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몽중연 (63)화 (63/100)

63.

고신을 받은 여인은 온몸에서 피를 흘리며 형틀에 묶여 있었다. 그녀는 웃다가 지쳐 잠들고 또 웃기를 반복했다. 광소는 옥에서 일상이 되었으나 아무도 적응하지 못했다. 죄인도 형리도 가면 갈수록 기가 질려 가고 있었다. 무서웠다. 숨이 막혔다. 여인은 제정신이 아닌 듯했다. 그리고 더 무서운 건 바로 태자였다.

그는 매일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가 고신을 받는 모습도, 그녀가 미친 듯이 웃으며 저주를 뱉는 모습도 그저 지켜만 보고 있을 뿐이었다. 살 냄새와 피 냄새가 가득한 곳에서 그는 아무런 표정도 짓지 않았다.

“절대로 그년은 돌아오지 못할 것이오!”

여인의 저주가 날카로워질수록 태자의 표정은 무심해졌다. 마치 날카롭던 바위가 바람과 비에 무뎌져 가는 과정을 보는 듯했다. 그는 아무런 감정도 드러내지 않은 채 여러 날 고신의 과정을 지켜만 보고 있다 오늘 드디어 입을 열었다.

“우리는 같은 기억을 공유하고 있지, 아니 그런가?”

“……?”

“그대는 먼 곳에 있는 그대 자신과 연결이 됐지. 그리고 그대는 나의 소망을 들어주기 위해 왔다고 하지 않았던가? 애초에 이 일이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가, 조금 생각해 보았는데.”

여인, 궁주는 눈을 크게 떴다. 이 일은 도대체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가? 얽히고설킨 일. 심씨 가문이 모함을 당하고 멸문당한 후 한 명의 생존자를 살리기 위해 궁주가 모든 것을 걸었던 일.

생존자를 살려 내는 데 성공했으나 생존자는 가문에 대한 의무를 저버리고 자신을 구명한 자를 도리어 옥에 처넣었다. 그리고 궁주는 구명한 조카를 다시 죽음으로 밀어 넣었다. 공정한 거래였다. 조카가 좋아하는 공정한 거래.

무슨 일이 일어나든 무슨 짓을 당하든 궁주는 결코 조카인 태자비를 돌려놓을 생각이 없었다. 자신이 살려 놓았다. 그렇다면 그 아이는 자신에게 은혜를 갚아야 했다. 그렇지 않을 거라면 다시 죽음으로 돌아가는 게 맞았다. 궁주가 그렇게 생각했을 때.

“문득 그런 생각이 들더군.”

태자가 무표정하게 말을 이었다.

“당신이 왜 서혜를 살렸을까? 그 근본적인 생각.”

“…….”

“서혜를 어여삐 여긴 것도 아니었는데, 어찌하여 서혜였을까? 당신은 먼 곳의 당신 자신과 연결할 수 있다…. 다시 말하자면 당신은 당신 오라비에게 당신 가문에 닥칠 문제를 말해 줄 수도 있었어. 그런데 그렇게 하지 않은 이유가 뭘까?”

“…….”

“간단하지. 이미 해 봤으나 네 오라비는 이런 비현실적인 이야기는 다 헛소리로 치부한 거지. 네가 도대체 몇 번이나 같은 짓을 반복했을까? 네 오라비를 구하겠답시고, 얼마나 많은 시도를 해 보았을까? 그리고 하다 하다 안 되어서 결국 제 조카를 이용하여 원수라도 갚겠다고 나온 거라면.”

톡, 톡.

궁주는 태자의 손가락이 부드럽게 의자의 팔 받침을 치는 걸 바라보았다. 뭔가 익숙하다, 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다시 보니 자신의 옆구리에서 흐르는 핏방울의 속도에서 맞춰서 그는 톡, 톡, 손가락을 두드리고 있었다.

등골이 오싹했다. 궁주는 스스로도 자기 자신이 조금 미쳤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더 이상 두려울 건 없다고, 고통도 망가진 미래도 무섭지 않으니 이제 다 괜찮노라고 여겼다. 사람들이 자신을 볼 때마다 기가 질린 얼굴을 하는 걸 보며 도리어 통쾌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눈앞의 태자는.

전혀 자신을.

포기하지 않았다. 무언가를 들쑤시려 하고 있다.

궁주는 자신이 살아 있는 귀신이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태자는 그녀를 한갓 인간으로 보고 있었다. 얼마든지 상처 낼 수 있는 인간으로.

거대한 사신 앞에 개미만 한 존재로서 서 있는 기분이 들어 궁주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오한이 났다. 피가 많이 나서도 아니고 고신이 힘들어서도 아니다. 그녀는 본능적인 두려움을 느꼈다. 눈앞의 남자는 자신을 갈가리 찢어 놓을 것이다. 저 남자는 이길 수 없다. 그것을 그녀가 느끼는 순간에.

태자가 입을 열었다.

“다시 말하자면 너는 한 번 더 서혜를 구할 수도 있겠지.”

“내가 그렇게 해 주리라고 생각한다면 오산…!”

딱.

태자가 손가락을 부딪쳐 소리를 내자 옥문이 열리고 신녀들이 들어왔다. 궁주 대리를 비롯한 몇몇의 신녀는 멀쩡히 서서 들어왔지만 몇몇의 신녀는 포박을 당한 채 끌려왔고 궁주는 포박을 당한 쪽이 누구인지 알아보았다. 그들은 궁주가 어여삐 여겼던 신녀들이었다.

궁주 대리였던 신녀는 신력이 강하였으나 궁주에게 총애를 받진 못하였었고 도리어 궁주의 주변에는 총애를 받는 다른 신녀들이 있었다. 당연하게도 그녀들은 자신들이 가질 수 있는 이상의 힘을 휘두르며 신궁에서 매우 호사스러운 삶을 보내었다.

궁주는 자신이 아끼는 신녀들의 안전을 걱정하여 일부러 황궁으로 대동하지도 않았었다. 그런 신녀들이 모조리 끌려온 것이다.

“저주를 퍼붓는 건 잘하던데.”

태자가 불꽃에 벌겋게 익어 있는 인두를 손수 꺼내며 웃었다. 그 웃음은 싸늘하고 비릿한, 죽음과 멸시의 냄새로 가득 차 있었다.

“저주를 견디는 건 얼마나 잘하는지 한 번 두고 보도록 하지.”

태자의 손에서 인두를 받은 형리가 궁주가 가장 총애하던 신녀에게 다가가고 있었다. 궁주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딸처럼 귀히 여겼던 아이의 얼굴이 공포로 물드는 걸 보는 것이 힘들었다. 하지 마. 궁주가 말하려 했지만 태자는 듣지 않았다.

태자의 손이 궁주의 목 어딘가를 누르자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궁주가 눈을 크게 뜨자 태자가 궁주의 곁에서 나지막이 속삭였다.

“저들의 모든 고행은 모두 너 때문이다.”

***

궁주는 결국 무너졌다. 그녀는 피투성이의 몸으로 헐떡이며 산실에 올랐다. 하늘이 다시 으르렁거렸지만 이연은 상관하지 않았다. 그는 궁주를 끌고 산실에 올라 분합문을 다 닫게 하고 향을 피운 뒤 서혜를 끌어안았다. 교합을 통해 부부의 연으로서 그녀를 불러온다. 이것이 기본 방침임을 이미 그는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태의가 서혜의 출혈을 멈추는 데 성공했지만 그녀의 의식을 불러오는 데는 실패했다. 더욱이 좋지 않은 것은 그녀의 출산이 곧 시작되리라는 것이었다. 그녀는 만삭의 임부였고 곧 출산을 해야 마땅했다. 그리고 의식이 없는 상태로 출산을 한다는 건 태아와 그녀 모두 위험할 수 있다는 의미였다.

사실 이연은 태아의 위험에 대해서는 손톱만치도 신경을 쓰고 있지 않았다. 얼굴도 보지 못한 태아 따위보다는 서혜가 훨씬 중요했다. 성군이니 뭐니 그딴 소리는 다 남의 이야기였다. 아이는 이연이 죽은 다음에야 성군이 될 것이다. 그 아이가 성군이 될 나날은 이연이 없는 세상의 일이었다. 그런 일에 신경을 써 줄 정도로 마음의 여력이 있지 않았다.

이연의 팔 안에서 서혜가 쓰러져 있는 동안 궁주는 향을 피우고 먼 시간 너머의 자신과 연결을 시도했다. 그 모습을 보며 이연은 서혜의 가슴을 가만가만 토닥거렸다.

“돌아올 수 있어요.”

그는 서혜에게 속삭였다. 그녀가 어쩌면 듣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귀라도 열려 있을지도 모르지. 그러니까 그는 계속 말을 걸었다.

“제가 비를 혼자 둘 리가 없지 않습니까. 분명히 돌아오시게 될 겁니다.”

말을 하고는 있었지만 이연은 차라리 서혜에게 아무런 의식이 없기를 소망했다. 그녀가 몸은 움직이지 못하는 채로 듣고만 있다면 그것은 그녀에게 더욱 고통일 터이니 차라리 잠들어 있기를. 그녀가 고통스럽지를 않기를 바랐다. 그저 어여쁜 꿈을 꾸다 자신에게 돌아오기만 하면 된다.

“아시다시피 세계는 갈라져 있사옵니다.”

쉰 목소리로 궁주가 말했다.

“지하 감옥에 갇혀 있던 제가 어찌 비전하의 혼을 움직일 수 있겠사옵니까? 갈라진 세계의 제가 비전하의 혼을 움직인 것이니, 일단 비전하의 혼이 어디에 있는지 먼저 찾고 그다음에 그 혼을 불러와야 하옵니다.”

“시작하라.”

이연의 명에 신녀들이 일제히 북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여러 신녀들이 둥글게 그들을 에워싸고 북을 두드리는 가운데 궁주가 주문을 외기 시작하자 밖에서 엄청난 천둥이 울려 퍼졌다. 곧 폭우가 쏟아지는 소리가 들려 궁녀들이 어깨를 움츠렸다. 하늘이 노여워하는 기색이 역력하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태자와 신녀들 그리고 궁주는 전혀 흐트러짐이 없었다.

북소리가 더욱 커져 간다. 심장의 고동을 키워 가듯이.

신녀들이 제자리에서 뛰며 북을 치기 시작했다. 궁주의 주문에 화답하듯 알 수 없는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다. 이연은 서혜를 꽉 붙잡아 안았다. 그녀가 잘못될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상한 기분. 좋지 않은 예감. 어찌하여 이런 감정이 들까.

탕! 탕! 탕!

북소리가 최고조로 향해 가고 하늘에서 번개가 작렬하는 순간.

핏, 하고 수십 개의 향이 동시에 꺼졌다.

신녀들이 모든 움직임을 멈췄다. 그녀들이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눈을 깜빡이고 그중 궁주 대리인 여인이 궁주를 바라보았다. 무언가를 이해한 것처럼. 그녀의 눈이 커져 있어서 이연은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금세 알 수 있었다. 문제는 얼마나 잘못되었느냐 하는 것인데.

궁주가 모조리 꺼진 향을 보다 쌀독으로 다가가 쌀의 형태를 확인했다. 그러더니 그녀가 멍하니 중얼거렸다.

“…없어?”

“없다니, 뭐가 말이냐?”

이연의 말에도 궁주는 잠시간 말을 잇지 못했다. 이연이 쾅, 하고 침상을 내려치자 궁주가 화들짝 놀라 그를 돌아보았다. 궁주의 눈에 어두컴컴한 것이 잔뜩 서려 있었다. 두려운 것 같기도 하고 아예 반갑기도 한 것 같은 그 감정을 보는 순간 이연은 심장이 뚝 떨어지는 것 같았다.

궁주가 반가워할 상황은 단 하나.

자신이 도저히 손쓸 수 없는, 그런 상황에 도달했을 때뿐일 터인데. 어찌하여서….

“전하께 아뢰옵니다.”

궁주의 목소리가 희미한 즐거움을 담고 있었다. 복수라도 하는 것처럼.

“비전하께서 계시는 세계에 소인이 없사옵니다.”

“무슨 뜻이냐?”

“그러니까 저 세계에서 비전하를 돌려보낼 사람이 존재하지 않사옵니다.”

이연은 광소가 떠오르는 궁주의 얼굴을 보다 궁주 대리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그러자 그녀는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중얼거렸다.

“궁주가 죽었나 봅니다, 저쪽 세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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