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몽중연 (19)화 (19/100)

19.

사냥이 코앞으로 다가왔지만 활을 잡아 보지도 못했습니다. 제가 황후전에 간자를 넣어 둔 만큼, 황후전 쪽에서도 제게 간자를 붙여 두었을 확률이 높았습니다. 그렇다면 제가 활에 있어 무지하다는 게 알려져서는 곤란했습니다.

사냥은 황궁 내에 있는 소천산으로 떠납니다. 황족은 대부분 참여하는 행사지만 규모 자체는 큰 편이 아닙니다. 겨울이 오기 전 신당에서 지내는 소세례에 올릴 공물을 사냥하는 것으로 사냥 다음 날 소세례가 열립니다. 황족끼리 모여서 황가의 안녕을 비는데 혼인이나 생사 등의 집안 대소사를 조상께 고하는 자리이기도 합니다.

“염려하시지 않으셔도 됩니다.”

달맞이 연회에서 일어날 때 황상께옵서는 저에게 음식을 하사하셨습니다. 상궁에게 받아 손수 건네시면서 제게 나직이 한마디 건네셨는데 그분은 제가 무엇을 걱정할지 이미 아시는 얼굴이셨습니다. 그리고 거기에 대한 대책도 세워 두신 듯했습니다만 저로서는 걱정을 떨치기 쉽지 않았습니다. 황상께서 세워 두신 방책이 뭔지 모르니까요.

은여우라….

털이 아름다워 무척 귀히 여겨지는 은여우는 왠지 모르지만 소천산에만 잡히는 영물입니다. 황궁 안에 있으니 당연히 은여우는 황상의 허락하에만 잡을 수 있으며, 잡는다고 하여도 황상께 바쳐야 합니다. 그 은여우를 누구에게 내릴지는 오로지 황상의 뜻에 달려 있습니다.

은여우 털을 내린다는 건 곧 황상의 총희라는 뜻이기 때문에 후궁들은 모두 은여우 털을 탐냈습니다. 오죽하면 공물보다 은여우가 더 중요하다고 할 정도였으니까요. 영물이라 불리는 만큼 똑똑하고 날렵하여 잡기도 보통 어려운 게 아니라고 했습니다.

그런 은여우를 바치겠다고 은연중에 약조 드린 것이 되었으니 저뿐만 아니라 제 시중을 드는 궁녀들도 답답하기는 매한가지인 듯했습니다. 심지어는 전날 밤이 되자 서 상궁이 결연한 얼굴로 약병을 내밀었습니다. 조그마한 백자병에는 빨간 천이 묶여 있었습니다.

“독?”

천에 독이라고 쓰여 있는 걸 보고 기가 막혀서 서 상궁을 올려다보자 서 상궁이 황급히 무릎을 꿇었습니다.

“그, 그런 것이 아니옵니다. 소인이 어찌!”

“하지만 독이라고 쓰여 있는데?”

“그런 독이 아니오라!”

서 상궁의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오른 걸 보니 웃음이 났습니다. 아무렴, 그녀가 저에게 독을 먹이고 싶었다면 이 천을 풀고 가져오는 정도의 정성은 들이지 않았겠습니까? 제가 약병을 받아 들자 서 상궁이 말했습니다.

“이 약을 드시면 이틀 정도 고열이 펄펄 끓는다 하오니….”

서 상궁의 말을 이해는 하겠습니다만 이 약을 먹었을 때 태의가 못 알아챌까요? 분명 황후마마는 의녀와 태의를 보내 제가 이런 수단을 쓴 게 아닌지 면밀하게 확인하려 하실 겁니다. 들통이 나는 경우에는 돌이킬 수 없게 됩니다.

“위험한 짓을 하는구나. 네가 이 약을 구해 왔다는 것만 알려져도 상황이 안 좋아질 수 있다는 걸 아느냐?”

“아무도 모르나이다.”

“장담할 수 없지. 황궁 담 안에 비밀이 어디 있겠는가.”

그렇게 말하면서도 저는 서 상궁의 약병을 받아 들었습니다. 그 약을 화분에 뿌려 버리고 얼굴을 문질렀어요. 분명히 내일이 되면 무슨 일이든 벌어질 것 같은 예감이 들었습니다. 물론 황상께옵서 도와주시겠지만 그걸로는 부족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어요.

무슨 일인가가 벌어질 내일을 두고 잠을 잔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닙니다. 침상에서 저는 몹시 뒤척였어요. 그 때문에 아침에 겨우 잠들었다가 일어나야 했습니다. 소천산에 도착했을 때는 몸 상태가 별로 좋지 않았어요. 말 위에서 흔들리며 소천산에 온지라 멀미도 좀 있는 상태였어요.

“황녀마마.”

서 상궁이 저에게 활을 내밀었습니다. 활은 꽤 무거웠어요. 열두 살의 황녀가 이런 활을 들고 자유로이 쏠 수 있었다니 신기했습니다. 그 작은 바늘은 잘 다루지 못하면서 이런 무거운 무기는 능란하게 다루다니요.

저와는 너무 다른 혼.

그 혼은 자리를 잃었고, 저는 그 혼의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그분인 척 하고 있습니다. 활의 무게를 느낀 순간에 그것이 실감 났어요.

서 상궁이 화살통을 말에게 매어 주는 동안 저는 주변을 바라봤습니다. 은여우를 바치기로 되어 있는 탓일까, 많은 사람의 시선이 저에게 꽂힌 걸 느낄 수 있었습니다. 거의 모두가 저를 바라보고 있었어요. 과연 할 수 있을까, 의심하고 또 궁금해하는 것처럼요.

생각해 보면 저는 늘 이 시선들 속에서 살아왔습니다. 제가 잘할 수 있을지 의심하고 제가 미끄러지길 기대하는 시선들. 이 살얼음판 위에서 저는 조금이라도 단단하게 언 곳이 어딘가 필사적으로 찾아 발을 디디고는 했어요.

유음 황녀도 그랬을까요?

고개를 들자 눈부신 아침 햇살이 나뭇잎 사이로 새어 들어오는 게 보였습니다. 숲속에서 보는 햇살은 청명하고 싱그러웠어요.

“유음아.”

부르는 목소리에 고개를 돌리자 황상께서 저를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고삐를 당겨 황상의 곁으로 말을 몰자 사람들이 말을 조금씩 비켜 주었어요. 제가 그 곁에 서자 황상께서 웃으셨습니다.

“가자, 은여우를 잡으러.”

소천산에서의 사냥이 시작되었습니다.

사람들은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대부분의 여인은 소천각이라는 정자에 모여 다과를 들었고, 사내들은 말에 올라 사냥을 시작했습니다. 은여우를 잡아 오기로 된 저는 황상의 곁에서 말을 달렸어요. 활은 쏘지 못해도 말은 탈 줄 알아 다행이었습니다. 어릴 때 몇 번 타 본 게 전부라 걱정하였는데 의외로 말은 순하고 제 뜻을 잘 이해해 주었습니다. 몇 번이나 고마워 갈기를 어루만지자 말이 마치 제 마음을 이해한 것처럼 기분 좋게 푸르릉거렸어요.

“이리로 오십시오.”

황상께서 저를 부르셨습니다. 산 깊숙한 곳으로 들어온 지 얼마 안 되었을 때였어요. 제가 그분을 바라보자 그분이 싱긋 눈을 접으셨습니다.

“은여우는 영물이나 수정 동굴에서만 삽니다. 그 물만 마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은여우를 잡는 건 사실 다른 여우를 잡는 것보다 쉽다며 황상께서 손을 뻗으셨어요. 제가 그 손의 뜻을 몰라 그저 바라만 보는데 그 강인한 손은 순식간에 저를 말 위에서 낚아채 자신의 말로 옮기셨습니다. 비명을 간신히 참았지만 제 말은 놀랐는지 크게 솟구쳤습니다.

“워, 워.”

호위병들이 말을 달래는 동안 저는 황상의 품에서 헐떡거렸습니다. 많이 놀랐어요. 곧 일행은 다시 출발했습니다. 말이 달리기 시작하자 바람이 제 뺨을 스쳤어요. 제가 말을 달릴 때와는 다르게 풍경들이 더 여유롭게 보였습니다.

고개를 돌려 황상을 올려다보자 그분이 “말을 모는 게 오랜만이라 피곤하실 듯하여.”라며 짓궂게 웃으셨어요. 그 웃음은 소년처럼 장난스러워 저도 모르게 홀린 듯 바라보고 말았습니다. 왜냐면 저는 황상의 그런 웃음을 본 적이 거의 없었거든요. 태자 시절에도 그분은 그렇게 웃지는 않으셨었습니다.

“폐하, 신첩이 낙마를 하면 어찌하려고 이러십니까.”

제가 희미하게 웃으며 투정을 부려 보자 황상께서 고개를 저으셨어요.

“제가 비를 놓칠 리가요.”

그리고 그분은 한마디 덧붙이셨어요.

“두 번 다시, 무의미하게 당신을 놓치는 일은 없을 겁니다.”

뒷말을 붙일 때 그분의 표정이 몹시 결연하여 시선을 떼기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곧 시선을 뗄 수밖에 없었는데 누군가가 “개를 풀어라!”라고 소리쳤기 때문이었습니다. 하 통령. 저는 그 장군을 곧 알 수 있었습니다. 그는 금위군 통령이며 황상의 측근 중 한 명이었습니다. 황상이 태자이던 시절에는 태자의 호위를 책임지는 사람이었죠. 황상과 같이 자랐다고 들었습니다.

컹, 컹, 컹컹.

사냥개들이 일제히 목줄에서 풀려나 튀어 나갔습니다. 어느새 우리는 동굴 앞에 다다라 있었어요. 황상께서 말씀하신 수정 동굴이 이곳이라는 걸 알 수 있었습니다.

동굴 안에 수정이 있다는 걸까요. 고개를 갸웃거리는데 사냥개들은 익숙한 것처럼 수정 동굴에 뛰어 들어갔어요. 거침이 없는 움직임이었습니다. 그러자 황상께옵서 제 손에 활을 쥐여 주셨습니다. 그리고 호위병이 내민 화살통을 받아 안장에 거셨어요. 화살을 하나 빼신 그분이 제 손에 화살을 쥐여 주셨습니다.

“은여우를 잡으셔야지요?”

은여우를, 어찌 잡는다 이러시는 것인지.

제가 눈을 동그랗게 뜨자 황상께서 소리 내어 웃음을 터뜨리셨습니다.

“제가 함께 있는데 비께서 못 하실 일이 무엇 있으실까요. 화살을 잡으십시오.”

그분은 제 손이 화살을 올바르게 잡도록 도와주셨어요. 그리고 활시위에 화살을 걸게 하셨습니다. 시위가 당겨졌어요. 제 손이 시위를 당기고 있었지만 하나도 힘들지 않았습니다. 황상의 손이 제 손을 잡고 있었고 사실 제 손은 거추장스러운 짐일 뿐 모든 건 황상께서 하시고 계셨으니까요.

무언가가 튀어나오는 순간, 핑! 제 손 안에서 화살이 떠났습니다.

저는 몸을 파르르 떨었어요. 난생처음 쏴 보는 활은 이상한 느낌이었습니다. 팍 소리와 함께 비명이 났어요. 풀숲에 가려져 있는 동굴 입구에서 벌어진 일이라 저로서는 상황을 알기 어려웠습니다. 제가 뒤에 계시는 황상을 돌아보자 황상께서 화살을 하나 더 꺼내시며 제 귓가에 다정히 속삭이셨습니다.

“한 마리는 잡았군요. 축하드립니다.”

두 번째 화살이 순식간에 제 손 안에 들어왔습니다. 활시위가 당겨졌어요. 그리고 핑! 저는 그와 동시에 황상을 돌아보았습니다.

“다시 한번 축하를 드려야겠군요.”

그러면서도 황상께옵서는 또 화살을 꺼내셨습니다. 제 손과 함께 그 화살을 쏘셨어요. 세 번째는 저도 알 수 있었습니다. 풀숲을 뛰어나온 은여우가 몹시 분노한 눈으로 저희에게 달려드는 순간에 머리를 꿰뚫렸으니까요. 여우에게도 표정이 있다는 걸, 그리고 제가 그 여우를 살해했다는 걸 알 수 있었습니다. 허공으로 뛰어올랐던 여우가 그대로 땅바닥에 처박혔습니다.

“효녀시네.”

황상께서 농을 하셨습니다. 순식간에 잡힌 은여우 세 마리가 호위병들에 의해 조심스럽게 자루에 넣어졌습니다. 은여우를 위한 특별한 자루였어요.

사냥은 계속되었습니다. 황상께옵서는 제 손을 잡고 제 활로 사냥을 하셨어요. 저는 사냥을 하는 기분을 맛보았고요. 이상한 기분이었으나 나쁘지 않았습니다. 제가 정말 사냥을 하고 있는 기분이 들었어요.

새와 토끼와 여우를 잡으면서 저는 제가 무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것에 놀랐습니다. 이런 걸 할 수 있는 사람이었어요, 저는. 물론 지금은 황상께옵서 모든 걸 대신해 주시고 저는 그저 잡고만 있을 뿐이지만, 아니 사실은 잡고 있지도 않고 그저 손가락을 대고 있는 수준에 불과하지만 그래도 굉장했습니다.

가슴이 두근거렸어요. 사냥이라니, 상상도 해 본 일이 없습니다. 저는 몸이 약했고 언제나 고귀한 여인답게 상냥하고 여성스러운 모습을 유지해야 했습니다. 활을 잡는다는 건 상상도 못 해 봤어요. 하지만 실제로 해 본 사냥은 무척 재밌었습니다.

“무엇을 잡을까요?”

황상께서 제 귓가에 속삭여 물으셨어요. 많은 게 있었습니다. 토끼, 새 그리고 다람쥐. 셋 다 귀여워서 제 처소에 데려가 키우고 싶을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셋 다 잡고 싶었어요.

“셋 다 잡고 싶사온데 어찌하면 좋을지.”

제가 웃으며 말했을 때였어요. 황상께옵서 새에게 화살을 쏘셨습니다. 핑 소리와 함께 그분의 손이 한 번 더 움직였어요. 저는 그 손이 왜 움직였는지 보지도 못했습니다. 그분의 손이 무엇을 하였는지 안 것은 그다음이었어요. 토끼와 다람쥐의 몸에 단검이 박힌 게 보였습니다.

“셋 다 잡고 싶으시면 셋 다 잡으면 되지요.”

황상께서 웃으시며 말씀하셨습니다. 단검에 꿰뚫린 토끼와 다람쥐는 사냥감이 아니라 도륙 난 암살자처럼 보였습니다. 아주 작고 귀엽고 무해한 것들인데도요.

사냥이 끝날 때까지 저는 다신 셋 다 잡고 싶다는 말 따위는 하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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