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9.
옷을 벗지 않은 이연의 몸에선 여전히 꽃향기가 났다. 서혜는 꽃향기에 감싸인 채 다리를 열었다. 조금 연 다리를, 이연이 가차 없이 더 열어젖혔다. 서혜의 늘씬한 다리가 이연의 손에 잡혀 허공에서 벌어졌다.
이연이 들어오는 순간 서혜의 몸이 파드득 튀었다. 이연은 서혜의 몸을 잡아 누르며 안으로 더 들어섰다. 서혜는 잔뜩 좁아져 있었다. 흥분한 탓이다. 흥분하기 전에 삽입하는 게 좋았을까. 이연은 서혜가 앓는 것을 보며 생각했다. 서로의 크기가 잘 맞는 편은 아니었다. 그녀는 좁았고 그는 컸다. 서혜는 많이 익숙해져 아파하진 않았지만 버거워했다. 몸을 바르작거리는 서혜가 화살에 꿰인 날짐승처럼 가여웠다.
이연은 그것에 흥분했다. 날개를 짓이겨 버린 것 같아서 머리가 뜨거워졌다. 그녀는 평생 그의 것이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그녀는 평생 제대로 그의 것이었던 적이 없었다. 마음이 그의 것이 아니거나 혹은 호시탐탐 누군가가 그녀를 노리고 있거나 했다. 지금 신궁을 폐쇄하고 신목을 자른다고 해서 그녀를 노리는 사내가 완전히 없어지리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천하제일미. 그는 그 말이 진심으로 짜증 났다. 서혜의 얼굴이 조금 못나도 괜찮을 듯했다. 서혜가 예쁘지 않았어도 그는 서혜를 무척 귀하게 여기고 모든 애정을 쏟아부었을 것이다. 아름다워서 마음에 품은 것이 아니었으므로.
너무 아름다운 것은 모두가 노리는 꽃이 된다. 서혜의 이런 모습을 누군가 본다고만 생각해도 흉포한 마음이 들이찰 지경이었다. 하지만 더 참을 수 없는 건 서혜의 눈이다. 서혜는 지금 이연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흐릿한 눈. 그 눈에는 연정과 신뢰만이 가득했다. 서혜는 이런 눈을 아무에게나 하지 않는다. 이연이 알기로 그녀의 생에서 이런 시선을 받아 본 사람은 자신이 유일했다. 그 유일성이 깨지는 것. 그때 이연은 자신이 무슨 짓을 할지 진심으로 예측할 수 없었다.
이연은 일부러 움직이지 않았다. 움직이고 싶은 걸 참고 서혜를 내려다보았다. 서혜에게는 적응하는 시간이 필요했다. 그리고.
으, 응… 응, 으으응….
서혜가 어쩔 줄 몰라 하는 모습도 보고 싶었다. 서혜는 허리를 뒤틀었다. 움직이지 않는 것이 서러워 안을 조이고 내벽으로 비볐다. 엉덩이를 침상에 비비며 요염하게 조르는 모습에 이연은 서혜의 입술로 제 입술을 가져갔다. 아랫입술을 빨아들이자 서혜가 턱을 들어 응했다. 으응…. 서혜가 희미하게 신음했다. 좋아요, 라고 말하는 듯한 그 목소리가 달콤했다.
이연의 손이 서혜의 가슴을 어루만졌다. 서혜는 입술을 빨리며 가슴에 닿은 손길과 안으로 가득 품고 있는 것을 느꼈다. 그녀는 이연이 어떻게 이렇게 잘 아는 것일까, 생각했다. 만져지고 싶다고 생각한 만큼, 딱 그만큼을 이연은 만졌다. 아프지도 않았지만 모자라지도 않았다. 약간 아픈 듯이, 조금 거친 듯이 만지는 손길에 서혜는 다시 허리를 쥐어짰다. 어서, 어서. 서혜는 이연의 윗입술을 오물거리며 생각했다. 어서, 해 줬으면 좋겠다고.
그리고 갑자기 이연이 뒤로 물러났다. 서혜의 몸이 긴장으로 굳기도 전에 이연이 콱 찍어 올리듯이 들어왔다. 아! 비명인지 교성인지 모를 소리가 입에서 나와, 서혜를 부끄럽게 했다. 서혜는 손을 들어 얼굴을 가리고 싶었지만 입술이 맞닿아 있어 그럴 수도 없었다. 그저 지아비의 단단하고 두꺼운 어깨를 잡은 채 달달 떨 뿐이었다. 무서워서가 아니라 흥분이 강해서 몸이 떨렸다.
아이가 또 생기면 좋겠다.
이연이 곧 마구잡이로 박기 시작하자 서혜는 다리를 활짝 벌려야 했다. 서혜는 아이가 생기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연의 손이 서혜의 꽃잎 위, 도톰한 곳을 비비기 시작하자 그나마의 생각도 사라지긴 했다.
하지만 그래도 아이가 갖고 싶었다. 다복한 가정. 모두가 서로를 위하는 그런, 평범한 가정을 갖고 싶었다. 황궁이어도, 황제와 황후여도, 그런 가정을 일굴 수 있기를 꿈꿨다. 태자이기 때문에, 친왕이기 때문에 안 될까. 하지만, 하지만 우리는 다르니까.
손끝까지 저릿함이 퍼져 나갔다. 서혜는 ‘응, 으응.’ 하고 입술을 깨물며 신음을 참아 보려 애썼다. 그러나 목에서 앓는 소리가 계속 흘러나왔다. 이연이 속삭였다.
“물을 계속 쏟네.”
“으, 응. 으응, 으응.”
그런 말 하지 말라는 말을 할 수가 없다. 입을 벌리는 순간 큰 소리로 소리를 질러 버릴 것 같아서.
“후, 잘 젖는 거 좋아. 나는 좋아, 서혜야.”
젖는 걸 부끄러워한다는 걸 알고 있다는 듯, 이연이 못 박았다. 헐떡이며 허리를 움직이는 사내는 커다란 짐승과 같고 서혜는 그 밑에 깔린 먹잇감이 된 기분이었다. 짐승은 먹잇감의 목덜미를 핥으며 애지중지 어여뻐했다.
“예뻐. 뭐든지.”
이연의 품 안에서 서혜는 그저 어여쁜 아낙이 됐다. 다리를 벌린 채 흉하게 있어도 이연은 진심으로 그녀를 예뻐했다. 사랑스러워야 한다고 언제나 교육받았는데 그렇지 않아도 이연은 사랑스러워했다. 어여쁘지 않아도 귀애했다.
뜨거운 몸에 정신까지 달아오르니 주체할 수가 없었다. 서혜는 화르륵 타오르는 것을 참지 못했다. 아! 서혜가 입을 벌려 비명을 지르며 몸을 파르르 떨자 이연이 빠르게 몸을 움직였다. 몇 번의 빠른 움직임 끝에 안쪽에 뜨거운 것이 흘러 들어와 서혜를 더 미치게 만들었다.
서혜의 몸이 이연을 얽어맸다. 가느다란 사지가 그를 한껏 조여들었다. 이연은 자신이 토해 낼 수 있는 만큼을 마음껏 그녀의 안에 토해 냈다. 사정의 끝은 나락처럼 깊고 갑작스러웠다. 이연은 서혜의 긴 머리카락을 어루만지며 몸을 떨었다. 그때마다 서혜가 받아먹고 싶은 것처럼 안을 빠듯하게 조였다. 맛있어하는 것이 온몸으로 느껴져 이연은 조금 웃었다.
서혜의 얼굴은 기쁨과 희열과 지침으로 가득했다. 이연은 그 얼굴에서 우울감의 조각을 찾아보고 만족했다. 그따위 조각은 어디에도 남아 있지 않았다.
***
서혜는 상당히 현실적인 사람이라 금세 우울감을 잊었다. 그녀는 결국 놓고 온 자식에 대해서 감수하겠노라는 마음을 제 안쪽에 담고서 우울해하는 것을 그만두었다. 그리고 그녀는 후궁을 돌보기 시작했다.
이연은 서혜가 하는 일을 그저 가만히 내버려 두었다. 실제로 후궁은 관리가 좀 필요한 상태였다. 후궁에 소속된 모든 사람들이 두려워하고 있었다. 위로는 귀비부터 아래로는 허드렛일을 하는 종들까지 모두 제 처지가 어찌 될지 몰라 불안해하고 있었다. 잃을 게 많은 사람은 잃을 게 많아서, 잃을 게 없는 사람은 그저 잃을 것이라고는 목숨밖에 없어서. 다들 고통스러워하는 나날이 계속되었다.
약조를 원하는 후궁들에게 서혜는 아무런 약조도 해 주지 않은 듯했다.
“황상의 의지대로 이루어질 것입니다.”
서혜는 언제나 원칙주의자였다. 그녀가 아랫사람일 때는 유연성이 필요하였으나 그녀가 윗사람이 되자 원칙은 더 중요한 것이 되었다. 후궁들은 안전하다는 확언을 바랐다. 그녀들이 후궁에 남게 될 것이고 계속 호사스러운 삶을 살게 되리라는 대답을 원했으나 서혜는 아무에게도 그런 말은 해 주지 않았다. 고통을 호소하든 병을 호소하든 오랫동안의 잔정을 호소하든 답은 하나였다. 모두가 서혜에게 약조를 원했다.
단 한 명, 혜비만이 제외였다.
“혜비의 동태는 어떠하냐?”
“매일 운왕의 명복을 비는 한편…. 아무래도 속세로 내려가는 것을 희망하고 있지 않나 보여지옵니다.”
“아들과 같이 살겠다?”
“혜비전에서 많은 패물을 완왕부로 보냈다고 들었사옵니다. 완왕부에 기거하실 요량이 아니실지요.”
이연은 그 말에 피식 웃었다.
“누구 마음대로?”
혜비의 간자들도 황궁 안에 있다. 이연은 사실 이 정전 안에 있는 혜비의 간자가 누구인지 알고 있었다. 그는 일부러 정전 안에서 이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혜비는 곱게 보내 줄 수 없었다. 그녀는 늘 자신은 선량한 사람인 것처럼 행동했다. 자신이 잘못된 일을 한 것은 다른 누군가의 탓이었다. 아들인 운왕의 탓이든 다른 후궁의 탓이든. 그러나 그 일을 지지하고 선택하고 행한 것은 다름이 아닌 혜비였다. 그 결과에 대한 책임도 혜비가 오롯하게 져야 할 것이다.
혜비는 서혜를 추국장으로 끌고 갔다. 서혜는 혜비를 진정으로 모셨다. 혜비는 서혜의 시어머니 중 한 명이었고 서혜는 진정한 시어머니인 황후보다 혜비를 더 지극히 챙길 때도 많았다. 혜비를 걱정하기도 했고 인간적으로 혜비에게 더 끌리기 때문이기도 했을 것이다.
물론 서혜는 모후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는 한도 내에서 챙겼으나 태자비의 성심이 혜비에게 꽤 도움이 되었으리라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었다. 그러나 혜비는 운왕의 말도 안 되는 과욕을 만족시켜 주느라 서혜에게 고신을 행하려 했다. 이연은 결코 잊지 않았다.
“무엇보다 완왕이 기꺼워할 리가 있겠느냐?”
듣고 괴로워하라지.
“평생 운왕만 그리 챙겼는데 완왕의 마음에 한이 하나 없을까. 완왕비 또한 혜비마마에 대해서 그다지 좋은 감정이 아닌데 완왕부에 가는 걸 누가 기꺼워하려나? 하기야, 지금이야 워낙 혜비마마의 패물이 많으니 기꺼워할 수도 있겠군. 큰 재산이니.”
이연은 마음껏 까발렸다. 전부 사실이었다. 혜비가 운왕을 그토록 애지중지하는 동안 다른 아들들은 비교적 소홀히 대했다. 물론 혜비는 아들들에게 다 잘하려고 노력했으나 편애가 심한 건 사실이었고 당연히 다른 아들들은 한이 많았다. 혜비의 입장에서는 운왕이 ‘동궁을 빼앗긴 가엾은 아들’이었으나 다른 아들들 입장에서는 똑같은 친왕이었을 뿐이니 더욱 눈꼴이 시렸을 것이다.
“어디로 간다 한들 환영받을까?”
“…….”
“그리고 엄연히 부황이 계시는데 이 무슨 천인공노할 짓인지 모르겠군.”
비록 다 죽어 가는 걸 명줄만 붙여 놨지만.
그 말은 삼킨 채로 이연은 웃으며 혜비를 모욕했다. 당연히 혜비의 귀에 들어갈 것이다. 혜비는 좀 괴로워할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괴로움 끝에는 파국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이연은 용상의 팔걸이를 부드럽게 매만졌다. 매끄러운 그 팔걸이의 곡면이 문득 어젯밤 안았던 서혜의 허리선을 떠올리게 했다.
살 좀 찌워야 하는데.
아이를 낳은 지 백 일이 좀 지났을 뿐인데 서혜는 벌써 체중이 많이 내려왔다. 애초에 살이 잘 찌지도 않았다. 식사를 적게 하는 탓이다. 심씨 일족이 지금까지 버티고 있었다면 이연이 도륙을 내 주었을 것이다. 서혜가 이리 된 것은 다 그놈의 집안 탓이었다.
너무 쉽게 보내 줬어. 하여간 부황과는 취향이 맞질 않아.
바짝바짝 애를 태워 간이 쪼그라들 때까지 괴롭혀 죽였어야 했는데 너무 쉽게 죽었다. 특히 서혜의 부모는 지금이라도 시신을 가져와 육시를 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이연은 눈살을 찌푸렸다가 됐다, 하고 혀를 차서 감정을 흘려 버렸다. 이런 감정 따위 오래 가져 봐야 좋을 것이 없었다.
“이달부터 혜비전엔 내탕금을 지급하지 않는다.”
그러나 혜비는 이야기가 다르다.
살아 있는 자와는 제대로 계산을 해야 하는 법.
“예…?”
“감히 황상께서 하사하신 패물을 궁 밖으로 내보내? 그런 후궁에게 줄 내탕금 따윈 없다. 부황께서 용서하시기 전까진 내탕금을 지급하지 마라.”
혜비와의 계산은 이제부터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