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3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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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ophenia (2)
정신을 차려보니 내 차는 이미 아내가 있는 학교 주차장에 도착해 있었다.
얼마 전에 수업이 끝났는지 학교 건물 뒤편에 삼삼오오 짝을 이뤄 교정을 헤집고 다니는 학생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한쪽 구석에 있는 농구코트에 학생들이 잔뜩 모여 있는 게 보였다.
아내와의 약속시간, 오후 3시 30분이 되려면 아직 30분 남짓 시간이 남아 있었다.
운전석 뒤편 시트 주머니 깊숙한 곳에 숨겨놓은 서류 봉투를 꺼냈다.
서류 봉투에 들어 있던 모든 사진에 최 진욱이 찍혀 있었다. 그리고.....다른 몇 장은 아내의 얼굴도 찍혀 있었다.
그리고.....
최 진욱의 차 조수석에 아내가 앉아 있었다. 운전석에 앉아 있는 최 진욱이 고개를 돌려 아내에게 뭐라고 말하고 있는 듯한 사진.
최 진욱의 얼굴이 아내의 뺨 바로 앞까지 바짝 다가가 있는 사진.
몸매가 완전히 드러난 말도 안 돼는 짧은 스커트를 입은 채, 최 진욱의 약국으로 들어가는 아내의 뒷모습이 찍힌 사진.
최 진욱이 카페 문을 열고 이제 막 들어가려는 사진에는 카페 통유리를 통해 포커스가 흐려진 내 얼굴이 희미하게 찍혀 있었다.
약국 앞에 주차된 자신의 차를 두 손으로 의지한 채 금방이라도 쓰러져버릴 듯한 최 진욱의 사진까지....
그날인 것 같았다.
최 진욱이 죽기 전 카페에 마지막으로 찾아온 그날....
[살인자!
니가 죽였지?
니 와이프가 최 진욱이하고 붙어먹은 거 알고,
그날.....니가 약 먹이고 죽였지?]
그리고 이미 찢어질 듯 구겨진 메모지가 눈에 들어왔다.
또다시 내 가슴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불과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이제 모든 것이 괜찮아지리라 생각했다.
아내는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와 있었고, 아내는 학교에 있는 시간을 제외하곤 매 순간을 나와 함께 하기를 원했다.
하지만, 모든 게 이 서류봉투 하나 때문에 한순간에 모두 무너져 버렸다.
갑자기 머리가 깨질 듯 아파와 한쪽 눈이 반사적으로 질끈 감겼다.
나는 그 서류 봉투를 원래 숨겨져 있던 곳에 쑤셔 넣고 서둘러 차에서 내렸다. 차 속의 답답한 공기로는 더 이상 숨을 쉴 수조차 없었기 때문이었다.
“우와!!!!”
학생들의 환호성이 들렸다.
구석에 있던 농구코트로부터 들려오는 소리였다.
그곳엔 서른 명 남짓한 학생들이 모여 있었다. 농구코트엔 얼굴이 떠질 듯 빨갛게 변한 학생들이 거친 몸싸움과 함께 농구를 하고 있었다.
보아하니 반대항전 같은 성격의 경기인 것 같았다.
나는 그곳에서 멀지 감치 떨어진 벤치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농구코트에서 정신없이 움직이는 학생들의 모습을 보고 있으니, 끊임없이 두드려대던 내 가슴이 조금씩 가라앉는 것 같았다.
“야 요즘 너희 담임 어때?”
“응?”
“영어 이 은비 어떠냐고 새끼야!”
분명 앞쪽 사선방향에 있던 하얀 벤치는 비워져 있었는데, 언제 부터인지 두 명의 학생이 그곳에 앉아 있었다.
나란히 앉아 있는 그 둘의 덩치차이가 너무나 컸다. 한 학생은 중학생으로 보이지 않을 정도로 건장했다.
“우리 샘? 별일 없는데? 왜?”
“에이씨....예전엔 매일 짧은 치마 입고 와서 수업할 때, 팬티도 몰래 보고 그랬는데.....요즘은 왜 그러냐?”
“아하....그거.......”
“야. 너 저번에 그 소문 들었지?”
“뭐를?”
“윤리, 국어 샘이 학교서 이 은비 따먹었다는 거.....”
“아....그 소문? 그거 거짓말이야.”
“병신아! 너 5반 희철이 알지? 그 새끼가 봤데. 한두 달 전 즘에 미술실에서 이 은비 따먹히는 거....
희철이 그 새끼가 미술부잖아. 그 새끼가 미술실에 두고 간 게 있어서, 저녁 늦게 다시 학교 왔는데,
이 은비가 팬티 다 보이는 야시꾸리한 옷 입고 미술실로 들어가는 걸 봤데.
희철이는 미술실에서 이 은비 나올 때까지 기다리다가 하도 안 나와서 미술실에 들어가려고 했는데.....
이상한 소리를 들었데.....그거 하는 소리.....야동에서 나오는 여자 섹소리.......”
“에이....희철이 그 새끼 구라 까는 걸로 유명한데......말도 안돼.....”
“어이구 새끼야.”
덩치 좋은 학생이 가만히 듣고 있던 왜소한 학생의 뒤통수를 힘껏 내리쳤다.
“병신아....마저 들어봐. 희철이는 겁나서 미술실 들어가지도 못하고 그렇게 계속 그렇게 있었는데........갑자기 2층에서 누가 올라오는 소리가 들려서 화장실에 숨었는데....
지 담임인 국어가 미술실에 들어가더라는 거야.
희철이가 화장실에 숨어 있다가 다시 미술실 앞에 갔는데....분명히 들었데.....그 소리....
미술실에서 이 은비 그 목소리하고.....국어......그리고......윤리쌤 목소리까지......”
“야! 나도 그 이야기 다 들었어. 근데 희철이가 직접 본 게 아니잖아. 그리고 희철이 그 새끼 똘아이라서 아무도 그 소문 안 믿었어....”
“멍청한 놈. 영어 이 은비 걸레인건, 학교에 모르는 사람이 없는데.......아마도 남자쌤들은 이 은비 한 번씩 다 따먹을 거라고 하던데....
몇 달 전에 이 은비 학교에 매일 이상 한 옷 입고 왔을 때, 내가 몰래 사진 찍어서 우리 엄마한테 보여줬거든?
근데 엄마가 정말 우리학교 선생님 맞냐고 놀라면서 묻더라. 아빠는 보고 이 은비 예쁘다고 하고 흐흐흐.....”
“너 자꾸 이러면 우리 담임한테 진짜 이른다......우리 샘 얼마나 좋은데......영어도 잘하고 예쁘고......”
갑자기 학생들의 말이 꿈속에서처럼 웅성웅성 거리며 흐리게 뭉개져 들려왔다.
마치 화실 같았다.
나무로 된 이젤이 줄지어 서 있는 게 보였다.
남자가 이젤에 걸려있는 한 그림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잠시 멈춰 있던 영상이 다시 움직였다.
문이 열렸다.
남자가 들어왔던 그 문을 통해 아내가 걸어 들어왔다.
아내의 옷차림이 사진에서 봤던 그런 옷이었다.
하얀 바탕에 수많은 검은색 스트라이프가 세로로 뻗혀, 몸매를 완전히 드러내는 그런 원피스였다.
[왔어?]
한 남자가 문 앞에 서 있는 아내에게로 웃으며 다가갔다.
정장을 입은 중년의 사내가 스스럼없이 아내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이 선생 심경의 변화라도 있는 건가? 그렇게 피하기만 하더니.....]
사내가 딸 달라붙어 있는 원피스 소매 위 아내의 팔뚝을 연신 쓰다듬었다.
[가야돼요. 할 말 있음 빨리 이야기해요.]
감정이 전혀 스며있지 않은 아내의 목소리가 들렸다.
[뭘 이리 서두르나.......
요즘 양 선생 하는 짓이 좀 이상한데....
이 선생 보곤 뭐라고 안 해? 양 선생이?
저번에 우리 회식 했을 때 말이야. 이 선생 다시 출근 한 그날......그날 우리 노는 거....양 선생이 찍은 거 같더라고.....
내가 이 선생 성희롱을 했대나 뭐래나.......양 선생 미친년이.....
내가 그랬어? 이 선생한테? 아니잖아.....우리 그런 거......안 그래?
그때 내가 양 선생한테 이야기했어. 이 선생 내 애인이라고......흐흐흐....
그러니까 양 선생이 이 선생한테 헛소리하면 나한테 다 말하라고.......괜히 서로 피곤하게 구질구질한 일 만들지 말고.....
학교에 소문 나봤자. 이 선생만 손해니까. 지난번 받은 이 선생 그 자료들도 있고, 그리고 내가 예전에 찍어놓은 것들도 있으니까.....]
사내가 아내의 등을 쓰다듬었다. 그리곤 그 손이 아래로 향해 허리를 지나 타이트한 원피스에 드러난 한쪽 엉덩이를 움켜쥐었다.
[이 선생 솔직히 말해봐. 나 말고도 요즘 만나는 남자들 여럿 있지? 도대체 몇 명이랑 돌아가며 만나서 이러는 거야?
역시 젊은 게 좋아. 나이든 여자들은 몸 딸려서 하고 싶어도 그러지도 못하거든....
그런데 이 선생........술 마시다 왔어? 술 냄새는 안 나는데.....왜......]
사내의 일방적인 목소리만 계속 들리던 공간에 전화벨 소리가 울렸다.
[여보세요?
나? 학굔데.
응....천 선생은 어딘데?
하하...그래? 그럼 지금 일루와.
미술실에 있어.
하하 이 사람...? 그건 알거 없고.
술 한잔하지. 그래그래...알았어...]
사내가 전화를 끊자마자 입고 있던 정장 재킷을 벗어 비워있는 이젤에 걸어 두었다.
그리고 아내의 두 어깨를 잡고 뒤에 있던 책상에 걸터앉혔다.
사내의 두 손이 아내의 원피스 속으로 파고 들었다. 그리고 잠시 후 그 속에서 작은 하얀 천조가리가 아내의 허벅지를 타고 아래로 미끄러지듯 떨어져 내렸다.
사내가 쪼그려 앉아 아내의 다리를 벌리고 그 속을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나는 이 선생 여기가 참 좋아....원래 여자들.....여기.....보지에....특유의 냄새가 나거든. 비릿한.....
가끔 어떤 년들은 섹스하기도 싫을 정도로 지독한 냄새가 나기도하고,
그런데.....
이 선생은 말이야. 여기 냄새가 전혀 안나. 처녀처럼.......깨끗한 보지처럼.....]
사내의 얼굴이 아내의 허벅지 사이를 헤집고 안쪽으로 조금씩 들어가 박혔다.
아내는 희미한 눈빛으로 말없이 그 모습을 물끄러미 내려다보고만 있었다.
무엇인가 집요하게 쪽쪽거리며 빠는 소리가 들렸다.
[으음.....]
한동안 사내의 모습을 지켜보던 아내의 입에서 희미하게 소리가 새어나왔다.
하지만 아내의 허벅지 사이에 처박혀 아내의 그것을 빨고 있는 사내의 움직임은 멈출 기미기 보이지 않았다.
[음....으음.....]
아래로 향해 있던 아내의 눈이 어느새 꼭 감겨 잔뜩 찌푸려져 있었다.
허벅지 사이에 박혀 있던 사내의 얼굴이 그곳으로 떨어져 나왔다.
쪼그려 앉아 있던 그가 일어났다.
하지만 아내의 두 눈은 여전히 인상을 쓴 채, 꼭 감겨 있었다.
가만히 웃으며 그런 아내의 얼굴을 들여다보던 사내의 얼굴이 아내의 얼굴을 덮어버렸다.
그러자 미간이 찌푸려져 있던 아내의 얼굴이 더욱 짙게 변해 버렸다.
사내는 아내의 입술을 빨며 급한 손놀림으로 바지 벨트를 풀었다.
촌스런 무늬의 사각팬티가 정장 바지와 함께 사내의 발목위로 떨어져 내렸다.
사내가 아내의 한쪽 허벅지를 손으로 감아 위로 들어 올리더니 더욱 벌어진 그 공간으로 자신의 하체를 급하게 밀어 넣었다.
[하아.....]
사내의 입술에 파묻혀 있던 아내의 번진 입술이 떨어져 나오며 급한 숨을 토해냈다.
사내가 간신히 바닥을 집고 있던 아내의 나머지 한쪽 허벅지마저 들어 올려 자신의 허리춤에 깊게 감아 안았다.
[아.......아아......아..........]
이제 완전히 자리를 잡은 사내의 하체가 앞뒤로 빠르게 움직이자, 사내의 침으로 번진 아내의 붉은 입술이 열려, 그 속에서 짙은 신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아내는 책상에 아슬하게 걸터앉은 자신의 몸을 지탱하기 위해, 흰 셔츠를 입은 사내의 어깨 아래 부분을 꼭 쥐어 잡고 있었다.
사내의 하얀 셔츠 위, 아내의 두 손에 발린 새빨간 매니큐어가 한없이 도드라져 보였다.
[하아......하아........으........으......]
불과 몇 분도 되지 않는 시간동안 미친 듯이 움직이던 사내의 몸이 갑자기 멈춰버렸다.
사내는 두 손으로 감고 있던 아내의 허벅지를 놓아 주곤 아내를 꼭 끌어 않았다.
아내의 얼굴이 사내의 한쪽 어깨 위에 닿아 있었다.
[이....이......선생.......너무 조인다....
나........벌써 싸겠다.
오늘은.....오늘은 천천히 하자.......]
아내의 귓가에 속삭이는 사내의 떨리는 목소리가 어렴풋이 들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