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몽중연 (20)화 (20/100)

20.

사냥이 끝나고 소천각으로 돌아가기 위해 제 말로 돌아왔습니다. 소천각으로 향하는 길은 조용했어요. 아무도 떠들지 않았습니다. 그저 달리기만 할 뿐이었어요. 파드득. 가끔 새들이 말 소리에 놀란 듯 나무 위에서 날갯짓하며 날아오르는 소리만 났습니다.

소천각으로 돌아왔을 때 우리가 가장 늦게 돌아온 일행이라는 걸 알 수 있었습니다. 호위병이 은여우를 꺼내자 사람들 사이에서 감탄이 흘렀어요. 그 은여우에 꽂힌 화살은 저의 것이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모두 박수를 쳤습니다.

황후마마께서도 같이 웃으며 박수를 치고 계셨지만 그분의 눈이 웃고 계시지 않다는 걸 저는 알 수 있었어요. 아니, 소천각에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수 있었을 겁니다.

소천각에서 작은 연회가 열렸습니다. 잡아 온 사냥감들 중 몇몇이 급히 요리로 바뀌었지만 그것은 취흥을 돋우기 위함이었습니다. 본래 소천산 사냥의 끝은 소천각의 연회로 마무리 지어지기 때문에 이 연회는 며칠 전부터 준비되었던 것이 분명했습니다.

연회를 준비한 사람은 아마 황후마마셨겠지요. 작은 연회라 법도에 얽매이는 것이 별로 없는 것이었습니다만 그럼에도 연회의 음식 선정이나 꽃, 주렴 같은 것들이 조금 날씨나 계절에 맞지 않는 것이 보였습니다. 별말이 없이 넘어가면 좋겠지만….

“황후마마께옵서 피곤하신 와중에 황족들을 보살피시니 이 어찌 감사드리지 않을 수 있으리오. 폐하, 한 잔 올리는 걸 허하여 주시옵소서.”

태후마마의 오라버니 되시는 국공께서 일어나셨습니다. 전에는 저의 활 솜씨를 볼 수 있냐고 물으셨던 분이셨어요. 그분은 높이 잔을 들어 연회에 참석한 이들에게 건배를 청하며 말했습니다.

“여름꽃에 차가운 술이라, 이 늦가을에는 어울리지 않습니다만 우리 모두가 늘 활활 불타는 마음으로 폐하를 보필하여야 한다는 황후마마의 깊은 뜻인 듯합니다.”

황후마마의 얼굴이 새하얗게 굳는 게 보였습니다. 대놓고 연회의 수준이 낮다고 비아냥거리고 있는 것입니다. 여름꽃에 차가운 술. 왜 황후마마께옵서 이런 실수를 하셨는지는 알 것 같았습니다. 달맞이 연회 때는 태후마마께옵서 궁에 계셨었습니다. 아마 저번 탄생연을 훌륭하게 해내자 다시 보게 되신 듯했지요.

하지만 또 달맞이 연회 때 황후마마께옵서 제대로 해내지 못하시자 이번에 병환을 핑계로 태후전의 문을 닫으셨다 들었어요. 아마 다시 황후마마를 바로잡을 생각이셨겠지요. 달맞이 연회는 태후마마의 안목이었고 이 연회가 황후마마의 오롯한 힘으로 완성된 연회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태후마마의 오라버니께서 지금 비웃고 계시니 황후마마의 심정이 얼마나 참담하실지 헤아리고도 남습니다. 저리 말씀하실 필요가 무에 있을까요. 국공이 황상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러자 황상께옵서 즐거운 낯으로 술잔을 들어 보이셨어요. 그 건배사를 허락하신다는 의미셨습니다.

황후마마의 얼굴이 파랗게 질렸습니다. 그러거나 말거나 모두가 잔을 높이 들었지요. 저도 잔을 들 수밖에 없었습니다. 마지막에 잔을 든 분은 황후마마 본인이셨어요.

“태자 탄생을 바라며.”

황상께서 말씀하셨어요. 그러면서 그분은 저를 한 번 바라보셨어요. 우리는 눈이 마주쳤습니다. 그분은 저를 보자 부드럽게 미소 지으셨어요. 따뜻한 웃음이었습니다. 아이를 낳지 못하고 죽은 저를 걱정해서 미소를 보내고 계시는 것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인지 알 수 없었습니다.

고개를 돌려 다시 황후마마를 바라보자 그분은 얼굴을 굳히고 계셨어요. 황자를 출산하시면 태자의 어머니가 되실 것이나 스무 명이 넘는 자식이 모두 황녀였는데 황자가 나올는지요.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면서도 당연한 듯이 태자 탄생을 입에 담고 있었습니다. 그 부담감은 어마어마할 것입니다.

“황후?”

황상께서 황후마마를 부르셨어요. 그러자 황후마마가 갑자기 활짝 웃었습니다.

“반드시 태자를 생산하여 드릴 것이옵니다, 폐하.”

그것은 아주 기묘한 말.

불가능한 것을 장담하는, 아주 이상한 말.

상대는 황상이신데도요. 저는 의아해져 황후마마와 황상을 번갈아 보았습니다. 저뿐만 아니라 모두가 그랬을 거예요. 이상한 말임에는 분명하니까요. 그러나 황상께옵서는 그 말에 아무런 하문도 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취하신 것처럼 그래, 그래, 하고 웃으셨을 뿐이에요. 하지만 제 눈에는 보였습니다. 그분은 취하시지도 않았고, 진심으로 웃고 계시는 것도 아니셨어요.

궁에 있다 보면 이럴 때가 있습니다. 내가 모르는 일이 바로 내 눈앞에서 소용돌이치고 있다고 느낄 때. 음모가 휘몰아치고 있는데 그 내용도 모르는 상태로 휩쓸려 가겠다고 느끼는 순간. 그런 순간에는 스스로를 잘 지켜야 합니다. 어디로 가게 될지, 어떻게 사용될지 알 수 없으니까요. 황상의 비호를 받는다 하여도 황궁은 스스로를 지킬 수 없는 사람이 살아남을 수 있을 만큼 만만한 곳이 아닙니다.

문득 냉궁에 있던 시절이 떠오릅니다. 식은 보리죽과 찻주전자 하나. 그것이 전부였지만 마음은 편했어요. 사람이 없어 외로웠으나 그만큼 쉴 수 있었습니다. 목이 부러질 것같이 무거운 장신구들을 하고 온몸을 아름답게 꾸미고 연회에 참석하여 매 순간 타인의 진심을 살펴야 하는 지금과 보리죽만 먹어야 하는 냉궁 생활. 어느 것이 더 나은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연회가 무르익었을 무렵 황상께옵서 조금 걷자고 청하셨습니다. 저는 황상의 곁에서 소천각의 근처에 있는 선련지까지 걸었습니다. 소천산에 있는 온천, 선련지는 황상의 허락을 받아야만 들어갈 수 있는 곳입니다. 미인천이라는 별명으로 유명한 선련지는 선녀가 내려와 목욕을 하는 곳이라고 합니다.

“제게 태자 따위는 없을 겁니다.”

황상의 말씀에 제가 그분을 올려다봤습니다. 황상께옵서 저에게 두 손을 내미셨습니다. 어찌해야 할지 몰라 머뭇머뭇 두 손을 내밀자 그분은 제 겨드랑이에 손을 끼워 저를 드셨습니다. 예전보다는 확실히 덜 놀랐어요. 어느새 저는 이분께 이런 식으로 안기는 것에 익숙해졌나 봅니다.

황상께옵서는 저를 들어 선련지 옆에 있는 정자의 난간에 앉히셨습니다. 거기에 앉으면 서 계시는 황상과 눈높이가 비슷하게 맞았지요. 그분이 제 머리 장식에 달린 청옥으로 만들어진 나비를 한 번 어루만지고는 손을 떼셨습니다.

“자식도 더는 없을 겁니다.”

“…황후마마께서….”

“황후가 회임한 건 제 자식이 아닙니다.”

선련지에 흐르는 물소리에 동화될 정도로 평화로운 목소리였지만 그 내용은 조금도 평화롭지 않았습니다. 황후가 회임한 게 황상의 자식이 아니면 누구의 자식이란 말입니까? 제가 눈을 휘둥그레 뜨자 황상이 웃으셨습니다. 왜 웃으시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어요. 그 웃음에는 광기도, 분노도 없었습니다. 그저 선선한 웃음이셨어요. 그분은 마치 원하는 걸 얻으신 분처럼 기분이 좋아 보이셨습니다.

“저는 두 해 전에 아이를 가질 수 없는 몸이 되었습니다.”

황상께옵서는 소곤소곤 제게 속삭이셨어요. 황상께옵서 자손 생산이 어려우시다고? 숨이 막히는 내용입니다. 심지어 현 황상께는 아직 태자가 없으신데요.

“사내로서 기능하여도 아비로서 기능할 수는 없는 약이 있습니다.”

“폐하…!”

“하늘이 우리를 버렸다는 걸 기억하십니까?”

저는 놀라 황상의 입을 손으로 막았습니다. 그런 말씀 마세요. 제가 고개를 저었습니다. 하늘이 듣습니다. 저는 입 밖으로 말을 꺼내는 대신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봤어요. 까만 밤하늘에 푸른 달이 떠 있었습니다. 그 달은 고요한 얼굴로 인간 세상을 바라보고 있었어요. 마치 감시당하는 것 같았습니다. 황상께서 제 손목을 잡아 내리면서 말씀을 이으셨어요.

“하늘은 우리를 버렸지만 저는 당신을 놓을 수가 없습니다.”

“…….”

“우리가 헤어지게 되더라도 이것을 기억하세요. 저는 어느 때라도 당신을 놓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라고 그분은 잠시 말을 멈추셨어요. 그분의 손이 제 손목을 도닥거리셨습니다. 무슨 뜻인지 이해할 수 없었어요. 그분은 눈을 내리깐 채 잠시 제 손목을 바라보고 계셨습니다. 무언가를 생각하시다 그분이 제 손목을 잡아 자신의 이마에 누르셨어요.

“…두렵습니다.”

“……?”

“이 모든 게 꿈이면.”

저는 순간 말문을 찾지 못한 채 입을 다물었습니다. 꿈입니다. 여기는 꿈. 그것도 죽은 사람의 꿈. 이건 현실이 아닙니다. 어쩌면 미래일지도 모르죠. 하지만 어쩌면 다 허망한 꿈일 수도 있습니다.

“저의 광증이면.”

광증. 저는 놀라서 제 손목을 잡고 있는 그분의 손을 마주 잡았습니다. 그분은 힘을 빼고 제 손에 자신의 손을 맡기셨어요. 손을 마주 잡고 그분과 서로의 눈을 바라봤어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습니다. 꿈인지 미쳤는지, 그런 것을 무서워하는 지상의 주인께 뭐라고 해야 할까요.

“저는 여기에 있습니다, 폐하.”

제 말에 황상께옵서는 희미하게 웃으셨어요.

“그래요… 지금은.”

그분이 중얼거리셨어요.

선련지에서 아지랑이가 피어오릅니다. 나뭇잎이 쓸쓸한 소리를 내고, 세상은 조금 추워요. 우리는 둘밖에 없는 거 같습니다. 그러니까 추워도 괜찮아요. 황상께옵서 저를 끌어안으셨어요. 외투를 걸치고 있지만 제가 추운 걸 걱정하시는 거 같았어요. 그분의 품 안에서 조금 더 따뜻해졌습니다.

소천각으로 돌아오자 연회는 파장 분위기에 이르렀습니다. 많은 이들이 소천각을 떠났고 저도 떠날 준비를 서둘러야 했어요. 서 상궁은 희원궁에서 가져온 물건들을 챙기느라 분주했습니다. 서 상궁과 두 명의 궁녀가 서두르는 동안 저는 가마에서 쉬고 있었어요. 서 상궁이 조금 자라며 가져다준 따뜻한 모포를 두르고 있는 터라 잠이 쏟아졌습니다. 어제 잠을 자지 못하기도 했고, 오늘 익숙하지 못한 사냥을 하느라 온몸이 결렸습니다. 그래서인가, 다가오는 잠이 다디달았어요.

“황녀마마?”

누군가가 저를 불렀습니다. 눈을 떠야 하는데 눈을 뜰 수가 없었어요. 응. 입으로 대답하면서도 눈이 잘 떠지지 않았어요. 서 상궁이 자라고 했으니 자도 괜찮을 듯했습니다. 자면 안 되는 상황이라면 그녀는 저를 깨우러 왔을 테니까요. 그런 점에 있어서는 정말 믿을 만한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괜찮아요.

“황녀마마?”

궁녀가 제 모포를 매만져 주었습니다.

그런데 이 궁녀가 누구일까요? 목소리만 들어서는 누구인지 잘 생각이 나지 않습니다. 저는 원래 얼굴과 목소리를 잘 기억하는 편인데도 도무지 생각이 들지 않았어요. 잠결에 아른아른해진 머릿속으로 희원궁의 궁녀들을 하나하나 떠올려 가며 비교해 보고 있을 때 궁녀의 손이 모포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푹.

그건 소리였습니다. 소리가 났어요. 푹, 하는 소리가. 아니, 감각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푹 제 몸을 찌르는 것이 있었습니다. 날카로운 것이 제 몸을 가르고 들어왔어요.

절로 눈이 크게 떠졌습니다. 눈을 크게 뜨고 위를 보자 궁녀가 깜짝 놀라 몸을 파르르 떨었어요. 그녀는 모포로 자신의 손을 덮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우리 둘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고 있었습니다.

궁녀는 저를 찔렀어요.

가슴이 찔린 채로 저는 궁녀를 올려다보았습니다. 제가 입을 열려는 순간 궁녀가 칼을 뽑았어요. 그 순간 갑자기 통증이 찾아왔습니다. 가슴이 불타는 듯 아팠어요. 아파, 아파. 소리가 나오지 않았습니다. 비명을 질러야 하는데 가슴에서부터 피어오른 불이 제 목을 지져 버린 듯 저는 소리를 낼 수가 없었어요.

궁녀는 겁을 먹은 얼굴로 어디론가 황급히 사라졌습니다. 제 몸에 모포를 덮어 두고요. 가슴의 불이 온몸을 태우고 있었어요. 통증이 지독했습니다. 차라리 바로 죽어 버렸으면 할 정도의 고통이었어요. 눈앞이 새까맣게 물들었습니다.

“황녀마마? …마마? 어디가 편찮으신…?”

일을 마치고 다가온 서 상궁이 저를 살피다가 비명을 질렀습니다. 그 비명이 아득히 멀게 들렸어요. “황녀마마께서 습격을 당하셨다!” 그 소리가 너무 멀었습니다. 너무, 멀었어요.

“저는 여기에 있습니다, 폐하.”

“그래요… 지금은.”

왜 그 말이 생각나는 건지 모르겠어요. 지금은, 지금은, 지금은. 황상의 목소리가 아련하게 머릿속을 울렸습니다. 지금은. 그리고 머릿속에 새까만 어둠이 몰려오기 시작했습니다. 정신을 차리라고 서 상궁이 비통하게 소리치는 것이 희미하게 들렸지만, 그것을 끝으로 저의 의식은 끊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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