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몽중연 (90)화 (90/100)

90.

구미호 아이는 아주 작았다. 수영은 일단 아이를 제 장의로 둘둘 말아 번쩍 안아 들었다. 난생처음 무언가를 안다 보니 영 어색하였으나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아이는 꼬리와 귀가 달린 구미호였다. 태자부에서 봤다가는 난리가 날 것인데 이 아이의 부모인지 친구인지는 지금 살해를 당했고 아이는 갈 데가 없었다.

아, 갈 데가 없을 건 또 뭐야.

수영은 아이를 안은 채 울상을 지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아이는 장의 안에서 달달 떨고 있었다. 그 떨림을 느끼고 있자니 어찌 해야 할지 더욱 알 수가 없었다. 태자부 사람들이 달려와 은여우를 보고 환호하려다 말고 수영을 보더니 말에서 훌쩍 뛰어내려 무릎을 꿇었다.

혼자 계시고 싶어 하시는 듯했는데?

방해를 한 건 아닌지…. 태자부 사람들이 눈치를 보다 말고 다들 고개를 들었다. 태자가 장의를 벗어 무언가를 둘둘 말아 안고 있었다. 그 안에 있는 것이 바들바들 떨고 있는 것으로 보아 살아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 도대체 무엇을 안고 있단 말인가.

“전하?”

호위로 따라온 이 중 가장 높인 직위인 중랑장이 당혹스러운 얼굴로 그를 불렀다. ‘도대체 품에 안으신 것은 무엇이옵니까?’를 줄여 한마디로 표현한 것이고 그것을 못 알아들었을 수영도 아니건만 수영은 모른 체했다. 대답할 말이 없었다. 구미호 아이를 안고 있다고 말하면 도대체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었던 탓이다. 잘못되는 경우 삿되다며 당장 죽일지도 모를 일이다.

죽인다고?

수영은 저도 모르게 아이를 안은 팔에 힘껏 힘을 주었다. 그 힘을 느꼈는지 아이가 필사적으로 수영의 품에 달라붙었다.

“나는 걸어가겠다. 내 말이 멀리 있지 않으니 가져가라.”

“전하.”

‘복명하겠사오나 송구하온데 품에 안은 것은 무엇이옵니까?’라는 걸 한마디로 줄인 ‘전하.’였지만 수영은 또 못 알아들은 척했다.

수영은 자박자박 태자부의 이들로부터 벗어났다. 빠르게 벗어나야 했다. 혹여나 이 구미호 아이를 알게 되면 난리가 날 수도 있었다. 그들이 이 아이를 죽이려고 마음먹으면, 그것이 황제의 뜻이라고 결론 내리면 아직 어린 수영으로서는 그들을 다 이길 수가 없다. 아이를 구할 수가 없는 것이다. 태자인 자신의 뜻보다는 부황의 뜻이 위에 있으니까.

어서 가야 해.

부황의 뜻을 바꿀 수 있는 사람은 세상에 오직 하나뿐.

그리고 그 사람은 언제나 수영의 편이었다.

어서 가야 해.

수영은 아이를 안은 채 자박자박 걸었다. 아무리 어리고 가벼운 구미호 아이여도 계속 안은 채 숲길을 걷다 보니 땀이 비 오듯 흐르기 시작했다. 팔이 후들거렸지만 수영은 결코 아이를 놓지 않았다. 어디서 무사들이 보고 있을지 가늠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아이도 무언가를 느꼈는지 장의 안에서 꼼짝도 하지 않은 채 수영에게 찰싹 달라붙어 있었다.

“힘들어?”

한참을 걷던 수영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품속의 아이가 훌쩍훌쩍 울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사람 말을 하는 것 같기는 한데 얼마나 할 수 있는지 모르겠어서 수영은 귀를 잘 기울였다. 약간의 시간이 흐른 뒤 아이가 코를 훌쩍이며 대답했다.

“힘든…, 너.”

힘든 건 너잖아, 라는 말인 것 같았다.

수영은 아이를 고쳐 안으며 괜한 오기에 “안 힘들어.”라고 무뚝뚝하게 대답했다. 사실 힘들어서 얼굴이 빨갛게 상기되어 있었지만 상관없었다. 이 아이를 죽일 수는 없었다. 구미호는 삿되다. 분명 그리들 말하겠지만 이 아이는….

삿되다고 하기엔 너무 여리고 어여쁜데.

제가 죽을지도 모르는데 제 친구 여우를 살려 달라고 도움을 청한 구미호다. 제 몸이 나신인 것도 개의치 않았어. 어느 권문세가의 여식이 이렇게 용감할 것인가.

수영은 이 아이를 꼭 살리고 싶었다. 살려서 어떡할지는 머리에 없었다. 그저 죽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그걸 위해서라면 그는 어디까지라도 아이를 안고 걸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팔이 떨어져 나가더라도 절대로 놓지 않겠다고 이를 악물었다.

“태자 전하!”

겨우 별궁, 모후의 처소에 들어서자 궁녀들이 아연실색해서 수영에게서 아이를 받아 들려 했다. 그게 뭔지도 모르고 일단 태자가 힘들어 보이니 받아 들려는 궁녀들에게 당황한 수영이 고함을 질렀다.

“법도는 어디에 갔느냐?!”

어린 태자의 노성에 궁녀들이 깜짝 놀라 재빨리 무릎을 꿇어 예를 갖췄다. 평소 장난기 많고 서글서글한 태자는 법도에 별로 구애받지 않는 성품이었다. 아니 애초에 모후나 부황을 보는 데 바빠 남들이 예를 갖추든 말든 무심하던 그가 갑자기 법도를 찾으니 다들 혼이 나갈 지경이었다.

“화, 황송하옵니다….”

상궁이 용서를 비는 찰나 수영은 바람같이 그녀들을 스쳐 지나가 모후, 서혜의 처소로 들어가는 데 성공했다. 월아와 서 상궁을 넘어서야 했지만 다행히 그녀들은 앞선 소란을 들었는지 수영의 손에 들린 것에 의아한 얼굴을 하면서도 일단 무릎을 꿇어 순종적으로 예부터 갖춰 보였다.

“태자, 얼굴이 왜 그럽니까?”

“모, 모후. 저는 지금 모후와 바로 독대를 청하옵니다.”

“독대?”

서혜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평소 수영은 독대를 청하는 성미가 아니었다. 아이는 사랑받으며 큰 탓인지 남이 있거나 말거나 제 할 말은 다 하고야 마는 성격이었다. 서혜는 아이의 그런 성정을 조금 고쳐 주고 싶었지만 정작 부황인 이연이 오냐오냐하는 통에 그러지 못했다.

태자의 스승들이 어느 정도는 태자의 성격을 고쳐 수영은 하루가 다르게 우아하고 법도를 아는 태자가 되었으나 모후나 부황의 앞에서 말을 고르는 법은 없었다. 태자는 도리어 모후나 부황에게 무언가를 숨기는 걸 싫어하고 어려워했다. 서혜는 언젠가 저 솔직함이 문제가 될지도 모른다고 여겼지만 이연은 늘 그런 아들을 기꺼워했다.

“장하지 않습니까. 제 부모를 저리도 믿고 따른다는 것이. 다른 게 효겠습니까? 저것이 효이지. 내 아들은 진정 천하에 다시없을 효자이니, 그런 아들을 낳고 그리 길러 주신 황후께 그저 감읍할 따름입니다.”

그런 수영이 갑자기 모두를 물러 달라고 하니 서혜는 겁이 덜컥 났다.

무슨 일이 있는 건가? 건강 문제? 서혜가 재빨리 손짓하자 모두가 일어나 뒤로 물러났다. 물러나면서도 서 상궁과 월아는 서로 시선을 교환하고 태자의 품 안에 있는 것을 한 번 살폈다. 저게, 그 용건 같은데.

궁녀들이 문을 닫는 순간에도 월아는 집요하게 가늘어지는 문틈 사이로 안을 바라보았으나 태자는 문이 완전히 닫힐 때까지 움직이지 않았다. 그런 태자를 걱정스럽게 바라보는 황후만 보일 뿐이었다.

이윽고 문이 완전히 닫혔다.

“태자, 어서 말을 해 보세요. 무슨 일입니까?”

문이 탁 닫히는 소리가 나자마자 서혜는 바로 말을 꺼냈다. 하나밖에 없는 자식이다. 설마 어디가 아프기라도 한 걸까. 심장이 덜컹거리는데 정작 단둘이 되니 수영이는 뭔가 불편한 듯 입을 달싹거렸다.

“태자!”

서혜가 벌떡 일어나며 고함을 쳤다. 마음이 이렇게 애달픈데 왜 아무 말도 안 하는 것이냐고 질책하려는 순간이었다.

컁!

있어서는 안 되는 소리와 함께 장의가 확 떨어졌다. 서혜는 태자의 발치에 뭉쳐진 장의를 한 번, 그리고 태자의 품에 안겨 있는 어린아이를 한 번 바라보았다. 컁! 하얀 머리에 보라색 눈. 눈을 녹인 듯이 지나치게 흰 피부. 어여쁘고 기묘한 어린아이의 머리에는 귀가 달려 있었고 엉덩이에는 꼬리가 있었다. 그리고 아이는 태자의 품에 안긴 채 서혜에게 컁! 하고 짖고 있었다.

그게 ‘마치 화내지 마!’ 라고 말하는 것만 같아서 서혜는 얼이 빠졌다. 그녀는 다시 털썩 자리에 앉아 버렸다.

“이게…?”

이게 뭐냐고 해야 할지 이게 용건이냐고 해야 할지 알 수가 없다.

서혜가 멍하니 컁, 컁 짖는 아이를 손가락으로 가리키자 수영은 재빨리 아이를 꽉 끌어안았다.

“쉿. 내 어머니셔. 짖는 거 아니야.”

모후라고 말해야 했지만 이 비루한 구미호 아이가 모후라는 말을 알아들을지 알 수가 없어서 수영이는 결국 어머니라는 말을 써야 했다. 그러지 아이는 알아들은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보라색 눈이 반짝반짝한 것이 마치 보석 같아서 수영이 고개를 조금 숙여 자세히 보려는 순간 홱, 하고 구미호 아이가 고개를 돌려 서혜를 바라보았다.

그러더니 훌쩍 수영의 품에서 뛰어내렸다. 그 순간 수영은 아이를 잡아챌 뻔했다. 여기까지 힘들여 안고 온 게 누군데 이렇게 쉽게 가 버리는 거냐! 그는 화를 낼 뻔했지만 모후의 앞이라 간신히 참았다.

“어머니?”

갸웃갸웃할 때마다 귀가 쫑긋거렸다. 아무래도 진짜 구미호인 것 같은데.

“그래.”

서혜는 아연했지만 대답했다. 구미호 아이는 너무 작았다. 그리고 갈비뼈가 드러나 보일 정도로 말라 있었다. 도대체 얼마나 못 먹은 것일까. 이 숲에는 오로지 자두나무밖에 없는데 육식수인 구미호가 잘도 그것들로 연명했구나 싶었다.

아니, 아직 자두가 열리지도 않았으니 이 어린 것은 도대체 무엇을 먹었을까.

아이는 사족 보행으로 살금살금 다가오더니 천천히 손을 내밀어 서혜의 무릎에 얹었다. 얹어도 되는지 어떤지 가늠해 보는 것처럼.

“엄마.”

너의 엄마는 아닌데.

서혜는 흘끔 수영이에게 시선을 주었다.

“구미호가 삿되다 어떻다 하여도 이것도 생명. 살던 곳으로 보내 주어야….”

“갈 데가 없다고 합니다.”

“갈 데가 없어?”

그동안은 어디에 있었는데, 라고 서혜가 물으려는 찰나 수영이 먼저 대답했다.

“…태자부의 병사들이 친구인지 어미인지를 죽인 것 같습니다. 사냥 중에요.”

그 말을 듣자마자 갑자기 아이는 수영을 한 번 보고 서혜를 한 번 보았다. 눈을 느릿하게 깜빡일 때마다 눈물이 고이기 시작하는 것을 서혜는 당혹스럽게 지켜보았다. 이윽고 아이가 속삭였다.

“엄마….”

친구가 아니라 엄마였다고 말하는 아이의 눈에서 눈물이 또로록 떨어졌다. 서혜는 아아, 하고 한숨을 쉬었다. 아무래도 자신은 이 구미호 아이를 내칠 수 없을 것 같다는 예감이 강하게 들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