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몽중연 (95)화 (95/100)

95.

상장군부의 아들들이 일제히 교전 지역으로 발령받은 것은 며칠 뒤의 일이었다. 물론 양녀에 대한 이야기는 일절 없었던 것이 되었다. 사람들은 상장군부가 갑자기 왜 황제의 미움을 샀는지 궁금해했지만 상장군의 태도를 보건대 ‘그럴 만한 일이 있었나 보구나.’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상장군은 많은 진상품을 황제와 황후에게 바치는 등 정성을 다했지만 황제도 황후도 가납하지 않았다. 게다가 상장군부의 여인들은 황후에 의해 입궁을 금지당했다.

수영도 자신이 상장군에게 놀아났다는 걸 알았기에 상장군부에게 무척 차가웠다. 실제로 상장군부의 셋째 아들은 태자부에서 교전 지역으로 움직여야 했다. 그건 실질적인 강등이었으며 출셋길에서 추락하는 것이었다. 그 아들은 수영이 자신을 구해 주길 바랐다. 동궁의 인사권은 아무리 여덟 살이라고 해도 태자에게 있다. 수영이 거부하면 그는 태자부에 머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수영은 환히 웃으며 어서 가라고 떠밀었고, 어쩔 수 없이 그는 교전 지역으로 떠나야 했다.

그리고 란의 거취 문제가 여전히 남아 있었다.

“제 궁녀로 들이겠사옵니다.”

서혜가 석반을 먹는 도중 웃으며 말했다. 이연은 서혜의 밥 위에 나물을 올려 주다 말고 그녀를 흘끔 바라보았다. 서혜의 말투가 통보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는 아주 드물지만 일단 결정하면 서혜는 물러나는 법이 별로 없었다.

구미호를 궁녀로 들이겠다고?

이연은 별로 찬성하고 싶은 마음이 아니었다. 두세 살밖에 안 되었다는 구미호 계집아이가 무슨 시중을 들겠는가. 서혜가 키우겠지. 서혜가 키우라고 아이를 받아들인 게 아니다. 이연은 당장 구미호 아이를 숲속으로 쫓아 보내고 싶은 걸 간신히 참았다. 서혜가 이미 마음을 먹은 이상 건드리는 건 별로 좋은 수단이 아니었다.

“아이는 답답할 것입니다. 황후전은 엄격한 법도로 돌아가고 있으니까요.”

달래는 것만이 최선이다. 이연은 일단 현실적인 부분을 들먹여 보기로 했다. 아장아장 걷다가 네 발로 뛰는 짐승 새끼 같은 것이 황후전에서 어떻게 버티겠느냐는 이연의 말에 서혜가 싱긋 웃었다.

“신첩의 장소이니 신첩이 조율할 것이옵니다.”

“아이가 힘들어하면?”

“폐하, 후궁이 되려면 아이는 교육을 받아야 하옵니다. 후궁으로 들이라 명하셨사오니 그 아이는 교육을 받을 운명인 것이옵니다.”

한마디로 네가 먼저 후궁으로 들이겠다 해 놓고 왜 딴소리냐는 뜻이다.

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이연은 서혜가 어린아이에게 얼마나 약한지 아주 지긋지긋하게 알고 있었다. 이연은 수영이가 좀 크기까지 꽤 불편하고 마음이 복잡했었다. 아이는 귀여웠다. 다시는 가지지 못할 아이이기 때문에 더더욱 귀했다. 그러나 서혜가 가끔 아이를 자신보다 우선시한다는 것에 감정이 치밀어 오르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이연은 내색하지 않으려 애썼고 서혜도 그러지 않으려고 노력하였으나, 가끔은 그런 일이 벌어졌고 서혜는 순간적으로 이연보다 수영을 선택할 때가 있었다.

제 씨를 받아 서혜가 직접 낳은 아이일 때도 그러했는데 심지어 굴러 들어온 구미호 새끼라니. 이연은 정말이지 그러고 싶지 않았다.

이연이 아무 말도 없이 서혜를 바라보기만 하자 서혜가 다시 웃었다.

“신첩이 양녀처럼 잘 기르겠사옵니다.”

“…….”

“결코 수영이 때처럼 폐하의 성심을 상하게 하지 않겠사옵니다.”

이연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알고 계셨습니까?”

서혜는 수영이에게 여러 감정을 가지고 있다. 하나밖에 없는 자식에 대한 기대, 다른 가지에서 그 아이의 목숨을 빼앗았다는 것에 대한 죄책감, 그 가지의 아이처럼 수영이가 설마 성년이 되지 못하고 죽는 건 아닐까 하는 두려움. 여러 가지가 뭉쳐 있다. 그래서 이연은 결코 한 번도 자신의 감정을 표현한 적이 없었다.

“폐하의 관대한 은총에 신첩은 그저 감읍할 따름이옵니다.”

서혜는 이연이 인내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녀는 안 그러려고 노력했지만 순간순간 자신도 모르게 마음속의 모성이 튀어나왔다. 그건 순간이라 그녀 자신이 튀어나오는 것에 목줄을 채울 수가 없었다. 수영이가 아플 때, 그 애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 같을 때, 아이가 갑자기 자신을 찾을 때, 그럴 때는 어김없이 동요해 버렸다.

자신은 황후이고 그 누구보다 황제의 곁에 서서 그의 안위를 위해 모든 성심을 다 바쳐야 하는 소임을 가졌다는 걸 알지만 그런 머릿속의 생각은 다 짓뭉개져 버렸다. 이연의 시중을 들다가 뛰쳐나간 적도 있었다. 그저 수영이가, 어디가, 어떻게 잘못된 건지만 생각했다. 머릿속이 하얘졌다.

그래서 수영이를 안고 상황이 진정이 된 다음에는 어김없이 자신이 무슨 일을 저질렀는지 깨달았다. 다른 황제라면 경을 쳤을 상황도 있었다. 그러나 이연은 아무 말도 안 했다. 그는 그저 기다려 주었고 돌아온 서혜가 희게 질린 안색으로 무릎을 꿇으려고 하면 그녀를 일으켜 안았다.

“태자는 괜찮던가요?”

언제나 그 한마디로 그녀를 용서하는 이연에게 서혜는 고맙다는 말도 할 수 없었다. 이연이 아예 없는 일로 만들어 버렸기 때문에.

황제의 윤허 없이 행동했다는 걸 인정하면 그녀는 벌을 받아야 하는 몸이 된다. 그걸 이연이 원치 않았기 때문에 그녀는 언제나 자신의 잘못을 없었던 일로 하고는 했다. 그러나 그 감사와 죄책감은 마음에 깊이 쌓여 있었다.

“황제로서의 관대한 은총이 아니라.”

이연은 손으로 생선살을 집었다. 그의 인생에 처음 있는 일이었다. 젓가락이 더 편하다고 느낄 정도로 느낌이 생소했다. 부드러운 생선살을, 음식을, 손으로 집는다는 건 아주 기괴한 감각이었다. 최소한 이연에게는 그랬다.

자신에게도 그러니 서혜에게는 더욱 그럴 것이다. 서혜는 우아함과 법도로 만들어진 것 같은 이연이 태연하게 맨손으로 생선살을 집는 걸 보고 있었다. 그녀의 눈이 화등잔만 하게 커져 작아질 줄을 몰랐다. 그녀는 눈을 불안하게 깜빡거리며 그 이연의 손과 이연의 얼굴을 번갈아 보았다. 그가 무엇을 할 생각인지 그 의도를 가늠할 수 없어 하는 표정이었다.

이연은 생선살을 서혜의 입술에 가져다 대었다. 서혜가 깜짝 놀라 몸을 뒤로 물렸다.

“태자는 이렇게 아이를 키운다더군요.”

수영이가 맨손으로 아이에게 음식을 먹이는 걸 보기는 했으나 그건 생선살은 아니었다. 만두 같은 손으로 집을 만한 음식들이었다. 서혜가 마른침을 삼키며 대답했다.

“예, 폐하.”

“황후께서도 이렇게 키우실 겁니까?”

생선살을 든 손이 다시 서혜의 입술에 다가왔다. 서혜는 어쩔 줄 모르고 있다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연은 지금 경고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까지 해 주면 내 기분이 어떨 거 같아, 라고 묻는 눈이 차가우면서도 뜨거웠다.

“정녕 아니 그러실 겁니까?”

이연이 약조를 청하듯 물었다. 서혜가 이번에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이연이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이건?”

서혜의 눈이 불안으로 가득 찼다. 이연은 미소를 띤 채 물었다.

“거절할 건가?”

거절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이연이 존대를 멈췄을 때는 거절이 가능하다는 걸 서혜는 알고 있었다. 그럴 때 그는 황제로서가 아니라 남편으로서 서혜를 대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서혜야.”

이연이 서혜에게 대답을 재촉했다. 서혜가 눈을 내리깔고 생선살을 바라보았다. 이연의 손은 명필가답게 곧고 깨끗하다. 그리고 그 손가락 끝은 생선살로 더러워져 있었다. 이연은 이것을 먹으라 하는 것이다.

서혜는 눈을 감았다. 그리고 천천히 입을 벌렸다. 이연은 그 입술을 보며 생각했다. 차라리 그만하고 입을 맞출까. 그러나 이연은 서혜가 먹는 걸 보고 싶었다. 자신의 더럽혀진 손가락을 핥고 그 생선살을 먹는 걸. 서혜처럼 고귀하게 키워진 여인이 인간 사회에 대해 배워 먹지 못한 구미호 아이처럼 그렇게 먹는 모습이 보고 싶었다.

그래서 이연은 서혜의 입 안에 천천히 손가락을 넣었다. 서혜는 입 안에 들어오는 손가락에 당황한 듯 힉, 소리를 작게 냈다. 그러나 그뿐 그녀는 생선살을 받아먹었다. 혀로 핥아서 조금씩 먹기 시작했다. 이연의 손가락을 핥는 그 느낌이 마치 소동물이 할짝거리는 듯했다.

“깨끗하게 해 줘.”

눈을 감고 듣는 이연의 목소리가 나직했다. 으르렁거리는 듯도 했다. 서혜는 헐떡이며 이연의 손가락을 빨았다. 이상한 기분이었다. 생선 맛은 언제부터인가 사라졌다. 그저 손가락과 혀를 얽고 있을 뿐이었다. 응, 으응. 서혜는 나지막이 신음했다. 목으로 우는 듯한 그 신음이 자신의 귀에는 제대로 들리지도 않았다. 그저 핥고 있을 뿐이었다.

어느 순간에 열중했던 것 같다. 손가락과 잠자리를 하는 기분이 들었다. 계속 얽히고설켜서, 이연의 손가락이 자신의 입 안을 휘젓는 것인지 머리를 휘젓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머리가 뜨거워졌다.

***

구미호 란에게 심씨의 성이 내린 것은 가을의 일이다.

심 란. 다소 애매한 이름이 되었으나 태자가 고르고 황제가 정한 이름을 논할 자는 아무도 없었다. 란은 심씨의 성을 받아 황후의 먼 친척이 되었고 황후의 손에 자라게 되었다. 란이 궁녀로 들어오게 되는 안을 거절한 건 태자였다. 수영은 란에게 시중을 드는 일을 시킬 수는 없다며 강력하게 반발했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후궁으로 삼겠다고 하는 통에 어쩔 수 없이 일은 그리 진행되었다.

란이 여덟 살 무렵 태자인 수영은 출정을 떠났다. 전쟁이 발발했기 때문이다. 란은 수영의 품에서 밤새도록 울었다.

란은 황후전에서 살게 되었다. 자그마한 아이는 늘 황후의 뒤를 졸졸 쫓아다녔다. 황후는 아이를 안아 주지는 않았으나 자애롭게 돌봤고 아이는 무럭무럭 컸다. 어느 순간부터 아이는 귀와 꼬리를 숨기는 기술을 가지게 되어 언뜻 보기에는 기묘한 머리색과 눈 색을 가진 새하얀 피부의 미소녀로 보이게 되었다.

황후의 구미호.

란이 그렇게 불리게 된 것은 열두 살 무렵의 일로, 그쯤에 란은 이미 황궁 법도에도 능했고 황궁 생리에도 통달해 있었다. 오 년 동안 그녀는 눈부시게 성장하여 홀로도 황궁에서 무시당하지 않는 존재가 되었다. 그동안 란은 태자에 대해 한마디도 꺼내지 않았다. 사람들은 어린 구미호가 큰 은혜와 정을 베풀었던 태자를 잊었다고 소곤거렸다.

은근히 물러서 여러 후궁에게 늘 한탄을 듣고 그들의 괴로움을 달래 주는 황후와는 달리 이 구미호는 피도 눈물도 없기로 유명했다. 후궁들이 궁 안에서 가장 싫어하는 인물이었다. 란은 누구보다 황후의 이익을 중시했기 때문에 다른 후궁들의 안위는 알 바가 아니었다. 그리고 그런 란의 태도는 이연을 매우 흐뭇하게 하여 란은 실질적으로 후궁에서 높은 권세를 누리고 있었다.

그리고 란이 열두 살이 된 해, 오 년 만에 태자가 황도로 귀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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