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
역사적으로 산실의 계단을 남성이 오른 적은 없었다.
“태자 전하, 이건, 이건 신성 모독이옵니다.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마흔아홉 개의 계단을 오르는 이연에게 수많은 이들이 달라붙었다. 그들은 따라가며, 뒤따르며, 앞서며, 막아서며, 이연을 만류했다. 사내가 산실을 오르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들은 마치 산을 오르는 개미 떼처럼 따라붙었다.
전하, 부디 고정하시옵소서….
그 목소리가 바람처럼 덧없이 이연의 귀를 스치고 지나갔다. 이연은 달라붙는 이들을 밀치며 한 계단 한 계단을 올랐다. 태양이 내리쬐고 있었다. 불타는 빛이 마치 모든 걸 태워 버릴 것처럼 강렬했다.
이연의 손에 멱살을 잡힌 채 계단을 오르고 있는 태의가 “전하, 고정하시옵소서!”라며 울부짖었다. 이연은 신벌을 무서워하는 그의 얼굴을 흘끗 보고 다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이런 가파른 계단을 만삭의 서혜가 올랐다?
처음부터 오르게도 하지 말았어야 했다. 산실에 보내지 말았어야 했다. 아니, 아예 회임을 시키지 말았어야 했다. 약을 먹이든 무엇을 하든, 회임 따위 시키지 말았어야 했다!
사실 이연은 늘 걱정스러웠다. 서혜는 너무 약했고 출산은 위험한 일이었다. 많은 여인들이 산고 끝에 죽지 않았던가. 이연은 해산일의 서혜만 생각하면 잠이 오지 않을 지경이었다. 서혜처럼 몸이 약한 이가 또 있을까. 그 몸으로 만약 아이를 출산하는 것에 실패하면….
다섯 꽃잎이 귀히 여겨지는 것은 그녀가 낳을 아이 때문이다. 하늘이 내려 준 성군이 나올 터이니 다른 이들이 어찌 그녀의 목숨을 더 중히 여기겠는가. 분명 아이를 우선시할 것이다. 그래도 산실에서 잘못된 다섯 꽃잎은 없었기에 어쩔 수 없이 보내 줬더니 이 사달이 났다.
안이하면 안 된다는 걸 그렇게 깊이 깨달아 놓고선.
마음을 놓으면 아니 되는 것을.
전하… 통촉을….
통촉하라는 소리가 끊임없이 울려 퍼졌다. 올라가는 마음은 다급한데 계속 달라붙으니 더는 인내심이 남아나질 않았다. 이연은 자신의 앞을 막아서는 이의 목을 잡아 계단 밖으로 집어 던졌다. 으아악, 하는 비명과 함께 굴러떨어지는 소리가 나자 통촉하라는 소리가 일제히 멈췄다.
“비켜라.”
이연의 명에 모두가 조용히 길을 비켰고 그는 성큼성큼 올라갔다. 한 계단 오를 때마다 이 계단을 올랐을 서혜를 떠올렸다. 아찔했을 것이다. 무서웠을 것이다. 관두게 했어야 했는데. 조정이 반대하든 말든 그냥 눌러 버렸어야 하는 건데. 정통성이든 뭐든, 그딴 소리에 또다시 밀려서 산실에 보내 버렸다.
이연의 뒤를 따라 수많은 이들이 산실에 올랐다. 태자만 보낼 수가 없으니 다들 울며 겨자 먹기로 오르고 있었다. 이연은 빠른 속도로 산실에 올라 하얀 휘장을 제 손으로 걷으며 안으로 들어갔다.
“태, 태, 태자 전하. 여기는….”
신녀들이 재빨리 무릎을 꿇고 이마를 땅에 대었다. 신궁 특유의 법도로 절을 올리는 동안 궁주 대리가 조심스럽게 그를 만류하기 위해 입을 열었으나.
“이 이상 입실에 대해 가부를 논하는 자가 있다면 다 목을 잘라라.”
이연의 명에 같이 따르던 태자부의 장수들이 “명을 받드옵니다.”라며 검을 빼 들었다. 궁주 대리는 결국 입을 다물었다.
이연은 그녀를 흘끗 보고 지나쳤다. 궁주 대리. 즉, 궁주의 후계자인 신녀. 신궁은 궁주와 신녀, 두 개의 계급밖에 없지만 후계자는 존재하기 마련이다. 궁주 대리가 바로 그 경우였다. 일반 신녀지만 궁주가 없는 경우 궁주를 대신하여 모든 일을 처리하는 이. 신궁의 주인이 될 사람.
컥, 컥. 이연에게 목이 졸린 채 끌려오던 태의가 당장에라도 숨이 넘어갈 것 같은 소리를 냈다. 결국 이연은 그의 목을 풀어 주며 명령했다.
“따라와라.”
이미 산실까지 왔으니 결국 태의는 어디에도 갈 수 없게 되었다. 그는 울 것 같은 얼굴로 이연의 뒤를 따라 걸었다. 지금이라도 도망쳐 내려가고 싶었지만 아마 몇 계단 내려가지도 못하고 끌려올 것이다. 태자는 무인이고 그는 문관이니까. 태자와 태자부 무인들의 손아귀에서 그가 벗어날 수는 없다.
“서혜는?”
서혜라는 이름에 사람들이 당황해서 이연을 흘끔거렸다. 심서혜라는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 이름은 황제가 내린 이름이다. 상서로울 서. 지혜로울 혜. 그 이름은 다섯 꽃잎이 받은 이름이며 이 제국에서는 오로지 한 명만이 가질 수 있는 이름이었다. 그렇지만 태자가 자신의 비를 이름으로 부르는 경우는 법도에 완전히 어긋나는 것인 데다 지나치게 친밀했다.
마치 침대 속 은밀한 속삭임을 듣는 것 같은 당혹감이 남아 모두가 입을 제대로 열지 못하는 사이 이 호칭에 익숙해져 있는 태자비의 궁녀들이 재빨리 그를 안내했다.
“전하, 뫼시옵니다.”
이연은 하얀 휘장이 휘날리는 산실을 불편한 눈으로 한 번 노려보았다. 이상하게도 이 산실은 정화된 곳이라기보단 불길한 느낌만 잔뜩 준다. 이 휘날리는 휘장들은 마치 장례 행렬을 보는 것만 같다.
서혜는 하얀 침상 위에 누워 있었다. 하얀 옷을 입은 그녀는 피투성이였다. 계속해서 흘러나오고 있는 피는 아주 예쁜 붉은색이었다. 검붉지 않은 그 색은 오롯이 살아 있는 피였으며 멈출 기미도 보이지 않았다. 다리 사이가 계속 붉어지고 있는 그녀를 보자마자 이연은 눈앞이 핑 도는 기분이 들었다. 생각 같아서는 모조리 다 엎어 버리고 싶은 기분이었다.
그는 겨우 인내했다. 참아 내야 했다. 아주 소중하고 연약한 것을 들고 벼랑 끝을 걷는 상황이니까 그는 모든 감정을 죽여야 했다. 안고 있는 것을 떨어뜨리는 순간 그는 모든 걸 잃어버리게 될 테니까.
“태의!”
이연의 고함에 태의가 당장 달려오다 눈을 크게 떴다. 태의와 같이 끌려 올라온 의녀들이 재빨리 서혜의 몸을 돌보기 시작했다. 의녀들의 말에 따라 궁녀들이 병풍으로 태자비의 몸을 가렸다. 침상은 가려졌고 이연은 병풍 너머에 남았다. 그는 입술을 깨물고 싶은 걸 간신히 참으며 병풍 너머의 기척에 귀를 기울였다.
“태의 어른!”
의녀들이 태의를 부르자 태의가 병풍 안으로 들어갔다. 그가 누군가를 부르자 같이 끌려온 젊은 태의가 재빨리 보따리를 들고 병풍 안으로 들어갔다. 이연은 병풍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러자 누군가가 “아아!” 하고 신음했다. 그래서는 안 된다는 의미였겠지만 그 순간, 이연의 감정이 무너졌다.
지금 서혜가 죽어 가는데, 피를 저렇게 철철 흘리고 있는데, 사내인 자신이 여기에 있으면 되느니 안 되느니 하며 그것만을 중시하는 작태가 이연의 역린을 건드린 것이다.
챙!
칼날의 소리가 허공을 찢었다. 팍, 하는 소리는 아마 칼날이 사람의 목뼈를 베는 소리였으리라. 목이 그대로 날아갔다. 엄청난 힘이었다. 히이익. 누군가가 숨을 급히 삼켰다. 아무도 숨을 제대로 쉬지 못했다. 태자의 분노가 하늘 끝까지 다다랐다는 걸 드디어 온몸으로 이해했다.
이연은 병풍 안으로 들어갔다. 서혜는 시신처럼 파리한 안색으로 궁녀에게 안겨 있었다. 서혜의 다리 사이에는 의녀들이 달라붙어 있고 태의는 흠, 흠, 헛기침을 하며 먼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서혜는 사람이라기보다는 신목 같았다. 인간에게 오랫동안 수없이 괴롭힘을 당해 홀로는 설 수도 없는 나무처럼 고단하고 고통스러워 보여 이연은 순간 숨이 턱 막힐 지경이 되었다.
“어떠냐?”
“다행히도 아기씨는 무사하신….”
태의가 눈치 없이 하는 말에 깜짝 놀란 서 상궁이 “태의 어른!” 하고 나지막이 책망했다. 그제야 태의는 자신이 여기에 왜 끌려왔는지 뒤늦게 깨달았다. 자신은 성군이 될 미래의 황제 때문에 이곳에 있는 게 아니었다. 총애받는 비를 살리기 위해 모든 법도를 내던진 태자의 만행에 의해 끌려온 것이다. 태의는 그걸 이제야 깨달았다.
“그, 그….”
태의가 말을 못 하고 머뭇거리자 태자가 확 간격을 좁혔다. 태자가 가까워지자 태의가 무조건 무릎을 꿇고 달달 떨며 이마를 바닥에 대었다.
“다시 묻는다. 어떠하냐?”
이번에는 태자비에 대해서 제대로 대답해야 할 것이다. 태의도 그것을 알지만 대답하기가 어려웠다. 아기씨라면 무사하나 태자비는….
이 말을 어찌해야 할 것인가.
서늘한 것이 목에 닿아 태의가 목을 거북이처럼 움츠렸다. 그의 목을 타고 무언가가 뚝뚝 떨어졌다. 핏방울이었다. 그 피가 누구의 피인지 태의로서는 알 수 없었으나 상황이 매우 좋지 않게 흘러감은 분명했다. 태의가 병에 걸린 환자처럼 경련하면서 목소리를 쥐어짜 냈다.
“송구하오나 하늘의 뜻을….”
“…….”
“지켜봐야 할 것으로 사료되옵니다….”
하늘의 뜻.
신을 거역하고 산실에 든 자가 듣기에는 청천벽력 같은 소리였다. 이연은 불길해지려는 마음을 겨우 내리눌렀다. 그때 마침 우르릉 천둥이 울리기 시작했다. 아까 산실에 올라올 때까지만 해도 멀쩡했던 하늘이 갑자기 어두워지고 있었다. 마치 하늘이 이 모든 걸 지켜보고 결론을 내주는 것처럼 새카매지고 있었다.
이연은 손으로 칼날을 붙잡았다. 욱신거리는 아픔이 그를 정신 차리게 만들었다. 이런 아픔이라도 있지 않으면 도저히 서 있을 수 없을 것 같았다.
또 이 나라 때문인가.
또 그따위에 서혜를 잃는가.
“전하…!”
이연의 손 아래에 피 웅덩이가 고이는 걸 보고 서 상궁이 놀라 무릎으로 달려왔다. 궁녀들이 재빨리 그의 앞에서 당혹해하며 무명천을 든 채 그를 올려다보았다. 그의 손에서 검을 빼내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그저 곡배만 하고 있을 수도 없는 상황에서 서 상궁이 헐떡이며 말했다.
“전하. 비, 비전하께옵서는 무사하실 것이옵니다.”
“…….”
“전하. 외유내강하신 분이 아니시옵니까. 전하….”
외유내강.
이연은 검을 집어 던지듯이 버렸다. 그러자마자 서 상궁이 재빨리 이연의 손을 보기 시작했다. 의녀들이 달려왔고 태의가 이연의 손을 확인했다. 모두가 그의 손에 달라붙는 동안 이연은 멍하니 누워 있는 서혜를 바라보았다. 서혜의 곁에는 두어 명의 의녀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서혜나 구해라.”
그는 피가 뚝뚝 떨어지는 손을 하고 등을 돌렸다. 우르릉하는 소리가 심상치 않았다. 산실에 들어온 자신을 윽박지르는 하늘의 소리에 이연은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비가 올 것같이 어두워진 하늘은 마치 당장 이연에게 산실에서 나가라고 고함을 지르는 것만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