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77화 (177/177)

◈ 182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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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erdampfung (3)

책상 맞은편에 앉아있는 그 팀장의 두 눈이 정면으로 나를 향해 있었다.

그의 눈은 깜빡이지도 않은 채, 오랫동안 나를 뚫어져라 보고만 있었다.

나도 모르는 사이 그에게 무엇인가를 들켜버린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기침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콜록.....콜록....콜록.....”

기침이 멈추지 않았다.

이 적절한 타이밍에 터져 나오는 기침이 나는 고마웠다. 왜냐하면 나를 빤히 쳐다보는 팀장의 그 눈빛을 피할 수 있는 적절한 핑계가 되었기 때문이었다.

“콜록....콜록.......콜록........”

“김 치우 씨, 괜찮으십니까?”

의자가 드르륵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급하게 자리를 떠난 팀장이 다시 돌아와, 내 앞 책상 위에 생수병을 하나 내려놓았다.

나는 그것을 열어 허겁지겁 마셨다.

기침을 얼마나 했는지 눈물이 새어나와 눈가가 어른어른 거렸다.

“고맙습니다....”

그가 내어준 생수를 마시고 기침이 조금씩 잦아들었다.

“음.......”

팀장이 잠시 고민스런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김 치우 씨가.....머리 수술을 했다고 알고 있습니다. 지금......괜찮으십니까? 조금 쉬었다 할까요?”

팀장의 목소리가 다소 조심스러웠다.

“아닙니다. 그냥 하시죠.....”

눈가에 맺혀 흔들리던, 이제 막 흘러내리려는 눈물방울을 서둘러 손으로 훔치며 그에게 말했다.

정적이 흘렀다.

그가 나를 배려하여, 잠깐의 시간을 주고 있는 것 같았다.

“음....그럼......듣기에 조금 불편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조사중이기 때문에 이해하시기 바랍니다.

김 치우 씨 아내분인 이 은비 씨가 죽은 최 진욱과 내연의 관계라는 걸 알고 있었습니까?”

“그게 무슨 말입니까?”

내 목소리가 조금 떨렸다.

“아내분인 이 은비 씨가 최 진욱과 부적절한 관계를 맺고 있었다는 제보가 있습니다.”

“말도 안 되는 소립니다. 누가 그딴.......우리 아내는 그런 여자가 아닙니다.”

그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봤다. 내 미간이 잔뜩 찌푸려졌는지 눈 주위에 급하게 달아오른 열기가 느껴졌다.

팀장의 표정이 조금씩 변해가는 것 같았다.

“음.......얼마 전 처음 제보가 들어왔을 때, 피의자로 특정하고 수사 대상으로 지목한 사람이, 아내분인 바로 이 은비 씨였습니다.

그런데 좀 이상한 것이 있었습니다.

최 진욱의 통화내역을 확인해 보니, 그가 죽기 전 4~5개월 동안.........최 진욱과 자주 통화를 한 특정 번호가 눈에 띄더군요.

알고 보니 그 번호가 김 치우 씨 아내 이 은비 씨 전화번호였어요.

며칠간 조용히 조사를 했습니다.

하지만, 최 진욱이 죽은 당일, 이 은비 씨의 알리바이는 확실하더군요.

학교에서 퇴근해서 집에서 계속 머물렀다는 게 확인됐습니다.

이 은비씨와 최 진욱이 자주 연락을 주고받은 그 시기...... 김 치우 씨는 머리 수술 후....혼수상태로 병원에 누워 있었고......”

거침없이 말을 이어가든 팀장의 말이 갑자기 뚝 끊겼다.

“그래서 우리가 다시 주목한 것은 김 치우 씨입니다.

최 진욱이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만난 사람이 김 치우 씨고, 김 치우 씨 카페에서 둘이 술을 마셨다는 사실에 주목했습니다.”

“그날 최 진욱이 직접 나를 찾아 온 겁니다. 내가 그 사람에게 연락을 하거나 부르지도 않았어요.”

“네....그랬죠. 그게 사실이죠. 하지만 저희는 지금........

김 치우 씨가 아내인 이 은비 씨와 최 진욱과의 부적절한 관계를 알고.....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날....

최 진욱이 김 치우 씨 카페로 찾아간 날.....술에 취하지도 않고 멀쩡하게 들어갔어요. 하지만 몇 시간 후에 최 진욱이 그 카페를 나와서는....이미 몸도 못 가눌 정도로 변했다는 겁니다.

최 진욱이 죽은 지 며칠 후, 우리 직원.....류 형사가 참고인 조사차 카페로 찾아가서 만났죠? 기억나십니까?”

“네. 기억납니다.”

“그 당시 김 치우씨는 최 진욱과 와인 한 병반 정도를 나눠 먹었다고 진술했습니다.”

“맞습니다.”

“상식적으로 성인 남성 둘이 와인 한 병반을 나눠 마셨는데.......한 사람은 멀쩡하고 다른 한사람은 몸을 못 가눌 정도로 그렇게 된다는 게 말이 됩니까?

그리고 최 진욱이 여동생분의 말에 따르면, 최 진욱은 술이 그리 약하지 않은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집에서도 위스키나 와인을 즐겨 마시는 애주가라고 하더군요.”

할 말이 없었다.

“그래서. 저희는 김 치우 씨와 죽은 최 진욱이 카페에 함께 머물러 있던 그날 밤, 두 시간 남짓한 그 시간 동안 카페에서 무슨 일이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김 치우 씨는 아내분과 최 진욱의 관계를 알고........”

“이봐요! 말도 안 됩니다. 무슨 근거로 그런 이야길 자꾸 하는 겁니까?”

결국.....소리를 질러 버렸다.

작은 공간에 내 고함소리로 가득 찼다.

별다른 표정변화 없이 말을 이어가든 팀장의 얼굴이 찌푸려졌다.

팀장이 얼굴을 들어 천장을 바라봤다. 그리고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잠시 후, 문이 열렸다.

승합차로 나를 데리고 왔던 류 경사가 노트북 하나를 들고 들어왔다.

그의 표정이 무척 심각해 보였다.

그가 노트북을 팀장이 앉아 있는 곳에 펼쳐놓았다. 그리고 나를 흘깃 한번 보더니 다시 사무실을 빠져나갔다.

“저희가 지금까지 제보를 받은 건, 총 두 차례입니다.

직접 보시죠. 저는 잠시 후에 다시 들어오겠습니다.”

팀장이 노트북 화면을 내게 돌려놓고 사무실을 빠져 나갔다.

군데군데 굵은 흠집이 나 있는 노트북 화면이 눈부실 정도로 환한 빛을 발하고 있었다. 그리고 액정 중간에 탐색기가 덩그러니 열려 있었다.

1차 제보...2차 제보....

그리고 두 개의 노란 폴더가 보였다.

1차 제보 폴더를 열었다.

그 속에 수많은 파일들이 날짜별로 줄지어 서 있었다.

파일에 적힌 날짜를 보니 내가 병원에 있을 그 당시인 것 같았다.

첫 번째. 가장 빠른 날짜의 파일을 실행했다.

동영상이 열렸다.

화면 전체에 새파란 녹색의 잎사귀들로 가득했다.

지금의 분위기와는 전혀 맞지 않는 그곳이, 나는 어디인지 쉽게 알 수 없었다.

한 남자가 벤치에 홀로 앉아 담배를 피고 있었다.

내 가슴이 빠르기 뛰기 시작했다.

벤치에 앉아 있는 남자는 바로 최 진욱이었다.

화면 구도가 멀리서 누군가가 몰래 촬영하고 있는 것 같았다.

화면이 흔들렸다.

화면이 계단을 타고 위쪽으로 빠르게 이동했다.

아내였다. 아내의 얼굴이 보였다.

조금 초췌해 보이는 옅은 화장을 한 아내의 얼굴이 화면에 가득 찼다.

화면이 줌 아웃되며, 아내가 계단을 내려오고 있었다. 아내의 긴 치마가 바람에 살랑거렸다.

이제야 그곳이 어디인지 알아차렸다.

병원이었다.

내가 있던 병원 뒤쪽 주차장 쪽의......그 벤치였다.

아내가 벤치에 다가가자 최 진욱이 담배를 비벼 껐다.

아내가 최 진욱의 옆에 앉았다.

최 진욱은 아내를 빤히 바라보며 무슨 말을 했다. 그는 웃고 있었다.

반면, 아내의 표정은 회색빛이었다. 아무런 표정도 없는 수묵화 같은 짙은 회색이었다.

아내는 마치 잠에서 방금 깨어난 것 같은, 생명력 없는 그런 희미한 얼굴이었다.

최 진욱이 작은 쇼핑백을 아내에게 내밀었다.

아내의 하얀 손이 그것을 건네받았다.

다른 동영상이 이어졌다.

대형 승용차가 어두워진 밤길을 달려나가고 있었다.

차번호.......내가 아는 번호였다.

멀지 감치 떨어져 그 차를 비추던 화면이 조금씩 가까워져 갔다.

화면에 비치던 검은색 승용차가 들어간 곳은 화려한 간판이 반짝이는 어느 모텔 주차장이었다.

검은 승용차가 맞은편에 주차를 하고 있었다.

그 차를 비추며 따라 들어간 차도 반대편에 주차를 하는 것처럼 보였다.

검은 승용차 운전석 문이 열렸다.

멀끔하게 차려입은 최 진욱이 운전석에서 빠져 나왔다. 그가 운전석 문을 닫고 무엇인가를 기다리듯 초초하게 조수석 쪽을 계속 바라보고 있었다.

한동안 멈춰 있던 조수석 문이 열렸다.

그곳에서 아내가 내렸다.

아내의 얼굴이 조금 전 영상에서 보단 훨씬 좋아 보였다. 생기가 돌았다.

화장 또한 평상시처럼......화사하게 빛을 발하고 있었다.

아내는 몸매가 드러나 보이는 풀색 원피스를 입고 있었다.

흐트러진 풍성한 갈색 머릿결이 그 원피스 색과 너무나 잘 어우러져 있었다.

아내의 얼굴을 빤히 보던 최 진욱이 아내를 꼭 끌어안았다.

최 진욱의 손이 아내의 등과 허리.....그리고 엉덩이를 찬찬히 쓰다듬었다.

최 진욱이 아내의 입술에 키스를 하려고 하자 아내가 서둘러 고개를 돌려 버렸다.

최 진욱은 아내의 손목을 잡아끌었다. 아내는 힘없이 그에게 이끌려갔다.

둘의 모습이 주차장 한쪽에 있던 작은 모텔 유리문 속으로 급하게 사라졌다.

나는 노트북에 플레이 되고 있는 영상을 꺼버릴까 고민했다.

더 이상 내게 아무런 의미도 없는 그런 것들이었다.

한동안 머뭇거리다 동영상을 꺼버리려 내 손이 노트북 터치패드에 올려졌다.

[너...도대체 며칠 동안 어디 갔다 온 거야!!!]

잠시 검게 변한 노트북 화면에서 또 다른 영상이 시작되자 사내의 고함소리가 들렸다.

노트북 터치패드에 올려져 움직이던 내손이 그 소리에 멈췄다.

화면이 어두웠다.

아내는 앉아 있었다.

그리고 그 바로 앞에 서 있는 사내의 뒷모습이 어렴풋이 보였다.

[며칠 동안 연락도 안 되고.....병원 갔더니 은설이는 니가 교육부 행사 때문에 서울 갔다고 하던데........벌써 학교에 확인해봤어. 너 서울 간 거 아니지?]

다소곶이 앉아 있던 아내의 얼굴이 천천히 위를 향했다.

[나.......오늘.......몸 안 좋아요.......돌아가요.....]

힘없이 떨리는 아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씨발!!! 어디 갔다 왔냐고?]

최 진욱의 목소리였다. 앉아 있는 아내를 보며 죽일 듯 소리를 지르는 사내는 다름 아닌 최 진욱이였다.

[여기 학교예요....제발 소리 낮춰요....]

아내가 부탁이라도 하듯 소리죽여 말했다.

아내의 헤어스타일이 변해 있었다.

등까지 부드럽게 뻗어 있던 그 머릿결이 단발의 금빛으로 변해 있었다.

화면이 조금 어두웠지만, 하얗게 질려버린 듯한 아내의 창백한 얼굴이 고스란히 드러나 보였다.

아내의 얼굴이 너무나 핼쑥하게 야위어 있었다. 병환이 짙은, 아픈 사람 같아 보였다.

최 진욱은 반팔 셔츠를 입고 있었지만, 아내는 상체에는 긴 팔의 카디건 같은 것으로 완전히 둘러싸여 있었다.

[3일 동안 어디 갔다 왔어? 누구하고 갔다 왔어? 어느 새끼하고 붙어먹었어?]

[제발.....그만해.....그만해......]

아내가 두 손으로 귀를 꼭 틀어막고는 머리를 가로저으며 소릴 질렀다.

[또 어느 새끼한테 니 보지 벌려줬어? 씨발년아!!!]

[아아아!!!!]

다급한 아내의 소리가 들렸다.

최 진욱이 앉아 있던 아내의 어깨를 잡고 위로 끌어 올렸다. 그리고 아내의 몸을 단번에 돌려 책상위에 엎어 놓았다.

아내는 엎드린 채, 가슴이 책상위에 닿아 있었다. 그리고 아내의 엉덩이는 최 진욱이 서있는 방향으로 향해 있었다.

[3일 동안 뭘 하고 와서 몸이 안 좋은데? 어!!]

또다시 최 진욱의 고함소리가 들려왔다.

최 진욱의 두 손이 아내의 검은색 롱스커트 안을 파고들었다.

[내가 말했지? 창녀처럼 이놈 저놈한테 보지 벌려주지 말라고!!!

보자.....니가 3일 동안 어디 가서 뭘 하고 돌아다녔는지.......확인해보자......]

스커트 속에 헤집던 최 진욱의 손에 아내의 하얀 속옷이 끌려 내려왔다.

[흐흐흑........하지마.......하지마.........

정말 아프단 말이야........건드리지 마......흐흐흑...........엄마.......엄마.......]

아내의 울음소리였다.

아내가 울음을 터트렸다.

아내가 엄마를 찾으며......너무나 서글피 울기 시작했다.......

[이씨발년아! 뭘 하고 돌아다녔길래 보지가..........보지가 이렇게 새빨갛게 부었어!!!]

뜨거운 눈물이......내 얼굴을 타고 하얀 책상 위에, 쉴 새 없이 떨어져 내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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