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
‘사특하지 않습니까.’라는 말을 하며 황후에게 충심을 고하려고 했던 궁녀는 월아에게 질질 끌려 나왔다. 월아는 긴 소리를 하지 않았다. 그녀는 입을 벌리고 자신의 잘린 혀를 보여 주었다. ‘네 혀도 잘리고 싶으냐.’라는 의미의 간단한 몸짓에 궁녀는 완전히 오그라들었다.
그런 잠시간의 소동이 있고 나서 구미호 아이는 따뜻한 목욕통에 들어가게 되었다. 아이는 발버둥 쳤고, 결국 수영이 같이 안고서 들어갔다. 아이는 수영이 저를 안고 들어가자 엉엉 울었지만 곧 따뜻한 물에 익숙해져서 노곤하게 늘어졌다.
그사이 음식이 왔다. 아이는 당연히 수저를 사용하지 못했다. 서혜가 주는 음식은 경계하며 컁컁 우는 통에 수영은 아이와 같이 목욕통에 들어온 걸로 모자라 젖은 손을 닦고 손으로 음식을 집어 아이에게 먹여야 했다. 아이는 수저로 음식을 주면 먹지 않았다. 오로지 손으로 준 것만, 그것도 수영이 준 것만 겨우 경계하며 먹었다.
그러나 정작 음식은 또 입에 맞았던 모양이다. 수영의 품 안에서 아이는 오물오물 음식을 잘도 먹었다. 아이는 수영이 누군지도 몰랐고 그저 음식을 달라며 아기 새처럼 아, 하고 입을 벌릴 뿐이었다. 태자에게 음식을 직접 먹여 달라고 당당히 요구하는 아이가 꼬리를 흔들 때마다 물이 푸르륵 튀었다.
“태자 전하께 저리 무엄할 데가!”
태자의 궁녀들이 분해 미칠 것 같은 얼굴로 입술을 깨물었지만 정작 수영은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그는 이런 아이가 처음이었다. 아이는 아주 천진난만하고 자신만 바라보고 있었다. 잠시 모후에게 엄마, 라고 해서 제 기분을 상하게 하더니만 곧 다시 수영에게 달려와 안기고 수영만 바라보았다. 세상에 자신밖에 없는 것처럼 보는 보라색 눈이 신묘하고 아름다웠다.
별로 귀찮지 않았다. 음식을 손으로 집는 것은 굉장히 불편하고 더럽고 찐득거리고 말도 안 되는 짓이었지만 그래도 아이의 까끌까끌한 혀가 손을 핥을 때마다 ‘뭐 어때.’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옷을 입은 채로 목욕탕에 들어온 건 무척 찝찝하고 번거로웠지만 아이가 달라붙어 있자 뿌듯하기까지 했다. 이 아이는 내가 아니면 안 되나 봐. 세상에서 가장 대단한 사람이 된 기분이었다. 그런 사람이 될 수 없다는 걸 잘 알면서도.
세상에서 가장 대단한 사람은 부황이니까.
넘어설 수 없고 넘어서서도 안 된다. 수영은 귀에 못이 박이도록 들었다. 부황이 어떤 존재인지. 부황이 어떻게 형제와 아버지와 어머니를 모두 없애고 그 자리에 올랐는지. 아무도 수영의 앞에서 말하지 않았지만 뒤에서는 모두가 소곤거렸고 수영의 그림자는 그 말들을 듣고 컸다.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부황은 자신에게 큰 애정을 가지고 계신다. 수영은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또한 부황이 모후를 원하고 모후가 생산한 자식이 자신 하나뿐인 이상 자신에게 별문제는 없으리라는 것도 알았다. 그러나 여덟 살인 수영에게는 머리로 아는 것보다 가슴으로 느끼는 공포가 더 컸다. 침대 밑에 무엇이 있는지, 창밖에 도사리는 검은 것이 무엇인지, 여덟 살은 아직 그런 것들이 무서울 나이였다.
애초에 수영은 여덟 살의 이연에 비해 사랑을 많이 받고 큰 만큼 이연보다 밝고 대신 유약한 구석이 있었다. 모든 걸 스스로 헤쳐 나와야 했던 이연에 비하면 고통은 당연히 부모가 해결해 준 수영이기에, 그 부모가 등을 돌릴지도 모른다는 공포는 늘 등골이 오싹해지는 것이었다.
문제는 황궁이라는 곳이 그 공포에서 벗어나기가 어려운 곳이라는 점이었다. 사람들은 늘 언젠가는 황제가 황후에게 질릴 것이라고 떠들어 댔다. 올해쯤인가, 아니면 내년쯤인가. 그러면 태자도 끈 떨어진 연이 될 거라고 저주를 퍼부었다. 그때마다 수영은 못 들은 척, 전혀 아닌 척 고개를 당당히 들었지만 속으로는 곪고 있었다.
너는 아마 부황을 만나도 나를 더 좋아하겠지.
수영은 구미호 아이에게 음식을 주면서 생각했다. 이 아이는 자신이 발견했고 자신이 구했다. 부황과 일절 상관없는 아이다. 자신만의 것이다.
혹여… 부황이 자신에게 내린 모든 것을 거둔다고 해도 이 아이는 거둘 수 없다. 부황이 내린 것이 아니므로.
“모후.”
구미호 아이에게 다정한 눈을 하고 음식을 먹이던 수영이 고개를 들어 서혜를 불렀다. 서혜는 좋지 않은 예감을 느끼며 억지웃음으로 화답했다.
“모후 여기 있어요, 태자.”
“저는 이 아이를 키우고 싶습니다.”
좋지 않은 예감은 틀리는 법이 없다.
서혜의 웃음이 더욱 쓴맛을 띠었다.
***
“구미호?”
서혜의 서신을 보던 이연은 저도 모르게 입 밖으로 한마디 내뱉고 말았다. 태감이 이연의 말에 아아, 하고 속으로 생각했다. 황제의 태감이 되려면 모든 곳에 간자를 깔아 두는 건 기본 소양이다. 따라서 태감은 그 구미호 아이의 일을 이미 알고 있었다.
“이백 년도 전에 발견된 게 마지막이었지 않나.”
이연이 기억을 더듬었다. 마지막으로 그 존재를 드러낸 게 기록에 의하면 이백 년 전쯤이었던 것 같은데? 이연의 말에 태감이 정중하게 고개를 숙여 보였다. 그렇다는 뜻에 이연이 눈살을 찌푸렸다.
“이백 년 전의 괴물이 왜 지금 나타난 거지?”
“신목이 없어져서일지도 모릅니다, 폐하.”
태감의 나지막한 말에 이연이 피식 웃었다.
“짐이 너를 안 죽일 거라고 너는 참 자신하는구나.”
신목을 제거한 일은 이연의 치세에 있어서 가장 큰 약점 중 하나였다. 그 이후 선나라는 평화롭지만 사람들은 아직도 신벌을 두려워하고 세간에서는 여러 미신들이 떠돌고 그만큼 사기도 횡행했다. 그런 이연의 앞에서 대놓고 신목을 운운할 수 있는 자는 별로 없었다.
이연의 비릿한 웃음에 태감이 잠시 동안 말이 없었다. 이윽고 그의 목소리가 더 낮아졌다.
“어찌하여서 그리 말씀하시는지 소인은 그 뜻을 감히 헤아릴 수가 없나이다.”
“뭐?”
“사람이 죽는 걸 결코 기꺼워하시지 않으시면서, 어찌하여서….”
당금의 황제는 사람이 죽는 걸 싫어한다. 그는 어떻게든 인명을 살리려고 노력한다. 그것이 때로는 합리적이지 않다 하더라도 그는 한 사람의 목숨이라도 살릴 수 있다면 합리를 따지지 않았다.
종종 그 부분이 조정 신료들과 마찰을 일으키기도 했었다. 조정에서는 황제가 작은 것에 연연한다며 불만이 나오기도 했었다는 걸 태감은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선황과는 달리 정복 전쟁에도 관심이 없었다. 그저 모두가 평안하기만을 바라고 사람이 최소한으로 죽는 선택만을 했다. 역사에 위대한 군주로 남는 것에도 별 관심이 없어 보였다.
그런 황제가 신목 하나 운운했다고 목을 뎅강 자를 리가. 태감은 종종 황제가 왜 폭군처럼 말하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이연은 태감의 말을 듣자마자 눈살을 찌푸렸다.
“태감.”
이연의 목소리가 평소와는 달리 조금 차가워졌다.
“예, 폐하.”
“나에 대해 너무 아는 척하지 마라. 정말 죽여야 할 상황이 오면 곤란하니까.”
짐이 아니라 ‘나’라고 분명히 이연은 말했다. 이건 진심이다. 태감은 등골이 오싹해지는 걸 느끼며 고개를 숙였다. 그가 고개를 숙인 걸 본 이연이 고개를 돌리더니 곧 다시 말했다.
“그나저나 수영이가 웬일로 구미호 같은 것에 관심을 보이지? 본래 소유욕이 없는 아이인데.”
태감은 왜 태자가 소유욕이 별로 없는지 잘 알고 있었다. 눈앞의 황제 또한 태자 시절 그러했으니까. 이유는 간단하다. 자신의 것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은 그 사실을 알면서도 손에 넣으려 더욱 탐욕스럽게 굴지만 어떤 사람은 자신의 것이 아니라고 생각되면 놔 버리는 것이다. 황제의 하나밖에 없는 자식은 성격도 황제를 많이 닮았다.
그러나 이제 태감은 말할 수 없게 되었다. 아까 황제의 눈빛은 진심이었다. ‘쓸모 있는 너를 죽이게 하지 마.’라고 그 눈은 말하고 있었고 태감은 그제야 황제가 자신을 꽤 봐주고 있었다는 걸 실감할 수 있었다.
황제가 그동안 이렇게 적당히 간섭하는 걸 기꺼워하는 줄 알았다. 믿을 만한 어른이 없었던 황제로서는 그런 사람을 자신으로 대체하고 즐길 수 있는 수준에서 즐기고 있는 게 아닌가 생각했었는데 완벽한 오산이었다.
“어찌 되었든 이 요망한 아들내미가 서혜를 구워삶아 이런 청을 보냈으니 거절이야 할 수 없지.”
마음이 약한 서혜는 양녀를 들여야겠다고 써 놓았지만 이연은 그 말을 들어줄 생각은 없었다. 서혜의 자식은 수영이 하나뿐이다. 그 연약한 몸으로 아이를 낳느라 서혜는 얼마나 죽을 고생을 했던가. 아니지, 죽었었지. 그러니 그 귀한 자식 자리에 구미호같이 삿된 것을 올릴 수는 없음이다.
흠 하나 없이 그저 빛나게만 해 주고 싶은 지아비의 마음 따윈 알아주지 않는 여인. 이연은 픽 웃으며 서신을 손으로 더듬었다. 서혜의 필체는 단정하고 우아하다. 둥글며 그림을 그린 듯이 화려한 이 필체를 갖기 위해 서혜는 어릴 때 무척 노력하였을 것이다.
한 자, 한 자. 새기듯이 써 놓은 서신은 연정과 염려로 가득 차 있었다. 이연은 서신의 글자를 하나하나 손가락으로 덧그리다 태감에게 흘끗 시선을 주었다.
“예부상서를 불러라.”
“예, 폐하.”
태감이 눈짓하자 내관 하나가 소리도 내지 않고 조심스럽게, 그러나 빠르게 움직여 편전을 나갔다.
이연은 톡, 톡, 손으로 책상을 두드리며 잠시 생각에 빠졌다.
구미호는 삿되다고들 하지만 어차피 이백 년에 마지막으로 기록된 생물이다. 요물이냐 영물이냐는 결국 포장하기 나름이고 이 상황이 그리 나빠 보이지는 않는 것 같다는 게 이연의 생각이었다. 태자비로야 들일 수 없겠으나 후궁으로 앉혀 놓으면 그럴싸한 선전은 되지 않겠는가.
수영에게는 신목도 꽃잎도 없다. 물론 수영은 ‘다섯 꽃잎이 낳았다’는 엄청난 정통성을 가지고 있으나 수영의 아이는 정통성을 부여받기 매우 어려워질 것이다. 황권이 제대로 선다면 어떻게든 될 수 있겠지만 유리한 고지는 여럿 선점하는 것이 좋다. 구미호는 꽤 괜찮은 발판이다.
보니까 수영이가 그렇게 부르짖던 미모도 있을 거 같고 말이야. 구미호니.
이연은 그저 괜찮은 패를 주머니에 넣겠다는 마음이었지만 수영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수영은 구미호가 자신의 후궁 중 가장 높은 양제에 책봉된다는 말에 아이를 바라보았다. 며칠간 아이를 돌본 수영은 아이에게 푹 빠져 있었다. 아이는 자신이 없이는 먹지도 자지도 않았고 자신이 없을 때마다 주변을 경계하며 꼬리를 세웠다. 그게 귀여웠다.
마치 개나 고양이 같다고 생각했는데 후궁이라니.
후궁이라는 건 결국 자신의 여인이 된다는 뜻이었다. 크면, 언젠가는.
그럴 수도… 있는 건가.
수영은 사뭇 신기하게 아이를 바라보았다. 아이는 하얀 곱슬머리에 보라색 눈을 하고서 그가 입혀 준 침의를 입고 이리저리 뒹굴고 있었다. 털실 뭉치 하나를 가지고 이틀째 즐겁게 놀고 있는 아이를 바라보다 문득 수영이 물었다.
“이름. 너 혹시 이름 있어?”
없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했는데 의외로 아이가 활짝 웃었다.
“연.”
제 이름을 가르쳐 주게 되어서 무척 기쁜 듯한 얼굴이었다. 수영이 “무슨 연?” 하고 묻자 아이가 꼬물꼬물 다가와서는 제 이름을 수영에게 써 주었다. 수영은 그 글자를 보는 순간 눈을 크게 떴다.
‘버릴 연’ 자였다.
버려진 아이라는 걸 수영은 그제야 알 수 있었다. 이름부터 버려졌다는 걸. 그 순간 수영은 참지 못하고 아이를 와락 끌어안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