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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중연 (100)화 (100/100)

100.

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 알 수가 없었다.

서혜가 눈을 떴을 때 보이는 것 희미한 새벽의 어스름한 빛이었다. 그리고 그 빛을 등지고 있는 이연의 모습이었다.

흐윽. 눈으로 보이는 것보다 먼저 느껴진 것은 몸 안에 들어와 있는 이연의 것이었다. 그는 서혜의 한쪽 어깨를 누른 채로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때마다 미끈거리는 곳에 그의 것이 부드럽게 스치는 게 느껴졌다.

“깼어?”

이연이 웃으며 물었다. 서혜가 헐떡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말을 할 기운이 없었다.

“잘 자더라.”

“으, 응!”

“숨을 고롱고롱 쉬던데.”

이연이 키들거렸다. 고롱고롱보다는 헐떡임에 가까웠지만 그는 제대로 말하지 않았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서혜가 자는 동안에도 이연은 끊임없이 그녀의 몸을 탐했기 때문이다. 오래도록 불안했던 것이 일시에 녹아내리면서 그의 욕망이 해금되었다. 그는 날뛰고 싶어 하는 자신을 자유롭게 방기했다.

“안이, 부었….”

“그리고 젖었지.”

“쓰리고… 응, 응!”

“좋아하면서.”

쓰리다는 건 반은 사실이었지만 반은 거짓이었다. 쓰려서 싫고 아프다기보다는 좋은 것 같기도 했다. 머리가 몽롱했다. 손끝까지 나른해서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그저 밑으로, 밑으로 꺼져 들어가고만 있었다.

“마지막이니까, 응?”

이연이 달래듯이 서혜의 얼굴에 잘게 입을 맞췄다. 입 맞추는 소리가 작게 공간을 울렸다. 문득 서혜는 이 공간이 낯설다는 생각이 들었다. 베개도 금금도, 모든 것이 참 낯설었다. 아아, 여긴 내 처소가 아니지. 서혜는 강하게 흔들리면서 흐린 눈으로 방을 한 번 둘러보았다. 이곳은 연 재인의 처소였다. 처소의 주인을 내쫓고 밤새도록 지아비와 몸을 섞었다.

마음이 앞서서 아무것도 보지 않고 달려왔고, 그러지 않을까 봐 걱정하며 기다렸다. 서로 같은 마음이면서 마음이 보이지 않아 도박을 감행했다. 도박에 성공하지 못했다면 양쪽 다 마음이 병들었으리라. 서혜는 팔을 들어 이연의 목을 끌어안았다.

“폐하, 연모하옵니다.”

“…….”

“그러니 부디 신첩을 이리 시험하시지 마시옵소서. 신첩을 지옥에 빠뜨리지 마시옵소서….”

이연이 읏, 하고 나지막이 신음했다. 그는 서혜를 안은 채 빠르게 움직였다. 서혜는 눈을 감은 채 그의 움직임에 맞춰 몸을 떨었다. 조금 더, 조금 더. 닿을 듯 닿지 않는 끝이 아슬아슬하게 느껴질 때, 갑자기 확 절정이 다가왔다.

아아아아! 서혜가 비명을 지름과 동시에 이연이 그녀의 가장 안쪽까지 꿰뚫었다. 부어 있는 질벽이 강렬하게 들이박혀 바들바들 떨리는 게 두 사람 다에게 느껴질 정도였다. 뜨거운 정액이 쏟아지는 순간 아아, 하고 신음한 건 어느 쪽이 먼저였을까.

어느새 창밖이 밝아져 있었다.

***

구미호 란이 태자와 정혼한다는 소식이 퍼져 나갔을 때, 백성들은 ‘구미호가 태자비라니 괜찮을까.’라고 조금 걱정하는 듯한 태도를 보였지만 의외로 반대는 없었다. 민심이 황제에게 무척 호의적이었기 때문에 조정에서는 감히 반대하는 모습을 보이지 못했다. 강대한 황권을 바탕으로 황태자는 열여덟, 성인이 되는 나이에 관례를 치렀다.

서혜는 태자의 인생에 다시는 없을 관례와 그 연회를 란과 함께 준비했다. 란은 황후전에서 자란 이답게 고작 열세 살인데도 매우 총명하고 아주 꼼꼼했다. 태자비가 되기에 별문제는 없어 보였다. 서혜는 그녀의 교육에 힘을 기울였고, 란은 황궁의 그 어느 여인보다 법도에 대해 잘 알고 우아한 행동거지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서혜는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구미호는 인간의 간을 좋아하고 육식을, 그것도 생식을 좋아한다는데 란이 그 본능을 이길 수 있을까? 그건 본능이지 않은가. 황궁이 아무리 많이 풀어졌다 해도, 아무리 태자와 자신과 황제가 란의 자유를 보증해 준다 해도 인간의 간을 먹을 수는 없다. 란은 어찌할 것인가.

정혼 직전, 서혜는 이 건에 대해 정면 돌파를 하기로 마음먹었다. 즉, 란을 불러다 놓고 물어보기로 한 것이다.

각자의 찻상을 사이에 두고 한참을 딴소리를 하다 결국 그 이야기를 꺼냈을 때 서혜는 면밀하게 란의 표정을 살폈다. 란이 상처받지 않기를 바랐다. 서혜는 구미호에 대해 아는 것이 없다. 란은 구미호인 자신에 대해 드러내지 않으려 애썼고 서혜는 그런 란을 존중해 왔다. 이제 와서 란의 본능에 대해, 그것도 아주 내밀한 부분에 대해 캐묻는 것이 무척 불편했다.

그러나 란은 의외로 질문이 전혀 불편하지 않은 얼굴이었다.

“사냥을 하옵니다.”

사냥이라고?

서혜가 눈을 크게 뜨자 란도 눈을 크게 떴다. 서혜가 왜 놀라는지 모르겠다는 얼굴이었다.

“사냥?”

“예, 소녀는 가끔 생간을 먹지 않으면 빈혈이 생기옵니다. 그리하여 가끔 금원에서 사냥을 하여 생간을 섭취하옵니다.”

“금원에서 무엇을 사냥하느냐?”

“사슴이나… 멧돼지이옵니다.”

우아하게 길러 놓았다고 생각했는데 이 나붓하게 행동하는 란은 뒤로 가끔 금원에 무단 잠입하여 사냥감을 획득해 생간을 먹었던 것이다. 태연자약하게 말하는 태도에 놀라 서혜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어졌다. 여인이 그런 짓을, 이라고 해야 할까? 금원에 들어가는 것은 죄라고 해야 할까? 서혜가 당황하는 걸 보자 아, 하고 란이 웃었다.

“동궁의 금원에서 하옵니다. 태자 전하의 허가를 받았사옵니다.”

“태자가 이 사실을 알고 있느냐?”

“예, 그러하옵니다.”

란의 이야기에 따르면 아는 정도가 아니라 태자는 처음부터 란의 빈혈에 대해 가장 먼저 알아챈 인물이었고 어린 란에게 생간을 가져다 피가 뚝뚝 떨어지는 것을 맨손으로 먹인 장본인이며 란이 크자 사냥을 가르치기까지 한, 한마디로 이 일의 근원지였다.

“고서에 따르면 구미호는 간을 먹어야 한다고 하옵니다.”

“그, 그래.”

“하여 태자 전하께옵서 소녀를 돌봐 주셨나이다.”

어지간하다, 수영이도.

서혜는 어이가 없어 웃었다. 나중에 본능에 져서 인간의 간을 탐하면 어쩌나 걱정했더니 벌써 동물의 간을 먹으며 다 적응이 된 상태가 아닌가. 심지어 태자가 있을 때는 태자가 먹여 준다 하니 둘은 아무 문제도 없을 듯했다.

서혜는 가만히 란을 바라보았다. 란의 눈이 반짝반짝 빛났다. 태자가 돌아온 이래 란은 언제나 환하고 말갛고 행복했다. 태자의 품 안에서 그녀는 그저 소중하디소중하게 키워질 뿐이었다. 그것이 어떤 연모지정인지 서혜는 알 것 같았다. 그녀 자신도 그렇게 대해져 왔기 때문에.

서혜는 란의 얼굴에서 자신을 봤다. 사랑받고 사랑하는 이의 모습을. 어떤 단점이 있든, 어떤 불행이 존재하든, 아무것도 구애하지 않고 사랑해 주는 사람을 만난 이의 행복을 봤다. 그녀는 잠시 란을 보며 그 모습을 즐겼다. 거울로도 볼 수 없는 모습이 거기 떠올라 있었다. 자신은 이렇게 행복한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뜨거워졌다.

“너는 곧 태자와 정혼하게 될 것이다.”

서혜의 말에 란이 고개를 끄덕였다. 태자는 늘 란과 정혼하겠다고 말했다. 태자는 부황 또한 그리하셨으니 자신도 그리하겠다며, 자신도 오직 란만을 원하고 후궁에 들이겠다고 말하고는 했다. 그것이 이루어질까? 란은 조금 회의적이었다. 이토록 강대한 권력을 지닌 당금 황제조차도 결국 후궁을 들이기는 하지 않았던가. 그녀들과 잠자리를 하지는 않지만 역사서에 적기 위해서라도 황제는 후궁을 들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태자는 그조차 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내 후궁에는 오직 너 하나뿐일 거야. 그 수많은 궁은 오직 너만을 위해 준비될 거다. 매일 궁을 바꿔서 지내려무나. 모든 궁이 너의 처소이니. 그렇게 말하는 태자의 얼굴을 보며 란은 그저 행복했다. 설사 지푸라기만 깔린 곳을 준다 하여도 태자의 곁이라면 행복할 것이나 그가 그를 독점하여도 좋다고 말해 주는 것이 너무나 황홀했다.

잘못될지도 몰라.

다, 이루어지지 않고, 마치 모든 약속은 없었던 것처럼 부서질지도 몰라.

그렇게 상처 입어 피를 철철 흘려 죽는다 하더라도 란은 태자의 손에 죽고 싶었다. 란은 자신을 키워 준 은여우가 죽을 때를 기억하고 있다. 만약에 자신이 죽는다면 본신으로 돌아가 태자의 화살에 혹은 그의 검에 죽고 싶었다. 죽음조차도 그가 행하길 바랐다.

란은 눈앞의 황후를 바라보았다. 황후는 냉궁에도 갔었고 목숨도 잃을 뻔했다고 했다. 황제가 태자였던 시절 그를 살리기도 했고 그를 위해 여러 모사를 꾸몄다고 들었다. 지금도 황제를 위해서라면 못할 일이 없는 이였다. 천하가 인정하는 황제의 심장. 황제의 손발이 다 조정의 신하라면 황제의 심장은 황후라고 세인들이 떠들어 댈 정도로 황후는 황제와 가장 가깝고 그만큼 황제에게 절대적인 인물이었다.

저런 관계가 되고 싶었다. 이십 년이 지나도, 삼십 년이 지나도 저런 사람으로 태자에게 남고 싶었다.

두 여인을 서로를 바라보며 서로의 모습에서 자신을 찾고 있었다. 몽롱한, 꿈결 같은 오후, 황후전은 무척 고요하고 평화로웠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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