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
태자 전하의 숨소리가 계속 제 귓가를 따라왔어요. 그분이 제 뺨에 당신의 뺨을 비비고, 제 얼굴에 입술을 내리고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분이 제 옷을 벗기셨어요. 다정하지 않은, 퍽 거친 움직임이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으로 충분했어요. 다정함 같은 건 바라지 않았어요. 그저….
“빨리 갖고 싶어?”
초조했어요. 저는 태자 전하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어요. 정말로 그랬습니다. 빨리 그분을 품고 싶었어요. 그러면 안심할 것 같았습니다. 혼자인 건 싫습니다. 사람이 많은 것도 좋아하지 않지만 사실은 혼자인 게 좋았던 적도 없었습니다.
태자 전하의 손이 들어왔을 때 저는 침상에 누워 있었어요. 둘 다 옷이 흐트러진 상태였어요. 전하께옵서는 제 옷을 채 다 벗기지도 않은 채 그분의 옷을 먼저 다 벗으셨습니다. 보란 듯이 저를 그분의 다리 사이에 가두시고, 무릎으로 일어서셔서 웃옷을 벗으시는 게 보였어요. 그것만으로도 왠지 참기가 어려워졌습니다. 어서 하고 싶어졌어요.
“오늘 이상하네.”
전하께서 웃으셨어요. 옷을 다 벗으신 그분은 나신이셨어요. 나신인 그분의 몸은 옷을 입었을 때보다 더 크고 강해 보입니다. 그 몸이 저를 덮듯이 내려왔어요. 제 뺨에 입을 맞추고 입술을 가볍게 깨물며 말씀하셨어요.
“정숙하신 태자비께서 오늘따라 왜 이리 난잡하시지?”
저는 아닌 척 고개를 저었습니다. 그러자 전하의 손이 제 아래 둔덕을 움켜쥐셨어요. 희롱한다고 할 수도 없을 정도로 억센 손아귀에 흑, 하고 숨을 토했습니다. 그러나 제 아래는 그 순간 무언가를 흘리고 있었어요.
“엉덩이도 여기도 움찔거리는 게 느껴지는데. 얌전히 계시질 못하잖아.”
“아니에요.”
“아니기는. 약이라도 먹어 안달이 난 여인 같은데.”
아니라고 해야 하는데 제 엉덩이가 슬금슬금 움직이는 게 저도 느껴졌어요. 얼굴이 확 달아올랐습니다. 고개를 돌려 시선을 피하고 싶었지만 피할 수가 없었어요. 태자 전하는 제가 고개를 돌리려고만 하면 입술을 깨무셨어요. 벌이라도 주시는 것처럼요.
제 몸에 닿은 그분의 양물이 단단해져 있는 게 느껴졌어요. 그게 들어올 때의 느낌이 떠올랐어요. 빠듯하고 불편한 그 감각이요. 익숙해지려면 한참 걸리는 감각이 떠올라 저도 모르게 숨이 가빠졌어요. 달뜬 제 숨소리에 태자 전하는 만족하신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분은 제 치마를 올리고 속곳을 찢어 버리고 자신의 양물을 갖다 대셨어요.
“빨아 드릴 필요도 없이 완전히 젖으셨네요.”
평소에는 아래를 질척하게 빨아 주시고는 했는데 오늘은 그럴 필요가 없다는 말씀이셨어요. 부끄러웠지만 그보다는 전하를 더 갖고 싶었습니다. 태자 전하께서 느긋하게 그분의 것을 제 아래에 비비셨어요. 넣어 주지는 않은 채 비비시는 그 느낌에 몸이 배배 꼬였어요. 갖고 싶어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제가 그분을 올려다보자 그분이 웃으셨어요.
“더 원해 봐, 서혜야.”
고개를 저으려다가 그분을 올려다보고 숨이 멈춰졌어요. 그분은 진심이셨어요. 제가 원하길 바라고 그걸 기다리고 계셨어요. 제가 조르기 전에는 해 주지 않을 요량이시라는 걸 알았습니다. 저는 벌리고 있던 양다리를 들어 그분의 허리에 감쌌어요. 그분의 눈이 가늘어지는 게 보였습니다. 만족스러운 시선. 그러나 조금 더 원하는 듯한 눈길에 저는 그분의 엉덩이를 제 다리로 당겼습니다.
“전하.”
그 이상은 할 수 없었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했습니다. 그분은 웃음을 멈추고 이를 갈면서 제게 달려드셨으니까요.
밤의 태자 전하는 늘 정열적이셨지만 그 밤은 약간 광기까지 어린 밤이었습니다. 그분이 들어오실 때마다 저는 어쩔 줄 몰랐어요. 쾌감을 느끼는 것도 느끼는 것이지만 그것보다는 자꾸 이상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몸이 뜨거웠어요. 지나치게 뜨거웠어요. 쾌감의 문제가 아니라 진짜로 몸이 뜨거웠습니다. 그리고 아랫배가 자꾸 찌릿찌릿했어요.
응, 응. 제가 못 참고 아랫배를 움켜잡은 채 신음하면 태자 전하께서는 몇 번이고 멈춘 채 어디가 아프냐고 물어보셨어요. 하지만 그때마다 못 참고 그분을 재촉하는 건 저였습니다. 허리를 비틀고 안을 조이면서 저는 해 달라고 청했어요.
마지막은 엎드려서 했습니다. 엉덩이만 치켜든 짐승 같은 모습이었죠. 전하는 몇 번이고 제 어깨와 등을 깨무셨어요. 손을 앞으로 돌려 가슴을 움켜쥐고 쥐어짜셨죠. 가슴 끝이 아려서 견딜 수가 없었어요. 몸 안에서 무언가가 넘실거리고 있었어요. 차라리 터져 버렸으면. 차라리 모조리 넘쳐흘러 버렸으면.
제가 그렇게 울었을 때 머리가 완전히 하얗게 비었습니다. 그게 끝이었어요. 그분이 제 안에 파정을 하셨는지 어쨌는지 기억나지 않습니다. 쾌감의 끝을 보았다기 보다는 제 체력의 한계에 도달했다는 게 더 옳은 표현인 거 같아요. 저는 정말로 어느 순간부터는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으니까요.
눈을 떴을 때는 태자 전하께서 걱정스러운 얼굴로 저를 내려다보고 계셨습니다.
“전하…?”
눈이 잘 떠지지가 않았어요. 너무 잤나 봐요. 얼마나 잔 걸까, 생각하고 있을 때 문득 침상이 익숙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누워 있는 곳은 서연각의 침상이 아니었어요. 제 처소의 침상, 그러니까 동궁에서 쓰던 것이었습니다.
그렇다는 건 여기는 동궁의 제 처소라는 이야기가 되지요.
서연각에서 이제 나오게 된 걸까요. 왜? 이해할 수가 없어서 태자 전하를 올려다보자 전하께서 황망한 얼굴로 저를 내려다보고 계셨어요. 그 얼굴에는 당혹감과 함께 걱정과 분노가 범벅이 되어 있으셨습니다. 이럴 만한 일이 도대체 뭐가 있었을까, 생각하는데 그분이 제 팔을 단단히, 그러나 아프지는 않게 붙잡고 말씀하셨어요.
“완벽한 태자비니, 천하제일미니, 그러시면 다 뭐 합니까.”
첫마디가 핀잔이라 눈만 깜빡였어요. 말씀하시는 바를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리 곰 같으셔서야 어찌 제가 마음을 놓고 나다닐 수 있겠습니까.”
저는 곰 같지 않습니다. 여우 같다고야 말하기 어렵겠지만 답답할 정도로 우직한 성향의 사람도 별로 아니라고 생각해요. 적당히 눈치 빠르고 적당히 치고 빠지는, 황궁 생활에 특화된 사람이죠. 곰같이 우직한 사람은 황궁 생활에서 어려움을 많이 겪습니다. 그러니 저를 곰 같다고 하시면….
“회임 한 달째라는데 스스로 모르셔서야.”
회임?
…회임?!
제가 몸을 벌떡 일으키려 하자 태자 전하께서 제 등을 받쳐 주셨어요.
“조심.”
그분은 저에게 경고하셨습니다. 몸을 함부로 움직이면 안 된다는 경고는 제가 회임했다는 게 정말로 실감이 나게 했습니다.
회임이라고?
저는 제가 석녀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어요. 회임은 어려울지도 모른다고 늘 염려했어요. 이건 저뿐만 아니라 황궁 내에서 많은 분들이 의심하고 있었던 사실이기도 합니다. 물론 황후마마는 이미 태의를 시켜 제 몸을 진찰하게 하셨고 태의들은 제 몸이 회임을 하는 데 있어 문제가 없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황후마마께옵서는 태자 전하께옵서 워낙 여색을 꺼리시니 잠자리도 저어하시나 보다 생각하시는 것 같았어요. 하지만 우리에겐 잠자리의 문제가 없었으니 저는 속으로 저에게 문제가 있거나 혹은 태자 전하께 문제가 있으리라고 생각했었습니다. 태자 전하께서는 워낙 기골이 장대하신 미장부시니 아마 문제가 있다면 몸이 약한 저일 가능성이 높다고 여겼고요.
그런데 회임이라니….
기쁨보다는 놀라움이 먼저 찾아왔습니다. 그러고는 걱정이 파도처럼 밀려들었어요.
지금 이 상황에서 회임이라니.
이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상황에서.
“기쁘지 않으십니까?”
어두운 목소리에 고개를 돌리자 태자 전하께서 저를 내려다보시는 게 보였습니다. 그분은 무척 당황하신 것처럼 보였어요. 기쁘냐고 하문하신다면… 기쁘기는 합니다. 하지만 기쁨보다는 당장의 걱정이 더 우선이죠. 회임을 하게 되면 저를 해하려는 분들이 더 많아질 겁니다. 태아를 잘 지킬 수 있을지, 그리고 태자 전하를 어떻게 도와야 할지 생각이 태산 같은데 기뻐할 틈 같은 건….
“서혜야, 우리 아이가 생겼는데.”
태자 전하는 정말 이해할 수 없는 얼굴이셨어요.
“왜 그런 얼굴이야.”
그분의 일그러진 얼굴이 마치 당장에라도 울 것 같아서 저는 그제야 그분이 무슨 생각을 하시는지 알았습니다. 당황스러웠어요. 저는 태자비이고 그분은 태자십니다. 제가 그분의 아이를 회임한 건 당연히 기쁠 일인데 그분은 제가 기뻐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시는 걸까요,
“전하.”
저는 서둘러 그분의 양손을 잡았습니다.
“신첩은 진정 기쁘옵니다.”
“…….”
“단지 한 치 앞이 보이지 않는 길에 서 있다 보니 발을 잘못 내디뎌 귀한 황손이 잘못될까 두려울 따름입니다.”
그리고 만에 하나 저는 태자 전하를 위해 저 자신을 포기해야 한다면 아낌없이 포기할 생각이었는데 배 속에 태아가 있으면 그럴 수가 없습니다. 그것을 어찌해야 할까요. 사실은 마음이 무겁습니다. 이제 저는 저를 포기할 수도 없고 태자 전하를 포기할 수도 없게 되었습니다. 가뜩이나 선택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는데 더 좁아 들게 되는 거죠.
“서혜야.”
태자 전하께서 절 부르셔서 저는 그분을 올려다봤어요. 그러자 그분이 부드럽게 미소 지으셨습니다.
“우리 아이가 생긴 거야.”
“…….”
“응? 경사잖아.”
태자 전하께서 제가 잡은 손을 끌어당기셨어요. 저는 천천히 그분의 품으로 끌려가 안겼습니다.
“너는 아무것도 걱정할 필요가 없어.”
도닥도닥, 그분이 저를 다독이셨어요.
“그저 기뻐하면 돼.”
저는 그분의 품에서 눈을 감았습니다. 전하께옵서 지켜 주려고 하신다는 건 알아요. 여인은 사내에게 순종하고 그에게 보호받아야 하는 존재라고 배웠으니까요. 그러니까 저는 여인으로서 아마 낙제점일 것입니다. 그러나 상관없습니다. 저는 저를 보호하기 위해 태자 전하께서 조금이라도 힘드신 건 보고 싶지 않아요. 그분은 충분히 저를 오랫동안 지켜 주셨고 이젠 제가 힘을 내야 할 때입니다.
그러나 그분의 마음은 알 것 같았어요. 아이가 우리에게 왔습니다. 오랫동안 기다렸던 존재가 드디어 우리에게 와 주었어요. 기뻐해야 마땅하고 반갑게 맞이해야 할 존재였습니다. 맞아요, 저에게 이렇게 홀대받을 존재는 절대 아니었어요.
저는 전하의 등에 팔을 감은 채 고개를 크게 끄덕였습니다. 그리고 가만히 제 기쁨을 음미했습니다. 아이. 우리 둘의 아이. 저를 닮았을까요, 태자 전하를 닮았을까요, 아니면 반반씩 닮았을까요? 황자일까요, 황녀일까요? 어떤 아이일까요? 외향적일까요, 내향적일까요. 책을 읽는 걸 좋아할까요, 아니면 활을 쏘는 걸 좋아할까요.
어떤 아이든 저는 깊은 정을 줄 것입니다. 황궁에서 뭐라고 하든 상관 안 할 겁니다. 저는 직접 그 아이를 키울 것이고 아이가 행복하게 해 줄 거예요. 아이가 불행할 바엔 차라리 멀리 보내 버릴 겁니다. 황궁에서 불행하느니 자유로운 바람을 쐬며 행복한 게 나으니까요.
크게 숨을 쉬자 제 폐부에 그 자유로운 바람이 들어오는 듯했습니다. 저는 태자 전하의 품에서 숨을 크게 쉬고 그분의 가슴에 제 뺨을 비볐습니다.
“전하.”
나지막이 속삭이자 그분이 대답하셨어요.
“예.”
가슴이 두근거렸어요. 이번엔 숨을 작게 쉬어 봤어요. 아무도 제가 숨을 쉬는 걸 모르도록요.
“황손을 낳으면….”
“…….”
“같이 서연각에 가 보고 싶사옵니다.”
저는 그곳이 좋았습니다. 세상에 우리 둘뿐인 곳. 물 냄새가 끊이지 않는 곳. 아무도 올 수 없는 곳. 연못 한중간에 떠 있는 전각. 등대처럼 보이기까지 하는 그 전각이 너무나 좋았어요. 그곳에서 태자 전하와 단둘이 함께하는 시간이 좋았습니다. 그저 정이연, 그저 심서혜. 그렇게 단 두 사람이 되는 순간순간이 길게 존재하던 그곳을 어찌 잊을까요.
“그래요.”
태자 전하는 그렇게 말하고 저를 마주 안아 주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