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
이연은 전장에서 돌아왔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말을 달리면서 그는 많은 생각에 빠져 있었다. 대부분은 자신의 지나온 인생에 대한 것들이었다. 그는 철저하고 냉정한 성품으로 알려져 있었으나 그만큼 효의 표상, 걸어 다니는 법도로도 이름 높았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은 그가 잘 교육받았기 때문이기도 하고, 애초에 그가 칼같이 문제의 소지를 만들지 않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서혜와 혼인하면서는 자신을 철저히 죽였기 때문이다.
새파란 봄 하늘 같은 서혜.
그리고 어두운 바다 같은 자신.
자신은 땅에 붙은 바다면서 하늘을 비춰 하늘인 척했다. 서혜에게 더 가까워지고 싶었다. 섞이고 싶었다.
그녀와 잠자리를 할 때마다, 그녀의 머리에 그녀가 처음 자신의 머리카락에서 떼 주었던 붉은 꽃을 꽂아 줄 때마다, 그녀의 목소리를 들을 때마다, 그녀의 발자국을 따라 걸을 때마다, 그 작은 발자국을 가만히 밟아 볼 때마다, 어떤 기분이 드는지 서혜는 모른다. 아무도 모른다. 누구에게도 알려 주고 싶지 않았다. 이 간절하게 소원을 비는 듯한 연정을 누구와도 공유하고 싶지 않았다.
서혜처럼 살고 싶었다. 그녀가 원하는 대로 도리에 맞게 살면 순리대로 모든 게 이루어진다고 믿고 싶었다. 서혜를 끌어안고 그저 안온한 삶에 잠기고 싶었다.
안이했다, 아주.
미래는 별로 생각할 게 없었다. 아무것도 정해져 있지 않으므로 생각할 것도 없었다. 하나 확실한 건 두려움 따위는 없었다. 후련했다. 서혜만 선택하면 된다는 게 무척 편안했다. 돌아가면 무슨 소리를 들을지 모르고 어떤 대가를 치르게 될지도 모르나 그건 그거대로 좋았다. 어쨌든 그 고비를 넘긴 다음엔 서혜를 냉궁에서 빼낼 것이다. 그리고 결코 놓지 않으리라.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옵니다.”
누가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인가. ‘누가’ 그러는 것인지 말에서 빠져 있었으나 이연은 어렵지 않게 알아들었다. 동궁을 호시탐탐 노리는 운왕이 가만히 있지 않으리라는 것이다.
“그렇겠지.”
말에게 물을 먹이며 이연은 여상히 대답했다. 이 좋은 기회를 놓치는 머저리는 아닐 것이다. 이연은 자신의 마음이 뒤집어쓰고 있던 인두겁을 집어 던지는 것을 느꼈다. 자신은 쌀쌀맞게 굴긴 했어도 그래도 모후니까, 형님이니까, 서모니까, 그런 식으로 모두를 용인하려고 했다.
황제의 자리는 그런 자리니까. 모두를 품고 가야 하는 지존의 자리이다. 그리고 그것이 도리라고 태어나면서부터 배워 왔다. 효를 숭상하고 도리를 지키고 순리대로 살아야 한다고 언제나 귀에 못이 박이도록 들었다. 법도와 예법에 얽매이며 살아온 건 서혜만이 아니다. 서혜는 뜻을 드높게 가졌고 다른 이들은 그러지 않았을 뿐이지, 얽매인 것은 다들 같다.
그러나 이연은 지금 그것을 벗어던졌다. 효, 도리, 순리, 법도, 예법. 이런 것들이 어딘가로 날아가 산산이 부서졌다. 그는 그 조각들을 돌아보지도 않았다. 볼 필요가 없었다. 그런 것들을 지키고 서혜를 잃은 대가를 이연은 나흘의 꿈속에서 철저하게 치렀다. 차라리 죽고 싶었으나 서혜를 바치고 얻은 것이라 스스로는 버릴 수도 없었다. 죄스러워서 한스러워서 그럴 수 없었다. 다시 그렇게 사느니 차라리 반역자로 죽겠다. 이연은 말 위로 훌쩍 뛰어올랐다.
“너희는 누가 이길 것 같으냐?”
이연이 무심히 물었다. 대답을 듣고자 한 질문은 아니었다. 이연의 말이 앞질러 나가자 장수들이 서둘러 말에 올랐다. 말들이 하나둘 꼬리를 만들며 이연의 뒤를 따랐다. 장수 중 한 명이 달리면서 옆의 장수에게 시선을 주었다. 대답을 정했느냐는 시선에 그 장수가 하, 하고 한숨을 쉬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하늘의 뜻은 이미 정해져 있지 않은가.
그의 시선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저 태자는 하늘이 정했다고 했다. 사람들은 다섯 꽃잎이 낳은 아이가 성군이 되는 것만을 생각하지만 사실은 다섯 꽃잎의 부군이야말로 하늘이 내린 것이다.
다섯 꽃잎의 사내는 정해져 있다. 심씨 가문에서 태어난 꽃잎을 가진 여인은 권력자의 여인이 된다. 황제든 태자든 반드시 권력자의 여인이 되기 마련이다. 그들은 희귀하게 태어나며 대체로 한 대에 한 명, 혹은 태어나지 않는 대도 있다. 그들이 태어날 무렵, 그들의 부군은 이미 정해져 있다. 그리고 이 태자에게 하늘은 다섯 꽃잎을 점지했다.
그에 비하면 황제는 어떤가. 현재 황후는 세 꽃잎이다. 그녀는 누구의 정인이었는가? 전 태자였던, 현 황제의 형님이다. 하늘은 누구에게 그녀를 내린 것인가? 현 황제에게? 아니면 전 태자에게? 하늘은 누구를 인정한 것인가. 그 뜻이 불분명하다. 현 황제는 늘 이 정통성에서 밀렸다. 특히 다섯 꽃잎을 비로 맞은 태자와는 사사건건 비교당했다. 그 자질과 성취에도 분명한 차이가 있어 황제는 가면 갈수록 자신의 아들을 미워하게 되었다.
황위에 오른 건 지극한 광영이다. 그리고 강산의 주인이 된다는 건 이 모든 땅의 승자가 된다는 걸 의미한다. 그런데도 그는 태자에게 열등감을 가지고 있다. 하물며 친왕에 불과한 운왕은 어떠하겠는가. 황위를 가진 것도 아니오, 동궁의 주인도 아닌 그가 어찌 태자를 이기겠는가. 현재 황제의 총애를 한 몸에 받는다고 해도 본디 총애란 갈대와 같은 것. 언제든지 흔들릴 수 있는 것이 총애다. 그리고 총애로 얻은 권력은 총애가 사라지는 순간 같이 사라진다.
게다가 태자는 금력으로는 황제에 버금간다. 그에게는 엄청난 상속 재산인 거대 상단이 존재하니까. 그는 그것을 동궁의 소유로 돌려 황제의 경계심에서 벗어나려 했지만 황제는 여전히 번들거리는 시선을 보내고 있다. 황제가 내려 주는 돈이 없이도 어마어마한 재산을 소유하고 있는 태자. 게다가 그는 군 내에서 인망도 두터웠다. 검과 돈을 다 가지고 있는 태자를 두려워하지 않을 황제는 아무도 없다. 특히 그 황제가 열등감에 젖어 있다면 더욱 그렇다.
더 안 좋은 것은 전쟁터를 떠도는 장수들도 알고 있을 정도로 황제의 열등감은 조정 내에 모르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황위라는 자리는 영광된 자리지만 그만큼 사람을 노골적으로 만든다. 사람들은 계속 두 손을 비비고 귀에 듣기 좋은 소리만 한다. 물론 쓴소리를 하는 충신들도 있지만 황제가 원하면 그들을 멀리할 수 있다. 지금의 황제도 처음부터 간신들을 옆에 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쓴소리는 늘 쓰고 단 소리는 늘 달다. 쓴소리는 언제나 인내심이 필요하고 단 소리는 늘 마음이 즐거운 법. 세월이 흐르고 별문제가 없다고 느껴질수록 쓴소리의 존재 의의는 사라져 가고 단 소리만 황제의 곁에 남았다. 그리고 그들에게 둘러싸인 황제는 자신의 희로애락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그의 속내도 알려지고 그의 열등감도 온 세상에 그 실체를 드러냈다.
문득 두 장수의 머릿속에 무엄한 생각이 떠올랐다. 황제와 태자가 적대하게 되면 어느 편에 서야 할 것인가. 동시에 한 생각이었다. 그리고 둘은 서로에게 시선을 주었다. 시선에서, 서로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 알아챘다.
잠시 둘은 결론을 내지 못했다. 그러나 망설임은 아주 잠깐뿐이었다.
“이랴!”
한 장수가 먼저 태자의 뒤를 따라 박차고 뛰어나갔다. 그러자 그 뒤를 질세라 다른 장수가 쫓기 시작했다. 그것이 결론이었다.
***
온 황도가 뒤집어졌다.
이연이 돌아오자마자 태자가 항명하였다며 황도 사람들이 떠들어 댔다. 이연은 돌아오자마자 석고대죄를 청했다. 실제로 석고대죄로 갚아질 죄도 아니었다. 그러나 이연은 자신이 돌아올 수밖에 없는 이유를 어느 정도 가지고 있었다. 서혜가 냉궁에 갔다는 건 이유가 되지 않았다.
그건 둘이 같이 개죽음을 당하자는 것이었다. 이연은 그럴 생각이 없었다. 물론 죽을 때는 함께 죽으리라. 그러나 순순히 죽을 생각은 없었다. 그의 목적은 서혜를 구해 내는 것이었다.
그는 자신이 알고 있는 정보 하나를 팔았다. 상단을 운영하다 보면 세상의 온갖 정보가 들어오기 마련이다. 그중에는 꽤 음험한 정보도 있다.
가령 예를 들면 황제의 후궁 중 한 명이 부적을 쓰고 있다는 정보였다. 대체로 후궁에서 쓰는 부적은 다른 후궁을 비방하기 위한 목적이었지만 이 부적은 매우 특별했다. 아주 귀한 신분의 사내를 위해 만들어진 것이었다. 후궁이 어느 귀한 신분의 사내를 저주하기 위한 부적을 쓴다면 그 상대는 누구이겠는가? 게다가 후궁은 아주 지속적으로 그 부적을 구입해 왔다.
이연은 그 부적 구입에 대해 지금 안 척하면서 부황의 안위가 너무 걱정되어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고, 아무도 믿지 않을 소리를 청산유수로 읊었다. 그리고 항명은 항명이니 벌을 받겠다며 석고대죄를 청했다.
실제로 그 후궁은 황제를 저주한 게 맞았다. 이유는 간단했다. 황제가 후궁이 낳은 아이를 죽였기 때문이다. 신궁의 점괘에 의하면 후궁이 낳은 아이는 황제와 합이 들지 않고 충을 맞아 황제를 이롭지 못하게 하고 그에게 불운을 가져다준다 했다.
아이는 그 점괘 때문에 태어난 즉시 후궁의 앞에서 목이 졸려 죽었다. 산고에서 채 벗어나지도 못한 채 그 모습을 목격하고, 게다가 그런 불길한 아이를 낳았다는 이유로 온갖 핍박을 당하기까지 한 후궁은 결국 황제에게 앙심을 품었다.
이연은 그동안 이 후궁에 대해 잘 알고 있었으나 가만 내버려 두었다. 충 맞은 게 자신도 아니고 저주를 받는 것도 자신이 아니다. 무엇보다 이연은 부황의 처사가 매우 지나치다고 여겼다. 충을 맞았다면 푸는 방법도 있을 것이다. 본디 모든 것은 풀 수 있게 되어 있으니까.
그러나 부황은 아예 싹을 잘라 버리겠다며 황자가 숨 한 번 제대로 쉬기도 전에 산부의 앞에서 아이를 죽였다. 그러니 원한을 사고도 남을 일이라 여겼다. 그러나 일이 이쯤 되면 그녀를 봐줄 일이 아니었다. 이연은 뭐든 바칠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게 무엇이든 간에.
게다가 그 부적은 많은 인명을 희생시켜 만들어지는 것이었다. 그 부적을 쓰는 데는 신선한 피가 필요했다. 그 피는 반드시 인간의 것이어야 했고 심지어 대량을 요구했다. 어린 피일수록 효험이 좋다고 알려져 있다. 부적을 만드는 이들은 어린아이들을 납치하여 부적을 만드는 데 이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후궁인 그녀가 그것을 몰랐을 리 없다. 아이가 죽어 앙심을 품은 여인이 다른 사람들의 아이가 죽어 나가는 것에는 눈 하나 깜빡이지 않았다.
이연이 고해 후궁은 자진을 하명받았다. 그녀가 스스로 자진하지 않자 내관들이 그녀의 목을 억지로 매달았다. 그러는 동안 이연은 계속 석고대죄를 청하다 금족령을 받았다. 그리고 동궁에 든 밤, 이연은 황제가 내린 약탕 그릇을 하나 받게 되었다.
“이것을 드시는 것으로 용서하시겠다 하시옵니다.”
이연은 새까만 약탕 그릇을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부황은 가끔 자신에게 독약을 먹였다. 죽지 않을 만큼 독을 먹여 괴롭혔다. 사경을 헤매게 만들어 그의 생사여탈권을 쥔 사람이 부황이라는 걸 똑똑히 새기게 했다. 커서는 그 일에서 좀 해방된 듯했는데 딱히 그렇지도 않은 모양이었다. 이토록 새까만 약이 당도한 걸 보면.
이 약을 먹고 내일을 볼 수 있을까.
이연은 잠시 생각했다. 약을 먹는 게 좋을까, 아니면….
아주 잠깐 동안 이연의 머릿속에서 여러 계산이 움직였다. 그러나 아직은 힘이 부족했다. 부황과 싸워 이길 수 없었다. 냉궁에 있는 서혜를 안전한 곳까지 빼낼 수도 없었다. 황궁은 아직 부황의 손바닥 안이었다.
안이함의 대가가 이렇게 컸다.
이연은 법도대로 행했다. 부황께 감사의 절을 하고 약을 천천히 마셨다. 무척 쓴 약이었다. 코끝에서 비릿하고 쓴 냄새가 떠돌았다. 좋지 않은 약이리라. 분명한 예감이 왔다. 어쨌거나 여기서 자신의 속내를 드러낼 수는 없다. 이연은 우아한 자세로 약을 끝까지 먹고 나서 태감에게 탕약 그릇을 돌려주었다. 새햐얀 그릇에 묻은 검은 탕약 자국이 눈에 거슬렸으나 이연은 화사하게 웃어 보였다.
“됐는가?”
서혜는 어떻게 됐지? 그녀는 잘 있나? 건강하고?
부황의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이 태감이라면 서혜의 안부도 알 텐데 물을 수가 없다. 마음이 초조했다. 이연은 아무렇지도 않은 척하며 태감을 바라보았다. 그가 나가길 기다리는데 태감이 가만히 이연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윽고 태감이 가만히 입술을 올렸다.
“전하.”
태감이 이연을 불러 그가 시선을 흘끗 주자 태감이 천천히 이연에게 곡배했다. 아주 천천히, 절을 하는 태감의 모습을 살피던 이연의 눈이 커졌다. 태감의 손이 평소 곡배와는 다른, 반대로 포개져 있었다. 저 방식은 선조들, 즉 죽은 사람에게 하는 곡배의 방식이었다.
“물러가옵니다.”
태감이 물러간다고 하면서 이연을 흘끗 보았다. 확인했냐는 듯이. 이연은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수고했네.”
이연의 웃음을 본 태감은 그가 확인했다는 걸 깨닫고 희미하게 미소 짓더니 뒤로 물러났다. 그는 태감 일행이 완전히 사라지는 걸 확인한 다음에야 바로 달려나가 속에 있는 걸 몽땅 게워 냈다. 가능한 한 전부 게워 내야 했다. 이연이 믿을 만한 내관에게 물을 가져오라 이르자 내관이 물을 가져왔다. 이연은 물을 마시며 계속 속을 비웠다. 살기 위해선 계속 토해야 했다.
능구렁이 같은 태감이 나에게 붙는다?
이연은 토하면서도 웃음을 터뜨렸다. 내관이 이연을 보면서 무서운 듯 움찔거렸다. 사람들이 요즘 자신이 실성한 건 아닌지 자꾸 두려워하는 기색을 보인다고 생각하며 이연은 또 웃었다. 이렇게 또 인간성을 하나 버리는 기분이었다. 부황이 자신을 죽지 않을 만큼 괴롭힌 적은 여러 번 있었지만 정말 죽이려고 든 건 처음이었다.
살아야지.
이연은 토하고 또 토했다. 내장을 토하는 기분이었다. 나중에는 피를 토할 정도였으나 이연은 개의치 않았다. 그는 계속 토했다. 사약은 먹자마자 죽는 물건이 아니다. 그리고 부황도 먹자마자 죽는 그런 약을 보냈을 리가 없다. 명분이 없는데 먹자마자 죽어 버리는 약을 보냈다가 즉사하면 조정이 난리가 날 테니 그건 원하는 바가 아닐 터. 분명 작용하는 데 시간이 걸리는 약을 보냈으리라. 그것이 이연에게는 행운이었다.
그는 피를 토하면서 헐떡거렸다. 황제가 자신을 죽이려고 한다. 죽이고 싶을 정도로 미워한다. 아버지가 자신에게 먹고 죽으라며 약을 보냈다. 어머니는 아내를 죽이려 했다. 그런 것들이 이젠 아무렇지도 않아졌다. 한 번 토할 때마다 약과 함께 무언가가 토해졌다. 효, 도리, 순리, 예법, 법도. 그런 것들이 쏟아져 내렸다.
그 밤.
이연은 모든 것을 토해 내 버렸다. 그리고 일어난 그는 다신 그것들을 돌아보지 않았다. 어차피 오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