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몽중연 (58)화 (58/100)

58.

해적에게 나포되었다던 심상운 대감의 배를 찾아낸 것은 한승헌이라는 무관이었습니다. 그는 한 기방에서 정보를 얻었고 그 정보를 토대로 대감의 배가 어디에 있는지 알아낸 것이었습니다. 심상운 대감은 몹시 기뻐하며 한승헌에게 상을 내리겠다고 공언했습니다. 하지만 일은 그렇게 흘러가지 않았어요. 한승헌은 심상운 대감의 배에서 다수의 화약을 찾아냈거든요.

당연하게도 그 배의 모든 물건은 제국으로 압수되었습니다. 소문대로 배에 실린 물건은 대부분 향료였어요. 후궁에서 엄청나게 사들이는 재료지요. 황제 폐하께옵서는 한 수로 두 가지 득을 얻으신 셈입니다. 황후 마마를 벌주고 향료를 얻으신 거죠. 그 향료를 후궁에 아낌없이 푸실 것이고 후궁들의 교태는 더욱 관능적으로 변해 가겠지요.

한편 심상운 대감은 투옥되었습니다. 얄궂게도 그는 운왕 전하께서 돌아가신 그 옥에 투옥되었지요. 밤마다 대감의 비명이 들린다는 소문이 황궁 내에 진하게 퍼졌습니다. 운왕 전하의 원혼이 심상운 대감을 괴롭히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심상운 대감은 황후마마의 오라버니. 황후마마는 운왕 전하를 감옥에 넣고 시신에서 목을 잘라 영원토록 이승의 망령이 되게 만든 태자 전하의 어머니. 그러니 심상운 대감은 운왕 전하의 원혼이 당연히 해를 가할 만한 인물이긴 합니다만…. 그래도 조금 상대가 틀렸다는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가 없습니다.

황후마마께옵서는 황상께 몹시 성이 나셨습니다. 심상운 대감은 화약에 대해 전혀 모른다고 주장하고 있었고 마마께옵서는 그 말씀을 믿고 계시니까요. 당연히 향료를 압수하고 마마를 궁지로 몰려는 황상의 계책이라고 생각하신 마마께옵서는 무척 분노하신 듯했습니다. 황상과 황후마마의 사이는 본디 틀어져 있었지만 이번 일로 완전히 그 신뢰가 무너져 버렸습니다.

심상운 대감은 황후마마 가문의 가주로서 그분이 투옥된다는 건 가문이 흔들린다는 걸 의미합니다. 그러니 당연히 황후마마께옵서는 그분을 빼내기 위해 태후마마께 뇌물을 드리고자 하기에 이르셨습니다. 하지만 그분께는 금력이 없으시고 저에게는 그 여력이 있지요. 저는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결국 그분이 사용하실 수단은 저밖에 없을 테니까요.

여름, 황후마마께서는 만삭의 저를 부르지도 못하시고 그렇다고 저에게 부탁을 안 할 수도 없는 난처한 상황에 빠지셨습니다. 태자 전하께옵서는 제가 계책을 펼치고 있다는 걸 아시고 계셨고 관대하게 그것을 지켜봐 주셨지만 제 몸 상태가 나빠지자 간과하지 않으셨어요. 전하께옵서는 저를 다시 동궁에 들어앉히셨어요. 그러고는 무엇 하나 드나들지 못하게 하셔서 결국 드나들 수 있는 건 물건과 서신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황후마마께옵서는 더 안달이 나셨죠. 결국 저에게 선물이 하사되었습니다. 아시다시피, 제가 그날 안에 답례를 해야 할 물건이죠.

“봉황 비녀이옵니다, 전하.”

시녀들이 모두 놀란 물건은 봉황 비녀였습니다. 그건 시어머니이신 황후마마께옵서 저에게 내리시는 물건으로서는 가장 크게 주신 물건이었어요. 또한 차후 황후 자리를 약속하시는 것이기도 했지요. 주신 것은 비녀 하나뿐이었어요. 그러나 저는 그분이 무슨 답례품을 원하는지 잘 알고 있었습니다. 태후마마께 뇌물로 보낼 만큼 훌륭한 물건이겠지요. 답례품을 요구한다…. 이 요구를 들어드려야 할까, 말아야 할까.

머리가 복잡하게 돌아갔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제가 판을 잘 짰다는 건 알겠는데 지금부터 잘못 걸으면 판이 무너진다는 것 또한 예감할 수 있었습니다. 이 판을 짜는 데 공도 많이 들였고 태자 전하의 돈도 많이 썼습니다. 물론 결국 저는 고리의 이자를 받아 모든 걸 회수했지만 그래도 초반에 돈이 많이 들었던 건 사실이죠. 그만큼 이득도 있어야 할 것입니다. 소소한 이득들은 많이 봤지요. 전하께 도움이 되는 정보들도 여럿 건져 전해 드렸습니다. 하지만 지금부터가 진짜배기. 여기서 잘해야 하는데.

어찌하여야 태후마마, 황후마마, 황상을 각각 고립시켜 서로 척지게 할까요? 그리하여 싸움이 붙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조금만, 조금만 더 당기면 가능할 것도 같은데. 저에게는 딱 한 번 불꽃을 튀게 할 부싯돌만 있어요. 어디서 이 부싯돌을 부딪쳐야 가장 큰불이 날까요.

“답례품으로 무엇을 보내야….”

이 엄청난 물건에 걸맞는 답례품이 무엇이겠냐며 서 상궁의 얼굴이 수척해지는 게 보였습니다. 저는 머릿속으로 계산을 해 봤어요. 얼마를 드려야 할 것인가. 태후마마는 황후마마께 얼마를 요구할 것인가. 후자의 금액이 상당히 높으리라는 건 예상이 됩니다.

태후마마와 황후마마는 본디 사이가 좋은 고부간이 아니셨어요. 태후마마께옵서는 황후마마께서 세 꽃잎이라며 거들먹거린다 생각하셨고 황후마마께옵서는 태후마마께서 자신을 며느리로 들이시고서는 혜비마마에게 은근히 더 정을 주시는 행태에 무척 분해하셨으니까요.

서로 앙심의 골이 깊게 패어 있으니 심상운 대감의 몸값은 높게 책정될 겁니다. 그리고 저는 적당한 금액을 드려야 합니다. ‘저는 이 정도면 될 거라고 생각했어요.’라고 인정될 만한 금액. 그러나 실제로 태후마마께서 가납하시기에 모자라는 금액. 그게 어느 선일까요.

답례품의 기한은 오늘 안.

저는 오늘 안에 최대한의 정보를 모아야 합니다.

사실 태자비라는 자리는 수많은 정보가 오가는 자리입니다. 황궁의 아녀자들에 대해서라면 이 자리만큼 많은 것을 알 수 있는 자리가 없지요. 황후마마라나 태후마마는 너무 높고 후궁의 자리는 너무 치우쳐 있기 때문에 동궁이라는 곳으로 한 발 빠져 있는 태자비 자리가 두루두루 알기에 가장 적합하다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요령은 좀 필요하지만요.

워낙 정보가 많이 움직이기 때문에 쓸데없는 정보들도 참 많습니다. 어느 부인과 어느 부인이 싸웠다든가 하는 것들이요. 그러나 이런 정보들을 무시할 수도 없습니다. 지금은 쓸모없는 이 정보가 어느 날 갑자기 어떻게 유용해질지는 알 수 없으니까요. 모든 것을 기억하는 건 무리일지라도 최소한 정리라도 해 둬야 합니다.

아녀자들 사이에서만 돌아다니는 정보들이 있어요. 그런 정보를 놓치면 지아비께 누가 됩니다. 이건 저만이 아니라 모두가 마찬가지예요. 같은 배를 탄 거니까요. 황궁이란 호사스러운 배 수백 척이 안개 낀 호수 위에서 뱃놀이를 하는 곳입니다. 각자 자신의 배를 타고 서로 노는 척하며 가장 먼저 좋은 자리를 선점하려고 하지요.

노을이 질 무렵, 월아가 아주 흥미로운 이야기를 빠른 속도로 제 손바닥에 적어 내렸습니다. 아무도 못 보게 하기 위해서였죠. 그 내용은 무척 간단했습니다. 저도 얼굴을 아는 태감이 태후마마께 후원을 받아 최근 큰 저택을 지었는데 그 정원이 사치스럽기가 이루 말할 수 없다는 내용이었습니다. 태후마마께옵서는 배경이 크지 않으시고 내탕금으로만 생활하시는 분이세요.

아마 뇌물 받으신 것의 대부분을 그 태감에게 주지 않으셨을까 싶을 정도로 태감의 씀씀이가 매우 컸습니다. 그리고 그 태감이 최근 한 기녀에게 빠져 그녀를 기적에서 빼내고 싶어 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물론 월아는 그녀를 기적에서 빼내는 비용도 알아 왔습니다.

요즘 기녀는 몸값이 대단하네요. 저는 그 몸값 이야기를 듣고 깜짝 놀라 두 번이나 되물었을 정도였습니다. 황후마마의 비녀보다 기녀의 몸값이 더 비쌌습니다. 한편으로 그렇게 몸값이 비싼 기녀를 탐할 정도로 넉넉한 이가 고작 태감이라니 세상이 어찌 돌아가려고 이러는지 당혹스러울 지경이었습니다.

어쨌든 간에 태감은 기녀를 빼내어 자신의 부인으로 삼고 싶어 하고 태후마마는 태감이 원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들어주고 싶어 한다 하니 금액은 대충 나왔습니다. 다행스러운 일이죠.

저녁 하늘이 보라색으로 물들었을 무렵, 저는 답례품으로 상당한 금품을 보냈습니다. 황후마마의 노리개와 함께 대부분은 돈이었죠. 그 돈은 기녀를 빼낼 수 있는 금액에서 약간 미치지 못하는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태후마마께옵서는 기녀를 빼낼 수 있는 돈 정도만 바라진 않으실 겁니다. 왜냐면 심상운 대감은 황후마마의 생명줄과 다름이 없으니 태후마마께옵서는 대감을 구해 주는 대신 아주 큰 보상을 바라실 게 당연하니까요.

또한 태감은 기녀와 혼인을 할 생각이니 혼례에 들어가는 비용 또한 태후마마께 청할 테니까요. 그러니 태후마마께옵서는 상당한 거액을 어딘가에서 융통하셔야 하고 그 돈이 나올 구석은 현재로서는 다급하디다급한 황후마마밖에 없습니다.

황후마마께옵서는 제가 보내 드린 돈에 매우 흡족해하셨습니다. 아마 태후전의 상황을 모르시는 듯했어요. 그 돈은 아주 거액이었기 때문에 그분께옵서는 제가 보내 드린 돈의 전부 다도 아닌, 일부만 태후전에 보냈습니다. 그리고 그 돈은 황후전으로 돌아왔어요. 거절당한 것입니다. 태후마마께옵서도 황후마마께옵서도 서로가 서로를 무시했다고 생각하며 언짢아하셨고요.

다음 날, 황후마마께옵서는 제가 보내 드린 돈의 대부분을 태후전에 보냈습니다. 그 돈도 돌아왔지요. 서로의 기분은 더 상하셨고요. 그 다음 날, 전액이 움직였습니다. 그리고 다시 돌아왔습니다.

골은 완전히 깊어졌습니다. 제 생각보다 훨씬 골이 깊어졌어요. 저는 황후마마께옵서 저에게 돈을 융통하시길 바랐습니다. 그 빚을 빌미로 저는 운왕부를 가져 보려고 했어요. 일이 이렇게 잘 굴러가면 운왕부가 사왕부에 들어갈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제 생각과는 일이 다르게 흘러갔어요.

태후마마의 상궁이 황후마마의 상궁에게 ‘더는 오시지 마시라’고 한 것입니다. 완전히 거절당한 것이죠.

***

“이게 어찌 된 영문인지 모르겠사옵니다, 비전하.”

당혹한 건 저만이 아닙니다. 사왕비 전하 또한 몹시 황망한 기색이셨어요. 우리는 황궁 안에 있는 사당에서 만났습니다. 동궁에 객이 들어오는 것을 태자 전하께서 완전히 차단하셨기 때문에 태내에 있는 아기씨의 복을 빌기 위해 사당에 잠깐 갔을 때 시간을 맞춰 사왕비 전하께서 들러 주시는 수밖에 없었어요. 그게 우리가 만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습니다.

“본궁도 모르겠습니다.”

“신첩이 알아보았는데 그 태감이 모레 성혼한다고 합니다. 기녀는 이미 태감의 저택으로 왔고요. …그 큰돈을 도대체 어디서 마련하셨을까요?”

그런 거액을 낼 수 있는 사람은 이 제국 안에서도 많지 않은데 도대체 그 돈을 누가 냈을까. 어떻게 태후마마께옵서 그 돈을 융통하셨을까.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저도 내내 생각해 봤고 사왕비 전하께서도 골똘히 생각하신 듯했지만 서로 짐작할 바가 없어 고개만 저었습니다. 어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요?

어찌 교란하여야 할까.

물론 태후마마는 늘 돈이 필요하신 분입니다. 그건 밑 빠진 독을 끌어안고 있는 이의 숙명 같은 것이니까요. 그러나 큰돈이 필요한 순간은 따로 있는 법이고 그 순간을 누군가가 메워 주었습니다. 이제 돈은 늘 쓰던 정도만 있으면 되겠지요. 그건 뇌물로 융통 가능하신 수준이실 거고요. 아아, 어쩐다. 머리가 복잡하게 돌아갔습니다.

“사왕비 전하.”

결국 생각한 것은 다른 쪽이었습니다. 저는 좀 더 부드러운 계책을 쓸 생각이었지만 운왕부는 반드시 필요합니다. 운왕부를 가져야겠다는 점에서 저와 사왕비 전하는 그 뜻을 같이하였습니다. 운왕부는 사왕부와는 완전히 다른, 아주 큰 왕부입니다. 사왕비 전하는 그 왕부를 가지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하실 분이죠. 이분과 사왕 전하의 금슬은 아주 유명하니까요.

사왕비 전하께서 제 쪽으로 시선을 돌렸습니다. 그 눈은 청명하게 맑고 얼어붙은 호수처럼 차가웠습니다. 날카로운 의지를 품은 시선을 보며 저는 희미하게 웃었어요.

“방도를 달리해야겠습니다.”

“신첩에게 하명을 내려 주시옵소서.”

사왕비 전하께서 제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그 짧은 순간에도 머릿속이 빠른 속도로 움직였어요. 칼을 빼어 들었다면 결코 망설여서는 안 될 것입니다. 저는 제가 회임한 여인이라는 것, 언제나 사랑스럽고 순종적인 아녀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 예법이나 법도, 도덕이나 순리 같은 것을 모조리 지웠습니다. 그런 것들을 가지고서는 이곳에서 살아남을 수도, 정인을 지킬 수도 없어요. 저는 그걸 배웠습니다.

저는 지킬 것이고 그러기 위해 이길 것입니다.

그러니 무슨 짓이든 합니다.

“황후전으로 가세요.”

“가서 어찌할까요?”

눈을 잠시 감았다 떴습니다. 계책은 섰습니다. 군데군데 구멍이 있는 계책이나 방향성은 확실했어요. 아마 구멍은 계책을 펼치면서 메울 수 있을 것입니다.

“태감의 존재를 알리세요. 황후마마께옵서 어찌 나오실지 봅시다.”

싸움은 말리고 흥정은 붙이라 했던가요. 아니요, 싸움은 붙이고 흥정은 말려서.

저는 모두를 벼랑 끝에서 밀어 버릴 겁니다. 결국 그 꼭대기에 남는 분은 한 분밖에 안 계시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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