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몽중연 (55)화 (55/100)

55.

“비전하, 달리시면 아니 되시옵니다!”

궁녀들이 저를 말렸어요.

“비전하, 옥체 미령하시온데!”

“비전하! 태내의 아기씨를!”

궁녀들의 목소리가 바람과 함께 제 귓가를 스치고 지나갔습니다. 아기씨, 몸 걱정. 그런 것들은 아무 상관 없어졌어요. 네, 뛰면 안 되죠. 알아요. 저도 제가 왜 뛰는지 모르겠어요. 참을 수가 없는 마음이 몸 안에서 날뛰었어요. 보고 싶었어요. 묻고 싶었어요. 기억하고 계셨어요? 저를, 그때부터, 그 어린 시절부터 지켜 주셨나요?

그렇다면, 만약 그렇다면 모든 걸 잊고 있던 무정한 제가 밉지는 않으셨나요? 그분을 붙잡고 여쭙고 싶었어요. 왜, 저죠? 세 살의 제가 예뻤을까요? 그때의 저도 천하제일미는 아니었겠죠. 그저 조금 예쁘장한 아이였겠죠. 그때의 저에게 뭐가 있어서. 다섯 꽃잎? 그게 뭐라고? 그저 전설 속 이야기? 실제로는 아무것도 못 하는 어린아이였을 텐데.

왜 당신같이 아찔한 곳에 계시는 분이 모든 걸 걸고 저에게 오고 계시죠?

제가, 이 연정을, 어떻게 갚죠? 황궁에서는 하사품을 받으면 그날 안에 답례품을 보냅니다. 기본적인 예법이죠. 답례품은 과하지도 모자라지도 않아야 하는 것이 철칙입니다. 그런데 이 엄청난 애정에 대한 답례는 뭐가 있을까요? 이 세상을 다 갖다 바쳐도 그 답례로는 모자랄 텐데.

하늘님.

제 삶에 남은 행복이 있다면.

모두 제 지아비의 삶에 얹어 주세요. 저는 지금 모든 행복을 다 받았으니.

“비전하!”

숨이 턱 끝까지 차올랐어요. 개의치 않았습니다. 다리가 아팠어요. 하지만 뛰는 걸 멈출 수도 없었어요. 보고 싶었어요. 묻고 싶었어요. 도대체, 왜.

머릿속으로 생각했어요. 그분은 늘 자기를 감추신다고. 네, 그랬어요. 저에게 잘 보여 주지 않으셨죠. 저에 대해서는 다 알려 하시면서도 그분에 대해서는 잘 보여 주지 않으셨어요. 저는 일정 부분만을 알 수 있었고 그 이상은 금지된 숲을 바라보는 것처럼 밖에서 봐야 했습니다. 그 숲은 아주 나무가 무성해서 안이 잘 보이지 않아요.

하지만 그래도 그 숲이 얼마나 다정한지 사실은 알고 있었는데.

당신은 어여쁘시기만. 웃고 계시기만.

좋아하는 걸 드세요. 좋아하는 걸 하시면 됩니다.

한결같이, 제 평생을 함께해 주신 나의 지아비께.

“심서혜!”

추상같은 노호가 들려왔어요. 저도 모르게 걸음을 우뚝 멈추어 서자 저 멀리 태자 전하의 굳은 얼굴이 보였어요. 그분은 무척 노한 얼굴이셨고 저는 당황했습니다. 그분이 그토록 화를 내시는 걸 본 적이 없거든요. 제가 눈을 크게 뜨고 있자니 그분은 마치 축지법이라도 쓰는 것처럼 성큼성큼 제게 다가오셔서 제가 어린애라도 되는 것처럼 제 겨드랑이에 두 팔을 넣어 들어 올리셨어요.

“뛰어다니시다니! 다치시기라도 하면!”

“…….”

“넘어지기라도 하면 도대체 어쩌시려고!”

그분이 저를 들어 올리셨기 때문에 저는 그분보다 시선이 위에 있었어요. 그분을 내려다보는데 눈물이 그분의 뺨에 뚝 떨어졌습니다. 그러자 그분의 얼굴이 파리하게 질렸어요. 전하께옵서는 황급히 저를 내리시고 품으로 당겨 안으셨어요.

“잘못했습니다.”

전하께옵서 바로 저에게 사과하셨어요.

“큰소리를 내다니 제가 옥체 미령하신 비께 지독한 처사를 저질렀네요. 많이 놀라셨습니까?”

“…….”

“서혜야.”

서혜야. 그분은 제가 냉궁에서 빠져나와 죽을 고비를 넘기기 전까지는 그렇게 부르신 적도 없어요. 저를 그렇게 아끼셨으면서도. 저를 몇 번이고 구해 주셨으면서도. 생색은 고사하고 내색도 하신 적이 없습니다. 그저 가만하게 웃고 계실 뿐이었어요.

저는 그분이 저를 아끼신다고는 생각했지만 우리가 보통의 황족들과 비슷하다고만 생각했습니다. 그 정도로 그분은 저에게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으셨고 티도 전혀 내지 않으셨어요.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요?

저는 그럴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가슴이 뛰어서 터질 것 같은데. 한평생 총애받았다는 사실에 숨이 잘 쉬어지지 않을 정도로 행복한데. 행복해서 이대로 녹아 버렸으면, 차라리 지금 삶이 끝나 버리길 바라고 싶을 정도로 황홀한데 어떻게 이분은 속내를 드러내지 않으실 수 있죠?

“서혜야?”

대답할 수 없어요. 말이 나오지 않아요. 감정으로 가슴이 꽉 메어서 말문을 열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대신에 그분을 꽉 끌어안았어요. 제가 할 수 있는 한 세게. 이걸로 충분할 거라는 걸 알아요. 전하께옵서는 저에 대해서라면 뭐든 아시는 분이니까요.

전하께서옵서는 늘 당신이 만지실 때는 괜찮으셨지만 제가 만지면 마치 낯을 가리는 소년처럼 굳어지곤 하셨어요. 서로 내외하는 것처럼 또 전하께서 몸을 굳히셨어요.

서혜? 태자 전하께옵서 조심히 물으셔서 저는 그분의 품 안으로 바짝 들어갔어요. 제 몸을 그분에게 답삭 붙였어요. 완전히. 위서부터 아래까지. 우리 사이에 바람이 샐 틈도 없도록.

한참 만에 태자 전하께서 나지막이 속삭이셨어요.

“…침전에.”

그 목소리는 갈라지고 있었습니다.

“가야겠습니다.”

저는 희미하게 고개를 끄덕였어요.

***

얼마가 지났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달이 하늘을 두 번 지나갔는지 세 번 지나갔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잠을 자다 일어나는 것조차 유희 끝에 일어났어요. 태자 전하께옵서는 단단해지지 않으실 때에도 제 아래를 계속 휘저으셨어요. 손으로, 그리고 혀로. 제 밀부가 마른 채로 물이 나오지 않으면 그분은 작게 웃으셨습니다.

“총애가 식으셨습니다.”

“…전하, 총애라니요…. 제가 감히 어찌 전하께 그런 말을, 응!”

밀부의 작은 살점을 괴롭히는 손길에 눈이 질끈 감겼습니다. 쉰 목소리가 날카롭게 튀었어요. 어쩔 수 없었습니다. 자고 일어나는 동안 그곳은 무척 많이 괴롭힘당한 곳이니까요.

태자 전하께옵서는 제가 다리를 중간에 오므리려고 하면 아예 얼굴을 그곳에 박고 빨아 당기셨어요. 혀를 내밀어 핥고 혀를 뾰족하게 해서 찌르고 혀와 같이 비비고 입술을 오므려 잘근잘근 씹고 빨아들이고 살짝살짝 이를 세우기도 하셨습니다.

이제는 더 이상 아무것도 나오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도 결국 또 애액이 흘러나오기 시작했어요. 나중에는 다리를 벌리라 명하시면 활짝 벌리게 되었습니다. 부끄러웠지만 애액을 태자 전하께 드시게 하는 것보다는 나았어요. 게다가 전하께옵서는….

“그, 그만. 전하, 그런 곳에 이제 그만,”

“입에 맞아요.”

번질거리는 입술을 보면 마음이 불편해 미칠 것 같은데 그분은 그 상태로 제 몸 위로 올라오셨습니다. 그분의 다리 사이에 우뚝 선 것을 보면 더욱 마음이 어지러웠어요.

저는 회임한 상태라 태자 전하를 받아들일 수가 없습니다. 그리하여 전하께옵서는 스스로 용두질을 하셨어요. 저를 아래에 두시고, 제 다리를 벌리고, 혹은 제 아래를 빨면서, 자신의 것을 세차게 흔드시는 모습이 짐승처럼 거칠었습니다.

전하께옵서 제 것으로 엉망이 된 그분의 입술을 혀를 내밀어 스스로 한 번 핥으시며 말씀하셨어요.

“뒷골이 당기는 맛입니다.”

“전하… 아….”

“아십니까? 그저께 밤에는 이 정도는 아니셨는데 이제 제 것만 보셔도 젖으신다는 걸.”

“전하, 그런 말씀은….”

“서혜야.”

태자 전하께서 제 몸 위에서 웃고 계셨습니다. 자신의 것에 손가락을 얽으시면서요. 그 뒤로 달빛이 들어와 그분의 몸에서 부서지는 게 보였습니다.

“우리 둘이, 살까?”

저는 이게 무슨 말인지 알아들었습니다. 도망가서, 살까? 우리 둘만 있는 곳에 가서 살까?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은 말. 우리 둘만 있는 곳? 그게 가능한가요? 이분은 태자 전하시고 저는 태자비인데, 우리의 어깨에 차곡차곡 쌓인 수많은 소임이 존재하는데.

그냥 정이연, 그냥 심서혜로.

둘만 있는 곳에서….

마치 꿈같은 소리라 머리가 멍해졌습니다. 그 순간 태자 전하께서 고개를 숙이셨어요. 그분이 속삭이셨어요.

“여보, 서혜야.”

그 순간, 저는 제가 미친 줄 알았어요. 몸이 부들, 떨렸거든요. 으응. 몸이 파르르 진저리를 쳤고 아래에서 물이 흘러나왔습니다. 아, 그건 마치 제가 무언가 해서는 안 되는 행위를 한 것처럼 약간의 배뇨감마저 들 정도였어요.

“여보란 말에 쌌어?”

“저, 전하, 그만….”

“서혜야, 너도 여보라고 해 봐.”

여보라는 말은 두 번째로 들어봤습니다. 첫 번째는 어느 시장에서였죠. 그때는 이렇게 야한 말이 아니었는데.

“여보.”

“으, 응.”

“어서, 해 봐.”

아, 아. 몸이 달아서 미치겠어요. 전하를 받아들이는 곳은 물론이고 아까부터 괴롭혀졌던 작은 살점도, 그리고 뒤에 있는 곳으로 이어지는 살 부분이며 그 뒤에 있는 생각해서는 안 되는 곳까지, 전부 간지럽고 이상해서 미칠 것 같아요. 아, 제발. 제발.

“제발…. 학!”

태자 전하의 손이 제 가슴을 움켜쥐었어요. 그분의 손은 제 가슴을 난폭하지 않게 그러나 충분히 강하게 비틀었습니다. 아프진 않은데 이상했어요. 고통스럽진 않은데 누운 채로 두 발을 동동 구를 정도로, 아아, 그래요, 뒷골이 당겼습니다.

“어서.”

태자 전하께서 다정하게 저를 부르셨어요. 저는 달이 두 번인가 세 번인가 지나가는 동안 태자 전하께 계속 애무 받으면서도 그분을 받아들이진 못했어요. 회임한 여인이니까요. 아래가 바들거리는 게 스스로도 느껴졌습니다. 아…. 허리가 비틀렸어요. 마치 제 몸을 쥐어짜는 것처럼 이리저리 몸을 움직이고 엉덩이를 침상에 비볐습니다.

그러자 태자 전하께서 가볍게 웃으셨어요. 하지만 그 웃음 결에서 저는 그분의 흥분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시선을 움직이면 그분은 저의 추태를 보면서 아래를 쥔 손을 움직이고 계셨어요. 맛있는 음식을 보는 것처럼 입맛까지 다시면서요.

“여….”

입을 달싹거렸습니다. 태자 전하께 이런 무엄한 발언을.

“여….”

그렇지만 당신은.

“여보.”

제가 그렇게 부르는 순간 태자 전하의 싱글거리는 웃음이 확 날아갔습니다. 마치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요. 그분은 무표정하게, 날것의 얼굴로 저를 내려다보셨어요. 심장을 꿰뚫린 새처럼 보이기도 했습니다.

“여보, 해 주세… 흣!”

태자 전하께서 저에게 달려드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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