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몽중연 (59)화 (59/100)

59.

당연한 일이지만 황후마마는 가만히 계시지 않았습니다.

황후마마께서는 후궁의 주인. 즉 그분은 태후마마보다 더 다양한 사람들을 부리실 수 있지요. 그들 중 누군가가 태감의 집에 침입했습니다. 정확히 혼례가 열리는 날이었지요. 저택 한쪽에서는 혼례가 열리고 있는데 다른 한쪽에서는 도둑이 곳간을 털고 있는 상황이 발생했어요. 차라리 곳간을 털렸다면 덜 억울했을까요? 그들은 태감의 방 안에 있는 금고를 금고째로 털어 갔습니다. 그 금고에는 금은보화가 있었다고 합니다.

당연히 태감의 저택은 발칵 뒤집혔지만 그는 신고하지 않았어요. 신고할 수 없었습니다. 그 돈의 출처를 정확하게 내밀 수 없으니까요. 한갓 태감밖에 안 되는 자가 이토록 호사스럽게 사는 것도 세인의 눈에 의아히 보이는데 금고 이야기까지는 할 수 없지요.

그러니 그는 부글부글 끓는 심사를 태후마마께 토해 냈고 당연한 말이지만 태후마마께옵서는 뒤로 누가 그랬는지를 알아보셨습니다. 황후마마는 굳이 그 사람이 자신임을 숨기지도 않으셨어요. 사람을 움직인 흔적을 지우지 않으셨다는 말이지요. 사람은 움직였는데 그 목적지는 불분명하다? 그리고 시간이 맞아떨어진다? 심증이 확실하다 보니 태후마마 또한 황후마마께 앙심을 크게 품게 되었습니다.

그때 마침 저의 산실이 완공되었습니다. 선나라는 꽃잎이 출산하는 경우 사당 옆에 따로 산실을 세우는데 신궁의 궁주와 신녀들이 보호하게 됩니다. 그들의 보호 아래 황자를 생산하지요. 그러나 아시다시피 궁주, 즉 고모님은 저로 인해 동궁의 감옥에 갇히신 몸. 신녀들만이 저를 보호하게 되었습니다.

산실에 들어가는 날 아침, 동궁은 몹시 분주했어요. 저도 배가 많이 나와서 앉는 것도 불편하고 서는 것도 불편하여 누워 있었습니다. 궁녀들이 누워 있는 저를 계속 돌아봤어요. 그녀들은 뭘 챙기고 나서도 저만 돌아보면 챙길 게 생각나는 것 같았습니다.

산실에 일단 들어가면 당분간은 저는 물론이고 궁녀도 나오지 못합니다. 신녀들이 결계를 만들고 그 결계 안에서 황자를 생산해야 하니까요. 정화의 의식부터 시작되기 때문에 밖에 나오면 정화가 무로 돌아갑니다. 따라서 필요한 건 모두 챙겨야 하는 것이 원칙. 저와 제가 낳을 아기씨를 위해 모두가 하나라도 더 챙기려고 애쓰고 있었습니다.

차를 마시며 저 자신도 무엇을 가져가야 할지 생각하고 있을 때 월아가 황급히 들어왔어요. 월아는 놀란 얼굴로 들어와 제 앞에 뛰어들 듯 무릎을 꿇었습니다. 그러더니 제 손을 스스로 가져와 잡고 빠르게 글을 썼어요.

심상운 대감이 황후마마를 고발.

“뭐?!”

의외의 일입니다. 심상운 대감이 어떻게 황후마마를 고발할 수가 있죠? 황후마마로 말할 것 같으면 오라버니인 심상운 대감을 구하고자 백방으로 노력하신 분인데요. 그 대감을 위해서라기보단 마마 자신을 위해서이시긴 했지만 어쨌거나 구명을 위해 최선을 다하셨던 건 분명합니다. 아니 그런 분을 도대체 왜?

저는 손바닥을 힘주어 펴며 월아를 채근했어요.

“어서 고해 보아라, 어서.”

월아가 빠르게, 그러나 또박또박 제 손바닥에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그녀의 말에 따르면 이러했습니다.

심상운 대감이 죄목을 심리받는 도중에 황후마마의 죄상을 고발하였습니다. 황후마마께옵서 어떤 도사에게 즉위식에서 사용하는 팔찌를 보냈고 그 팔찌는 적군에게 강탈당했으며 현재 돌아온 것은 태자 전하께서 몸소 전장에 나가 그 팔찌를 찾아오셨기 때문이라는 내용이었죠.

여기까지는 놀랍지 않았습니다만 그다음이 놀라웠습니다. 그 팔찌는 징표였는데, 자신이 황후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한 징표로서 물건을 보낸 것이었고, ‘도사’라는 인물은 실은 적국의 상인이었으며, 그와 내통하여 전쟁 물자를 사고팔아 이권을 취하는 과정에서 적군이 그 사실을 알게 되어 팔찌를 빼앗겼다는 것입니다.

하여, 태자 전하께서 급히 자신의 모후를 위해 전장까지 달려가셔야 했고요. 그러자 황후마마께옵서는 돌아오신 태자 전하께옵서 황상께 황후마마를 고발하시는 것이 걱정되신 거지요. 결국 황후마마께옵서는 저와 제 가문을 역적으로 몰아 태자 전하의 세력을 약화시키고 한편 황후마마 가문의 여인 몸에서 날 아기가 세 꽃잎임을 들어 자신의 입지를 더 넓히려고도 했다는 것입니다.

맙소사.

이제 이해가 됩니다. 심상운 대감은 왜 갑자기 느지막이 향료 무역에 뛰어들었을까요? 그 전에는 전쟁 물자를 사고팔아 이권을 취하느라 향료에 관심이 없었으니까요! 그러나 이제 그럴 수 없게 되자 다른 방법을 취하여야 했고 하여 늦게나마 남들처럼 향료로 돈을 벌어 보고자 한 겁니다.

“하여 현재 상황은 어떠하냐?”

제가 묻자 월아가 또 빠르게 제 손바닥에 글을 적기 시작했어요.

심상운 대감은 이 고발을 하는 것으로 가문과 대감의 죄를 모두 면제받았습니다. 그는 현재 자신의 저택으로 돌아갔고 황후마마는 금족령이 내려졌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감찰 상궁이 직접 황후마마의 상궁들을 상대로 죄목을 낱낱이 추궁하고 있고요.

이건 마치… 마치, 처음부터 황후마마를 노린 그물 같습니다. 심상운 대감 같은 작은 물고기는 빠져나가든 말든 상관없는 그물이에요. 황후마마라는 대어를 잡기 위해 성기지만 아주 튼튼하게 만들어진 그물말입니다.

이 고발이… 태자 전하께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되는 걸까요? 저는 차마 입 밖으로 꺼내 물어볼 수 없었습니다. 듣는 귀가 많으니까요. 제가 월아의 손바닥을 가져와 그녀의 손바닥에 적어 보려는 찰나, 밖에서 “태자 전하.”라고 부르는 소리가 났습니다. 우리는 서둘러 떨어졌어요. 월아가 제 시중을 들기 위해 시립한 궁녀처럼 서 있고, 저는 제 몸 위에 덮어진 금금을 괜히 매만졌습니다. 그때 마침 태자 전하께옵서 침소로 들어오셨어요.

그분은 들어오시자마자 제 얼굴을 보시더니 음, 하고 웃으셨어요.

“어느 입 가벼운 자가 벌써 그 소식을 비께 전했습니까?”

제가 눈을 크게 뜨자 태자 전하께옵서 옆에 서 있는 월아를 내려다보셨어요. 월아의 어깨가 움찔 굳었습니다. 태자 전하의 입술이 차갑게 올라갔어요.

“너는 혀를 잘리고도 정신을 못 차렸구나.”

“…….”

월아가 송구하다는 듯이 바로 무릎을 꿇었습니다. 그러자 태자 전하께옵서 귀찮다는 듯 손바닥을 내저으셨어요. 나가 보라는 그 손짓에 월아뿐만 아니라 모두가 서둘러 물러났습니다. 물건을 챙기느라 이리저리 황망하던 기척들이 모두 사라지고 침소는 고요해졌습니다. 그저 흐트러진 물건들만이 아까의 번잡하던 공기를 조금 남겨 놓았을 뿐이었어요.

태자 전하께옵서는 제 침대가에 앉으셨어요. 그리고 제 뺨을 조심스럽게 어루만지셨습니다.

“별로 걱정하실 만한 일은 아닙니다.”

“…그다지 걱정은….”

“얼굴이 이렇게 하얗게 질리셨는데?”

웃음기 어린 목소리로 농을 걸 듯 하문하셔서 저는 아무 말도 못 하고 그저 입을 다물었습니다. 걱정이 되지 않을리가요. 적군에게 빼앗겼던 황후의 증거를 찾아와 놓고도 황상께 보고 드리지 않았는데 그 질책을 어찌 다 받으실지…. 괜히 이 일이 뛰어들었나 하는 후회에 가슴이 조여들었습니다. 저 때문에 이런 곤경에 빠지신 건 아닌지.

“덕분에 많은 득을 보았습니다.”

“하나….”

“예, 하나입니다. 실은 고작 하나인데 많은 득 끝에 실 하나가 있었다 하여 이런 얼굴을 하시면 저는 어찌하면 좋습니까?”

저는 ‘그러나’라는 뜻으로 하나라고 말했지만 태자 전하는 ‘1’이라는 뜻의 하나로 받으셨어요. 말장난 끝에 진지한 얼굴로 그분이 제 이마에 입을 맞추셨어요.

“부황보다는 당신이 난처합니다. 당신의 이 얼굴이 무척 곤란해요, 압니까?”

“…….”

“금일, 산실에 입실하시면 당분간 뵙지도 못할 텐데 이런 얼굴을 하시면 어찌합니까, 응? 저는 괜찮습니다. 약조합니다.”

왜 이렇게 다정하실까요?

제가 도와드린다고 괜한 분란을 일으키지 않았더라면 차라리 괜찮았을지도 모르는데. 부황과의 사이가 좋지 못하시니 질책은 무서울 것입니다. 그런데도 태자 전하는 느긋하게 웃고 계십니다. 그분의 강한 권력은 이번의 경우는 독이 될 텐데. 어쩌면 빌미로 삼아져 나쁜 일을 겪게 될지도 모르는데.

머릿속으로 불타는 동궁이 스쳐 지나갔습니다. 그때 동궁이 불탄 건 운왕 전하께서 하신 일이나 저는 그 이면에 황상의 묵인이 있었다고 봅니다. 그렇지 않다면 누가 감히 이 황궁 안에서 그런 짓을 저지를 수 있겠습니까.

또 그런 일을 겪으시면 어떡하죠? 제가 산실에서 나올 수 있을까요? 산실에서 불타는 동궁이 보이긴 할까요? 제 지아비께선 이번에 괜찮으실까요?

“그런 얼굴 하지 마세요.”

태자 전하께서 속삭이셨어요. 그분의 입술이 다가오는 게 보였습니다.

“보내 드릴 수 없으니.”

입술은 그대로 제 입술에 닿았습니다. 제 입 안으로 들어오는 혀가 뜨거워서 정신을 차릴 수가 없어요. 응. 제가 목을 울리자 갑자기 못 참겠다는 듯 태자 전하께옵서 제 가슴을 움켜쥐셨어요. 그대로 쥐어짜는 듯한 손에 가슴이 괴롭혀지는 게 기분 좋았습니다. 아, 신음이 제 귀로 들렸어요. 울음이 섞인 듯한 그 신음은 그러나 괴롭다기보단 마치 매달리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서혜야, 마지막으로.”

태자 전하께서 소곤거리셨어요. 아주 작은 목소리는 제게도 겨우 들릴 정도로 낮았습니다.

“어여쁜 모습 보여 주고 가세요.”

어여쁜 모습이 뭔지 알 것 같았습니다. 제가 고개를 젓자 태자 전하께서 저를 잡아 무릎 위로 올리셨어요. 저는 태자 전하의 가슴에 등을 기댄 채로 앉아 문 쪽으로 양다리를 흉하게 벌린 모습이 되었습니다. 그분이 속삭이셨어요.

“심술을 부리시니 저도 심술이 납니다.”

귓불을 물리는 순간 으으응, 하고 몸을 떨고 말았습니다. 그러자 태자 전하께서 웃으셨어요. 정말로 한 점의 그늘도 없는 즐거운 웃음이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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