박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처음엔 가현도 그러려니 했다 생기겠지, 그저 시어머니의 채근 정도로만 넘겨 버리는 식이었다.
채근이 하루 이틀이 아닌 한 두달이 넘어가자 스트레스가 알게 모르게 쌓여갔고 쌓인 스트레스는 가슴에 쌓여있던 가현의 스트레스는 남편 정진에게 터져나가는 일이 일상화 됐다. 주기가 오면 매번 관계를 맺었지만 소식이 없었다. 시어머니의 보챔을 넘어 가현도 걱정되기 시작됐고 정진과 상의해 주말에 클리닉을 찾아 보았다. 처음 병원을 나올 땐 정진과 가현은 웃으며 나올 수 있었다. 정진의 정자수가 평균보다 낮은 수치기는 하지만 임신에는 전혀 문제가 없는 정도였고 가현에게는 임신이 불가능 할 이유가 없다는 소견을 받았기 때문이다.
신체적으론 임신이 되지 않을 이유가 없기에 그저 지금처럼 관계를 주기적으로 맺거나 관계 횟수를 늘리면 된다는 의견을 받았다. 다시는 클리닉을 찾을 필요가 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이 둘이 웃으며 병원을 나와 오붓이 점심을 먹고 집에 돌아와 관계를 맺은 것이 반년 전이었다. 그리고 여전히 아이의 소식은 없었고 클리닉만 옮겨다닌게 몇 번, 최근에야 한 병원을 꾸준히 다니고 있었다. 결혼 후 피임을 하지 않은지 2년이 다 됐다.
가현은 알몸으로 침대 이불안에 누워 달력을 보고 있었다. 가임기에 들어서 있었다. 어제도 관계를 맺었고 오늘도 관계를 맺어야 한다. 남편과의 관계를 쾌락 자체로만 즐겨본 적은 없지만 그렇다고 관계에 불만이 있던 것도 아니었다. 육체적 쾌락보다는 두 사람의 사랑을 확인하는 순간이라는 의미가 더 컸고 정신적 안도감과 따뜻함에 만족을 더 느끼는 편이었다. 하지만 난임클리닉을 다니기 시작 훈 후로는 관계 자체가 스트레스가 되기 시작했다. 정진이 피곤한 내색이라도 하면 가현은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자신은 아이를 갖기 위해 노력하는데 정진이 도와주지 않는다는 느낌에 서운함이 들기 시작했고, 서운함이 섭섭함으로 섭섭함이 짜증으로 번져나가기 시작한 것이다. 정진 또한 피곤하거나 하고 싶지 않은 내색을 잘 숨기려 했지만 묻어나는 피곤함과 자신도 모르게 나오는 짜증은 어찌 할 바가 없었다.
웃는 표정으로 남편이 머리를 말리며 방안으로 들어 왔다. 팬티만 입은채 머리를 말리는 정진이 침대로 들어오려 했다.
"머리 드라이기로 다 말리고 와." 가현이 말했다.
침대에 무릎을 걸쳤던 정진은 움찔하며 가현의 화장대로 걸어가 드라이기를 켰다. 적막했던 방에 드라이기가 켜지며 굉음을 냈다. 정진과 가현의 귀를 때렸고 둘의 마음에 알 수 없는 짜증이 일었다.
머리를 다 말린 정진이 말 했다.
"불 끌께"
스위치를 눌러 불을 끈 정진이 가현의 옆으로 들어와 누웠다. 둘은 연애 때부터 단 한 번도 불을키고 관계를 맺은 적이 없었다.
가현의 옆에 누운 정진은 가현에게 입맞춤 하고 가슴을 만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안 있어 가현의 팬티로 손을 넣었고 클리토리스를 손가락으로 자극하기 시작했다. 말라있던 가현의 그 곳이 젖어 왔고 물기가 손에 묻음을 느낀 정진은 팬티를 벗었다. 가현의 허벅지에 비벼지고 있던 성기는 이미 딱딱해져 있었다. 그리고는 가현의 위로 올라가 삽입을 했다. 가현은 남편의 성기가 잘 들어오도록 허벅지를 벌리고 엉덩이를 살 짝 들어 올렸다. 물기가 얼마나지 않은 가현의 그곳을 벌리며 정진의 물건이 들어갔다. 가현은 눈을 감으며 아랫 입술을 살짝 물었다. 정진은 그런 가현을 보며 앞뒤로 자신의 하체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따뜻하고 미끌미끌한 가현의 그 곳이 더욱 젖어오고 정진의 그 곳에 맞게 변해 갔지만 정진도 가현도 흥분보다는 일을 처리한다는 느낌으로 관계를 맺었다. 얼마 안 있어 정진의 움직임이 빨라졌고 정진의 팔을 잡고 있던 가현의 손에 힘이 들어 갔다 .
"으음." 가현의 입에서 낮은 신음이 터져 나왔다.
그리고는 정진은 자신의 엉덩이를 앞으로 내밀며 가현의 가장 깊숙한 곳에 자신의 씨를 뿌리겠다는 듯 더욱 밀착하며 자신의 정액을 토해냈다. 눈을 감은 정진의 몸이 잠시 경직 되었다. 그리고는 바로 가현의 옆으로 쓰러져 누웠다. 가현은 자신의 안을 채운 정진의 정액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하다는 듯 한 방울도 흘러내리지 않게 살짝 허리를 들었다. 클리닉에서는 관계후 그 부분을 씻거나 닦지 말라는 말 밖에 없었지만 가현은 이렇게하면 정진의 정액이 그녀의 몸에 더욱 오래 남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오늘도 고생했어, 너무 걱정하지마. 이번엔 우리 아가가 찾아 올거야" 가현을 보며 나즈막한 목소리로 정진이 말 했다.
"응" 정진을 처다보지도 않고 단답한 가현의 눈은 자신의 하복부 쪽을 향하고 있었다.
정진은 애처로운 눈빛으로 가현을 보다, 등을 돌려 잠을 청했다. 하복부에 가 있던 가현의 눈이 반사적으로 정진의 등으로 향했다, 알 수 없는 서운함이 몰려왔다. 내일 출근하는 남편이 힘든 것은 알지만, 자신은 둘의 아이를 갖기 위해 이렇게 자그마한 노력이라도 하는데 관계 끝나자 마자 등을 돌려 잠을 청하는 남편이라니. 머리로는 정진을 이해하는 가현이었지만 서운함 만큼은 막을 수가 없었다.
"다녀 올게."
입을 맞추고 돌아서며 정진이 말했다. 문이 닫혔고 가현은 몸을 돌려 아침상을 치웠다.
서울 근교로 이사온지 이제 6개월 정도 지났다. 지방에서 살다 정진이 이직을 했기에 어쩔 수 없이 서울로 이사를 와야만 했다. 정진이 아는 형님이 소개해 준 중소기업이었고 벌이도 이전보다 나쁘지 않았다. 이사를 오면서 금전적으로 무리가 조금 되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가현은 키가 크고 날씬했다. 정진을 만나기 전 쌍커풀과 어느 정도의 성형시술을 받기도 했다. 원래 이쁘다는 말을 듣던 가현이었지만 수술과 시술로 인해 누가봐도 아름답다는 말을 듣는 외모를 가지게 되었다. 하지만 그런 가현은 주변의 이쁘다는 칭찬을 불편해하고 잘 믿지 못 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아름다움에 대한 욕구는 언제나 넘쳐 본인을 더 꾸미고 가꾸려 노력하는 성격이었다.
가현이 정진을 만난 건 대학교를 졸업하고 고향에서 렌트카 프론트 일을 할 때 였다. 당시 가현은 25살 이었고 정진은 24살 이었다. 가현이 그 곳에서 일을 한지 2년이 조금 안되는 시점일 때 정진이 알바로 들어왔다. 정진은 군대를 다녀와 전문대 마지막 학기를 위해 학비를 벌기 위해 이곳 저곳에서 알바를 해 오던 중 이었다. 알바 정진까지 포함해 총 5명이 일하는 자그마한 렌트카 회사였고 자주 마주치고 자연스레 농담도 주고 받고 하며 둘은 친해졌고 정진의 수줍은 고백으로 사귀게 되었다. 그 뒤로 2년여 간을 만났고 두 사람은 결혼까지 들어서게 된다.
가현은 어릴 적 부유한 집 안에서 살았다. 대학교 2학년 때 아버지가 하시던 음식점이 문을 닫고 빚을 청산하면서 가세가 기울긴 했지만 말이다. 가부장적이고 묵묵했던 아버지와 활발하고 활동적인 어머니 밑에서 자랐다. 어머니 쪽, 가현의 외가도 중산층 이상으로 돈이 많은 집이었다. 하지만 아버지와 어머니의 사이가 그리 좋지는 못 했다. 아버지는 어머니를 통제하려고 했고 어머니는 시간이 지나면 지날 수록 그런 아버지에게 반발하는 횟수가 늘어갔다. 그렇지만 가현과 여동생 가윤은 그리 때묻지 않게 집 안의 부를 누리며 살 수 있었다. 가현이 대학교에 들어가며 별거에 들어간 어머니와 아버지였지만 가현은 그리 크게 신경쓰지 않았다.
정진에게는 홀어머니에 동생들만 둘인 집안의 가장이었다. 집 안 사정은 당연히 넉넉하지 못 했다. 언제나 아르바이를 해야만 했고 첫째 정진은 얼마 되지도 않는 수익 중에 일부를 어머니에게 드리기도 했어야 했다.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셨기에 가장은 언제나 어머니였고 정진은 그런 어머니와 남동생 둘을 도와주고 받쳐주는 역할을 도맡아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연애다운 연애도 많이 할 수 없었다. 사실상 가현이 첫연애 대상이었다.
그런 둘이 결혼 할 때도 금전적인 문제가 있었지만, 가현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알게 모르게 도와주어 전세집을 얻어 결혼을 시작 할 수 있었다. 성실한 성격인 정진을 보고 가현의 부모가 결혼을 허락 한 것도 있었다. 정진은 중소기업의 생산팀에 들어가 주야간을 뛰며 열심히 일했다. 고향에서 살며 미인 아내까지 얻고 처가의 도움으로 전세집까지 얻을 수 있었으니 말이다. 꿈인가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행복한 나날의 연속이었다. 그러다 아는 형님의 소개로 서울 근교로 직장까지 옮기게 되었고 가현과 함께 다른 전세집을 얻어 이사까지 오게 되었다.
조금전까지 정진과 함께 아침을 먹은 상을 다치우고 가현은 방으로 들어가 옷을 벗었다. 옷을 다 벗은 뒤 서랍에 있는 임신테스키 하나를 꺼내 화장실로 갔다. 나체로 변기에 앉았고 버러진 가랑이 사이로 테스트기를 가져다 놓았다. 곧이어 노란색의 물줄기가 테스트기를 타고 변기 속 물로 떨어졌다. 가현은 무표정으로 볼 일이 끝나기를 기다렸다. 테스트기를 화장실 한 편에 놔두고 샤워를 시작했다. 샤워기에서 나오는 물은 가현의 머리부터 가슴골을 타고 하복부 밑을 따라 흘러 내렸다. 어제 밤에도 샤워를 하긴 했지만 가현은 몸 구석구석을 깨끗이 닦아 냈다. 원채 깔끔한 성격인 가현이었다. 그리고 놔두었던 테스트기를 보았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보았지만 테스트기는 가현에게 실망감을 안겨 줄 뿐이었다.
자신도 모르게 한 숨을 내쉬고 출근 준비를 위해 안방으로 넘어갔다.
이 주전부터 나가고 있는 커피숍에 나갈 준비를 하는 가현이었다. 이사를 오면서 대출을 받고 남편의 월급으로는 예전보다는 빡빡한 생활이었기에 가현도 전업주부만을 할 수는 없었다. 그리고 일을 배워 자신이 자그마한 커피숍을 차릴 생각 이었다. 다행히도 걸어서 15분 정도 되는 거리에 개인 커피숍에 알바를 얻을 수 있었고 아침 9시부터 저녁 5시까지 일을 하게 되었다.
커피숍의 주인은 가현보다 9살이 많은 남자 주인였다. 가현까지 총 알바가 4명이었고 가게의 규모도 개인 커피숍 치고는 꽤나 컸다.
카페의 문은 이미 열려 있었다. 주인이 나와 있었다. 한 달 정도는 카페 주인인 승도가 가현에게 인수인계를 해주기로 되어 있었다.
"안녕하세요, 일찍 오셨네요." 가현이 카페로 들어서며 승도에게 인사했다.
청소를 하고 있던 승도였다. 허리를 펴며 가현에게 인사했다.
"오셨어요? 월요일이니까 조금 일찍 왔어요." 승도가 웃으며 대답했다.
승도는 가현의 남편 정진보다 키도 덩치도 좋았다. 38살 이라는 나이 보다도 젊게 보였다. 그리고 차림새 또한 언제나 은근 귀티가 나고 말끔했다. 카페 안 쪽에 있는 창고에 짐을 넣고 앞치마를 두른 가현이 나왔다.
"제가 할게요. 주세요 이리." 가현이 승도의 빚자루를 뺏으려 했다. 승도는 손사레를 쳤다.
"저기 안에 오픈 준비 하시면 될 것 같아요." 승도가 말했다.
"네." 가현은 맑게 대답하며 카페 카운터 안으로 들어갔다.
아직 손에 익지 않은 일이기에 승도가 가르쳐 준 일들을 기억해 내며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바닥 물청소까지 끝낸 승도가 카운터 안으로 들어왔다. 그 전까지 가르쳐 주던 일들을 잘하고 있는지 지켜보며 가현의 일을 도와주었다. 오픈 준비가 마무리 되었고 승도가 말했다.
"커피 한 잔 하실래요?"
"네, 좋아요." 가현이 대답했다.
"그럼 이리와서 직접 내려 보세요. 커피 내리는 거 계속 배우셔야죠."
가현이 승도에게 배운대로 커피를 내릴 준비를 했다. 그룹에 커피가루를 담고 탬퍼로 커피를 누르는 가현의 양손을 승도가 잡아 왔다.
"힘 잘 줘서 꾹꾹 누르셔야 되요." 승도가 가현의 아무렇지 않은 듯 손을 잡은채로 커다란 기색 없이 말 했다. 가현의 손을 잡고 커피를 누르는 남자의 힘이 가현에게 그대로 전달 되었다.
갑작스런 승도의 손에 놀라 속으로 왜 이러지 싶은 가현이었지만 내색하지는 않았다. 사장이고 일을 가르쳐 주려는 의도에 괜히 자신이 민감하게 반응하면 안 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둘은 커피를 내려 마셨고 몇 마디의 이야기를 나누었다. 주말은 잘 보냈는지, 무엇을 했는지 등등 크게 다를 게 없는 일상적인 대화였다. 그리고 바쁜 점심시간이 지났고 가게가 한산 해지자 승도는 평소처럼 운동을 가겠다며 가게를 나갔다. 그리고 얼마있지 않아 저녁알바 대학생 지윤이 왔다. 짤막한 키에 통통한 지윤은 밝은 성격에 활발했다. 지윤에게 인수인계를 마친 가현은 짐을 챙겨 집으로 향했다.
집으로 걸어가는 길에 전화가 왔다. 정진의 어머니, 시어머니의 전화였다. 전화기에 시어머니라는 글자를 보기만 했는데도 가현의 가슴이 답답해 왔다. 차마 통화버튼을 쉽게 누를 수가 없었지만 가현은 통화 버튼을 이내 눌렀다.
"네, 어머니." 최대한 상냥한 목소리를 쥐어 짜내었다.
"그래, 아가, 어디니?"
"저 지금 일끝나고 집에 가고 있어요."
"그래 애비는 오늘도 늦는다니?"
"네 그럴 것 같아요."
"에구, 매번 그렇게 늦어서야 어쩌니.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네. 요새 밥은 잘 챙겨 먹이니?"
"네, 그럼요. 어머니." 신경이 거슬리는 가현이었다.
"그래, 정진이 잘 챙겨먹여라, 요새 일도 늦게 끝나고 이사까지 가서 타향인데 얼마나 힘들겠니 애가. 너가 잘 챙겨줘야돼."
"그럼요. 어머니. 잘 챙겨주고 있어요."
"응. 그래. 잘 해야지 네가. 그건 그렇고 아직 소식은 없니?"
"..." 가현은 말을 이을 수 없었다.
잠시 정막이 흘렀고 수화기를 넘어 시어머니의 한 숨 소리가 흘러 나왔다.
"에휴, 아니 둘 다 멀쩡하다는데 대체 뭐가 문제니 그래. 용한 한의사를 찾아봐야 되나."
"생길거에요 어머니, 너무 걱정하지마세요." 기분이 상한 가현이었지만 상냥함을 잃지 않으려 노력했다.
"생기긴 뭘 생겨. 생겨도 벌써 생겼어야지. 전생에 무슨 업보가 있어서 장손도 못 보고 이게 뭐니."
"죄송해요. 어머니." 할 말이라고는 이 말 뿐인 가현이었다.
"에휴, 난 모르겠다. 네가 몸관리를 잘해야 빨리 애가 들어서지. 오늘 우리 정진이 저녁 잘 챙겨주고, 또 통화하자."
"네. 어머..." 가현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전화는 끊겨 있었다.
한 달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가현도 정진도 새로운 생활에 적응해 나갔다. 가현은 카페 주인 그리고 지윤과 친해지고 일에도 적응해 승도의 도움없이 혼자 가게를 열고 일을 하게 되었다. 정진은 회사에서 사람들도 사귀고 새직장에 잘 적응하고 있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정진과 가현의 모습은 여느 부부와 다를 바 없이 행복해 보였다. 다만 아이가 들어서지 않는 문제만이 두 사람을 괴롭혔을 뿐이다. 가현은 여전히 안부전화를 가장한 자기자식 챙기기와 아이에 대한 채근 전화를 받으며 고통 받고 있었다. 정진은 일이 바빠지고 회식이 생기며 집에 늦게 들어오는 일도 잦아졌다. 피곤하다는 이유로 관계를 맺어야 할 날에 골아 떨어져 버리기도 했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들어 온 정진을 가현이 먼저 다독이기도 하고 다그치기도 하며 관계를 억지로 맺어야 할 때도 있었다.
처음에는 피곤한 정진이 이해가 되었지만 그런 일이 잦아지자 혼자 노력하고 있다는 생각에 또 서러움이 복받쳐 오는 가현이기도 했다. 한 편으로는 자신이 먼저 나서서 관계를 맺어야 하는 상황이 자존심 상하고 수치스러울 때도 있었다. 알몸으로 남편이 씻고 나오기만을 기다리는 자신의 모습에 자존심이 상하고 부끄러워 정진에게 짜증을 낸 것도 여러번이다. 그럴 때마다 미안하다고 가현을 달래는 정진이었지만 한 번 쌓인 마음의 짐이 그리 쉽게 사라지진 않았다.
오늘도 무미건조한 관계를 맺었다. 이제는 관계가 끝나도 누구도 말을 하지 않았다. 평소처럼 허리를 살짝 든채 정진을 보며 가현이 말을 했다.
"내일 늦지마. 병원 늦지마."
"응. 알았어. 점심 마치고 바로 출발할게."
"저번처럼 또 갑자기 못 온다고 10분 전에 말하지 말고."
"응. 알았어. 이번엔 꼭 일있어도 미뤄두고 나갈게."
"그때도 그렇게 말했잖아." 가현의 목소리엔 짜증이 섞여 있었다.
"아. 아니야. 그 땐 정말 미안해. 이번엔 정말 안 그럴게." 미안함이 담긴 정진의 어투였다.
"미안해라는 말만 매번 하면 뭐해. 나만 우리 애기 보고 싶어서 이래? 나만 노력해서 되는거 아니잖아." 가현의 목소리가 살짝 커졌다.
"아 정말 미안하다니까. 내일은 꼭 같이 가서 진찰받고 검사 받자."
"오늘 어머니 또 전화 오셨어. 그러니까 제발. 응?"
"아. 알았다니까. 내일 무조건 간다고. 몇 번 말하잖아 지금." 억지로 누른 듯한 정진의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왜 그래? 내가 뭐 잘 못 했어? 저번에도 늦었으니까 이러는거잖아 내가."
"아. 알았어. 미안해. 자자. 푹 자야 컨디션 유지되지." 정진이 등을 돌렸다.
"아...정말..."
말을 더 하고 싶었고 위로받고 싶었던 가현이었다. 남편도 힘들어하고 노력하고 있다는 걸 아는 가현이었지만 섭섭한 마음을 누를 수 없었다. 자신이 힘들어 하는 걸 정진이 알아줬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가현은 몸을 일으켜 화장실로 몸을 옮겼다. 자신의 몸안에 있는 정진의 정자가 씻기 전까지라도 오래 남았으면 하는 마음에 걷는 것 조차도 조심스런 걸음걸이였다.
카페에 휴가를 내고 병원을 찾은 가현이었다. 진찰시간까지 얼마 남지 않았음에도 정진은 연락이 없었다. 전화를 걸고 문자를 남겨 봤지만 답장이 없었다. 결국 혼자서 진료실에 들어서야만 했고, 진료가 마칠 때 까지도 정진에게서는 어떤 연락도 없었다. 병원을 나서는 순간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다. 답답함을 넘어 그 동안 서러움에 화까지 더해 억울함이 복받쳤다. 집으로 돌아와 가현은 소파에 앉았고 멍하니 허공을 응시하고 있었다. 정진에게 전화가 왔다.
가현은 전화기를 보기만 했다. 전화가 끊겼고 바로 정진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가현은 통화버튼을 눌렀다.
"정말 미안해. 응? 가현아 정말 미안해."
"..." 가현은 말을 하지 않았다.
"정말 내가 잘 못 했어. 근데 어쩔수가 없었어. 지방에서 일이 터져서 거기 바로 내려가야 되서, 김과장님이랑 정신없이 준비한다고, 응? 정말 어쩔 수가 없었어. 전화 볼 시간도 없이 바빠서 연락도 못 했어. 미안해 정말 미안해. 내가 죽을 죄를 졌어."
"..."
"가현아 왜 말이 없어. 진료는 잘 받았어? 병원에선 뭐래? 내가 정말 미안해. 응? 내가 싹싹 빌게. 너무 급한 일이라 나도 어쩔수가 없었어. 일부러 그런게 아니야 정말."
"알았어." 가현이 건조한 한마디를 내뱉었다.
"응. 미안해 가현아. 오늘 최대한 일찍갈게. 우리 나중에 맛있는 거 먹고 같이 여행도 가자. 기분 풀어? 내가 더 잘 할게. 내가 다음부턴 아예 하루 휴가를 낼게. 아무리 바빠도 휴가 꼭 낼게. 알았지?"
"응. 알았어."
"그래. 고마워 가현아. 나 지금 김과장님이랑 기차타고 내려가는 중이거든, 잘 쉬고 있어. 기분 풀고."
"그래. 잘 다녀와."
"응. 알았어. 오늘 회식 있다고 했지? 잘 다녀오고 있다가 집에서 봐."
"알았어."
"응 그래, 가현아 끊을게."
"응."
가현은 끊긴 전화기를 쥔 채 소파에 몸을 웅크려 옆으로 누웠다. 화가 가라 앉은건 아니었지만 어떤 말도 할 기분도 아니었고 기력도 없었다. 가현은 왜 이렇게 힘든 일이 일어나야 되는지, 어째서 이렇게 혼자 노력하고 있어야 되는지 알 수가 없었다. 대체 왜 자신에게 이런 일이 일어나는지 이해 할 수 없었다. 자신도 모르게 흐른 가현의 눈물이 손등 위로 떨어졌다.
잠시 잠을 청한 가현은 일어나 다시 나갈 준비를 했다. 한 달에 한 번 있는 금요일 회식이 오늘 이었다. 가현이 카페에 들어간 뒤로 처음갖는 회식 이었다. 금요일 저녁 7시에 문을 닫고 회식을 시작 한다고 했다. 준비를 마치고 가현은 카페로 걸어갔다. 카페에 들어서자 가현 대신 일을 해준 지윤이 마무리를 하고 있었다."
"어, 오셨어요? 언니."
지윤이 웃으며 맞아 주었다.
"응. 안녕. 지윤아." 가현은 경직된 마음이 얼굴에 들어나지 않게 최대한 기분좋은 인사를 하려 노력했다.
"사장님은?"
"사장님 화장실 청소 중이세요."
가현은 사장에게 인사를 하기 위해 화장실로 갔다.
승도는 소매와 바지를 걷어 부치고 화장실을 물청소 중 이었다.
"안녕하세요, 사장님."
가현이 인사를 했다.
"어? 오셨어요." 승도는 등을 돌리며 인사를 했다.
"네. 청소 중이시네요. 뭐 도와 드릴까요?"
"아니에요. 이제 다 끝나가요."
종아리의 근육과 팔뚝 근육을 따라 흐르는 핏줄이 가현의 눈에 들어왔다.
"그래도 도와 드릴게 있으면 도와 드릴게요." 가현이 다가서려 하자 승도는 물이 나오는 호수를 황급히 뒤로 뺐다.
승도의 손에 들려진 호수의 입구가 의도치 않게 승도의 바지위로 향했다.
촥
"어?" 승도가 소리를 질렀다.
"어머!" 가현도 놀라 같이 소리를 냈다.
승도의 바지 윗 부분부터 물이 타고 전부 젖어 들어갔다. 바지가 완전히 젖어 승도의 굵은 허벅지에 말릴 정도였다. 묻어있던 물들이 옮겨가며 승도의 하반신을 감쌌다. 평소 운동을 하는 승도의 굵고 근육 넘치는 허벅지의 윤각이 물에 젖어 말린 바지 위로 들어났다. 심지어 남근의 윤곽까지 들어 날 정도로 바지가 젖어 버렸다.
승도는 젖어 버린 자신의 바지를 보았고, 놀란 가현 또한 자연스레 젖은 바지를 쳐다 보고 있었다.
"어머 어떡해요. 제가 괜히 참견해서. 죄송해요. 죄송해요." 가현은 어쩔 줄 몰라 미안하다는 말을 연거푸 내뱉었다.
"아. 아니에요. 차에 또 옷 있어요. 괜찮아요. 청소 끝나고 갈아 입으면 돼요." 맑게 웃으며 승도가 말했다."
"그래도. 죄송해요." 가현은 정말 미안한 표정을 보며 재차 미안함을 표현했다.
"에이. 괜찮아요."
청소가 끝이 났고, 승도는 차에서 바지를 갈아 입었다. 그리고 나서 지윤이 차 앞에 그리고 가현이 뒷자석에 올라탔다.
"사장님 차, 너무 좋아요. 탈 때마다 느끼는건데. 역시 차가 비싼게 좋은 것 같아요." 지윤이 신나하며 말했다.
"좋긴 뭘, 그냥 차지."
"지윤이는 몇 번 타 봤나봐?" 가현이 물었다.
"그럼요. 회식 한 두번 하는 것도 아니고, 사장님 차만큼 좋은 차 타 본 적이 없어요. 사장님, 오늘은 뭐 먹어요?"
"음, 글쎄. 가현씨 뭐 드실래요?"
"글쎄요. 드시고 싶은거 드세요."
"저요?" 승도가 반문했다.
"전 소고기 먹고 싶어요. 사장님." 지윤이 말을 가로챘다.
"그럼, 소고기 먹자. 근데 저번에도 소고기 먹은 것 같은데."
"소고기는 언제나 옳아요. 사장님. 헤헤" 지윤이 웃으며 말했다.
"가현씨 소고기 괜찮죠?"
"네. 좋아요."
"그럼. 오늘 가현씨 때문에 제 바지 젖었으니까. 세탁비로 소고기 가현씨가 쏘는걸로?
"네?"
"하하. 농담이에요. 농담. 다음에 커피나 한 잔 내려주세요."
"네." 가현이 미소띄며 대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