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61화 (161/177)

◈ 166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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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ophenia (5)

Bar 뒤에 쓰러져 있는 여자의 입술이 수분기라 곤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말라 하얗게 변해있었다.

마치 숨결이 남아있지 않은, 이미 싸늘하게 식어버린 시체가 쓰러져 있는 것 같아 보였다.

검은 머리칼로 뒤덮여 있는 여자의 얼굴을 확인하기 위해 뒤로 쓸어 넘겼다.

여자의 얼굴이 손에 닿자 얼음처럼 차갑게 느껴졌다.

“어머!!!”

뒤에서 아내의 탄식이 들려왔다.

쓰러져 있는 여자는 세희였다.

붉은 핏기 하나 없는 얼굴엔 살이 쏙 빠져, 얼굴뼈의 형체가 이곳저곳 드러나 있었다.

코에 손을 가져다 대니 아무것도 느낄 수 없었다. 놀라 다시 귀를 가져다 대자 그때서야 비로소 작은 숨결을 느낄 수 있었다.

“오....오빠.....”

아내의 떨리는 소리가 다시 들렸다. 아내는 아마 세희가 이미 죽었다고 생각한 것 같았다.

나는 세희를 두 손으로 들어 올렸다.

몸에서 완전히 수분이 빠진 스펀지처럼 너무나 가볍게 번쩍 들어 올려 졌다. 그리고 풀어헤쳐 진 머리칼은 의식이 없는 듯 아래로 축 늘어져 있었다.

“은비야. 방 문 좀.....”

아내가 앞장서 안쪽으로 들어가 방문을 열어젖혔다.

나는 세희를 침대에 올려놓고, 이불을 꺼내 꼼꼼하게 덮어주었다.

119를 불러 병원에 데리고 가려고 생각을 했다가, 세희의 몸이 너무나 차가워 몸을 따뜻하게 하는 게 우선이라 생각했다.

“오빠. 세희 씨......어떡해.....괜...괜찮아요?”

“조금 있다가 병원에......”

그때.....

깊게 움푹 파여 있던 커다란 눈이 천천히 열렸다.

눈빛이 매우 흐렸다.

아마 며칠 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한 그런 몰골이었다.

아내가 밖으로 나가 미지근한 물을 가져왔다. 그리곤 세희의 머리를 조심스레 들어 올려 물 잔을 입가에 가져갔다.

한동안 아무런 움직임도 없던, 하얗게 말라버린 입술이 본능적으로 물을 조금씩 입술 사이로 넘기기 시작했다.

희미한 세희의 눈이 다시 꼭 감겼다.

그리고 꼭 감긴 눈 속에서 얼마 남아 있지 않은 뜨거운 눈물이 샘솟아 나오고 있었다.

“흐흐흑.....오.....오빠.....무서워요.....너무 무서워요......”

힘없이 울먹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물을 먹이려 얼굴을 살짝 들어 올리고 있던 아내에게로 세희의 얼굴이 파고들었다.

“흐흐흑....”

“세희씨....괜찮아요?”

아내의 떨리는 목소리가 들리는 순간.

세희의 흐느끼는 소리가 일시에 멈춰버렸다.

눈물로 젖어있는 세희의 깊은 눈가가 조금씩 열려, 천천히 자신의 머리를 감싸고 있던 아래로 향했다.

“아.......아............”

세희의 입에서 알 수 없는 탄식이 쏟아져 나왔다.

세희가 자신의 머리를 조심스레 받치고 있는 사람이 내가 아니라 은비라는 것을 그제야 알아차린 것 같았다.

저녁에 카페에 찾아오는 손님을 쳐내고 있었지만,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내 정신은 온통 아내와 세희가 함께 있는 안쪽 방에 쏠려있었다.

세희의 온몸에 그려진 그 새파란 문신이 떠올랐고,

그날....

최 진욱의 방, 책상 위에 있던 노트북을 들여다보고 있던 나와.

싸늘한 기운에 고개를 돌려 뒤를 봤을 때, 나를 향해 있던 세희의 차디찬 그 새까만 눈빛이 떠올랐다.

조금 전, 카페 근처에 있는 죽 전문점에서 죽을 사다 안쪽 방으로 들어간 아내로부터도 아무런 소식이 없었다.

내 마음은 한없이 초초해져갔다.

심란한 마음으로 꾸역꾸역 카페 손님을 응대하던 시간이 지나고, 카페를 찾는 손님이 잦아들 때 즈음, 아내가 Bar로 나왔다.

아내의 눈빛엔 여전히 처음 세희를 발견했을 때의 긴장감이 남겨져 있었다.

“오빠. 세희 씨 이젠 좀 괜찮아 진 거 같아요.”

“죽은 먹었어?”

“네...반 정도.....”

“오빠.”

“응?”

“세희 씨, 집으로 데리고 가야 될 거 같아요.”

“조금 있다가 집에 가는 길에 데려다 주자....”

“아니요....”

“그게 아니라......우리 집에....데리고 가야 될 거 같아요. 혼자......세희 씨 혼자 두면 안 될 거 같아요.”

아내의 말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아내가 말한 그 집이. 약국 2층 최 진욱의 그 집이 아니라....바로 우리 집이었다.

“은설이가 쓰던 방 비웠으니까......당분간 우리 집에.....당분간 세희 씨 괜찮을 때까지만.......괜찮죠?”

아내의 말에 아무런 대꾸도 할 수 없었다.

아내의 입장이 되어 수십 번을 생각해봐도 쉽게 납득이 되지 않았다.

“세희 집에....본가에 연락하는 건 어때?”

“저도 그렇게 말했는데......세희 씨가 그건 절대 싫대요.”

아내의 말에 더는 막을 수가 없었다.

아내가 다시 방으로 들어간 지 30여 분이 지나 안쪽에서 인기척이 들려왔다.

그곳엔 아내와 세희가 함께 서 있었다. 아내가 세희를 부축한 채.....

백지장같이 창백했던 세희의 얼굴에 옅은 생기가 돌아와 있었다.

“오빠. 우리 먼저 집으로 들어갈게요.”

“아니야. 같이 가....”

“아직 손님도 있는데......택시타고 가면 되니까. 마무리하고 오세요.”

밖으로 나가 택시를 잡아주자 아내와 세희는 그렇게 카페를 떠났다.

손님이 모두 빠져나가고 착잡한 마음으로 가게를 마무리할 무렵. 카페 문이 열렸다.

“오빠......”

“어.....”

카페 문 앞에 미나가 서 있었다.

미나의 얼굴도 말이 아니었다.

옅은 화장을 했지만, 아기처럼 통통했던 젖살이, 미처 빠지지 않았던 미나의 얼굴도 세희와 같이 핼쑥하게 변해 있었다.

블라인드가 굳게 내려진 카페엔 나와 미나 만이 테이블 하나를 차지하고 있었다.

“오빠.....미안해요.”

소파에 가만히 앉아 한참을 무엇인가를 망설이던 미나가 입을 땠다.

미나의 미안하다는 말이 무슨 의미인지 쉽게 가늠할 수가 없었다.

“오빠. 정말 몰랐어요......”

미나는 아마도 그날 최진욱의 방에서 보았던 은비와 최 진욱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았다.

“저는 아무것도 모르고.......정말 미안해요 오빠.”

“니가 뭐가 미안해?”

“나도........내가 왜 그랬는지 모르겠어요. 미쳤나 봐요.......”

“얼굴은 왜 그래? 아무것도 못 먹은 것처럼.....”

다시 생각하기도 싫은 그 일이 다시 떠오를까 봐....화제를 바꾸고 싶었다.

“그날이 처음이었어요. 개업식 하던 그날.......나도 왜 그랬는지 모르겠어요.

그날.....술에 취해서..........”

오래전 그날이 떠올랐다.

아내가 잠들어 있던 그 방에서 빠져나와 세희를 안고 거실로 빠져나올 때........최 진욱의 방 침대 위 엉켜있던.......

“술에 많이 취했었어요. 오빠하고 언니는 방에 이미 방에 들어가서 자고 있었고.....거실에 같이 있던 세희도 다른 방에 들어갔어요......”

[약사님. 우리 사장님......오빠하고 어떻게 알게 됐어요?]

[하하하.....치우? 음.......어떻게 말해야 할까.....말하자면 아주긴 이야긴데....]

[치이~, 그게 뭐야.]

[하하하. 미나 씨. 솔직히 말해 봐요. 미나 씨 치우 좋아하지?]

[네?]

[뭘 그렇게 놀래요? 척 보면 척이지.....근데 어떡하나.....치우는 이미 결혼도 했고.....은비 씨 같은 너무나 예쁜 여자도 있는데.......우리 미나 씨 가슴 아파서 어떡해?]

[누...누가 그래요.....우리 사장님......내가 오빠 좋아한다고......]

[에이....얼굴 빨개지는 거 봐라......]

“그렇게 둘이 술을 계속 마셨어요. 새벽 늦게까지.......”

[치우 참 괜찮은 놈이지. 남자가 봐도.....미나 씨는 치우 어디가 그렇게 좋아요?]

[따뜻해요....]

[응? 따뜻해? 어떻게?]

[그냥 같이만 있어도 따뜻하고 편안해요......치우 오빤......신경 안 쓰는 것 같으면서도.....항상 나를 챙겨줘요.

내가 뭘 하고 싶은지.....내가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아도 모두 알아요....그래서 좋아요. 저런 남자하고 평생을 함께하면 어떨까......생각만 해도.....가슴이 터질 것 같아....]

[미나 씨, 푹 빠졌구먼. 괜히 주인 있는 남자한테 그러지 말고, 다른 좋은 남자 찾아요.

미나 씨! 그거 알아요? 미나 씨가 얼마나 예쁘고 매력 있는지........

내가 처음 카페 가서 미나 씨 봤을 때, 깜작 놀랐다니까. 너무 예뻐서.....하하하....]

[내가 예뻐요? 약사님 보기에?]

[응. 당연하지.....]

[근데 왜 우리 오빤 나한테 관심이 없을까.......만약 날 좋아한다면......난.......다....해줄 수 있는데.....]

[다해줘? 뭘 다해줘?]

[그냥 애인처럼......오빤 결혼 했으니까......애인처럼 그렇게 평생.......]

[미나 씨. 치우하고 잤어요?]

[네? 아니요!]

[남자하고 같이 자보지도 않고 어떻게 좋다고 할 수 있어? 진짜 좋아하는 건 자봐야 아는 거지.....하하....]

[약사님! 여자는 그렇지 않아요. 좋아하는 사람이면.....그런 건 상관없어.......하지만 만약 오빠하고 같이 잔다면.........너무 좋을 거 같아......]

[미나 씨 지금 몇 살이에요?

[스물셋이요.]

[미나 씨. 나이 많은 남자 좋아하죠? 나는 어때?]

[네?]

[나는 결혼도 안 했고. 애인도 없고, 더군다나......미나 씨 좋아하는데........처음 봤을 때부터.......]

[약사님! 장난하지 마요.]

[미나 씨. 나 정말 장난 아닌데.......지금 증명할 수도 있는데......]

[네? 호호호.....그걸 어떻게 증명해요. 약사님도 참......]

[이래도?]

[흐읍!!!]

[미나 씨, 이정도면 증명한 걸로 되겠어요?]

[아.....아....하지마요.....]

[미나 씨. 입술도 그러고, 가슴도 참 예쁘다....]

[아.......아....거기.....안돼요. 오빠하고 언니 자요....]

[방으로 들어가자....]

“그 사람이 내게 키스하고......아무렇지 않게 브래지어를 벗기고 가슴을 만져도 이상하게 싫지가 않았어요. 머리론 그만하라고 하는데.....몸이 안 움직였어요. 술 때문인지......아니면.......

그렇게 그 사람 손에 이끌려 방으로 들어갔어요.

방으로 들어가자마자, 그 사람이 내 옷을 다 벗기고 내 몸에 올라타도 저는 가만히 있었어요. 아니.....나도 받아 줬어요......그리고....그 사람하고 했어요.”

[아...아....]

[미나야.....가만히 있어봐.....]

[아....아.....저기....약사님....]

[미나야.....콘돔 없는데......안에....안에 해도 돼?]

[아...아......아!!! 몰라....]

[하.....아.....좋아.......너 느낌 너무 좋다.....정말 오랜만이다 이런 느낌......어때? 너도 좋아?]

[아.....오,,,,,빠.......아.......좋아....]

“오빠하고 언니하고 다른 방에서 자고 있는 거 알면서도 나도 모르게 그....소리가 터져 나왔어요,

그 사람하고 그날 밤....아침까지.......몇 번인지 기억할 수도 없을 정도로 그걸 했어요. 피임도 하지 않고.....

그게 시작이었어요.

그 일이 있은 후, 오빠가 없을 때 카페에서도.......그 사람 집에서도......그리고 밖에서 따로 만나서도........같이 잤어요.

마치 애인사이처럼....”

담담하게 말을 이어가던 미나의 얼굴에 어느새 굵은 눈물방울이 두 뺨을 타고 흘러내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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