鬼?祭 (8)
“은비 씨....뒤에....누....누구지....”
장 실장의 목소리가 들렸다.
저 멀리, 노란 가로등 불빛아래 서있는 아내의 뒷모습이 보였다.
아내는 자신의 곁에 다가와 있는 남자와 대화를 하는지, 아무런 움직임 없이 그렇게 멈춰 서 있었다.
아직 필터까지 가려면 한참이 남은 담배를 재떨이에 살살 비벼 껐다.
담배 끝, 빨간 불똥이 완전히 사라질 때 즈음, 나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아내가 있는 서 있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잘 정리된 화단 사이를 가로질러 나아가자, 주차장 한가운데 우두커니 서 있는 아내가 조금씩 가까워졌다.
한걸음씩 나아갈 때 마다, 투피스 검은 정장을 입고 있는 그 실루엣이 더욱 또렷해져, 어느덧 노란 가로등에 반사되는 아내의 뒷몸매가 드러나 보였다.
“은비야!”
충분히 들리고도 남을 거리일거라 생각을 했지만, 아내는 나의 부름을 듣지 못했는지 그대로 뒤돌아 서있었다.
나를 먼저 알아차린 건, 아내 앞에 서 있던 남자였다.
남자의 시선이 내게로 향했다.
아내의 짙은 그 향기가 느껴졌다.
“여보?”
내게 향한 남자의 시선 때문인지 아니면 내 목소리를 들었는지, 그때서야 아내의 몸이 천천히 뒤돌아섰다.
검은색 투피스위에 피어있는 아내의 하얀 얼굴이 어둠 속에도 빛나고 있었다.
“당신 왔어?”
불과 몇 미터 앞에서 아내에게 말했지만, 아내는 나를 바라볼 뿐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오...오빠!”
“맞네.....나는 긴가민가했지....”
나를 보는 아내의 표정이 왠지 조금 낯설게 느껴졌다.
희미하던 남자의 얼굴이 완전히 드러나 보였다.
그는 나이가 좀 있어 보였다. 40대 초반 즈음 됐을까?
다부진 체형의 날카로운 얼굴이었다.
몸에 붙는 트레이닝복 같은 것을 입은 남자는 마치 산책을 나온듯한 그런 편한 복장이었다.
“여보....누구셔?”
나를 향해 고정되어 있던 두 시선을 확인하고서 아내에게 물었다.
나를 보는 아내의 커다란 눈이 멈춰버린 것 같았다.
그건.....나를 보는 남자의 눈빛도 아내의 그것과 비슷해 보였다.
“오빠....”
앙증맞은 붉은 입술이 열리자 아내가 멈춰있던 숨을 토해내듯 말했다.
“아....저기.....이 선생님....반 애....학부몹니다.”
남자가 말했다.
“아. 그러시군요.”
“네....병원에 아는 사람 병문안 왔다가 마침 이 선생님 보고.....반가운 마음에 인사드리려고......”
잔뜩 굳어있던 남자의 표정이 조금씩 느슨하게 풀려갔다.
“그럼....선생님 잘 부탁드립니다.”
더 이상 서로 간의 대화가 진척이 없자, 가만히 서 있던 남자가 고개를 숙여 나와 아내에게 동시에 인사를 하곤 서둘러 조금씩 멀어져 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내의 시선이 여전히 내 얼굴에 고정되어 있었다.
“은비야. 같이 들어가자.”
아내의 손을 잡아끌었다.
아내의 손이 유난히 차갑게 느껴졌다. 그리고 조금 젖어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아내의 손을 잡고 함께 걸으며, 아내의 젖은 손이 마지막으로 내게 닿은 것이 언제였었는지 찬찬히 기억을 떠올려 봤다.
아내의 하이힐이 또각거리며 말없이 내 손에 이끌려왔다.
조금 전, 장 실장과 함께 담배를 피던 그 벤치 바로 앞을 지나쳤지만, 장 실장은 자리를 떠났는지 찾아볼 수 없었다.
미나와 처제가 있던 테이블에 언제 왔는지 승호가 앉아 있었다.
아내는 곧바로 최 진욱의 영정이 있는 안쪽 방으로 들어갔다.
“어! 치우야, 은비 씨도 왔네?”
테이블에 다가가자 미나 옆에 앉아 있던 승호가 말했다.
“응. 너는 언제 왔어?”
“좀 전에....”
“근데 그때 봤던...제수씨는?”
“아......수연이....요즘 몸이 좀 안 좋아서............임신했어.”
씩씩하게 말하던 승호의 목소리가 어느새 소곤거리듯 작게 변했다. 하지만 그의 얼굴엔 보기 좋은 환한 미소가 가득했다.
“네?”
“네?”
우리의 대화를 가만히 듣고만 있던, 미나와 처제의 놀란 목소리가 동시에 들려왔다.
“오빠! 수연 언니....아기 가졌어요?”
처제의 물음에 승호는 고개를 끄덕이며 조용히 웃고만 있었다.
영정이 있는 안쪽 방에서 여자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이제 막 두 번째 절을 마친 것 같은 아내의 뒷모습도 보였다.
“흐으흑......언니......”
내 가슴에 얼굴을 묻고 울던 그 여자가........아내에게 다가갔다.
그러자 아내가 그 여자를 따뜻하게 안아주었다.
아내에게 깊게 안긴 여자의 구슬픈 울음소리가 장례식장에 울려 퍼지고 있었다.
[김 사장님, 좀 전에.....멉니까? 도대체 무슨..........]
반짝이는 스마트폰 액정에 장 실장이 보낸 메시지 앞부분이 떠 있었다.
“은비 씨 왔어요?”
“네, 승호 오빠...”
어느새 아내가 다가와 내 곁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언니! 수연 언니 임신했데.”
처제가 아내에게만 들릴 듯,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아......오빠.....축하해요.....”
옅은 화장을 한 아내의 얼굴에 작은 미소가 지어져 있었다. 하지만 내겐 그 미소가 무척 부자연스러워 보였다.
아내의 화려한 얼굴 사이 어느 곳에 숨겨진 그 작은 표정은, 나만이 알 수 있는 그런 것이었다.
이른 아침 카페에 도착했지만, 오픈 준비를 하지 않은 채, 여전히 문은 굳게 잠겨있었다.
어젯밤, 미나와 처제는 흐느끼던 그 울음소리가 계속 마음이 쓰였는지, 오늘 발인까지 그녀와 함께한다고 했었다.
Bar에 앉아, 오픈 준비를 할까 한참을 고민하다가 나는 그냥 안쪽 방으로 들어와 버렸다.
작은방,
한쪽 구석을 차지하고 있는 슈퍼싱글사이즈, 푸른 침대 위에 앙상해진 내 몸을 맡겼다.
내겐, 이것이 나만을 위한 최고의 안식이었다.
새벽에 잠을 설쳐서인지, 나도 모르게 눈이 스르륵 감겼다.
어젯밤 잠들기 전, 침대에 누워 나를 보던 아내의 그 얼굴이 자꾸 아른거렸다.
끊임없이 울려대는 스마트폰 소리에 잠에서 깨어났다.
몸엔 뜨거운 열기로 가득했다. 마치 심한 운동을 한 것처럼 온 몸이 아팠다.
꿈에서 누군가가 계속 나를 쫓아 왔다. 나는 그것을 피해 달아나기만 했다.
달아나도.....달아나도......절대 멀어지지도, 도망칠 수도 없었다.
스마트폰에 웃고 있는 미나의 귀여운 얼굴이 떠 있었다.
“응. 미나야.”
“오빠.....”
“그래. 다 끝났어? 오늘 오지 말고 쉬어.......”
“오빠. 그게 아니라......지금 여기 올 수 있어요?”
“왜? 무슨 일 있어?”
“그게.....세희 언니 부모님이....세희 언니 본가로 데리고 가려고 하는데. 세희 언니가 절대 안 간다고 해서......”
밖은 이미, 해가 하늘 정 중앙에 걸려 있었다.
도심에서 그리 멀지 않은 화장시설이 있는 추모공원의 입구가 보였다. 건물 뒤쪽 어딘가에서 거뭇거뭇한 연기가 새파란 하늘 위로 피어오르고 있었다.
주차장엔 대형 영구차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주차장 바로 위,
유족이나 조문객이 편히 쉴 수 있도록 만들어 놓은 파고라 아래 벤치에 앉아 있는 처제가 보였다.
그리고 그 옆엔 미나가 고개를 조금 숙여 검은 상복을 입은 여자에게 뭐라고 계속 말을 하고 있었다.
“형부....”
그곳에 올라가자, 처제가 난처한 얼굴로 나를 불렀다.
동시에 미나와 상복을 입은 여자의 얼굴도 나를 향했다.
“세희 언니, 우리 집에 가자? 응?”
“아니야. 괜찮아.....”
“그러지 말구.....괜찮으니까 우리 집에 며칠 있어. 응?”
“그래요, 언니. 미나 말대로 해. 응?”
차에 올라타서도 미나와 처제 그리고 검은 상복을 입은 여자의 작은 실랑이가 끊이지 않았다.
피곤했는지 조수석에 앉아 꾸벅꾸벅 졸 던 처제를 집에 내려다주고, 최 진욱의 약국으로 향하는 차안에서 까지도 미나의 설득은 계속되었다.
“미나야? 너 배고프지?”
차가 약국 바로 앞에 주차할 때 즈음, 그녀가 말했다.
“으응?”
“점심 안 먹었잖아. 밥 먹고 가. 내가 집에서 만들어 줄게....”
“아니야. 언니, 그러지 말고 밖에서 대충 먹자.”
나는 미나가 그렇게 말한 이유를 알고 있었다.
항상 환한 불을 밝히던 약국 내부가 뿌연 회색으로 변해있었다.
내 발걸음이 약국 현관 입구에 잠시 멈춰 서 있었다.
나는 그 곳으로 들어가기가 싫었다.
미나가 차에 실려 있던 박스를 낑낑대며 꺼내고 있는 게 보였다. 아마도 그것은 장례를 치르고 나서 남은 물품 같은 것이었으리라....
나는 마니가 들고 있던 그것을 받아 들었다.
그리고 할 수 없이 약국 안으로 들어가, 나무 계단을 오르고 2층으로 올라갔다.
2층 거실이 무척 깔끔했다.
나는 최 진욱이 1층 약국에서 죽었는지, 아니면 2층 집에서 죽었는지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1층도, 그리고 2층도 그런 사건이 있었다는 걸, 꿈에도 생각하지 못할 정도로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오빠! 잠깐만 계세요. 금방 점심 준비할게요.”
“아니......아니....나는....”
내 대답을 듣기도 전에 이미 그녀의 몸이 뒤로돌아 서있었다
“미나야. 여기 앞에 시장같이 가자”
“응. 오빠 언니하고 금방 갔다 올게요.”
두 여자가 빠져나가자 현관문이 쿵하는 소리와 함께 닫혀버렸다.
이 넓은 공간에,
나만 홀로 남겨져있다는 사실에 소름이 돋았다.
나는 거실 중간에 움직이지도 않고 한참을 그렇게 서있었다.
안방 문이 열려 있었다.
안방 책상 위에 정중앙에 올려져있는 은색의 노트북이 보였다.
나도 모르게 발걸음이 그곳으로 향했다.
방금 누군가가 정리를 한 것처럼 하얀 침대 시트가 구김 하나 없이 깔끔하게 펴져 있었다.
나는 책상에 앉아 노트북 전원을 눌렀다. 그러자 불과 몇 초도 되지 않아 노트북 액정이 환하게 빛을 발했다.
노트북 화면에 예전 어디선가 본 듯한 푸른 해변의 사진이 가득 차있었다.
나는 의자 빼내 책상 앞에 앉았다.
갑자기 인기척이 느껴진 것 같아, 고개를 돌려 뒤를 돌아봤지만, 거실엔 아무도 없었다.
블루투스 마우스를 움켜쥐고, 탐색기를 눌렀다.
새 창이 뜨고. 두 개로 나눠진 드라이브 중, 두 번째, D 드라이브에 들어갔다.
학회, 발주서, 신약리스트, 해외심포지엄, 약사회, 개인자료......
노란 폴더들이 보였다.
개인자료에 들어가자 또다시 새로운 폴더가 떴다.
여행, 가족, 세희, 동문회. Pattaya, Eb.......
세희라는 폴더에 들어갔다.
여러 폴더 중에 ‘세희결혼식’ 이라는 폴더가 눈에 띄었다.
그 폴더 속엔 수많은 사진들과 동영상들이 빼곡했다.
[오빠! 오빠! 어때? 나 예뻐?]
새하얀 웨딩드레스를 입은 눈부시게 예쁜 여자의 얼굴이 화면에 가득했다. 여자의 표정은 세상의 모든 행복을 가진듯한 그런 얼굴이었다.
[오빠. 나 어제 긴장해서 잠 못 잤단 말이야. 화장은 어때? 이상한데 없어?]
[인마. 없어. 예뻐. 누구 동생인데....하하하....]
갑자기 들리는 남자의 목소리에 급하게 동영상을 꺼버렸다.
마우스위에 올려진 내 손이 덜덜덜 떨리고 있었다.
Eb 폴더.
그곳에 이전 폴더와 달리 동영상 몇 개만 덩그러니 들어있었다.
그중에 하나를 클릭했다.
[하.......하아.......]
숨소리가 들렸다.
조금씩 떨리는 화면이 푸른 침대 위에 있던 무엇인가를 향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