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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장 노예훈련5 (10/34)

4장 노예훈련5

도서실에서 로버트와 멀리 떨어져서 1시간 가량 공부하고 난 후, 클로디아는 크리스가

 다시 나타나자 거의 감사하고픈 심정이었다. 그 비참했던 점심식사후의 침묵은 견딜 

수 없는 것이었다. 그녀는 어느 것에도 집중할 수가 없다는 것을 알았고, 결국에는 아

무 책이나 골라서 되는대로 책장을 넘겼지만 글자는 하나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집안 일이 주어진다는 것은 얼마나 익숙한 일인가! 그녀는 집사장을 따라 식당과 부엌

으로 갔고, 그는 씻는 데 필요한 물건이 있는 곳을 보여 주었다.

"네 기록을 보면 너는 몇 가지 집안 살림 기술을 가지고 있어."

크리스는 그렇게 말하며 그녀를 부엌 서쪽에 있는 해가 비치는 골방으로 데리고 갔다.

"특히 은그릇을 잘 딱는 다는 것 같던데."

클로디아는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여주인께서 아름다운 은그릇을 좀 가지고 계세요."

그녀가 자랑스럽게 말했다.

"그걸 알려고 물은게 아니야."

크리스가 클러디아를 꿰뚫어보자 그녀는 뒤로 움찔했다.

"쓸데없는 말은 하지마라."

그는 마치 그녀를  꾸짖지도 않았고 그녀의 몸 속까지 굴욕감을 주지도 않았던 것처럼

 계속 말했다.

"너한테 주어질 은그릇의 품질에 대해서 판단을 내리지 말고, 그것을 깨끗이 닦아라. 

네가 오늘 중에 이 일을  끝내지 못하면 넌 벌을 받게 될 거고 끝날 때까지 내일도 그

 일을 계속한다. 그리고 그 다음날도,  닦은 그릇들은  선반에 놓인 타월 위에 둔다. 

아, 여기 첫 번째 상자가 있군."

클로디아가 고개를 드니 브라이언이 커다란 상자를 팔에 끌어안고 골방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그가 그것을 조심스럽게 바닥에 내려놓을 때, 덜커덩거리는 소리가 났다.

"레이첼양이 이런 게 두 개 더 있다고 했어요. 크리스, 지금 가져올까요?"

브라이언이 물었다. 그는 셔츠를 걸치지 않았고 젖꼭지에 매달린 고리는 오후의 태양

을 받아 반짝거렸다.

"그래 클로디아에게 그것을 전부 보여주는 게 좋겠어. 그래야 적당히 속도를 맞출 수 

있을 테니까. 이쪽으로 가져 와, 그것들을 탁자 밑에다 놓고."

크리스는 손가락으로 가리켰고 브라이언은  끄덕였다. 그때 크리스는 클로디아를 돌아

봤는데, 그녀는 점점 당황하면서 상자에 눈을 주고 있었다.

"지시 사항을 알겠어. 클로디아?"

"음, 예, 정말 알아요. 크리스."

"그럼 시작해."

클로디아는 크리스가 사라질 때까지 망연히 앉아 있었다. 여주인의 집에서 은그릇을  

닦는 일은 순면의 베이지색 천을 이용해서 분홍색 세제를 소량 풀어 사랑스럽고 부드

럽게 문지르면서 닦으면 되는 일이었다.

그런데 그 상자에는 시커멓게 얼룩지고 긁힌 자국이 있는 케케묵은  것 같은 무거운 

은그릇들이 가득 차 있었다. 그것은 지하실에서 꺼내진 시커멓게 탄 폐물 상자처럼 보

였다.

클로디아는 그 상자를 쳐다보며 지겨움이 솟아나는 것을 느꼈다. 하루 동안에는 결코 

이 일을 끝낼 수 없다. 일 년 동안 닦아도 끝낼수 없다.! 그리고 그것은 너무나, 너무

나 더러웠다! 지독하게! 알렉산드라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눈물이 그녀의 눈 밖으로 흘

렀다. 어떻게 이런 일을 할 수 있겠는가?

그리고 브라이언이 뭐라고 했었지? 이런 상자가 두 개나 더 있다고. 이 더러운 것이.

그녀는 지옥 속에 있는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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