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몽중연 (7)화 (7/100)

7.

탄신연 당일.

잠을 자면 꿈속에서 일하느라 피곤하고 잠을 깨면 꿈속에서 일했던 피로가 몰려와서 피곤하고, 피로가 누적될 대로 누적된 상태에서 탄신연은 다가오고야 말았습니다. 새벽부터 자수까지 놓았던 제 상태는 무척 나빴습니다.

따뜻한 물속에서 눈을 감자 그대로 잠에 빠져 버릴 것 같았어요. 하지만 지금 잠들면 탄신연은 엉망이 되리라는 걸 알기에 안간힘을 쓰며 참았습니다. 하지만 어린아이의 몸이기 때문일까요. 이 몸은 정말이지 쉽게 지쳤어요.

오후 늦게 열리는 탄신연에 참석하기 위해 성장을 갖췄을 때 황후전에서 다급히 저를 불렀습니다. 성장을 채 제대로 갖추지도 못하고 찾아뵙자 황후마마는 또 곤경에 빠져 계셨습니다. 봉황 비녀를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부터 모든 것을 결정할 수 없게 되신 겁니다.

어찌하면 좋을까, 어찌해야 좋을까. 그런 말씀만 하시며 같은 자리를 뱅뱅 도시는 그분을 앉히고 머리 모양부터 손을 봤습니다. 손재주가 있다는 건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우아한 머리 모양에 그분의 애교 있는 이목구비를 돋보이게 할 수 있는 귀여운 장신구들을 달았습니다.

황후마마답게 위엄을 보여야 하지만 어차피 이 탄신연의 주인공은 황상이십니다. 황상께옵서 오늘 어느 분을 간택하시느냐에 따라 후궁에서 오늘 누가 진정한 승자가 되는지 결정되는 것입니다. 황후마마를 오른쪽에 두고 보시게 될 터이시니 황후마마의 왼쪽 눈에 눈물점을 그렸습니다. 도홧빛 뺨을 만들고 진줏빛 피부로 보이도록 공을 들이는 동안 시간은 흘러갔습니다.

그 탓에 저는 수수한 차림으로 탄신연에 참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열두 살 황녀면 사실 차림에 신경을 써야 할 나이입니다. 유음 황녀는 상황이 특별하여 아직 정혼자가 없습니다만 본래대로라면 정혼자가 있어도 무방할 나이이지요. 성혼은 성인식 이후에 올리지만요.

탄신연 내내 사람들은 몹시 긴장하고 황상의 눈치를 살폈습니다. 황권이 무척 강하다는 걸 알 수 있었어요. 저의 시아버지셨던 선황께서도 강력한 황권을 지니신 분이셨습니다만 이렇게 위압적인 분위기는 아니었습니다. 다들 약간의 트집이라도 잡힐까 봐 많이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어요.

하지만 제가 알기로 태자 전하, 그러니까 이 꿈속에서 황상이신 그분은 누구를 트집 잡거나 이런 분은 아니셨는데요. 도리어 무슨 일이 있어도 어지간하면 수면 위로 불거지지 않도록 조치를 취하시는 편이셨습니다.

용상에 올라 변하신 걸까요?

아니면 꿈이라서 다른 성격이 되신 걸까요?

초조한 마음으로 그분을 기다렸습니다.

연회 전부터 무희들이 춤을 췄습니다. 많은 신기한 것들이 연회에 올랐죠. 더 호사스럽게, 더 신기하게. 제가 아는 것들을 총동원한 연회였습니다. 천장에 거대한 술병을 달았고, 그 술병에서 술이 흘러 각 자리에 작은 연못을 만들었습니다.

모든 접시는 이번 연회를 위해 새로 장만한 것으로 옥으로 깎은 나뭇잎 모양의 접시입니다. 밝은 달구경을 위해 일부러 문을 바꿔 달았습니다. 밤에는 달구경을 위해서 문을 모두 접어 올릴 거예요. 얇은 비단옷을 입은 여인들을 위하여 화로도 준비했습니다. 거북이 모양의 화로입니다. 물고기 모양의 탕파도 있고요.

모든 준비는 제가 보기에 완벽했습니다. 저는 이런 것에서 실수하지 않으니까요. 물론 실수하지 않는다고 해서 제가 힘들어하지 않는 건 아닙니다. 저는 준비하는 일주일간 몹시 힘들고 괴로웠어요.

그 노고를 치하받고자 하는 마음은 없었으나 속으로 스스로를 자랑스럽게 여기는 마음은 있었습니다. 저는 이 연회가 성공적으로 흐를 거라고 예상하고 있었어요. 하지만 저의 생각은 완전히 틀렸습니다. 그걸 제가 알게 된 건 황상께 진상을 올리는 시간이 되었을 때였습니다.

천하의 모든 좋은 것들은 다 그곳에 모여 있는 듯했습니다.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였어요. 이역만리에서 사막과 바다를 건너온 것들이 즐비했습니다. 설산에서, 벼랑 아래에서 가져왔다는 것들로 넘쳐났어요. 황상의 탄신연에 여러 번 참석했었습니다. 태자 전하의 정혼녀 신분으로 그리고 태자비의 신분으로요. 그렇지만 이렇게 사치스러운 진상품들을 본 적이 없어요. 저는 다시 한번 황권의 강력함을 느꼈습니다.

황상께옵서는 얼굴의 반절을 가리는 붉은 가면을 쓰신 채 상석에 앉으셨습니다. 얼굴의 반이 가려진 탓일까요. 늘 다정다감하시던 태자 전하, 그분의 모습이라고는 생각하기 어려울 정도로 차가운 표정이었습니다.

그분은 저런 표정을 지으신 적이 없어요. 제가 3년간 저분을 곁에서 모셨지만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표정으로 그분은 무심하게 진상품들이 자신의 앞에서 그 모습을 드러내는 걸 보고 계셨습니다. 매우 지루한 기색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계셨습니다.

사람들은 안절부절못하였고 연회의 분위기는 침잠되었습니다. 제가 아무리 좋은 것을 이곳에 가져다 놓아도 소용없었을 겁니다. 황상께옵서는 당신의 탄신을 축하하고 싶지 않으신 듯하니까요. 왜인지는 모르지만요.

황후마마께옵서 안 되겠다 싶으셨는지 황녀들의 선물을 올리라 이르셨습니다. 물론 가장 앞에는 저의 선물이 놓여 있는 쟁반이 있었습니다. 정말 비루하기 짝이 없었어요.

다른 황녀들은 옷을 짓기도 하고 조각을 하기도 했는데, 춤을 추거나 음악을 바치려는 듯 본인이 직접 나온 이들도 많았는데 제가 준비한 선물은 고작 손수건 하나가 전부였으니까요. 그래도 어쩔 수 없었습니다. 성인이 되지 않은 황자와 황녀는 모두 스스로 황상의 선물을 마련하는 것이 법도이니까요.

제 선물이 놓여 있는 쟁반이 황상의 앞으로 다가갔습니다. 황상께옵서는 흘끗 손수건을 보시고는 고개만 까딱하셨지요. 그리고 쟁반은 멀어졌습니다…. 아니, 멀어지려 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황상께옵서 벌떡 일어나시더니 쟁반 위에서 손수건을 잡아채셨습니다.

손길이 어찌나 거친지 쟁반이 바닥에 떨어져 나뒹굴었고 깜짝 놀란 궁녀는 재빨리 무릎을 꿇었습니다. 챙강하는 소리에 모두가 놀라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려야 할지 말아야 할지 분위기만 보고 있을 때였습니다.

황상께옵서 부릅뜬 눈으로 제가 자수를 놓은 손수건을 보시더니 갑자기 저를 노려보셨습니다. 부모의 원수라는 되는 듯 무척 사나운 눈길로요. 그러자 그 장소에 있던 모든 이들이 재빨리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렸습니다. 음악이 멈추고 무희들도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린 채 벌벌 떨었습니다.

저는 정작 아무것도 하지 못했어요.

고두하여야 한다는 건 알고 있었으나 머릿속으로만 생각할 뿐이었습니다. 그분은 저를 노려보고 계셨어요. 저는 한 번도 그분께 이런 눈길로 응시당한 적이 없습니다. 언제나 상냥하신 분이셨기 때문에 이런 표정을 지으실 수 있는 분이라고는 생각해 본 적이 없어요. 사나운 맹수 앞에 맨몸으로 서 있는 기분이었습니다.

“너….”

그분의 이글거리는 시선에 제가 눈을 크게 뜬 순간 그분이 순식간에 거리를 좁혀 다가오셨습니다. 가까워졌다? 의아히 그분을 올려다본 순간.

“컥….”

그분이 제 목을 움켜쥐셨습니다. 우악스러운 손길이 그분의 노여움을 말해 주는 듯했습니다.

“네가 어떻게 아느냐?”

“컥…. 폐, 폐하….”

“이건 짐이 누군가에게 준 것이다. 그녀 외에 아무도 모르는데, 네가 어찌 감히 알고 있느냐!”

목이 졸려 말을 할 수 없었어요. 어느새 몸이 위로 올라가고 있었습니다. 목이 졸린 상태로 저는 허공에 뜨고 있었어요. 발을 동동 굴러도 바닥에 닿지 않았습니다. 목 매달아 죽는 게 이런 걸까 싶을 정도로 괴로워서 눈물이 찔끔 났습니다. 그분이 물었습니다.

“어느 인간이 감히.”

“컥… 아, 무도….”

“어느 무엄한 놈이 너에게 이런 걸 일러 주었는지 말하지 못할까!”

그는 너무 화가 나서 견딜 수 없는 것 같았습니다. 그 무엄한 놈을 찾아낸다면 정말 구족을 멸할 기세였어요. 저는 말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그의 손에 손톱을 세울 수도 없었어요. 그는 황제니까요.

하지만 너무 괴로워서 눈물이 뚝뚝 흘렀습니다. 숨통이 막히니 눈앞이 흐려졌습니다. 앞이 보였다가 흐려졌다가 까매졌다가. 도저히 정신을 잡고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새벽부터 지쳐 있던 몸은 결국 빠르게 정신을 놓고 말았습니다.

아무도….

아무도, 알려 주지 않았사옵니다….

그렇게 대답을 하려고 노력은 했는데 목소리가 되어 입 밖으로 나갔는지 어쨌는지 모르겠습니다. 제 귀에는 들려오지 않았거든요. 까무룩 저는 정신을 놓았습니다.

***

잠에서 깨자마자 보인 건 냉궁 특유의 낡은 천장이었습니다. 그 천장이 어찌나 마음 편하던지요. 당분간은 꿈속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습니다.

목이 아픕니다. 머리맡에 두었던 찻주전자에서 차를 따라 마시면서 흠흠하고 목소리를 골랐습니다. 누구에게 목이 졸린 듯이 시큰거렸어요. 거울이 있다면 좋겠지만 이 냉궁에 그런 사치품이 있을 리 없습니다. 제 모습을 비춰 볼 수 없으니 이런 때 불편하네요.

괜스레 목을 만져 보게 됩니다. 목에서 열이 나는 것 같기도 해서 눈살이 찌푸려졌습니다. 꿈속의 유음 황녀는 열두 살입니다. 고작 열두 살짜리 황녀의 목을 조르시다니요. 아무리 그분이 황제 폐하시고 황제는 무치라지만 그래도 조금 지나친 감이 있습니다.

그래도 그분은 황제 폐하시니까… 결국 큰일 난 건 유음 황녀, 꿈속의 저죠. 그분의 노여움을 살 줄은 몰랐습니다.

“이건 짐이 누군가에게 준 것이다. 그녀 외에 아무도 모르는데, 네가 어찌 감히 알고 있느냐!”

그분은 진노하신 목소리가 아직도 귓가를 쩌렁쩌렁 울립니다.

“어느 무엄한 놈이 너에게 이런 걸 일러 주었는지 말하지 못할까!”

…꿈속의 그분은 절 잊지 않으셨나 봐요….

저는 그분이 그걸 알아보리라고 생각지 않았습니다. 정말 작은 꽃들이었는걸요. 이름도 모릅니다. 아마 그분도 모르실 거예요. 그런데 그분께옵서는 기억하고 계셨습니다. 저에게 무엇을 주셨는지를요. 혹시 제가 기뻤다는 것도, 사실은 무척 행복했었다는 것도 눈치채고 계셨을까요?

과거의 한때가 문득 생각이 납니다.

여름밤이었습니다. 갑작스러운 비에 날이 추워졌어요. 선나라는 여름도 겨울도 여인들은 모두 얇은 비단옷만 입습니다. 그래도 겨울에는 겹겹이 입어 좀 나은데 여름에는 가슴 윗부분을 드러내고 얇은 비단이 몸 선을 타고 흐르게 하는 것을 아름다움으로 여기기 때문에 예상치 못한 추위가 오면 당황스러워집니다.

황궁의 법도란 참으로 엄격하여 침의에도 법도가 있기에, 저는 아주 얇은 침의만을 입은 채 태자 전하를 기다리며 덜덜 떨고 있었습니다. 전하께옵서는 정무에 바빠 조금 늦게 제 침전에 들르셨는데 저를 보자마자 안색이 변하시어 당신의 겉옷을 벗어 저에게 둘러 주셨습니다.

“걸칠 것이라도 찾으시지 그러셨습니까?”

저는 생각보다 더 추워하고 있었나 봐요. 그분이 알아채지 못하도록 표정을 잘 관리하고 있었다고 생각했는데 그분은 제가 많이 추워한다는 걸 바로 아셨으니까요.

“법도가….”

“법도가 사람보다 위에 있지는 않습니다.”

저는 그분의 이런 점을 좋아했습니다. 그분은 조금 특이한 태자셨어요. 법도가 사람 위에 있지 않다. 이렇게 말씀하시는 황족은 그분밖에 없었습니다. 법도는 사람 위에 있었습니다. 때로는 황상보다 위에 있는 게 황궁 법도였습니다.

법도를 지키지 못해도 죽지 않지만 난처할 정도로 못난 사람이 되었습니다. 황족들 사이에서 따돌려지는 것은 물론이고 아랫사람들도 우습게 여기기 일쑤였죠. 행동 하나하나가 트집거리가 되고 평가 대상이 되었지요. 그러나 그분만은 그러지 않으셨습니다.

그분이 제 몸에 옷을 둘러 주시고 저를 내려다보시다 문득 생각난 것처럼 제 귀에 꽃을 한 송이 꽂아 주셨습니다. 저는 아침나절에서야 보았는데 슬프게도 꽃은 이미 시들어 있었어요. 그러니까 저는 이 꽃을 꽂은 제 모습이 어떤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 모습을 내려다보시던 그분의 표정은 알고 있어요.

그분은 눈부신 걸 보는 사람처럼 눈을 가늘게 뜨고 웃고 계셨습니다. 제 뺨을 한 손으로 감싸신 그분이 천천히 고개를 내리셨어요. 입술이 닿던 감촉을 기억합니다. 접문은 늘 달콤했어요. 그분은 제 윗입술을 가만히 무시고 조심스럽게 핥으셨습니다. 그 감촉이 생생해요. 귓가를 어루만지던 손길도 어제 일처럼 기억납니다.

그분이 이 모든 걸 기억하시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래도 그분은 제게 준 것들을 잊지 않으셨나 봐요. 제 가슴속에 차오른 건 분명한 기쁨이었습니다. 저는 이 기쁨을 인정하기로 했습니다. 그분이 냉혈한이 되셨다는 것, 열두 살 딸의 목을 조르시는 분이 되셨다는 것 따위는 잊기로 했어요.

어차피 꿈이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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