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
죽어 버리려 했다. 그 말에 서혜가 이연의 목을 끌어안았다.
어째서일까. 그렇게 오랜 시간이 흘렀는데도 지아비의 마음은 한결같았다. 그는 이렇게나 강하고 불타오르는 연정으로 자신을 대하고 있었다. 그게 어떻게 가능한 것일까. 서혜는 종종 알 수가 없었다. 가끔은 죄스럽기까지 했다. 자신은 그러지 못했으니까.
물론 이연에 대한 연정은 변함이 없었지만 그 외에 다른 감정들이 그녀 속에서 뒤섞이고는 했다. 자신의 소임이나 아들인 수영에 대한 모정 따위가 종종 이연에 대한 연정보다 앞서갈 때도 있었다. 그런데 이연은 그러지 않았다.
반대여야 했는데.
모시는 자신의 감정이 늘 이토록 한결같고 이연의 마음은 조금 흔들려도 괜찮은, 그런 것이어야 했는데 실상은 그렇지 못했다. 그리고 서혜가 종종 이연보다 다른 무언가를 우선할 때마다 그는 깊게 상처 입었다. 그래도 그는 오랜 세월 동안 한 번도 그것에 대해 말을 꺼내지 않았다. 단 한 번도. 그건 분명 서혜에 대한 그의 애정이었다.
단지 그는 견딜 수 없어진 것이리라.
때로 이연보다 우선시했던 수영이 란을 귀히 여기느라 오 년 만에 만나는 어미에게 문안조차 오지 않았을 때 서혜는 그저 웃었고 이연은 그것에 충격을 받은 듯했다. 자신이 그리 행동해도 웃어넘긴다면 죽겠노라고 결심했을 정도로 이연은 감정에 치우쳐 있었다.
이연이 나이를 먹을수록 그의 애정은 더욱 어려져 가는 것만 같았다. 어릴 때 그토록 어른스러웠던 그의 애정이 지금은 마치 아이의 애정처럼 날것같이 느껴졌다. 서혜는 그것이 싫지 않았다. 도리어 감사했다.
도대체 자신이 무엇이기에, 무엇을 했기에, 이 세상의 주인으로부터 이런 연모지정을 받는 것인가 생각했다. 살면서 겪은 많지 않은 고초가 이 연정을 받기 위한 대가였다면 그 대가는 결코 크지 않았다고 여기면서 서혜는 이연을 안은 팔에 힘을 꽉 주었다. 그녀의 가느다란 팔이 바들바들 떨릴 정도로 강한 힘이었다.
“폐하, 신첩의 마음은 늘 폐하의 것이옵니다.”
“…….”
“시험하시지 마시옵소서. 신첩은 늘 폐하의 것이옵니다.”
이연은 원하는 만큼 가지지 못했다고 말하고 있고 서혜 또한 그 말을 이해하고 있었다. 서혜는 과분할 정도로 이연을 가졌는데 그를 가진 만큼 자신을 내어 주었느냐고 묻는다면 자신이 없었다. 그러니 이연의 고통을 이해했다. 그는 다 주었는데 그만큼 돌려받고 있지 못하다.
수많은 사람에게 모두를 받고 본인은 하나도 주지 않아도 되는 위치에 선 자가 준 만큼도 받지 못하고 있으니 초조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용상이라는 자리가 그렇다. 얼마나 많이 배신당하는 자리인가. 바늘 끝에 선 것처럼 아슬아슬한 자리이다. 그곳에서 단 한 사람에게 마음을 다 주었는데 그 마음이 다 돌아오지 않는다는 건 견디기 어려운 일이다.
다 주겠노라고 말할 수가 없어서 서혜는 고통스러웠다. 이연이 주는 만큼 자신이 줄 수 없는 것이 괴로웠다. 그러나 서혜는 오랜 세월 이연과 살면서 자신의 그릇을 알고 있었다. 그녀는 자신의 지아비만큼 스스로를 내어줄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녀는 꽉 끌어안았다. 팔이 후들거려도 온몸에서 힘을 빼지 않았다. 그녀의 팔이 덜덜 경련하자 이연이 손을 들어 그녀의 팔을 잡아 내렸다. 그리고 천천히 자신에게서 서혜를 떼어 내어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아니, 내가 네 것이지.”
이연은 부드럽게 웃었다. 서혜는 차마 아니라고 할 수 없었다. 언제나 이연이 자신의 것이었다. 소유자와 피소유자가 있다면 소유한 쪽은 늘 그녀 자신이었다. 그녀가 움직일 때마다 그가 따라 움직였으니까. 아무리 그가 자신의 우월한 위치를 이용해 그녀를 가두고 제 뜻대로 하려고 해도 결국 그녀로 인해 그는 모든 것을 바꿔야 했다. 생의 전반, 혹은 운명이라는 것까지도.
서혜가 아무 말도 못 하자 이연이 고개를 저었다.
“그런 얼굴 하지 마라. 서혜야, 나는 네 것이 되어 단 한 번도 후회한 적 없음이니.”
“…….”
“그저 나를 방치하지 마라. 그건 안 돼.”
자존심이 하늘 같은 사내가 아닌 척하면서 절절하게 애원했다. 서혜는 그를 올려다보다 충동적으로 발뒤꿈치를 들어 그의 입술에 입을 맞췄다. 촉. 한 번 붙었다 떨어진 입술을 피해 그는 고개를 돌리려 했다. 그러나 입술을 따라가 서혜가 한 번 더 입술을 맞추자 그가 몸을 살짝 떨었다.
아직도 그는 서혜가 그에게 닿는 것에 기뻐했다. 이토록.
“신첩은, 지금.”
서혜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폐하의 성총을 받고자 하옵니다.”
그녀의 목소리에 이연이 서혜의 허리를 낚아채며 입술을 덮쳤다. 거친 입맞춤이 폭풍처럼 쏟아졌다. 힘에 밀려 서혜의 허리가 뒤로 꺾였다. 이연의 팔이 서혜의 허리를 받쳤지만 그녀의 허리가 꺾이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지금까지의 위기와 걱정이 갑자기 정염으로 화했다. 서혜는 이연의 목에 팔을 감은 채 그의 혀에 자신의 혀를 얽었다. 그의 두터운 살덩이에 비하면 작은 혀를 열심히 비볐다. 혀 위의 요철들이 이연의 안을 맛볼 때마다 소름이 돋았다.
어느새 침상으로 이끌려 갔는지 모를 일이었다. 정신을 차렸을 때 서혜는 침상에 누워 있었다. 이연이 그녀의 위에 무릎으로 서서 옷을 벗고 있었다. 그는 그녀에게서 눈을 떼지 않고 있었다. 마치 그녀의 몸을 보면서 스스로를 위로라도 하는 것 같은 눈길이었다. 그 눈길에 서혜는 떨리는 손을 들어 스스로 의복을 벗기 시작했다.
그녀의 가슴이 드러났을 때 이연은 마침 옷을 다 벗은 나신이었다. 그는 거리낌 없이 그녀에게로 달려들었다. 그리고 그녀의 가슴을 베어 물었다.
으으응! 그녀의 입에서 신음이 날카롭게 흘렀지만 어느 쪽도 상관하지 않았다. 이연의 손이 그녀의 치마 여러 겹을 헤치고 속곳을 풀더니 다리 사이를 파고들었다.
비밀스러운 곳은 이미 젖어서 축축해져 있었다. 그것을 만지는 순간 이연이 서혜의 유두를 깨물었다. 서혜가 비명을 질렀지만 이연은 개의치 않았다. 서혜의 몸이 바르르 떨렸고 그녀의 아래에선 물이 흘러나왔기 때문이다. 흘러나오는 물을 만지는 순간 이연 또한 나지막이 신음했다.
이연은 서혜의 치마를 마구잡이로 뜯어냈다. 치마는 벗겨지기도 했고 찢어지기도 했지만 이연도 서혜도 개의치 않았다. 서혜의 늘씬한 다리와 소담한 가랑이가 드러났을 때 이연은 이를 드러내 웃었다. 서혜는 허벅지를 비비며 엉덩이를 들썩이고 있었다. 치마가 찢겨지는 것만으로도 흥분해서 어쩔 줄 몰라 하며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벌려야지, 서혜야.”
이연이 서혜의 이마에 입을 맞추며 다정하게 속삭였다. 서혜가 고개를 모로 숙이고 이연을 올려다보았다. 그 얼굴에 수치심이 가득했다. 그런데도 서혜는 천천히, 하지만 분명하게 다리를 벌렸다. 꽃잎이 벌어지듯 서혜의 안이 만개하는 걸 보면서 이연이 제 입술을 핥았다. 서혜의 입구가 벌름거리고 있었다. 이연을 받고 싶어서 애달파하는 것이 한눈에 느껴졌다.
“내가 연 재인을 안는다니까 화가 났어?”
이연이 물었다. 그는 아까부터 이게 묻고 싶어 견딜 수가 없었다. 화가 났어? 얼마나 화가 났어? 네가 오지 않으면 난 죽어 버리려고 했어. 너도 날 죽이고 싶을 만큼 화가 나더냐? 황후에, 수많은 이에, 태자에, 세상에, 나를 지워 버리진 않았더냐?
“으으응….”
서혜가 신음했다. 그렇다는 것인지 아니면 그저 신음에 불과한 건지 알 수 없는 목소리였다. 하지만 서혜의 소중한 곳에서는 이슬이 맺히고 있었다. 물이 흘러내렸다.
“그래서 존귀하신 황후께서 직접 다리를 벌려 주시는 겁니까? 재인의 처소 같은 곳에서?”
“폐하….”
“이렇게….”
이연의 손가락이 서혜의 다리 사이 도톰한 살에 닿았다. 그것을 어루만지자 서혜가 몸을 뒤틀며 비명을 질렀다. 민감해져 견딜 수가 없어진 탓이다. 그 아래, 이연을 받아들이는 곳에서는 계속 물이 흘러나왔다. 이연은 손가락을 미끄러뜨려 그 물에 손가락을 적셨다. 그리고 서혜의 입술에 입술연지를 바르듯이 발랐다. 서혜가 깜짝 놀라 피하려다가 간신히 몸에 힘을 주어 참아 냈다.
“잔뜩 흘리고 계십니다.”
평소 잠자리에서는 반말을 하는 그가 오늘따라 존대였다. 서혜가 어쩔 줄 몰라 하며 침상에 엉덩이를 비비는 사이 이연이 말했다.
“드셔 보세요, 무슨 맛인지.”
서혜는 망설였지만 이연의 눈길을 받는 동안 어쩔 수가 없어져 혀를 내밀었다. 제 입술을 살짝 핥았다. 의외로 별맛은 나지 않아서 서혜가 고개를 저었다.
“아무 맛도….”
서혜의 말에 이연이 피식 웃었다.
“감로의 맛을 모르시는군요. 평생 미식과는 연이 없으시려나 봅니다, 나의 황후께선.”
이연이 서혜의 양 허벅지를 잡아 벌리며 올렸다. 개구리가 뒤집어진 것처럼 다리를 들어 올리게 된 서혜의 위로 이연이 몸을 드리웠다. 서혜는 곧 다가올 쾌락을 예감하며 몸을 떨었다. 그 순간에도 그녀는 애액을 흘리고 있었다. 그러지 않고 싶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녀의 몸은 이연이 주는 쾌락에 너무 익숙해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