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70화 (170/177)

◈ 175화 ◈

-- --

Hinterhalt (5)

잠시 정적이 흐르는 사이,

장 실장이 주머니에서 담배를 하나 꺼내 불을 붙이려다 아내를 흘깃 보고는 이내 그만두었다.

[휴우......은비 씨. 내가 뭐라고 할 처지는 아니지만, 아무리 그래도......이건.....이건 아닙니다.

혹여나.....남편분이 깨어나면.......어떻게 보려고 합니까? 부부로서 정상적인 생활이 될 거라고 생각해요?]

장 실장이 입에서 긴한 숨을 내뱉으며, 말을 이어갔다.

[못 깨어나요.]

한 치의 흔들림도 없는 확신에 가득 찬 아내의 목소리였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못 깨어나다니....그걸 어떻게 알아요? 은비 씨가?]

[오빠......못 깨어나요.....알아요 내가.....

그래서......우리 오빠 병원에서 저렇게나마 살아있을 때 까지만.......나도 살아 있을 거예요.

숨이 멈춰서.....호흡기 떼어질 때까지만......그날.....나는 죽을 거예요....]

아내의 말이 끝나자 장 실장이 뭔가 답답한지 한 손을 자신의 얼굴을 쓸어내렸다.

[그러면......하나만 물어봅시다. 최 진욱이에게 약을 받아먹는 건, 그것도 말도 안 되는 거지만, 그렇다 칩시다.

그런데......왜.......왜 남자들하고 그러고 다니는 겁니까? 그날도 내가 보고 있었어요.

은비 씨. 학교에 다시 출근하던 날....

그날 저녁에 그 유황오리 집에서.....그리고......

휴.....안 그래도 되잖습니까. 왜 스스로......그러는 겁니까?]

[지금까지.....항상 그랬으니까. 항상 그래 왔으니까.....

학교 다닐 때 만 해도....가만히 웃고만 있어도......같이 차를 마시거나 식사만 해도....아무 일도 없었는데...

이젠 더 이상.....그렇지 않으니까....

내가 그러지 않으면, 내 주위에 사람들에게 항상 문제가 생기니까........나 때문에.....]

천천히 긴 속눈썹을 깜빡이던 아내가 테이블 위로 팔을 뻗었다.

새빨간 매니큐어가 곱게 발린 아내의 손이, 테이블 위에 있던 검은 핸드백을 열었다.

아내는 그 속에서 작고 투명한 비닐봉지를 하나 꺼냈다.

그리곤 노란 가루가 반쯤 담긴 그것을 테이블 앞에 있던 물 잔에 모두 털어 넣었다.

[어어....]

아내의 지켜보던 장 실장의 탄식이 들려왔다.

하지만 아내는, 순식간에 노란 빛깔로 변한 그 물 잔을 이미 천천히 들이키고 있었다.

아내를 보던 장 실장의 표정의 한없이 찌푸려져 갔다.

깨끗하게 비워진 유리 물 잔을 테이블에 다시 올려놓은 아내가 소파에서 일어나 앞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아내가 향한 곳은 나무 옷걸이가 몇 개 걸려있던 출입구 한쪽 구석이었다.

아내가 그곳에 걸려 있던 옷걸이 하나를 빼어냈다.

그리고 입고 있던 하얀 재킷을 벗어, 옷걸이에 반듯하게 걸어 놓았다.

아내가 뒤돌아섰다.

장 실장의 휘둥그레진 눈이, 아내의 얼굴에서 서서히 몸 아래로 떨어져 내렸다.

아내가 다시 테이블로 걸어왔다. 은은하게 울리는 아내의 하이힐 소리가 이번엔 유난히 크게 들렸다.

[누가 당신에게 사주를 했던.....당신이 무슨 의도로 날 미행하고 이딴 걸 가지고 있는지, 나는 관심도 없고 상관도 없어요.

하지만 부탁이 하나 있어요.

우리 오빠.....그리고 내 동생.......

우리 가족만은 절대 건들지 말아요.

나는 아무 상관없으니까......

당신이 내게 무슨 짓을 하던....

나를 어떻게 하든 아무 상관없으니까....

우리 가족만은 절대......건들지 말아요.....]

아내가 장 실장을 보며 차분하게 말했다.

아내의 그 목소리는 작고 간결했지만, 이미 룸 안을 가득 채우고도 남을, 보이지 않는 무엇인가가 담겨있었다.

아내의 눈빛이 변해 있었다.

햐얗던 눈동자 주위가 붉게 변해 있었다. 그리고 눈가가 더욱 짙어져 흐릿하게 보이기까지 했다.

하지만 반면에,

장 실장의 시선이 머물러 있는 곳은, 조금 전과는 다르게, 테이블 앞에 서있는 아내의 얼굴이 아니었다.

장 실장이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는 곳은 아내의 얼굴이 아니라......

아내의 몸, 어느 한 곳에 꽂혀있었다.

아내의 상체에 걸쳐져 있던 새하얀 재킷이 사라져 버리자, 그토록 궁금했던, 그 속에 숨겨진 것들이 모두 드러나 있었다.

장 실장이 아내에게 머물러 있는 시선을 따라갔다.

아내의 맨다리가 유난히 더욱 길어 보였다.

장 실장이 뚫어져라, 보고 있는 곳은 아내가 입고 있던 검은색 하이웨스트 핫팬츠였다.

핫팬츠 양쪽 가장자리가 위쪽으로 바짝 올라가.....

넓은 V자처럼 아내의 하체에 바싹 달라붙어 있었다.

그것이 핫팬츠인지...아니면 몸에 딱 달라붙어 있는 브리프 같은 속옷인지 분간이 되지 않을 정도였다.

[지금 무슨.......어!]

놀란 눈으로 아내의 그곳을 뚫어져라 보던 장 실장의 시선이 아내의 얼굴 쪽으로 향하다 또다시 한곳에 멈춰 섰다.

그 짧디짧은 말도 안 되는 블랙 하이웨스트 핫팬츠 위.

조금 전 재킷의 색처럼, 아내의 가냘픈 목을 3~4센티 정도 덮고 있는 새하얀 민소매 쉬폰 블라우스를 입고 있었다.

조금 루즈하게 아내의 상체를 감싸고 있는 그 민소매 블라우스를 뚫고, 아내의 살색이 은은하게 보였다.

아내의 가슴부위가 이상했다.

유난히 앞쪽으로 바싹 솟아나와 있었다.

장 실장이 뚫어져라 보는 곳은 바로 그곳이었다.

아내의 가슴.

앞쪽으로 솟아나 있는 그곳. 아내의 살색과는 조금 더 짙은, 작은 동그라미 두 개가 도드라져 보였다.

브래지어를 하지 않은, 부풀어 올라 있는 맨가슴이 씨스루 블라우스를 통해 조금씩 또렷이 보이기 시작했다.

장 실장의 입이 조금 열려있었다.

아내는 테이블 앞에서 장 실장이 앉아 있는 방향, 그쪽을 향해 서있었다.

장 실장 쪽으로 조금 비스듬히 서 있는 아내의 몸, 핫팬츠에 타이트하게 둘러싸인 아내의 한쪽 엉덩이 아랫살이 3분의 1정도는 드러나 있었다.

시뻘게진 얼굴로 아내의 한동안 아내의 그곳을 들여다보던 장 실장의 얼굴이 갑자기 오른쪽으로 획 돌아갔다.

룸 문이 빼곡히 열렸다.

[어머! 죄송......]

신 혜원이 룸 안으로 들어오려다 다시 뒷걸음질치며 뒤로 물러났다.

[어...어....왜...왜?]

장 실장이 신 혜원에 말했다.

[저기....잠시만.....잠깐만......]

신 혜원이 목소리가 떨렸다. 하지만 신 혜원은 장 실장에게 말하고 있음에도 시선은 테이블 앞에 서있는 아내의 뒷모습에 꽂혀있었다.

[어....어...]

장 실장이 엉거주춤 소파에서 일어났다.

[잠...잠깐만.........]

장 실장은 아내를 보지도 앉고, 스쳐 지나가며 말하곤 서둘러 룸을 빠져 나갔다.

아내는 장 실장이 룸을 빠져나간 지 몇 분이 지났음에도 그대로 테이블 앞에 서 있었다.

그렇게 깊은 침묵처럼 시간이 더디게 흘러가자 아내가 다시 처음 앉아 있던 소파로 돌아왔다.

아내가 그 몇 걸음을 움직이는 사이에도 민소매 블라우스 속에서 흔들리는 아내의 젖가슴이 보이기에 충분했다.

아내가 소파에 앉자마자 고개를 숙인 채,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아내의 어깨가 조금씩 떨리고 있었다.

얼굴을 감싸고 있던 아내의 두 손이 그곳을 떠난 건, 룸 문이 열리고 사람이 들어온 순간이었다.

[어.....죄...송합니다.]

하얀 셔츠를 입은 앳돼 보이는 웨이터가 문을 닫지도 못하고 그렇게 서 있었다.

[차......다른 걸로 다시 내드릴까요?]

아내가 입도 대지 않은 그 커피잔을 거두며 웨이터가 말했다.

[아니요. 술....주세요....]

[네.....맥주 같은 걸로 드릴까요?]

[아니요.....위스키 주세요...]

[어떤 걸로.....]

[아무거나........독한거.....]

[아.....네...네.....]

웨이터가 더듬거리며 말했다.

알아차린 것 같았다.

웨이터의 시선이 소파에 앉아 있는 아내의 몸을 아래로 훑어 내렸다.

커피잔을 거두어가던 그 웨이터의 손이 떨려, 달그락거리는 커피잔 소리가 조금씩 들렸다.

웨이터가 룸을 빠져나가자 아내가 테이블 위에 올려져 있던 티슈를 몇 장 뽑아내 자신의 눈가로 가져가 대었다.

그곳에 잠시 머문 하얀 티슈엔 흐트러진 마스카라와 짙은 눈 화장의 검은 흔적이 그대로 묻어나있었다.

아내가 핸드백에서 쿠션팩트와 메이크업도구 몇 개를 꺼냈다.

잠시 쿠션팩트을 열어 자신의 얼굴을 들여다보던 아내가 화장을 하기 시작했다.

에어퍼프가 아내의 얼굴에 닿을 때마다, 아내의 얼굴은 이 룸에 들어올 때, 처음의 화사한 그 모습으로 조금씩 변해갔다.

마스카라가 아내의 눈썹을 마지막으로 정리하고 케이스가 닫힐 때, 룸 문이 다시 열렸다.

금빛의 커다란 쟁반에 기다란 위스키 병과 정갈한 과일 안주를 들고 있는 조금 전 그 웨이터가 룸에 들어왔다.

웨이터가 테이블에 위스키와 술잔들을 순서대로 올려놓았다.

웨이터는 테이블 세팅을 하면서도 아내를 흘낏흘낏 몰래 훔쳐보고 있었다.

[저기.....저거......좀 줄래요?]

[네?]

웨이터가 뭔가 들킨 듯 화들짝 놀라며 아내에게 되물었다.

빨간 매니큐어가 발린 아내가 기다란 손가락 끝이 가리키고 있는 곳은, 장 실장이 좀 전에 피려다 만 담배였다.

웨이터는 담배 하나를 빼어내기 좋게 이미 하나를 반 이상 그곳에서 빼내어 아내에게 내밀었다.

아내가 담배 하나를 집어내자. 웨이터가 서둘러 가지고 있던 라이터에 불을 밝혔다.

담배 끝이 빨갛게 빛을 발하자, 그 색깔이 아내의 입술색과 똑같아 보였다.

아내의 입에서 새어나온 담배연기로 룸 안이 조금씩 채워져 나갔다.

[저...저기.....술은 어떻게 드세요?]

웨이터가 아내 앞 테이블에 위스키 샷잔을 채우며 말했다. 샷잔 옆에는 얼음이 채워진 언더락 잔과 음료수 잔이 가지런히 줄지어 서 있었다.

아내가 반쯤 피운 담배를 재떨이에 올려놓자, 얼음하나에서 흘러나온 수분으로 단번에 담배가 꺼졌다.

아내가 말없이 샷잔을 들어 마셨다.

비워진 샷잔을 테이블에 올려놓자, 웨이터가 다시 잔을 채워주었다.

아내는 이번에도 말없이 그 잔을 들어 한 번에 마셔버렸다.

웨이터가 고개를 뒤로 돌려 문 쪽을 잠시 바라보다 다시 아내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웨이터가 아내 바로 옆에 붙어 서서, 아내의 얼굴부터 이곳저것을 빤히 들여다보고 있었다.

하지만 아내의 시선은 여전히 테이블에 향해 있었다.

아내의 눈이 몽롱해 보였다.

물어 태워 먹은 노란 가루약에 취한 건지, 급하게 마신 독한 위스키에 취해버린 건지 알 수 없었다.

웨이터가 다시 문 쪽을 돌아봤다.

웨이터의 시선이 다시 아내를 향하는 순간,

갑자기 그의 한 손이 급하게 아내가 앉아 있는 쪽으로 뻗어 나왔다.

웨이터의 손이,

민소매 블라우스 위, 아내의 가슴을 움켜쥐고 있었다.

그때서야 아내가 고개를 돌려 웨이터를 바라봤다.

아내와 눈이 마주쳐버린 웨이터의 잠시 멈춰있던 손이, 이젠 더욱 집요하게 아내의 가슴을 주물러댔다.

[훗.....]

웃고 있었다.

아내가 웨이터를 올려다보며 웃고 있었다.

웨이터가 소파 위, 아내에게 바싹 붙어 앉아, 아내의 목덜미를 자신에게 끌어당겼다.

그리고 아내의 가슴을 자유롭게 주무르던 그 손이 아래로 타고 내려, 블랙 하이웨스트 핫팬츠.......

그 속을 깊게 헤집고 들어가 사라져 버렸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