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3.
아침인가.
서혜는 눈을 깜빡거렸다. 어젯밤 이연은 오래도록 그녀를 안았다. 기분이 좋지 않았다면 거짓말이지만 최근 밤마다 지속된 정사 때문인지 몸이 좀 뻐근했다. 불편하고 몸이 무거워 움직이기 힘들다고 생각했을 때 이연의 손이 서혜의 가슴을 파고들었다.
“폐… 하….”
“응….”
이연의 목소리가 잠겨 있었다. 그의 커다란 손이 서혜의 가슴을 움켜쥐고 엄지손가락이 유두를 어루만졌다. 밤에 괴롭혀졌던 유두는 약간 만져지는 것만으로도 딱딱해지기 시작했고 서혜는 이연의 품에서 몸을 비틀었다. 단 신음이 서혜의 붉은 입술 사이로 흘러나왔다.
“응….”
이연의 것이 서혜의 엉덩이 사이를 파고들었다. 아침이라 단단해진 것은 곧바로 서혜의 가랑이 사이를 문지르기 시작했다. 서혜가 고개를 들며 숨을 헐떡이자 이연이 그 목에 이를 박았다.
서혜의 몸은 이연이 남긴 흔적들로 늘 엉망이었다. 사랑받은 몸. 궁녀들이 자신 몰래 그렇게 지칭한다는 걸 서혜도 알고 있었다. 부끄러워서 아는 척하지 않았지만 그 말을 들을 때마다 서혜는 가슴이 뛰었다. 사랑받은 몸. 궁녀들은 서혜의 몸에 남은 흔적들을 집요하게 바라보며 밤중의 정사를 염탐하듯이 굴었고 그녀는 그게 늘 부끄러웠다.
“안에, 넣을까?”
이연이 나지막한 신음과 함께 물었다. 서혜는 안에 넣는 것도 좋아하지만 종종 이렇게 비벼 주는 것도 좋아했다. 흐윽, 흑. 흐느끼는 서혜의 소리를 뒤에서 들으며 이연은 눈을 감았다. 머리가 뜨거워질 정도로 흥분이 차오르는 것도 좋지만 이렇게 아침나절을 나른하게 보내는 것도 맘에 들었다.
“서혜야, 응?”
서혜에게 물어도 서혜는 신음만 흘릴 뿐 말이 없었다. 아마 말을 할 만큼의 이성이 돌아오지 않은 듯했다. 이연은 손을 앞으로 돌려 그녀의 작은 살점을 만져 주면서 뒤에서부터 천천히 안으로 집어넣었다. 서혜가 다리를 한쪽 든 채로 이연의 것을 받아들이며 크게 숨을 토했다. 헉. 그 숨소리는 곧 히끅거리는 울음소리 같은 것으로 변해 갔다.
“안에 젖어 있네.”
“아….”
“남아 있나 봐, 서혜야.”
늘 남아 있었다. 그걸 알면서도 이연은 늘 새삼스럽게 이런 말을 했다. 서혜의 귀가 빨개지는 것을 보려고.
이연의 몸이 움직일수록 서혜의 몸도 흔들렸다. 배에서 흔들리는 것처럼 둘은 천천히 절정을 향해 나아갔다. 마지막의 순간에 이연은 서혜를 빈틈없이 끌어안았다. 그 옥죄는 품에서 서혜는 날아올랐다. 뜨거운 끝, 그다음은 연모하는 님의 품이었다.
안온한 아침이었다.
그러나 아침이 다 평온하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그날, 오랜만에 조반을 함께하는 서혜와 이연에게 소식이 날아들었다. 상장군이 아주 의기양양한 얼굴로 편전에서 뵙기를 청한다는 것이었다. 물론 저가 이 시간에 왔으니 한참을 기다리겠으나 이 시간에 왔다는 건 자신은 한시도 기다릴 수 없다는 뜻이 된다. 그렇다는 것은…. 이연의 눈이 가늘어졌다.
수영이가 상장군에게 그 구미호를 보내기로 했다고?
어찌하여 그런 결정을 내렸을까? 아비로서는 알고 싶지만 수영이는 요즘 좀 컸는지 통 아비에게 와서 이러쿵저러쿵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이연은 아들이 커 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하여 굳이 참견하지 않는 쪽을 택했다. 아직 제 어미하고는 많은 이야기를 하는 것 같으니 필요한 이야기는 서혜를 통해서 들으면 된다고 생각했고 사실 그게 아니어도 여러 경로를 통해 그는 많은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수영이에게 무슨 이야기를 했기에.”
이연의 중얼거림에 서혜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수영이? 이연은 서혜의 염려로 가득한 얼굴을 보고서야 드물게도 자신이 의도하지 않은 말을 입 밖으로 꺼냈다는 걸 깨달았다.
“태자에게 무슨 일이 있사옵니까?”
서혜는 목숨 걸고 낳은 아이를 참으로 귀히 여겼다. 서혜의 품에서 아이는 단단하고 바르게 자랐다. 하지만 서혜는 아이를 보호하고 싶어 했고 아이는 조금 유약할 수밖에 없었다. 이연은 생각한다. 수영이 자신과 서혜의 자식이 아니었어도 이 황궁에서 잘 헤쳐 나갈 수 있었을 것인가, 하고.
“폐하…?”
“아아. 상장군이 오가에 구미호 아이를 양녀로 들이겠다고 하고 있습니다.”
“오가면… 그 아들만 열둘인.”
서혜는 아주 점잖게 말했지만 ‘딸이 갖고 싶어서 환장한’에 가까운 표현이었다. 이연은 쓰게 웃었다.
“맞아요, 그입니다.”
“연이를 오가에 보내면 후에 후궁으로 들일 때 마찰이 우려되옵니다.”
그렇게나 원하는 딸자식을 보고 싶을 때 잘 볼 수도 없고 권력의 태풍에 한순간에 쓰러질 수도 있는 후궁 자리에 잘도 보내고 싶겠다. 상장군은 제가 원하는 여식을 가지면 그다음에는 후궁으로 들이지 않으려고 갖은 수단과 방법을 동원할 공산이 컸다.
“수영이가 그런 생각은 못 하더라도 어찌 되었든 오가의 여식이 되면 한동안 그 가문에 가 있을 터이고, 그걸 수영이가 바라는 건 아닐 텐데 어찌하여 수영이가 오가에 아이를 보내려 마음먹었는지 알 수가 없군요.”
이연의 말에 서혜는 탕을 뜨다 말고 멈칫했다. 뭔가 말이 이상한데?
“어찌하여 그것을 수영이가 결정하옵니까, 폐하?”
그 윤허는 황제가 내리는 것인데 마치 수영이에게 결정권이 있는 것처럼 말을 하고 있지 않은가.
서혜가 하는 말에 이연이 난처하게 웃었다. 그는 어찌 대답할까 잠시 고민하였으나 거짓말을 하고 싶지는 않아 솔직하게 말했더니 서혜가 눈을 크게 떴다.
“폐하!”
‘그런 일을 수영이의 손에 맡기다니, 그 아이는 고작 여덟 살이옵니다!’를 한마디로 줄인 ‘폐하’였다. 이연이 난처하게 웃었다.
“저는 당연히 태자가 거절할 줄 알았습니다.”
“어린 태자에게 그런 무거운 결정을 맡기시다니요.”
서혜의 흐려진 얼굴을 보고 이연이 미안해하며 그녀의 뺨을 쓰다듬었다. 하지만 한편으로 이연은 생각하고 있었다. 곧 태자는 전장에 나가야 한다. 전공을 세워야 한다. 진검을 들고 사람을 죽이게 될 것이다. 그것도 여러 명. 혹은 수십 명. 그리고 수천 명의 목숨이 오가는 결정을 내려야 할 수도 있다. 그렇게 태자는 성장할 것이다.
서혜야, 그것이 네 마음을 얼마나 아프게 할까?
그러나 그 아이는 그렇게 커야 할 운명인 것을.
“제가 잘못했습니다.”
하나 서혜의 얼굴에 먹구름이 드리운다면 그것은 다 자신의 잘못이라고 이연은 생각했다. 이연은 반찬을 하나 집어 서혜의 입에 넣어 주었다. 서혜가 먹다 말고 피식 웃었다. 왜 웃느냐고, 이연은 서혜의 얼굴에서 눈길 한 번 떼지 않고 눈으로 물었다.
“생치 산적이옵니다, 폐하.”
서혜의 말에 이연은 무슨 뜻인지 몰라 그게 왜, 라는 눈을 했지만 서혜는 더 말하지 않았다. 서혜는 자신이 처음으로 좋아하게 된 고기가 꿩이라는 것도, 그게 이연 때문이라는 것도, 이연이 처음 집어 준 음식이 바로 생치 산적이었다는 것도 그냥 말하지 않았다. 그런 것들은 마음속에 머무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입 밖으로 꺼내어 조금이라도 새어 나가게 하고 싶지 않았다. 오래도록 마음에 고여 있기를. 그리하여 이 온기를 계속 자신에게 나눠 주기를 소망했다.
상장군은 득의양양했다. 세상을 다 가진 얼굴로 알현을 청한 그는 두 시진이나 기다렸으나 지친 기색 하나 없이 팔팔해 보였다. 이연은 얼굴을 보자마자 독설을 퍼부었다.
“생선처럼 펄떡거리며 신선한 것이 목을 치면 딱이겠구나.”
이연의 독설에도 상장군은 너털웃음을 지어 보였다.
“소신처럼 전쟁을 잘하는 생선이라면 신하로 두시는 것이 나라에 이로울 것으로 사료되옵니다.”
검을 들고 전쟁을 주도하는 생선의 모습이 두 사람의 머릿속에 잠시 그려졌다 사라졌다. 두 사람뿐만 아니라 둘 사이에서 대화를 듣고 있던 태감의 머릿속에도 그 전쟁하는 생선은 잠시 머물렀다. 태감이 희미하게 미간을 찌푸렸다. 그러는 사이 이연이 물었다.
“그래, 어떤 방법으로 태자를 구워삶았느냐?”
“소신은 그저 충심을 올렸나이다.”
“퍽이나.”
여덟 살짜리가 홀딱 빠진 여우를 타인에게 넘겨줄 때는 분명 그럴 만한 사유가 있어서이다. 그 사유가 뭔지 궁금했는데 상장군은 싱글거릴 뿐 사유를 말하려고 들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태자와 상장군 사이의 일을 캐묻기도 애매했다. 태자를 믿지 못하는 것 같기도 했고 상장군을 의심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하여 이연은 그냥 입을 다무는 쪽을 택했다.
그사이 상장군은 내관에게 종이를 하나 바쳤다. 그 종이는 내관과 내관을 통해, 최종적으로 태감의 손을 거쳐 이연에게로 당도했다. 종이를 펼치자 거기에는 무언가 적혀 있었다.
명명 : 오사현
무엇인지야 뻔했지만 이연은 모르는 척 물었다.
“이게 무엇이냐?”
“소신 여식의 이름이옵니다. 호적에 올리기 전 폐하의 윤허를 청하옵니다.”
품에 한 번 안아 보지도 못하였을 터인데 벌써 제 딸이란다. 이연이 한쪽 눈을 찡그렸다.
“사현이라. 사특하다고 아주 방을 붙이지 그러냐.”
“글자가 다르온데.”
“시끄럽다. 이 이름은 안 돼.”
이 이름을 바로 윤허해 주면 가뜩이나 제 여우를 한동안 빼앗기게 되어 속상할 태자의 쓰린 가슴에 소금을 뿌리는 형국이 아니겠는가. 이연은 제아무리 멋진 이름을 가져온다고 하더라도 한동안은 이름을 받아 주지 않으리라고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