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57화 (157/177)

◈ 162화 ◈

-- Apophenia --

Apophenia (1)

한적한 새벽 도로를 얼마나 내달렸을까?

저 멀리....몇 달 전 새롭게 완공된 신공항 청사가 시야에 조금씩 가까워져 갔다.

새 건물의 반짝이는 공항청사 뒤편, 이제 막 이륙을 했는지, 꼬리가 빨간 비행기 한 대가 하늘위로 떠올라 이내 마치 장난감 비행기처럼 작게 멀어져갔다.

이른 아침임에도 공항 주차장은 이미 주차된 차로 들어차 있었다.

차에는 가끔 집에서....그리고 카페에서 맡았던 그 좋은 향기가 가득했지만, 운전을 하는 내내 그 어떠한 목소리도 들리지 않고 고요하기만 했다.

주차장에서 겨우 빈 공간을 찾아 주차를 했다.

차가 완전히 멈춰 서자, 연신 좋은 향기를 뿜어내며 조수석에 가만히 앉아 있던 여자의 붉은 입술이 이젠 때가 왔다는 듯이 지긋이 서로 깊게 닿아 있었다.

조수석에 앉아 있는 여자는 처제......은설이였다.

“다 챙겼지? 여권하고.........뭐 그런 거....”

그런 처제의 표정이 마음에 걸려 나도 모르게 의미 없는 말을 내뱉었다.

“네......형부.....”

처제의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알 수 없는 어떤 감정을 꼭꼭 숨겨놓은 그런 목소리였다.

트렁크엔 처제가 말없이 집으로 찾아왔던 그때, 그녀와 함께 있던 예쁜 캐리어가 가지런히 누워있었다.

국제선 청사 안에는 이른 아침 해외로 떠나려는 사람들의 모습들로 붐볐다. 그들의 표정은 나와, 처제의 그것과는 달리 무척 들떠있었다.

시간을 확인하니, 출발시간이 1시간 남짓 남아 있었다.

“체크인해야지?”

말없이 주위를 두리번거리던 처제는 중앙에 있던 키오스크 기계 앞으로가 푸른 화면을 천천히 터치했다.

잠시 후 내게 돌아온 처제의 손엔 키오스크가 뱉어낸 하얀 티켓이 들려 있었다.

잠을 편히 못 잤는지, 그게 아니면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트릴 것 같은 처제의 하얀 눈동자가 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처제....늦은 거 아니야? 지금 들어가야 하는 거 아니야?”

처제는 대답 없이 몇 발 내게 다가왔다. 처제가 잡고 있던 캐리어가 처제 옆에 서 있었다.

체제가 날 꼭 끌어안았다.

그리고 내 가슴에 바짝 닿은 처제의 상체가 조금씩 떨리기 시작했다.

“형부......언니.....언니 잘 부탁해요.....”

내게 안겨있는 처제의 등을 나는 말없이 토닥여주었다.

“도착하면 꼭 전화하고......잘 지내....알았지?”

“갈게요.”

내게 떨어지지 않을 듯 한동안 안겨있던 처제가 갑자기 고개를 돌려 뒤돌아서더니 빠른 걸음으로 멀어져 갔다.

국제선 탑승구 앞에 서있는 남자에게 여권과 티켓을 확인한 처제는 더 이상 뒤돌아보지도 않고 불투명한 자동문 속으로 사라져버렸다.

그렇게 서둘러 들어간 처제의 마지막 뒷모습에 마음이 편치 않았다.

나는 처제가 사라진 그곳을 한동안 물끄러미 바라보다 한쪽 구석에 있는 빈 벤치를 찾아 자리를 잡고 앉았다.

국제선 청사 안은 끊임없이 이어지는 항공사 방송 안내 멘트와 수많은 사람들의 소음들로 복잡하게 뒤섞여 있었지만, 내 귀엔 그 소리들이 잘 들리지 않았다.

왜냐하면, 아내의 얼굴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날......

벌써 일주일이나 지나버린 그날....

아파트 뒤편 오솔길에 멈춰서, 승합차가 떠나자마자 나는 아내가 사라진 쪽으로 향했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자, 아내가 좀 전 그 차에서 내렸을 때 입고 있던 옷 그대로 식탁 앞에 우두커니 서있었다.

[오빠. 언제 왔어요? 어디 나갔다 온 거에요?]

[응. 당신 안와서.....밖에 기다렸지....]

[아....]

나를 보는 아내의 표정이 무척 불안해 보였다.

거실 테이블위에는 전원이 꺼진 노트북이 그대로 펼쳐져 있었다.

[은비야.....이야기 좀 하자....]

나는 여전히 식탁 앞에 우두커니 서있는 아내를 불렀다.

거실 테이블 위 밝은 빛을 잃어버린 노트북은 그대로 열려 있었고, 대신 아내가 가지고온 머그잔에서 연신 좋은 커피향이 피어올라 이 공간을 조금씩 채워가고 있었다.

아내는 소파위 내 곁에 자리를 잡고 앉아 우아한 눈 화장으로 둘러싸인 눈을 깜빡이며 나를 바라보고만 있었다.

아내의 얼굴은 이제 예전에 내가 기억하던 그 모습으로 완전히 돌아와 있었다. 얼마 전 까맣게 염색을 한 머리와 살이 쏙 빠져 날카로워 보이던 얼굴선이 좀 더 부드럽게 변해 있었다.

아내는 참 예뻤다.

남자들과 뒤섞여 황금빛 머리칼을 찰랑이던 오래되지 않은 어느 날의 그때와, 이렇게 내 앞에 앉아 나를 바라보고 있는 지금 이 순간 까지도.....

말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오빠. 나도 오빠한테 할 이야기 있어요.]

망설이는 사이 어색한 정적을 깬 건, 내가 아니라 아내였다.

왠지 모르지만 아내의 말에 덜컥 겁이 났다.

[뭔데?]

[앞으로....나....매일....학교에 데려다주고.....나 학교 마칠 때도...매일....데리러와 줄 수 있어요?]

나를 향하던 아내의 그윽한 눈빛이 소리 없이 아래로 조금씩 떨어져 내렸다.

생각하지도 못했던 아내의 말이었지만, 나는 그리 놀라지 않았다. 아니 어쩌면 다행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응. 그럴게......]

[정말? 그럼 저녁에 카페는......]

[오후에 잠깐 닫으면 되지 뭐....]

잔뜩 굳어 있던 아내의 얼굴이 조금 환하게 변한 것 같았다.

[오빠는요? 할 말.....]

조금 전 아파트 공원 뒷길에서 보았던 것을 아내에게 물어보려고 했던 심경이 조금씩 흔들렸다.

[은비야...아까 밖에서......]

속으로 반복해서 대뇌였던 말들이 드디어 입 밖으로 터져 나왔다.

나를 바라보는 아내의 커다란 눈 속 갈색 동공이 또렷하게.....그리고 더욱 짙게 순간 변해갔다.

[언니 왔어?]

갑자기 현관에 하이힐 소리가 들렸다.

[어머! 형부도 있었네? 카페는요?]

거실에 들어선 건 처제였다.

[어....처제 왔어? 저녁은?]

[애들하고 먹었어요? 언니하고 뭐하세요?]

처제는 거실 소파에 앉아 있는 나와 아내를 보며 이게 무슨 분위기인지 파악을 하기 위해 여념이 없었다.

다음날 아침 아내와 약속한대로 아내를 학교에 바래다주고, 처제와 카페로 출근하는 길에.....

처제가 말했다.

[형부....나....며칠 있다가 일본 가요.....엄마한테....]

[뭐? 갑자기?]

[네. 어제 언니하고 이야기 했어요.]

처제는 나를 보며 웃고 있었지만, 처제의 얼굴은 그날따라 유난히 슬퍼보였다.

“라스트 콜! 라스트 콜! 승객을 찾습니다.......”

갑자기 귓가에 울리는 소리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공항에 마지막 승객을 찾는 여자의 다급한 소리가 오랫동안 울리기 시작했다.

카페에 돌아와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지만, 탑승구 쪽으로 사라지던 처제의 뒷모습이 계속 마음에 걸렸다.

최 진욱의 방에서 그 일이 있은 후,

미나는 연락도 없이 계속 카페에 출근하지 않았다. 그리고 최 진욱의 동생, 세희 또한 그 날 이후 얼굴을 볼 수 없었다.

나는 그 둘에게 연락을 하지도........그리고 기다리지도 않았다.

그리고 매일 아내를 학교에 태워주고, 데려오기를 하루도 빠지지 않았다.

카페는 다시 나만 홀로 남겨졌다.

머나먼 시간 여행을 마치고 다시 처음 카페를 오픈할 때의 나로 돌아와 있는 것 만 같았다. 홀로 남겨진 것이 조금 외로웠지만 그리 나쁘진 않았다.

한 참 바쁠 때인 점심시간이 훌쩍 지나고.....달아오른 내 얼굴의 열기가 조금씩 식어갈 때 즈음. 카페 문이 열렸다.

“김 사장님. 점심했어요?”

장 실장이었다.

그를 본 게 무척 오랜만인 것 같았다.

하지만 기억을 되돌려보니, 일주일전.....그 날, 승합차에서 내려 담배를 피고 있던 그를 본 게 기억났다.

“어.....장 실장님. 오셨어요?”

그는 카페 문 앞에 서서 나를 보며 기분 좋게 웃고 있었다.

마치, 반가운 사람을 오랜만에 만난 것처럼......

“어찌 조용하네요.....다른 분들은......”

“아....처제는 장모님한테 갔어요. 일본.....그리고 미나는........”

말문이 막혔다.

“아.....그랬구나....예쁜 사람들이 없어서....그래서 이렇게 조용했구나....하하하.....”

장 실장은 오늘 무척 기분이 좋아 보였다.

평상시에 그는 이렇게 기분 좋게 그리고 자주 웃는 사람이 아니었다. 오랫동안 형사 생활의 영향인지 그의 얼굴은 항상 긴장이 스며있었다.

하지만 오늘은 달랐다.

“김 사장님. 저기...이거......”

테이블 위, 그가 USB 메모리 하나를 내게 내밀었다.

“고민했어요. 이걸 김 사장님한테 드려야할지 말지를......”

“뭐죠 이게?”

“지난번에......노트북에 있던 자료입니다.”

내 미간이 찌푸려졌다.

“자료를 모두 여기에 옮기고, 노트북에 있던 것들은 모두 삭제했습니다.”

그가 정말 노트북에 있던 그 영상들을 삭제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왠지 그의 말에 믿음이 갔다.

“김 사장님한테 이거 전해주려고 왔어요. 아이고.......

김 사장님 조만간에 로이엣에서 한잔합시다. 얼마 전에 갔더니 혜원이가 김 사장님 찾던데.....하하하.....”

장 실장은 내가 내어준 시원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얼음까지 깔끔하게 비우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날 밤.

아파트 뒤, 한적한 도로에서 장 실장이 무엇을 지켜봤는지 궁금했지만, 이젠 더 이상 내겐 중요한 일이 아니었다.

내가 의식 없이 병원에 누워 있을 때, 아내에게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중요하지 않았다.

단지 나는, 감당하기 힘든 상황에 홀로 위태롭게 놓여 있었던 아내의 얼굴이 떠올라 마음이 아플 뿐이었다.

이건, 내게, 용서의 문제가 아니라.......이해의 문제였다.

장 실장이 두고 간 USB 메모리를 노트북에 연결하자 폴더가 떠올랐다.

[최 진욱 ? 의뢰번호(13)....87.3 기가.....]

그리고 나는 탐색기를 열어 그날......로이엣에서 장 실장이 내게 처음 이 파일들을 보여줬을 때, 몰래 옮겨놓았던 폴더를 열었다.

[최 진욱 ? 의뢰번호(13)....88.4 기가.....]

지난번 장 실장이 카페에 노트북을 들고 왔을 때와 같이, 정확히 11기가......장 실장이 전해준 USB에 11기가 삭제되어 있었다.

두 개의 폴더를 열어 유심히 바라보던 내가 무엇인가에서 깨어나듯 고개를 가로저었다.

시간을 보니 어느새 보충수업이 끝나는 아내를 다시 데리러갈 시간이 다가와 있었다.

노트북을 끄고, 간단히 정리를 하곤, 서둘러 카페를 나섰다.

“아.... 사장님 어디 가세요?”

“아...네.....”

카페 문을 잠그려는 순간 뒤돌아보니, 항상 오던 택배아저씨가 웃으며 서있었다.

“오늘은....사장님 앞으로 온 거 한 개밖에 없네요.”

“아네....감사합니다. 수고하세요.”

그에게서 서류 봉투를 받아들곤 대학 안에 주차된 차로 향했다.

대학 북문을 빠져나와 작은 삼거리 앞에 신호를 받자, 최 진욱의 약국이 눈에 들어왔다.

약국 내부가 검게 변해 있었다. 커다란 창이 여러개 달려 있는 2층 또한 1층의 모습과 동일했다.

조수석에 놓여있던 서류봉투에 자꾸 눈이 갔다.

시간이 가도 신호가 쉽게 변하지 않았다.

[..........다이엔 카페, 김 치우.....]

받는 사람 란에 주소와 카페이름이 적혀 있었다.

보내는 사람 주소도 적혀 있었지만, 익숙하지 않은, 처음 보는 주소였다.

한참동안 그것을 들여다 보다 봉투를 뜯었다.

운전석 아래로 사진들이 흘러내렸다.

[살인자!

니가 죽였지?]

서류봉투 속에 들어 있던 하얀 메모지를 들고 있는 내 손이 떨리기 시작했다.

[빠아앙!!!!!!!!!!]

뒤에서 귀 따가운 자동차 경적소리가 울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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