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50화 (150/177)

鬼?祭 (7)

“김 사장님. 그리고....이 사람 누군지 알아요? 처음 보는 놈인데.....”

내 귓속에 크게 울리는 장 실장의 거친 목소리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노트북 화면을 꽉 채워 움직이는 영상이 보였다.

병원이었다.

내가 누워있던.....그리운 그 병원.....

칠흑같이 어두운 그곳에 차에서 뿜어져 나오는 밝은 헤드라이트 불빛이 가득 차 있었다. 검은 승합차 한 대가 이제 막 병원 뒷마당 주차장에 들어서고 있었다.

검은 승합차가 주차장에 멈춰서기도 전에 뒷문이 열리고 아내가 급하게 차에서 빠져나왔다.

차로부터 조금씩 멀어져가는 아내의 걸음걸이가 부자연스러웠다. 비틀거리는 것 같았다.

빨간 미등을 밝힌 차 운전석에서 한 남자가 내렸다. 그리고 조금씩 멀어져 가는 아내에게 달려갔다.

남자가 도망치듯 걸어가던 아내의 팔을 거칠게 낚아챘다.

아내의 머리칼이 갑작스런 그 움직임에 크게 흔들렸다.

남자가 아내의 몸을 꼭 끌어안고 입을 맞췄다. 남자에게 목덜미를 잡힌 아내가 한참을 버둥거리다 남자를 간신히 밀쳐냈다.

아내의 손이 올라가 남자의 뺨을 힘껏 내려쳤다.

아내가 남자로부터 벗어나 병원 건물로 이어져 있는 계단을 빠르게 올라갔다.

아내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아내에게 뺨을 맞은 남자가 바닥에 침을 뱉었다. 

남자의 치아가 완전히 드러나 있었다. 

남자는.....웃고 있었다.

동영상 창이 닫혔다.

“김 사장님. 처음 보는 사람인데. 누군지 알겠어요?”

하지만 장 실장의 물음에 나는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화면을 가득 메우고 있던 동영상 창이 사라지자 바탕화면에 떠있는 그 폴더가 보였다.

‘최 진욱 ? 의뢰번호(13)’ 

‘87.3 기가.....’

어젯밤.....그 곳.....로이엣에서....

장 실장이 룸을 빠져나간 사이 복사했던 그 폴더.....

100기가에 육박하던 그 폴더 용량......내 기억으론 98기가바이트가 조금 넘는 용량이었다.

어젯밤과 달리 이 폴더에서 11기가의 용량이 사라져 있었다.

오늘은 일찍 잠들어 버리고 싶었다.

내 모든 신경이 공중에 붕 떠 있는 것 같이 느껴졌다.

벌써 집 앞 현관 앞에 서있었지만, 마치 순간 이동이라도 한 듯, 시간의 흐름이 잘 느껴지지 않았다.

문을 열고 현관에 들어서자, 아내의 향기가 아니라, 맛있는 다른 냄새가 진동했다.

아내는 내가 들어온 것도 모르는지 주방에서 바삐 움직이고 있었다.

“어........”

주방을 향해 뒤 돌아 아내의 모습이 변해 있었다.

아내의 그 금빛 머리칼이.....검게 변해 있었다.

“은비야...”

나지막이 아내를 부르는 그 소리에 그제서야 아내가 뒤돌아섰다.

밝은 색조의 화사한 화장이 아내의 얼굴에 가득 차있었다. 

아내는 아직 옷을 갈아입지 않았는지, 아침에 봤던 그 하늘거리는 스커트를 그대로 입고 있었다.

“어머! 오빠. 언제 왔어요?”

자신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던 내 모습에 아내가 놀란 듯 보였다.

아내가 내게 다가왔다.

하지만 내 시선은 아내의 하얀 얼굴을 까맣게 감싸고 있는 그 머리칼에 머물러 있었다.

“아.....오늘 머리....했어요.....염색........이상해요?”

내가 말없이 그곳을 뚫어져라 쳐다보자, 아내는 무슨 잘못이라도 한 듯 안절부절 했다.

예전 금빛 머리칼이 아내를 금발의 백인처럼 보이게 했다면. 지금은, 금발의 백인이 동양여자 같이 머리를 검은색으로 염색을 한 것 같아 보였다.

“은설이는....세희 씨하고 오늘 같이 있는데요. 미나도 같이......”

아내가 식탁에 앉아 있는 내 앞에 하얀 연기가 피어오르는 그릇을 조심스레 내려놓으며 말했다. 

“어서 먹어요.”

아내가 재촉했다.

뽀얀 국물이 담긴 그릇에, 먹기 좋게 썰린 연붉은색의 고기가 가득했다.

한 수저 떠서 입에 넣었다.

너무나 진한 국물 맛이 입안에서 계속 맴돌았다.

다시 한 수저를 뜨려 하자 맞은편에 앉아 있던 아내가 적당한 크기의 고기를 내 수저에 서둘러 올려놓았다.

“당신은? 안 먹어?”

정작 아내 앞에는 아무것도 놓여 있지 않았다.

“괜찮아요. 오빠 드세요.....나는 그냥 오빠 보고 있을래.......”

나를 바라보는 아내의 눈빛이 예전의 그때처럼 변해 있었다.

커다란 갈색의 눈망울에 빛이 또렷하게 반사되어 반짝거렸다.

“이리와....” 

나는 내 옆자리 의자를 빼어났다. 그러자 아내가 조심스레 그곳에 앉았다.

나는 아내의 귀를 덮고 있던 검은 머리칼을 뒤로 살짝 넘겨주었다. 

“당신도 먹어.....살이 너무 빠졌어. 

나보다 당신이 더 걱정이야. 

나는 괜찮으니까.....어서 먹어....”

수저위에 올려진 그 고기를 그대로 아내의 입으로 가져갔다.

옅은 미소가 머물러 있던 아내의 얼굴이 조금씩 변했다.

아내의 기다란 눈썹이 스르륵 감기며, 붉은 입술이 조금씩 열렸다.

아내에겐 독특한 습관이 있다. 

입속으로 무엇을 넣을 때, 항상 눈을 감는다....

첫 데이트.....

내가 아이스크림을 아내에게 먹여 줄 때도 그 커다란 눈을 살며시 감겼다.

나는 아내의 그런 습관이 너무나 예뻐 보였다.

음식을 먹을 때나, 내 입술이 아내의 입술 사이로 들어갈 때, 그리고 아내가 내 그것을 입에 가득 담는 그 순간까지도.... 

나는 아내의 그 입술 속으로 조심스레 수저를 넣었다.

아내의 붉은 입술이 천천히 오물거렸다. 

아내의 눈이 다시 천천히 열렸다.

“앞으로 당신......잘 먹어야해, 학교에서 바쁘다고 점심 거르지 말고....꼭 챙겨 먹어. 그리고 앞으로 특별한일 없으면 항상 저녁은 나하고 같이 먹어....”

나는 다시 아내의 앙증맞은 입술에 맞게, 수저에 뽀얀 국물과 살코기를 적당하게 담았다.

그리고 다시 아내의 입술에 내밀었다.

아내는 말없이 눈을 꼭 감고 그것을 받아먹었다.

마치 내가 먹고 있는 것 같았다. 

아내의 그 모습에 나도 모르게 포만감이 느껴졌다.

보석같이 빛나는 갈색 구슬을 품고 있던 아내의 새하얀 눈 속이, 조금씩 붉은 노을로 물들어가고 있었다.

침대에서 아내를 기다리는 시간이 무척 지루했다.

몇 번을 망설이던 끝에 샤워를 한다던 아내를 찾아 나섰다.

드레스 룸에 아내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욕실에서 희미한 소리가 들렸다.

샤워기가 틀어져 있는지 물이 흐르는 소리였다.

욕실 문을 두드리려는 순간.

아내의 소리가 들렸다.

그것은, 흐느끼는 소리였다.

아내의 흐느끼는 그 소리가 닫혀있던 욕실 문을 비집고 나와 끊임없이 내 귓가에 구슬프게 울려 퍼졌다.

며칠의 시간이 그렇게 흘러갔다.

나는 매일 카페에 나와, 홀로 시간을 보냈다.

당분간 카페에 나오지 말고 쉬라고 말을 했지만, 이따금씩 얼굴을 비치는 미나는 하루가 다르게 야위어 갔다. 

그리고.....

부검을 끝낸 경찰은 그의 죽음이 불법 약물 제조 및 약물 오납용이라는 사인을 공식화하고 사건을 종결했다. 

이틀 전, 시신이 가족에게 인도됐다. 

오늘은 발인 전, 조문을 할 수 있는 마지막 날이었다.

조금 일찍 정리하고 카페를 나섰다. 

내가 향한 곳은 내가 누워있던, 그 대학 병원에 있는 장례식장이었다.

오랜만에 입어보는 검은 정장이 몹시 답답하고 불편하게 느껴졌다.

대학병원 장례식장이 항상 그렇듯, 발 디딜 틈도 없을 정도로 조문객들로 가득했다.

장례식장 입구, 전광판에 떠 있는 이름을 확인하고서 안쪽으로 들어갔다. 

사람들로 가득 차 있는 다른 곳과는 달리 조금 한산해 보였다. 

사람들 사이로 검은 원피스를 입은 채, 한쪽 테이블에 앉아 있는 미나와 처제의 얼굴이 얼핏 보였다.

안쪽 방으로 들어가자, 검은 상복을 입은 사람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나를 맞았다.

“오빠!!!!”

조용하던 그곳에 울음 섞인 여자의 목소리가 크게 울렸다.

나는 향을 하나 피워 영정사진이 있는 곳에 살며시 꽂았다.

준비해온 조의금을 붉은 나무로 된 상자 안에 넣었다.

그리고 그에게 절을 했다.....

“흐흐윽.....오빠.....오빠......어떡해........”

영정을 향해 재배를 할 때,

참고 있던 여자의 울음이 터져 나왔다. 

검은 상복을 입은 여자가 내게 다가왔다. 얼굴이 눈물로 엉망이 되어 있었다. 

“흐흐으윽........흐으윽.....오빠......”

내 가슴에 여자의 머리가 살짝 닿았다.

“세희야.....조문 오셨잖아....이러면 안 돼.”

연세가 지긋한 할머니가 차분하게 말했지만, 내 가슴에 얼굴이 닿아 울고 있는 여자의 울음은 멈추질 않았다.

“저기....혹시.....우리 진욱이하고 세희하고, 많이 도와주셨다는 그분이신가요?” 

그 할머니의 말에 나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울고 있는 여자의 빨간 눈망울이 나를 향해 있었다.

영정이 있는 그 방을 벗어나자, 테이블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시선이 내게 향해 있었다. 

미나와 처제 또한 그러했다.

그리고.,

한쪽 구석에....장 실장이 홀로 앉아, 나를 보고 있었다.

멋쩍게 한번 웃어 보이던 그가 테이블 위에 있던 담배를 들고 자리에서 일어나 입구를 빠져나갔다.

밖으로 나와 장례식장 뒤편으로 돌아가니, 내가 입원해있을 때 아내의 차가 항상 서 있던 그 주차장이 보였다.

벤치에 홀로 앉아 있는 장 실장이 이제 막 담배에 불을 붙이려하고 있었다.

“장 실장님. 나도 하나......”

그가 이제 막 자신의 입에 물려 던 담배를 내게 내밀었다. 

“나는.....김 사장님......여기 안 올 거라 생각했는데......”

장 실장의 입에서 뿜어진 짙은 연기가 어둠속으로 퍼져나갔다. 

“그 참........어떻게 장례식장도 김 사장님 있던 여기인지......나도 안 오려고 했는데. 이상하게 마음이 좀 그렇더라고요.....

김 사장님한테 이런 말 하긴 뭐하지만....만약 내가......김 사장님이라면......여기 못 올 거 같네요......후우.....”

한숨인지 아니면 담배연기를 뱉어내는지 알 수 없는 소리가 그의 입에서 새어 나왔다. 

벤치에 앉아 장 실장과 말없이 담배만 피워댔다.

‘내가 만약 병원에서 영영 깨어나지 않았으면 어떻게 됐을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저기 멀리 주차장에 하얀 차 한 대 들어서고 있는 게 보였다. 

왠지 모르겠지만, 그 차에 시선이 계속 갔다. 

뒤이어 검은 차 한 대가 따라 들어왔다. 

주차를 한 흰색 차의 붉은 미등이 꺼졌다.

그곳은....

항상 아내의 차가 서 있던 바로 그 곳이었다.

차에서 검은색 정장을 입은 여자가 내렸다.

그 여자의 발길이 향한 곳은 바로 이쪽이었다.

노란 가로등 불빛에 비친 그 여자가 아내일 거라는 생각이 자꾸 들었다. 

카페에서 아내와 통화할 때, 저녁에 이곳에 올 거라 아내에게 미리 말을 했었다. 

나는 벤치에서 일어났다.

이쪽으로 걸어오는 여자의 얼굴이 조금씩 선명해져 갔다.

“어.....저.....저기......”

옆에서 장 실장의 놀란 목소리가 들렸다.

그 순간.

이쪽으로 바삐 걸어오던 아내의 발걸음이 갑자기 멈춰 섰다.

아내가 뒤를 돌아보고 있었다.

한쪽에서 가로등 불빛에 길게 늘어진 검은 그림자가 멈춰있는 아내에게로 조금씩 가까워져 갔다.

뒤를 돌아보는 아내에게 조금씩 다가가던 그 그림자가 어느새 바로 앞까지 다가가 있었다.

그러자 아내의 몸이 완전히 뒤돌아 그곳을 향했다.

뒤돌아선 아내 앞에, 한 남자가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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