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1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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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erdampfung(2)
승합차 뒤에 안면이 있던 형사와 함께 앉아 있었다.
차창 넘어 차들이 빠르기 지나가면서 몸이 흔들렸다. 아마도 연식이 오래된, 이제 곧 폐차를 앞둔 승합차 같았다.
조금 전, 이 승합차에 오르는 순간,
나를 바라보던 장 실장의 얼굴이 지워지지가 않았다.
장 실장의 그 눈빛은 내가 이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인간이라는 것을 반증해주는 것 같은 그런 눈빛이었다.
벌렁거리던 심장은 조금씩 안정을 찾아갔다. 하지만 아직도 온몸에 전기가 흐르는 것처럼 찌릿한 느낌은 완전히 가셔지지 않고 있었다.
“저기....김 치우씨.....
당신은 묵비권을 행사할 수 있는 권리가 있으며, 법정에서 유리한 진술을 할 수 있고, 변호사를 선임할 수 있습니다.......그리고.....”
“저기 경사님....”
운전을 하던 어려 보이는 형사의 말에, 내 옆에 앉아 TV나 영화에서나 보던 미란다 원칙을 내게 고지하던 형사가 말을 멈췄다.
“왜?”
“저기 경사님.....근데요.....지금 긴급체포 되는 건 아닌데.......미란다 원칙을.......”
운전하던 형사가 룸미러를 보며 조심스레 말했다.
“어?”
내 옆에 앉아 있던 형사가 잠시 생각에 빠졌다.
“흐으음......저기 김 치우 씨. 사실 긴급체포해도 무방할 상황입니다. 근데........장 형사님이......저희 팀장님하고 통화를 했는데.....
아휴.....나도 모르겠다.
여하튼 간에.....변호사 선임하세요.
지금 김 치우씨는 최 진욱씨 사망사건 관련해 유력한 용의자로 특정된 상황입니다. 그만큼 심각한 상황입니다.
그러니까.....아는 변호사 있으면........바로 선임하세요......”
무척이나 사무적이고 무뚝뚝하던 그의 목소리가 다소 누그러져 있었다.
그의 말이 끝나고 한참 동안 생각에 잠겼다.
“그런데. 이해가 잘 안 갑니다.
최 진욱....그 사람 그렇게 된 지, 벌써 한 달이 넘게 지났고, 최종 결론도 약물 중독으로 그렇게 됐다는 뉴스도 봤습니다.
그런데 왜 갑자기.....이유가 뭡니까?”
말을 하고 나서 다소 안심이 되었다. 처음 말을 할 때, 내 목소리가 떨리면 어쩌지.....라는 걱정이 앞섰었다.
하지만 내 목소리는 그러지 않았다. 다행히 너무나 차분하고 당당한 목소리였다.
“어.......”
사망사건 용의자로 지목된 상황에서, 더욱이 형사들과 차를 타고 가면서도 두려움에 떨지도 겁을 먹지도 않은 나의 당당함에 형사도 조금 당항해 하는 눈치였다.
“서에 가서 모두 설명을 해드릴 거지만.........제보가 하나 들어왔어요. 저희도 지금 무척 난감한 상황입니다.
조사해서 최종 결정이 난 사건인데.....
갑자기 지금에서야 제보가 들어와 보니.....저희로서도 좀....여하튼 그렇습니다.”
“그 제보가 저를 지목하고 있습니까? 어떤 제보 이길래, 제가 이렇게 경찰서로 끌려가야 하는 겁니까?”
그의 말이 끝나자마자 되물었다.
“제보 내용을 지금 알려 드릴 수 없는 건, 잘 아실 겁니다. 서에서 조사하는 중에 자연스레 아시게 될 거고........
그런데 아셔야 할 건, 지금 이 상황......우리로썬 김 치우 씨를 상당히 배려하고 있다는 것만 알아두십시오.
만약 장 형사님 아니었다면.....긴급체포 될 상황이라는 것만 우선 아시고 계세요.”
나와 눈을 맞추며 말하던 형사가 갑자기 시선을 돌려 반대편 차창을 바라봤다.
“근데...도대체 장 형사님하곤 어떤 사이입니까? 그 양반 용의선상에 있는 사람에게 이렇게까지 할 사람이 아닌데.......”
창밖을 보던 형사가 나지막이 말했다.
하지만 나는 그의 물음에 어떠한 답도 할 수 없었다.
승합차에 올라 탄지 20분도 채 지나지 않아, 푸른 지붕의 경찰서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가끔 이 앞을 운전하며 무심히 지나가던 게 생각났다.
경찰서 입구에 들어서자 너무나 어려 보이는 의경이 깍듯하게 승합차를 향해 거수경례를 했다.
“자.....내립시다...”
다소 지루하던 침묵이 깨트리며 형사가 말했다.
경찰서 건물에 들어서자 말끔한 정복을 입고 있는 사람들이 나를 흘깃 보는 것 같았다.
내가 그들에게 이끌려 들어간 곳은 조사실인지 사무실인지 중간에 책상만 덩그러니 놓여 있는 아주 작은 공간이었다.
“여기서 잠깐만 기다리십시오.”
형사둘이 방을 나가고 나 홀로 남겨져 있었다.
나는 주위를 찬찬히 들러봤다.
하지만 내 머릿속엔 온통 다른 생각들이 복잡하게.....그리고 빠르게 지나쳐갔다. 무슨 어려운 계산을 하는 것처럼........
문이 벌컥 열렸다.
“김....김 사장......”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장 실장이었다.
그의 붉은 얼굴......
조금 전 카페 방안 노트북에서 들여다보았던,
아내의 젖가슴을 미친 듯이 핥아대고, 아내의 그 작고 연약한 보지속에 자신의 터질 것 같은 성기를 꾸역꾸역 집어넣던 그때의 그 붉은 얼굴이었다.
“나도 좀 전에 연락받았어요. 여기 팀장이 내가 광수대 있을 때, 같은 사무실에 있던 놈이거든.....나도 지금 뭐가 뭔지 모르겠어요. 김 사장.....”
새빨간 얼굴로 나를 바라보는 그에게 어떤 말이라도 해야 된다는 걸 알지만, 쉽게 입이 떨어지지가 않았다.
“뭔가 잘못됐지? 아니지? 김 사장 아니죠?”
그가 지금 내게, 최 진욱을 죽인 것인가를 묻고 있었다.
“아니 이 새끼들이......무슨 제보가 하나 왔다던데......씨발 말을 안 해주니까..........”
아닌 것 같았다.
왠지 느낌이 그랬다.
내가 지금 잘못 판단했을 수도 있지만, 장 실장은 아닌 것 같았다.
내가 승합차에 오르는 순간. 장 실장을 보곤......
저 새끼가 모두 꾸민 짓이구나......그렇게 생각했었다.
하지만 지금 장 실장의 눈빛과 말투엔.....
단 하나의 거짓도 담겨 있지 않아 보였다.
“저기....장......”
참고 있던 기어이 뱉어냈다.
하지만.....
다시 문이 열렸다.
“야 인마.....안 된다니까....여기까지 들어오고....지랄.......”
장 실장과 나이 때가 비슷해 보이는 중년의 남자가 급하게 이곳에 들어와 말을 하다 욕설이 나오려 하자 내 눈치를 보며 급하게 멈췄다.
“장 실장...나가....빨리......서장님 보면 어쩌려고.....”
“이 새끼가 오랜만에 봐서 왜 이렇게 깐깐하게 굴어대....내가 못 올 때 왔어?”
“야 장 실장.......나가자.....어여.....나가서......이야기.....”
방금 들어 온 사내가 장 시장의 팔을 잡아끌었다.
“김 사장.....김 사장님.....있어 봐요. 별거 아닐 거야. 나도 알아볼게요......조금만.....”
장 실장이 문밖으로 끌려나가는 순간까지도 내게 시선을 놓치지 않고 말했다.
잠시 소란스러웠던 이 공간이 다시 고요해 졌다.
머리가 빙빙 도는 것처럼 극심한 현기증이 났다.
다시 문이 열렸다.
아까 장 실장을 끌고 나갔던 그 사람이었다.
“안녕하세요. 저는 여기 팀장입니다.”
그가 환하게 웃으며 맞은편에 자리를 잡았다.
“오시면서 우리 류 경사에게 대충 이야기는 들으셨을 건데.......지금 좀 상황이 그래서 긴급체포까지 고려하고 있었는데.......아시다시피..........이제 조사 시작합시다.
핸드폰 가지고 계시죠?
이리로 주세요.
이제 외부와 연락이 안 됩니다.
변호사 선임하시려면 지금 바로 하시고요.”
그가 환하게 웃고 있었지만, 그의 표정과는 달리 말투는 너무나 위압적이었다.
“변호사는 필요 없습니다. 변호사까지 필요할 죄를 짓지 않았어요.”
“그럼 핸드폰은.....이리로.....”
그가 손을 내밀었다.
“전화 몇 통만 합시다. 가족.......”
“아...그러세요....그럼...”
그가 내민 손이 다시 아래로 떨어졌다.
나는 그를 빤히 쳐다봤다.
그도 자리에 가만히 앉아 나를 보고 있었다.
그는 형사답게 내 눈빛의 의도를 단번에 알아차렸다.
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통화하세요. 5분 후에 들어오겠습니다.”
그가 내 뒤쪽 천정을 잠시 바라보다 밖으로 나갔다.
뒤를 돌아 천정을 보니 구석에 원형의 감시카메라가 하나 달려 있었다.
스마트폰을 꺼냈다.
부재중 메시지가 가득 와있었다.
버튼을 누른 손길이 조끔씩 떨렸다.
[오빠!]
스마트 폰에서 미나의 목소리가 들렸다.
[오빠 어떻게 된 거예요? 어디에요? 그 사람들 정말 경찰이에요?]
미나가 다급하게 물어왔다.
[미나야. 지금 내가 하는 말 잘 들어. 통화 오래 못해.....]
[네...네네.....]
[경찰들이 찾아왔다는 거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마.
나는 지금 대학 선배 부친상 상갓집에 와있는 거야. 그러니까 누가 물어보면 그렇게 말해. 알았지?]
[네네네.....]
[그리고 아무 일 없을 거야. 카페는 혼자 힘들면 며칠 닫아....]
[오빠.....괜찮아요? 정말?]
[응......괜찮아. 당분간 연락 안 될 거야....그만 끊자....]
[오빠.....]
스마트폰이 귀를 떠나려는 순간 미나의 목소리가 얼핏 들렸다.
잠시 마음을 가다듬고 다시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오빠.”
아내의 부드러운 목소리였다.
“집이야?”
“네....오빠. 몸은 괜찮아요?
검사 받는다고 아침 일찍 서둘렀잖아요. 무리하지 말고 일찍 들어오세요.”
아내의 목소리를 듣자 너무나 복잡한 감정이 복받쳤다.
감정을 누르려....누르려....해도 그게 쉽게 되지 않았다.
“으음.....은비야. 좀 전에 연락이 왔는데. 대학 선배가 부친상을 당했데.
그래서 지금 바로 장례식장에 가봐야 될 것 같아.”
“그래요? 오빠 괜찮겠어요? 오늘 오빠 피곤해 보였는데.....어디에요? 장례식장이?”
“의성이야....”
“그렇게 멀리?”
“응.....지금 바로 갈 거야. 그리고 친했던 형이라서 삼일장 내내 있어야 할 것 같아....”
“오빠 저도 가요? 같이? 친하신 분이면.....”
“아니야. 아니야. 애들 만나서 같이 가기로 했어. 그러니까 걱정하지 말고.......”
“네 알겠어요....조심해서 다녀오세요. 그리고 몸 상태 안 좋으면 바로 저한테 연락 주고요...”
“그래 알았어......당신도....”
갑자기 목이 메었다.
“오빠?”
나를 찾는 아내의 목소리가 들렸지만, 나는 그대로 전화를 끊어 버렸다.
들고 있던 스마트폰의 전원을 끄고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그리고 정확히 10초 후에 문이 열리고 팀장이라는 그가 들어왔다.
아마도 그는 어디에선가 나를 지쳐보고 있었을 것이다.
“네....그럼....시작합니다. 전화기는......”
내 앞에 놓여있던 스마트폰을 그가 자신 앞으로 가져갔다.
“으음.....서로 바쁜 처지에 바로 본론으로 시작합시다.
그가 들고 왔던 무슨 파일 같은 걸 펼쳐놓았다.
“김 치우씨. 죽은 최 진욱이 하고......김 치우씨 아내 분, 이 은비씨하곤.....도대체 무슨 관계입니까?”
그의 말에 갑자기 머리를 망치로 두들겨 맞는 것 같았다.
나로썬 상상할 수도 없는 너무나 뜻밖의 그의 물음이었다.
“제보가 들어왔는데요........이거에 따르면 상당히 합리적인 의심이 가능할 정도로...........”
바닥을 알 수 없는 깊은 물 속에 빠진 것처럼 귓속이 먹먹했다.
귓가를 두드리던 그의 말이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