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3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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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nterhalt (3)
“오빠......오빠.......”
어디선가 흐릿한 소리가 들려왔다.
“오빠.......오빠!!!!”
뻑뻑한 눈을 천천히 깜빡이자 서서히 초점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커다란 눈을 깜빡이며 나를 내려다보는 아내가 보였다.
아내의 손이 내 뺨에 닿아 부드럽게 쓰다듬고 있었다.
“은비야......뭐야....어떻게 된 거야?”
“이제 괜찮아요? 불편한데 없어요?”
아내의 짙은 눈가에 눈물이 글썽글썽 맺혀 있었다. 아내의 손이 내 뺨을 더욱 깊게 감쌌다.
“MRI 들어갈 때 까진.....기억나는데........”
“오빠. 잠 들었어요......너무 놀라서 교수님한테 잘못된 거 아니냐고 하니까.....검사 받을 때, 가끔 그런 분들 있데요.......오빠. 두 시간 동안 잤어요.”
“검사는? 다 끝났어?”
“네. MRI 찍고, 여기로 와서 나머지 검사도 다 했어요.”
고개를 들어 주위를 둘러봤다.
병실인지 회복실인지 모를 공간에 아내와 나만 둘이 남겨져 있었다.
“근데....당신 왜 울려고 해?”
“아니........그냥.....교수님은 오빠 그냥 잠들었다고 하시는데.......괜히.....오빠 못 깨어나면 어쩌나 싶어서.....무서웠어요.”
아내의 눈에 그렁그렁 맺혀 있던 굵은 눈물방울이 기어이 떨어져 내려, 내 팔뚝 위에 뜨거운 파장을 일으켰다.
“이리와....”
아내의 손목을 잡아끌었다.
눈물로 젖어있는 아내의 얼굴을 엄지손가락 하나로 살살 닦아내었다.
아내의 붉은 입술이 천천히 올라가, 아내는 나를 위해 환한 미소를 보여주고 있었다.
아내는 흘러내리는 부드러운 머릿결을 한쪽 귀 뒤로 쓸어 넘겼다. 그러자 새까만 머릿결에 숨겨져 있던 한쪽 목덜미가 완전히 드러났다.
뽀얀 목덜미가 새까만 머릿결과 대비되어 무척이나 도드라져 보였다.
그 새하얀 피부를 아래로 가로질러 보이는 푸르스름한 정맥이, 마치 넓은 얼음계곡 사이를 아찔하게 가로지르는 에메랄드 빛 푸른 물줄기 같았다.
“어.....”
고개를 숙여 사랑스런 눈빛으로 나를 보고 있는 아내의 목덜미를 감싸 끌어 않았다.
“아.....”
아내의 부드러운 머릿결이 내 얼굴 위에 흐트러져 내렸다.
“으...으음......”
아내의 하얀 목덜미를 가로질러 뻗어 있던 그 푸른 물줄기를 입술에 깊게 담고서 한참을 쪽쪽 빨았다.
갑작스레 깊게 숙여진 아내의 몸이 몇 번 떨렸지만, 아내는 내게서 벗어나려하지 않고 그대로 가만히 있었다.
“아아아......오...빠....”
어디선가 들어본 듯한 아내의 옅은 신음이, 연신 내 귓가에 타고 들어오기 시작했다.
“오빠. 왔어요?”
카페에 들어서자 손님이 있는 테이블에 커피를 이제 막 내려놓은 미나가 나를 반겼다.
“별일 없었어?”
“별일은요. 무슨.........병원에 간 건 어떻게 됐어요?”
“뭐...그냥 검사받았지....”
“은비 언니는요? 아침에 카페 올 거라고 하던데.....점심 같이 먹자고.....”
“피곤해 보여서 집에 바래다주고 오는 길이야”
뒤이어 대학생들로 보이는 손님들이 우르르 한꺼번에 카페 안으로 들어왔다.
“어! 사장님. 요즘 왜 이렇게 뵙기 힘들어요?”
자주 오는 단골 녀석이었다.
“그래? 왔어? 요즘 좀 바빴어. 너 저번에 준비한다던 7급은 어떻게 됐냐? 시험은 잘 봤어?”
“흐으으.......”
말없이 어색하게 웃는 걸 보니, 충분히 결과를 예상할 수 있었다.
역시 잡생각이 많아질 때면, 몸을 바쁘게 움직이는 게 최선의 묘약인 것 같았다.
한동안 정신없이 밀려있는 주문을 하나씩 처내가자, 사람들로 웅성거리던 카페가 다시 조용해 졌다.
“미나야!”
“네?”
Bar에 앉아 금방내린 따뜻한 커피를 홀짝이던 미나의 궁금한 눈빛이 내게 향해있었다.
그런 미나를 보며 잠시 머릿속의 생각을 정리해나갔다.
“너 잘할 수 있지?”
“뭘요?”
“여기 말이야...”
“카페? 갑자기 무슨 말이에요?”
“아마....연말에 은비하고 호주에 나갈 거 같아”
“호주? 오스트레일리아? 거기 호주요?”
“응.”
“거긴 왜요?”
“은비가 그쪽에 애들 가르치는 괜찮은 일자리가 났나봐. 그래서 같이 들어가서 살려구.......”
미나가 들고 있던 머그컵을 Bar 테이블에 살며시 올려놓았다.
갑작스런 내 말에 놀란 건지, 당황한 건지, 아니면 화가 난 건지, 나로선 알 수 없는 복잡한 그런 표정이었다.
“12월이면 이제 4달도 채 안 남았는데....니가 여기 계속하고 싶다면 그렇게 하라고.....”
미나는 무표정한 얼굴로 나를 바라고 보고 있을 뿐이었다.
“승호한테 말해 놓을 거니까. 임대료 같은 건 걱정하지 말고.....”
“갑자기......이러는 법이......”
미나의 눈이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했다.
“갑자기 이러면......어떡하라구요......정말 싫다....”
“미나야. 아직 시간이 좀 있잖아. 지금 바로 결정 안 해도 돼. 천천히 생각해봐.....나는 니가 여기 맡아서 계속했으면 좋겠다.....”
“지금 그런 말 하는 게 아니잖아요.”
미나의 목소리가 조금씩 높아졌다.
나는 지금 내 앞에 앉아있는 미나가 되어, 지금 그 마음이 어떨지 상상해봤다.
미나의 볼이 조금씩 빨갛게 번져가는 게 눈에 보였다. 그리고 동시에 미나의 도톰한 입술이 부자연스럽게 움직이고 있었다.
미나의 얼굴은 이제 울어버릴 것만 같았다.
“아직......시간 있으니까.....천천히 생각해봐. 그리고 다음에 다시 이야기하자.....”
나는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났다. 미나의 시선이 그대로 내 얼굴을 따라왔다.
나는 곧장 안쪽 방으로 향했다.
뒤에서, 나를 향해있을 따가운 미나의 시선이 여전히 느껴졌다.
막상 도망치듯 방에 들어왔지만, 뭘 해야 할지 몰라 잠시 망설이다 그냥 책상에 앉았다.
노트북 화면에 불이 들어오자 굵게 금이 가 있는 게 선명하게 눈에 보였다.
사고가 난 그날......
바탕화면에 깔린 프로그램을 실행하자 커다란 화면이 가득 찼다.
화면에 Live라는 빨간 글자가 또렷이 보였다.
나도 모르게 웃고 있었다.
화면에 아내의 모습이 보였다.
아내는 청소기를 들고 거실 이곳저곳을 천천히 휘젓고 다니고 있었다.
편안해 보이는 루즈한 원피스를 입고서 춤을 추듯, 그렇게 가벼운 발걸음이었다.
아내의 새하얀 목덜미 한쪽이 새빨갛게 멍들어 있었다.
그것은 조금 전 병원에서 내가 아내를 끌어안고 그 뽀얀 목을 한동안 쪽쪽 빨던 바로 그 흔적이었다.
아내의 얼굴엔 환한 미소로 가득했다.
갑자기 안쪽 방문이 열렸다.
[은비 씨! 왔어요? 오빠는 어때요?]
지금 아내가 입고 있는 비슷한 원피스를 입은 세희가 거실로 걸어 나왔다.
[언니. 나 때문에 깼어요?]
아내가 소리를 내던 청소기를 서둘러 끄고 말했다.
[아니요.....오빠......병원은.....잘 다녀왔어요?]
화면에 깊고 진한 세희의 눈가가 도드라져 보여 화면을 서둘러 종료해버렸다.
노트북 종료버튼 위에 올려져 있던 내 손이 잠시 멈췄다.
궁금해졌다.....
갑자기 궁금해졌다.
내가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병실에 누워있던 그 5개월이라는 시간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궁금해졌다.
탐색기를 열었다.
머릿속에선 이제 그만하라는 소리가 들렸지만, 움직이는 내 손은 더 이상 그 말을 듣지 않았다.
D드라이브에 똑같은 이름의 폴더 2개가 들어 있었다.
그 두 폴더를 각각 열었다.
‘최 진욱 ? 의뢰번호(13)’
‘최 진욱 ? 의뢰번호(13)-1’
첫 번째 폴더의 용량은 98.3기가바이트
두 번째 폴더의 용량은 87.3기가바이트
정확하게 11기가의 용량이 차이가 났다.
내 두 눈이, 열려있는 두 개의 폴더를 번갈아가며 바삐 오가기 시작했다.
두 번째 폴더, 가장 마지막 줄........파일 하나의 개수가 부족했다.
첫 번째 폴더, 마지막 줄에 파일 하나가 더 들어가 있었다.
한참 후, 첫 번째 폴더에서 파일 하나가 눈에 띄었다.
‘0516-R-leb’
마우스 커서를 그 파일 위에 가져가니 용량이 표시되었다.
11.0GB......
수정한 날짜가 지금으로부터 3개월 전 즈음이었다. 그때는 병원에 있던 내가 깨어나기 두 달이 채 안 되는 날이었다.
파일을 실행했다.
동영상이 실행되자, 시끄럽게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귀에 거슬렸다.
화면은 누군가의 몸으로 완전히 막혀 있다.
잠시 뒤 부스럭거리던 그 소리가 멈췄다.
굵은 손 하나가 화면을 가득 채우며 지나갔다.
화면에 밝은 불빛이 보였다. 가로등과 같은 은은한 불빛이었다.
화면 중간에 기다란 테이블이 놓여 있었다. 테이블 위에는 각종 캔 음료수가 가지런하게 줄지어 서 있었다.
화면이 무척이나 선명했다.
테이블을 중간에 두고 양옆으로 편안해 보이는 소파가 놓여 있었다. 그리고 눈에 띄는 건 벽지의 독특한 문양이었다.
한 사내가 소파 중간에 앉아 있었다.
그 사내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왠지 모르게 불안해 보였다.
사내의 시선이 방금 자신이 놓아둔 그곳으로 향했다.
며칠 면도를 하지 않은 것처럼 빼곡하게 솟아난 수염.....거친 피부......붉게 충혈된 눈......
사내의 얼굴이 똑똑히 보였다.
소파에 앉아있는 사내는 장 실장이었다.
이곳이 기억났다.
지금 화면에 보이는 곳이 어디인지, 장 실장의 얼굴을 확인하고 비로소 기억났다.
이곳은 그날....장 실장이 잠시 나간 사이......지금 내 노트북에 들어 있는 첫 번째 폴더를 몰래 옮겨 놓았던 룸........로이엣이었다.
장 실장이 반복해서 스마트폰을 들어 무엇인가를 확인하고 있었다. 아마도 시간을 확인하는 것 같았다.
10여분이 넘는 시간 동안 장 실장의 그런 모습이 반복되었다.
갑자기 문이 열렸다.
장 실장의 얼굴이 급하게 그 방향으로 돌아가 있었다.
“저기......오전에......연락하신 분 맞나요?”
한 여자가 열려진 룸 문 앞에 가만히 선채로 말했다.
여자의 목소리가 떨리는 것 같았다.
장 실장이 문 앞에 서 있는 여자의 몸을 한번 훑고는 여자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화려한 금빛의 단발머리를 하고 있는 여자의 머리칼이 룸 조명에 눈부시게 반짝였다.
실크 소재같이 보이는 새하얀 숄더 재킷이 여자의 어깨 위에 망토처럼 살포시 걸쳐져 있었다. 여자의 가느다란 두 팔은 재킷 앞쪽에 절개된 틈 사이로 살며시 나와 있었다.
엉덩이 조금 아래까지 내려와 있는 그 숄더 재킷에 가려져, 여자의 아래엔 무엇을 입고 있는지 전혀 보이지가 않았다.
단지 여자의 쭉 뻗은 맨다리와 보기에도 한없이 높은, 작은 보석이 촘촘히 박힌 은색의 하이힐만이 조명에 반사되어 반짝거리고 있을 뿐이었다.
금발의 머릿결을 양쪽 귀 뒤로 모두 넘겨져 있는, 여자의 얼굴이 너무나 또렷이 눈에 들어왔다.
화려한 메이크업. 새빨간 입술까지........
조금 스모키한 스타일의 짙은 눈 화장이..........무척 오랜 시간 정성들여 화장을 했다는 것을 한눈에 알 수 있을 정도였다.
금빛 머리와 무엇인가로 촉촉하게 젖은 듯 빛나는 여자의 얼굴, 상체를 부드럽게 감싸고 있는 하얀 실크 재킷, 그리고 짙은 메이크업까지 그 모두가 너무나 화려해 보였다.
그리고 그 모두가 너무나 완벽해 보였다.
한동안 소파에 앉아 여자를 뚫어져라 보던 장 실장이 엉거주춤 소파에서 일어섰다.
장 실장의 얼굴이 처음과 달리 벌겋게 상기되어 있었다.
“맞습니다. 들어오세요........은비 씨......”
“네? 제 이름을 어떻게 알아요? 누구세요?”
“그...그럼....두 분,,,말씀 나누세요.....”
아내 바로 뒤에 서있던......신 혜원이 뒤로 조금 물러났다.
신 혜원의 불안한 시선이 잠시 소파에 엉거주춤 서있는 장 실장을 향해있었다.
그리고......
다시, 문이 천천히 닫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