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8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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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ophenia (7)
노트북 화면에 이제 막 카페를 빠져나가는 내 뒷모습이 보였다.
[어서 오세요]
생글거리며 사내를 반기는 하이 톤의 미나 목소리가 들려왔다.
사내는 Bar에서 가장 가까운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사내의 시선이 밖이 훤히 보이는 통유리를 향했다.
멀리서, 수많은 사람들의 무리에 섞여 건널목을 이미 반쯤 지나고 있는 내가 보였다.
화면에 비치는 카페에는 다른 사람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오직 미나와 방금 들어온 그 사내만이 카페 중심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주문하시겠어요?]
사내가 고개를 돌려 테이블에 바짝 다가와 있는 미나의 얼굴을 빤히 들여다보고 있었다.
미나는 그런 사내의 행동 때문에 어색한지 괜히 분홍빛 립스틱이 발려있는 입술을 열어 더욱 웃어 보였다.
[여기 뭐가 맛있어?]
[네?]
미나의 얼굴에 당황함이 역력했다.
가끔 머리가 하얗게 변한 나이 많은 어르신들이 와서 다짜고짜 뭐가 맛있냐고 반말로 물어오는 일은 있었다.
그럴 때마다 나와 미나는 웃으며 그들에게 메뉴에 대해서 친절하게 설명을 해주곤 했다.
하지만 테이블에 앉아, 다소 능글맞게 미나의 얼굴을 빤히 들여다보고 있는 사내의 나이는 이제 불과 마흔이 됐을까 하는 정도였다.
[아....저희 카페는 다 맛있어요.....]
[그래? 그럼....여기서 가장 잘 팔리는 거 두 잔 가져와봐.....]
[아....네....]
여전히 생글거림을 잃지 않고 있던 미나의 얼굴이 잠시 굳어졌다가 다시 환하게 변했다.
미나가 뒤돌아서 Bar로 걸어가자, 사내의 시선의 미나의 뒷모습,
몸에 붙는 하얀 블라우스를 타고 내려, 무릎 조금 위까지 오는 타이트한 남색 스커트를 천천히 훑어 내리고 있었다.
미나는 Bar로 돌아가 커피를 내리고, 하얀 머그컵에 적당하게 갈려진 얼음을 넣었다.
그리고 또 다른 머그컵을 꺼내, 조금 전과는 다른 초코 라테를 만들기 시작했다.
미나가 Bar로 돌아가 사내가 주문한 그것들을 만드는 동안, 사내의 시선은 줄 곳 미나를 향해 있었다.
그런 사내의 시선이 부담스러운지, 미나는 이따금씩 흘깃대며 몰래 사내를 봤지만, 그때마다 사내와 눈이 마주칠 뿐이었다.
미나가 완성된 두 개의 잔을 접시에 받치고 사내가 앉아 있는 테이블로 갔다.
[아이스 아메리카노하고 아이스 초코라떼 예요.]
미나가 사내 앞에 하나씩 하얀 머그컵을 내려놓곤 곧장 뒤돌아섰다.
[어! 아가씨....어디가?]
[네?]
이미 뒤돌아서 반대편을 향해 발을 내딛던 미나가 다시 사내에게로 돌아섰다.
[가면 어떡해? 하나는 아가씨 건데....]
[네?]
[아니.....아가씨 알바 한다고....
고생한다고 한 잔 사주려고 두 개 주문했는데.
그냥 가면 어떡해?]
[아...아니요...감사하지만.....저는 괜찮아요.....]
[에이....그럼 버려야 하잖아.....]
사내의 목소리가 순간 낮은 톤으로 변했다.
[다른 손님 아무도 없잖아.....이리 와서 한잔하고 가......나도 혼자 심심한데....응?]
가만히 서서 고민에 빠진 듯, 사내를 내려다보던 미나의 한쪽 귓불이 새빨갛게 변해있었다.
잠시 머뭇거리던 미나가 사내 맞은편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흐흐흐......]
사내는 웃으며 자신 앞에 놓여있던 머그컵 중에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담긴 잔을 미나 바로 앞에 밀어놓았다.
미나는 의자 가장자리에 아슬아슬하게 걸터앉아 있었다.
금방이라도 그 자리를 뜰 것 같은, 그렇게 위태롭게 의자 바깥쪽 가장자리에 엉덩이가 살짝 걸려있었다.
[이거 달달하니 맛있네.....]
아이스 초코라떼를 맛을 본 사내의 입술이 열려, 가지런하지도 그리 깨끗하지도 않은 치아까지 훤히 드러낸 채 웃고 있었다.
[아가씨. 여기 대학생이야?]
[네.....]
[아가씨 참 이쁘네? 생긴 건, 뽀송뽀송하게 아직 애기 같은데........다른데 보니까........]
미나의 뽀얀 얼굴에 머물러 있던 사내의 시선이, 하얀 블라우스가 바싹 감싸고 이는 그곳으로 이동해 있었다.
[아...네.....고...고맙습니다]
미나는 고개를 떨어트린 채, 자신 앞에 있는 머그컵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래서 몇 살인데 지금.....]
[스물셋이요....]
놀란 미나의 시선이 사내를 향했다.
[이야.....한 참 때네.......
아가씨, 나는 대가리가 나빠서 고졸이거든..
그래서 대학생들은 어떻게 노는지....
어떻게 연애하고 그러는지 잘 몰라...
요즘 아가씨들 보면 화장도 진하게 하고, 옷도 하도 벗고 다녀서......여대생인지 아니면......밤일하는 술집 아가씬지 도대체 분간이 안 돼...
아가씨? 대학생들은 어떻게 화끈하게 놀아?]
미나의 얼굴이 테이블 쪽으로 살짝 기울어지더니, 검은색 스트로우를 입술로 감싸, 천천히 빨다가 다시 뱉어 놓았다.
[손님. 잘 마셨습니다.]
미나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아가씨! 지난번에 보니까......여기 다른 여자도 두 명 더 있던데......지금 다 어디 갔어?
하나는 연예인 쏙 닮았고......다른 하나는........존나게 섹시하게 생겨서....늘씬하고 몸매 죽이는 애......무용한다는........
내가 말이야......그 둘을 좀 알거든......흐흐흐......]
순간 미나의 얼굴이 천천히 움직이더니, 카페를 비추고 있던 CCTV를 향했다.
미나의 커다란 두 눈이 나를 보고 있었다.
멀리서 정확하진 않지만......미나의 눈빛이 조금 떨리는 것 같기도 했다.
서있던 미나가 다시 자리를 잡고 앉았다.
[아저씨가......세희 언니하고......은설이를 어떻게 알아요?]
[흐흐흐.....잘 알지.....물론 나보다 더 깊게 아는 사람은 따로 있지만....]
사내의 얼굴이 테이블 가장자리를 넘어 앞쪽으로 기울어졌다. 그러자 미나의 얼굴과 사내의 얼굴이 간격이 더욱 가까워졌다.
[여기 사장은 참 좋겠어.
예쁘장한 여대생들 돌아가며 알바로 쓰면서...
소문 들어보니까 대학 앞에 장사하는 사장 새끼들,
몸매 좋고 이쁜 여대생들 알바로 쓰면서 마음에 들면 건드리기도 한다던데....
아가씨 사장도 그래?
좀 전에 나간 사람이 사장이잖아?
요즘 젊은 여대생들이 더하다던데....발랑 까져서,
나이 상관없이 마음에 들면 막 들이댄다던데...
아니면....아가씨도 벌써 대줬어? 사장한테?]
사내에게로 향해 있는 미나의 얼굴이 단번에 찌푸려져 있었다.
[흐흐흐.....왜 그렇게 봐?
내가 없는 말 했어?
그런데.....아까 그 사장 말이야.......
기억을 못 하는지 못한 척하는지....
나는 예전에 한번 본적이 있단 말이야.
내가...사고 났을 때........흐흐흐.....
그런 그렇고.....
얼마 전에 사람 하나 죽었잖아?
최...뭐시기.....이름이 뭐더라....
여하튼 그 새끼....약산데.....
아마도 약 처먹고 죽었다지?
여기 일하던 연예인 닮은 년.....오빠......]
사내가 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을 꺼내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사내의 굵고 검은 손가락이 스마트폰 액정 위를 타고 움직였다.
[아아....아아.....아!!!!]
갑자기 스마트폰으로부터 찢어질 듯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흐흐흐......이 씨발년 이거 봐라.....
몸뚱어리에 뭐 이런 걸....그려놨어?]
[아!!!! 아파.....아파요......흐흐윽....]
[씨발년아!!! 가만히 있어!!!]
탁자위에 있는 스마트폰에서 뭐가 플레이 되는지 노트북 화면엔 보이지 않았다.
맞은편에 앉아, 사내의 스마트폰을 유심히 보던 미나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미나가 테이블 가장자리를 돌아 사내의 옆으로 걸어갔다. 그건 아마도 사내의 스마트폰에서 보이는 그것을 확인하기 그러는 것 같았다.
사내가 앉아 있는 바로 옆까지 미나가 와있었다.
[이년 도대체 뭐하던 년이야?]
[몰라 씨발놈아!!! 하라는 대로 하면 되지....]
[흐흐윽....아저씨....살려주세요....]
[흐흐흐....생긴 건 연예인 빼박인데...
몸뚱어리엔 이런 걸 문신으로 해놨어.
씨발.....맛 떨어지게....
야! 새끼야. 똑바로 묶어.....]
미나가 테이블 위에 스마트폰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사내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사내가 향한 곳은 카페 문 앞이었다.
사내가 안쪽 벽 구석으로 가더니 아이보리 블라인드를 내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환하게 비추던 햇살이 가려져, 카페 안이 옅은 아이보리색으로 천천히 변해갔다.
사내가 출입문을 잠갔다.
밖에서는 더 이상 카페 내부가 보이지 않았다.
사내가 이미 테이블로 돌아왔지만, 미나는 방금 사내가 뭘 했는지도 모른 채, 테이블 위 스마트폰만 내려다보고 있었다.
사내가 자신의 바로 옆에 서 있는 미나의 한쪽 팔목을 잡고 아래로 끌어내렸다.
미나는 힘없이 끌려 내려와, 벽면에 일렬로 붙어 있던 소파, 사내 바로 옆에 강제로 앉혀졌다.
[아...아아....아....아흡.......]
여자의 신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동시에 두 사내의 거친 신음소리도 어렴풋이 들려왔다.
사내의 몸이 미나가 앉아 있는 방향으로 완전히 틀어져 있었다.
미나의 옆얼굴을 뚫어지라 쳐다보던 사내의 얼굴이 상기 돼 있었다.
벽면과 미나가 앉아 있는 그 공간 사이로 사내의 팔이 쑥 들어갔다.
사내의 그 팔이 미나의 어깨를 천천히 감싸 안았다.
미나의 몸이 사내가 있는 쪽으로 기울어져 미나의 한 대쪽 어깨가 사내의 가슴팍에 닿아 있었다.
미나의 얼굴과 가깝게 다가가 있는 사내의 얼굴이 조금씩 집요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미나의 머리칼....볼.....귀.....그리고 목덜미까지......사내는 미나의 몸에서 나는 향기를, 마치 후각이 발달한 개처럼 이곳저곳 음미하고 있는 것 같았다.
미나의 어깨를 움켜쥐고 있던 사내의 손이 앞쪽으로 넘어갔다.
하얀 블라우스 위를 도드라지게 밀어내고 있던 미나의 가슴 위를 사내의 손이 완전히 덮고 있었다.
하지만 미나는 여전히 테이블 위 스마트폰만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사내의 손가락이 스마트폰 위에 올려지자 끊임없이 어지러이 이어지던 남녀의 뒤섞인 신음소리가 뚝 끊어졌다.
그때서야 미나의 시선이 움직였다.
처음 미나의 시선이 향한 곳은, 자신의 얼굴 바로 옆에 다가와 있는 사내의 험악한 얼굴이었다.
잠시 사내의 얼굴에 머물러 있던 미나의 시선이 아래로 떨어져 내렸다.
그리고 미나의 시선이 머문 곳은 자신의 한쪽 가슴을 움켜쥔 채, 들썩거리는 사내의 검은 손이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미나의 얼굴이 반대쪽으로 향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 이미.....내려가 있는 아이보리색 블라인드.......미나의 시선이 그곳에 박혀 있었다.
[아가씨. 왜 놀랐어? 이런 거 처음 봐?]
멍하게 블라인드가 내려진 창 쪽에 머물러 있던 미나의 얼굴이 급하게 사내가 있는 쪽으로 다시 돌아왔다.
미나와 사내의 얼굴의 간격이....거의 닿을 듯 말 듯했다.
[더....재미있는 거 보여줄까?]
사내의 입술이 조금 뒤로 움직이더니, 두툼한 혀가 삐져나와 미나의 귓불을 위쪽으로 핥아 올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나는 꼼짝달싹하지도 못한 채, 사내의 품에 그대로 안겨 있었다.
[아가씨. 볼 때는 몰랐는데....젖가슴 만져보니까.
존나게 크네?
생긴 건, 애기처럼 생겼는데....
씨발......몸은 바짝 익었고....
나도 지금 졸라게 꼴리는데....
남자들이 참....좋아하겠어....
안 그래?
이 새끼도 너 따먹으면서 좋아했어?]
미나의 가슴을 움켜진 사내의 손에 더욱 힘이 들어가.....
사내의 벌어진 손 틈 사이로,
하얀 블라우스 위, 팽팽하게 부풀어 올라있는 미나의 가슴살이 삐져나와 있었다.
사내의 손이 다시 테이블 위에 있던 스마트폰에 닿아 움직이기 시작했다.
사내의 얼굴을 멍하게 보던 미나의 시선이 또다시.....아래로 떨어져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