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태자 전하를 받아들일 때마다 몸이 움츠러드는 것은 어쩔 수가 없습니다. 그분을 받아들이는 건 굉장히 힘이 듭니다. 좁은 곳을 파고드는 타인의 육체란 존재감이 아주 큽니다. 언제나 아래가 찢어질 것 같다고 생각해요.
전하께서는 저를 안으실 때마다 제 다리를 흉측할 정도로 벌리게 한 뒤 아래를 핥으십니다. 그 때문에 젖어서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인지 찢어지지는 않지만 그래도 아픕니다. 냉궁에 가기 전에는 향유를 쓰기도 했었는데 요즘은 제가 울 때까지 핥기만 하십니다. 제가 원하며 졸라야 그제야 제게 다가와 저를 안으세요. 대체로는 관계가 그렇습니다.
“서혜야.”
몸이 흔들렸어요. 안쪽을 계속 받혀서 숨이 턱턱 막혔습니다. 가슴이 쥐어짜일 때마다 저도 모르게 허리를 비틀었어요. 읏. 전하께서 신음하시는 걸로 제가 저의 내밀한 곳을 조였다는 걸 알 수 있었습니다.
“너무 조여.”
전하께서 투정하셨어요. 어린애 같은 말투. 그러나 사납게 돋은 그분의 분신은 제 안을 온통 진창으로 헤집고 계셨어요. 그곳은 몸 안이라 그런가, 너무 예민했어요. 살 안을 푹푹 파일 때마다 날카로운 쾌감이 치솟아 저는 도저히 교성을 참기가 어려웠습니다. 입을 다물면 숨을 제대로 쉴 수가 없으니까요. 평소처럼 코만으로 호흡하기에 제 숨은 너무 가쁘고 힘겨웠습니다.
“흐, 으응! 아, 응! 아니, 그런 거, 아니…!”
“조금만 안 하면, 후, 이런 식으로 좁아지는 거네.”
“응, 흐으으! 전, 하, 저는….”
“초야 같은 기분이라.”
초야 같다는 건 잠자리에서 칭찬인 줄 알았는데 태자 전하는 그 말을 하실 때 쾌감에 얼룩진 얼굴로도 조금 미간을 좁히고 계셨습니다. 초야 같다는 게 그분에겐 칭찬이 아니셨어요. 그분은 마른 입술을 스스로 혀를 내밀어 축이면서 말씀하셨어요.
“언제쯤 유부녀라는 티를 내려나, 여긴?”
“흐, 전하. 그런 말씀은, 응!”
“천하제일미에 완벽한 태자비라는 당신께서, 응? 여기만 이렇게 늘 처음같이 구셔서야.”
태자 전하의 어깨를 잡은 손이 계속 미끄러졌어요. 그러자 그분이 제 손을 아예 목에 걸어 주셨습니다. 전하를 부둥켜안고 다리를 넓게 벌리는 것은 늘 무안하고 불편한 기분입니다. 하지만 그 기분은 바닥에 깔린 아주 얇은 것에 불과하고 그 위를 채우는 어마어마한 쾌감이 있습니다.
쾌감 속에서 저는 그저 몸을 맡겼습니다. 태자 전하는 새벽이 올 때까지 제 몸을 여셨어요. 무척 끈질긴 교합은 마치 최초의 대지에 다다라 자신의 흔적을 새기는 사람처럼 보였습니다. 그분의 아래에 누워 태자 전하의 선하고 아름다운 얼굴을 올려다보았습니다. 하지만 그 얼굴은 욕정으로 무섭도록 일그러져 있었어요. 그것이 매우 관능적이었습니다. 대장부께 관능이라는 말을 붙여도 되는지는 모르겠지만요.
언제 잠들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태자 전하의 밤 시중을 드는 중간에 잠들었던 것 같은데 물론 그래서는 안 된다는 걸 알지만 제게 더는 버티어 낼 힘이 없었습니다. 전하께옵서는 “자도 돼, 서혜야.”라고 속삭이셨고 저는 그 말에 순종했습니다. 너무 힘들었어요. 사실 제가 잠이 든 건지 까무룩 정신을 잃었던 건지도 혼란스러울 지경입니다.
눈을 뜨자 눈앞에 보이는 건 서안이었습니다. 책상 아래의 광경이 눈앞에 보인다는 건…. 하고 고개를 들어 보니 저는 태자 전하의 무릎에 머리를 댄 채 자다 일어난 중이었어요. 전하께옵서는 제 몸에 금금을 둘러 주신 채로 무언가를 보고 계셨습니다.
촛불이 아른아른 전하의 얼굴을 비추고 있었습니다. 당대를 대표하는 명필이시며 몇 개의 전쟁을 승리로 이끈 맹장이시기도 한, 문무를 겸비하신 분입니다만 그분의 얼굴만은 마치 선계의 신선처럼 고고하고 우아합니다.
두루마리를 넘기시는 손가락 끝조차 고상하게 느껴질 정도로 모든 것이 무시무시하게 정돈되어 계시는 분. 걸어 다니는 법도라고 불리시던 이분께서 왜 황상의 적이 되신 걸까요. 한때는 효의 모범이라 칭송받으셨던 분인데.
“두렵지 아니하시나이까?”
만약 황상께서 제 아버지를, 어머니를, 동생을, 가문을, 식솔을, 모두 모함해 역적으로 모신 거라면 저는 그분께 미약하게나마 항거해야 합니다. 저는 그게 무서워요. 황상에 비하면 저는 마치 거대한 장군 앞에 서 있는 개미처럼 느껴지니까요. 발로 밟히면 바로 죽어 버릴 개미가 장군에게 약간의 피해라도 주려면 무슨 짓을 해야 할까요.
지금으로서는 생각만으로도 감히, 라는 말만 절로 나올 뿐입니다. 저만큼 미미한 존재는 아니시지만 태자 전하도 황상께 비하면 약자인 건 마찬가지입니다. 심지어 저보다 잃을 건 더 많으시지요. 그런 분께옵서 어찌하여 황상의 맞은편에 서 계실까요.
제 말에 태자 전하께서 고개를 숙여 저를 바라보셨습니다. 일어났냐는 듯이 그분은 제 머리카락을 손가락빗으로 빗겨 주셨어요. 머리를 만져 주시는 게 기분 좋아 눈을 감고 있자니 대답이 제 위로 다정하게 내려앉았습니다.
“두렵지 않습니다.”
“어찌 그러실 수 있으십니까?”
강산의 주인을 적대하면서 어찌 두렵지 않을 수 있습니까? 그게 어떻게 하면 가능한 일입니까? 저는 궁금해 여쭈었습니다. 그러면서도 마음속으로는 의지와 용기의 문제이리라고 생각했어요.
태자 전하께옵서는 운왕비 전하의 죽음에 대한 진실을 찾아내어 정의를 실현하고자 하는 드높은 뜻이 있으시고 그에 따른 용기 또한 그 의지를 받쳐 주고 있기 때문이리라고 생각했는데 대답은 전혀 다른 것이었습니다.
“살고 싶으니까요.”
오로지 살아남기 위해서라면 자리를 잘못 찾으신 게 아니신가.
고개가 갸웃거려졌으나 그분은 제 의문을 풀어 주지 않으셨습니다. 그저 먼 곳을 바라보며 저에게인지 아니면 다른 누군가에게인지 모를 말씀을 하실 뿐이었습니다.
“살아야 부귀도 영화도 누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산다는 건 숨을 쉰다는 것만으로는 부족하지요. 사람에게는 살아가는 데 있어 불가결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인의든 도리든 뭐든…. 사람은 그래서 사람이고, 저 또한 제가 필요로 하는 것이 있어 그것이 없다면 인간으로 살아갈 수 없습니다. 저는 짐승으로 살 수는 없습니다. 그건 너무나….”
그분은 잠시 숨을 멈추셨어요. 고통스러워서 숨도 쉴 수 없으신 것처럼요. 그리고 어느 순간 숨을 거세게 토해 내면서 그분의 무릎에 누워 있는 저를 꼭 끌어안으셨어요.
“지옥입니다.”
나지막한 목소리는 구해 달라는 것처럼 들렸습니다. 저는 손을 뻗어 그분을 끌어안았어요.
도대체 이분은 무엇을 가슴에 품고 계실까요. 저는 이분이 뭔가를 감추고 계신다는 걸 압니다. 그것이 과거의 상처인지 아니면 현재의 고통인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게 무엇이든 모쪼록 평화로운 날이 빨리 오기를 바랄 뿐입니다.
눈이 오는 밤은 유독 춥고 그래서 사람의 체온이 너무나 따뜻하게 느껴졌습니다. 설사 마음이 다 통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체온만으로도 충분할 정도로, 너무 추운 밤이었습니다….
***
고모님이 다시 입궁하신 건 다음 날 오후였습니다. 어제와는 사뭇 다른 상황이었습니다. 제가 그분을 호출했고 금군과 상궁이 그분을 모셔 왔습니다. 고모님은 제가 부를 줄 알았다는 듯이 새벽부터 기도를 끝내시고 의복을 단장하신 채 기다리고 계셨다더군요.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 왔습니다. 황궁 생활을 하면서 제가 알게 된 게 하나 있다면 아는 건 많을수록 좋으며 아는 게 적을수록 위험해진다는 겁니다. 저는 지금 아무것도 모르고 제 주변 사람들은 모두 저보다 월등히 아는 바가 많지요.
저는 아주 위험한 상태에 놓여 있을 겁니다. 입지상으로도 불리하고요. 저의 지위가 유지되었다 하더라도 제가 역적의 딸이라는 근원은 사라지지 않으니까요.
지금 가장 입을 열기 쉬운 상대는 고모님입니다. 어제 그분은 저를 한편으로 인식하고 계셨습니다. 같은 심씨 가문의 사람. 집안의 원수를 갚아야 할 동지로 보고 계셨어요. 그렇다면 다는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는 제게 내용을 공유해 주실 겁니다.
우리는 차를 한 잔씩 앞에 두고 서로를 마주 보고 앉았어요. 독대하겠다고 하여 모든 궁녀를 내보낸 뒤였어요. 서 상궁조차 내보내고 단둘이 앉았는데 둘 다 말을 꺼내진 못했어요. 서로 머릿속으로 할 말을 정리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저대로, 고모님은 고모님대로요.
고모님의 생각은 알 수 없었지만 저는 일단 머릿속으로 말문을 열 대화를 준비했어요. 그리고 약간의 시간을 지체한 다음 입을 열었습니다.
“지난밤 생각해 보았는데.”
“…….”
“궁주를 고모님으로 대해야 할지 역적으로 대해야 할지 알 수가 없습니다.”
저는 처음부터 고모님께 제가 고모님과 한편이니 정보를 공유해 달라고 말할 생각은 없었습니다. 사람은 참 기묘한 존재입니다. 쉽게 가지면 더 의심하기 마련이죠. 황궁 생활을 하며 배운 것입니다. 그러니 저는 고모님께 저를 아주 어렵게 드릴 생각이었습니다.
“태자비 전하, 전하께옵서는 근본을 잊지 마시옵소서.”
가문이 곧 근본이니 가문을 잊지 말라는 것이지만 저는 역적이 된 가문을 위해 제 한 몸을 바칠 생각은 없습니다. 가장 중요한 건 왜 모함을 당했다고 생각하는지, 입니다. 정말 제 가문은 모함을 당한 걸까요? 만약 그렇다면 근거는 어디에 있을까요.
“근본이라. 역적도 근본인가요.”
“모함이라는 걸 아실 만큼 총명한 분이실 터인데,”
“제 총명의 가부를 고모님께서 결정하시는 건 아닙니다. 제가 고모님이라고 칭하고 존대를 한다 하여 저보다 귀한 자리에 있다고 착각하시면 곤란하지요.”
손가락으로 찻잔을 톡 건드리자 통, 하는 소리가 났습니다. 평소라면 듣기 좋았을 맑은 소리가 우리 사이에서는 흉흉한 것처럼 사납게 울렸습니다. 저는 찻잔을 들어 한 모금 머금었고 고모님을 저를 노려보셨어요. 그러거나 말거나 저는 크게 상관하지 않았습니다.
“송구하나이다.”
결국 고모님이 이를 갈며 저에게 사과하셨어요. 가문이 다 도륙 났는데 이따위 말장난이나 하고 있어야 한다는 게 견딜 수가 없는 듯한 얼굴이었습니다. 상 위에 있는 손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어요. 이토록 감정을 잘 드러내시는 분이 아닌데 저에게 감정을 고스란히 내색하는 게 신기했습니다.
아.
문득 깨달았어요. 이분은 오래 참으신 겁니다. 너무 참으신 지 오래되셔서 더는 단 한순간도 참으실 수가 없게 되신 거예요. …모함은 사실이거나 최소한 고모님은 가문이 모함당했다고 진심으로 생각하고 계실 가능성이 높아졌습니다.
하지만 다들 연기를 참 잘하시니 좀 더 두고 보긴 해야겠지요.
“존귀하신 폐하께옵서.”
저는 가볍게 황상이 계시는 진선전 방향으로 예를 차리고 말을 이었습니다.
“영명하신 판단을 내리셨을 터인데 어찌하여 이런 항명을 하십니까?”
“영명하신 판단이요?”
이게 무슨 개소리냐는 듯이 고모님이 혀를 차셨습니다. 그러고는 그분이 쾅 상을 내려치셨어요. 저는 조금 놀랐지만 놀란 내색은 일절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고모님이 제 멱살이라도 잡을 것 같은 기세로 낮게 소리치셨습니다.
“정녕 역모라면!”
피를 토하는 것 같은 목소리로.
“어찌하여 구족이 멸해지지 않았습니까? 폐하께옵서 언제부터 그렇게 대자대비하신 분이었죠? 진정 역적이었다면 다 죽었어야 하는데 어찌하여 우리 가문만 도륙 난 것입니까?!”
“…….”
“진정 역모였다면 꽃잎이 아니라 그 이상의 무엇이었어도, 천지신명 그 자체였어도! 심씨 가문의 누구도 살아남지 못하였습니다. 무엄하오나 비전하께서도 물론이시고요. 아무도. 저와 황후마마 외에는 아무도 살지 못하였어요. 꽃잎을 가졌다는 임부도 그 아이를 낳아 보지도 못하고 죽었을 것입니다. 용상을 모욕한 죄는 그토록 큽니다. 그런데 이토록 쉽게 살아남는다고요.”
틀린 말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저도 이 정도는 생각하고 있었어요. 이건 심증에 불과합니다. 물론 저는 백방으로 알아보겠으나 이 한마디 말로 제 아비가 모함을 당했다고 결론 내리기엔 부족합니다.
저의 표정에서 부족하다는 답변을 보신 고모님이 품에서 무언가를 꺼내 내밀었습니다. 푸른 천에 싸인 물건은 타인의 눈을 피하고자 하는 의도가 보였어요. 저는 천째로 가져와서 조심스럽게 열어 보았습니다. 혹시 누군가가 엿보고 있을 수도 있으니 살짝 천을 들어서 안쪽을 확인했어요.
안에 들어 있는 건 신표, 즉 서로 증거로 만들고자 한 물건이었습니다. 반으로 쪼개진 옥패였는데 옥의 모양이 익숙했습니다. 저는 이 옥이 누구의 것인지를 알아요. 이건 제 것입니다.
제 물건인 옥패가 어찌하여 신표로서 잘라져 있는 것일까요? 옥패의 반쪽은 어디서 나왔고, 나머지 반쪽은 누가 가지고 있을까요?
“이건….”
“이 물건이 역모의 증거입니다. 이 물건을 신표로 삼아 역모를 이루었다는 것이지요.”
“이 물건은 제 것인데 이것이 어찌하여 역모의 증거가 될 수 있습니까? 심지어 이 물건은 황궁에….”
보고에 있었던 물건인데.
저는 입을 다물었습니다.
제 패물들은 무척 많습니다. 그 패물들을 다 제 처소에 두는 건 아닙니다. 후궁이나 동궁의 패물들은 보고에 보관됩니다. 그리고 누군가가 거기서 제 패물 중 하나인 옥패를 빼내어 신표로 사용한 것입니다. 저는 역모에 휘말린 수준이 아니라 역모의 주동자 중 한 사람이 된 것입니다. 제가 옥패를 꺼내어 아버지께 건네고 역모를 진행한 게 되지요. 그러나 저는 이 일을 모르니, 이것은 모두 모함이 맞습니다.
황궁에서 누군가가 사람을 움직여 저를 모함했습니다. 제 아비를 모함했고요. 황궁에서 사람을 움직일 수 있는 사람. 황제 폐하. 그리고 혜비마마. 어느 쪽이든 이상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두 분은 사실 한통속입니다.
그제야 저는 제가 왜 동궁 밖으로 못 나가는지 알 것 같았습니다. 저는 역적의 딸이 아니라 역적 그 자체였고, 이 황궁에서 저는 결코 안전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태자 전하께옵선 저를 꽁꽁 숨겨 두신 것입니다.
“이 신표가 거짓이 아니라면 태자비 전하께옵선 역모를 주동하셨나이까?”
고모님의 말씀에 저는 할 말을 잃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