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 Ballo in Maschera (15)
짙은 자줏빛 와인을 담고 있는 와인 잔.
그 유리 기둥에 닿아, 흔들리던 아내의 손이 이내 고요해졌다.
아내의 손톱 끝에 붉게 반짝이는 매니큐어가 잔에 담긴 와인색과 똑 닮아 있었다.
카페 입구에 우두커니 서 있는 사람에게 머물러 있던 아내의 시선이 천천히 움직이더니 다시 정면으로 향했다.
아내가 와인 한 모금을 입에 머금었다.
입구에 서 있던 사람이 그런 아내의 몸을 천천히 훑어 내렸다.
바비 인형처럼 새하얀 얼굴을 부드럽게 감싸고 있던 황금빛 머리칼부터,
타이트한 남색 재킷 사이, 엉망으로 풀어헤쳐 진 블라우스를 지나,
너무나 짧아, 엉덩이를 살짝 걸쳐있는 도트무늬 미니스커트,
그리고 어디에서 긁힌 건지, 아니며 뜯겨 나간건지 군데군데 헤져있는 검은 스타킹까지.
[나가....]
작은 소리가 들렸다.
아내의 목소리였다.
아내는 두 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감싸 안았다.
사진처럼 정지되어 있던, 그 사람이 천천히 아내가 앉아 있던 그 자리로 다가갔다.
잠시 뭔가 고민하는 것처럼 머뭇거리던 그 사람이 아내가 마시던 와인잔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아직 반 즈음 남아 있던 그것을 천천히 마셔버렸다.
붉은 옷을 벗어버린 와인잔이 테이블 위에 닿자 그 특유의 울림이 옅게 번져갔다.
하지만 아내는 여전히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있었다.
방금 아내의 와인을 마신 그 사람이 와인병을 들고서 비어있는 와인잔을 다시 가득 채웠다.
그리고 주머니에서 작은 하얀 봉투 같은 것을 꺼내 손가락을 살살 움직여가며 와인잔에 무엇인가를 털어 넣었다.
그 작은 봉투에서 흘러나와 와인잔으로 떨어져 내린 것은 노란빛이 품은 알 수 없는 가루였다.
아내는 여전히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싼 채, 그 사람이 지금 무엇을 하는지 전혀 관심이 없어 보였다.
한동안 그렇게 아내 곁에 서 있던 그 사람이 의자를 빼내어 아내 옆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러자 얼굴을 감싸고 있던 아내의 두 손이 스르륵 풀렸다.
[제발.....나가.....]
옆으로 고개를 돌린 짙은 눈 화장을 한 아내의 눈빛이 한없이 흐려 보였다.
아내가 바로 앞에 놓여 있던, 와인잔을 들고 입술로 가져갔다. 옆에 있던 사람은 말없이 그런 아내의 얼굴을 빤히 들여다보고 있었다.
한동안 내 시선이 노트북 화면에 그대로 고정되어 있었다.
적막하기까지 한 시간이 그렇게 흘러갔다.
사진처럼 멈춰있는 듯했던 화면이 조금씩 움직이고 있었다.
방문을 노크하는 소리가 꿈에서처럼 희미하게 들렸다.
하지만 내 시선은 노트북을 향해 있었다.
“오빠.......”
방문이 열리는 소리에 급히 마우스를 몇 번 움직이자,
노트북 바탕화면에 천사 같은 아내의 얼굴이 다시 보였다.
“오빠....저녁 드세요....”
뒤를 돌아보니, 오늘 아침. 카페에 들어설 때, 나를 안아 주었던 여자였다.
쟁반 위에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하얀 접시에 뭔지 모를 죽이 가득 담겨 있었다.
그 여자가 책상 위 한쪽에 쟁반을 조심스레 올려놓았다.
“몸에 좋은 거 넣은 영양죽이래요. 은설이가 근처가게에 사왔어요.”
“아.....고마워요.”
생글거리던 여자의 얼굴이 단번에 굳어져 갔다.
나는 여자의 시선을 피한 채, 다시 노트북 화면의 아내 얼굴을 들여다봤다.
그리곤, 어서 빨리 이 여자가 이 방을 떠나기만을 기다렸다.
고요하던 방에 인기척과 함께 방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딸각’
느낌이 이상했다.
뒤를 돌아봤다.
죽을 들고 왔던 여자가 문 앞에 그대로 서 있었다. 여자의 한 손이 문 잠금장치에 닿아 있었다.
딸각거리는 그 소리는, 여자가 밖에선 문을 열지 못하도록 안에서 문을 잠근 소리였다.
여자가 뒤돌아서 나를 보고 있었다.
“오빠! 정말 기억 안나요? 저예요.......세희.....”
여자의 얼굴은 빨갛게 상기된 채, 금방이라도 울음이 터질 듯했다.
멈춰있던 여자의 가느다란 두 손이 뒤를 향했다.
‘드르륵’ 거리는 작은 소리와 함께 여자의 하체를 감싸고 있던 핑크빛 스커트가 느슨해지더니 아래로 떨어져 내렸다.
여자의 손은 다시 위로 향해 입고 있던 흰색 블라우스 단추를 위에서부터 하나씩 풀어 나갔다.
여자의 상체를 둘러싸고 있던, 굵고 새 파란 띠 같은 게 조금씩 모습을 드러냈다.
브래지어가 아래로 떨어지고,
작은 팬티까지 여자의 몸을 벗어나자,
여자의 몸을 휘감고 있던 새파란 것의 정체가 완전히 드러나 있었다.
여자의 음부....
거뭇거뭇한 그 곳에,
새파란 뱀 대가리가 수풀에 얼굴을 숨겨, 먹잇감을 노리듯 그렇게 묻혀 있었다.
여자의 깊게 갈라진 틈 속으로 새빨간 뱀의 혓바닥이 빨려 들어가듯 박혀, 혀끝이 사라져있었다.
“오빠. 저예요. 세희. 이제 기억나요? 응?”
여자의 목소리가 흥분한 듯 젖어 있었다. 두 눈엔 눈물이 글썽거렸다.
“옷 입어!”
갑작스런 상황에 의자에서 일어나 여자에게로 다가갔다.
바닥에 떨어져 있던 하얀 속옷을 집어 여자에게 내밀었다.
“오빠.....”
여자가 오늘 처음 나를 봤을 때처럼, 갑자기 나를 끌어안고서 자신의 몸을 실어 뒤쪽으로 밀어붙였다.
뒤로 밀려난 내 등이 침대에 닿아 있었다.
여자가 침대 위로 올라탔다.
머릿속에선 형체를 알 수 없는 수많은 사진들이 빠르게 지나가기 시작했다.
그 속도를 줄이려 노력하면 할수록, 빠르게 지나가는 그것들의 속도는 더욱 빨라졌다.
“으음......아음.....아음”
바지와 속옷은 이미 여자의 손에 벗겨져 침대 위에 나뒹굴었다.
여자의 빨간 입에서 새어 나온 혀가, 내 성기를 맛있는 아이스크림을 빨아먹듯 그렇게 부드럽게 핥고 있었다.
머리가 아팠다.
병원에서 퇴원한 후, 머리에서 이런 통증을 느낀 건 처음이었다.
“으......으으음...”
여자의 몸이 정확히 내 성기 위에 올라타 천천히 아래로 내려왔다.
발기된 내 성기가 뱀 대가리가 숨겨진 여자의 검은 곳 바로 아래,
새빨간 혀가 들어가 박혀있는 여자의 속살 입구에 살며시 닿아 있었다.
한 치의 틈도 없이 빡빡한 그 구멍 속을 천천히, 그리고 조금씩 파고 들었다.
여자의 타액으로 젖어있는 그것이 검은 수풀 속, 뱀의 새빨간 혓바닥이 사라진 그곳으로 조금씩 빠르게 빨려 들어갔다.
“아아음........”
여자의 몸속에 내 성기가 완전히 박혀버렸다.
여자는 희미하게 미소까지 띤 채,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오빠. 기억나요? 내 몸 기억나요?”
빠르게 지나가던 사진들 중에 푸른 바다가 잠시 머물렀다가 다시 사라져버렸다.
“아....아음......아....”
여자가 두 손으로 내 가슴을 짚고 위아래로 천천히 움직였다.
“아.....아....오빠.....”
여자의 움직임이 조금씩 빠르고 깊어지자,
여자의 갈라진 틈에서 옅은 빛깔의 물들이 발기된 성기 기둥을 타고 흘러나와 내 몸을 축축하게 적셔나갔다.
“아...아아.......아음.........오빠!!!”
여자의 입에서 터져 나오는 소리가 방에 가득 찼다.
위아래로 움직이던 여자의 몸이 자석처럼 나와 깊게 맞닿아 이젠 앞뒤로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여자의 몸속에 다시 깊게 박혀버린 내 성기가, 그 움직임에 따라 여자의 뜨거운 몸속에서 동그라미를 그리듯 이리저리 크게 휘젓고 있었다.
내 몸에 올라타 있는 여자의 움직임이 시간이 갈수록 집요했다. 그리고 빨라졌다.
여자의 몸속에 박혀 이리저리 움직이는 그 끝에서 뜨거운 것이 왈칵 왈칵 쏟아져 나왔다.
“아.....아아아.....”
여자의 움직임은 더욱더 빨라졌다.
치골과 치골이 바짝 맞닿아 빠르게 움직이는 그 열기에 피부가 타들어가는 것같이 아팠다.
“아......아.......아아.......흐......흐아앙.......”
날카로운 여자의 소리가 길게 울렸다.
갑자기 공중으로 붕 떠버린 듯, 여자의 몸이 반복해서 떨렸다.
“하아.....하아....”
여자의 상체가 아래로 쓰러져, 내 몸 위에 닿아 깊은숨을 토해내고 있었다.
여자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열기는 오랫동안 쉽게 식지 않고 있었다.
나는 책상 위에 놓여 있던 그 죽을 한 숟갈 입에 넣었다.
조금 식어있는 그 죽이 나는 맛있었다.
접시에 가득 담겨 있던 그 죽을 하나도 남기지 않고 깔끔하게 비웠다.
이제 살 것 같았다.
이제 정말 살 것 같았다.
책상 가장 아래 서랍을 열었다.
그 봉투 속에 들어 있던 것을 하나씩 살펴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꺼져버린 노트북 전원을 다시 켰다.
“다 드셨어요?”
“응”
빈 쟁반을 들고 나가자 미나가 웃으며 말했다.
“오늘 빨리 닫고 가자. 그리고 너희들 오늘 좋은 데 가서 저녁 먹어.”
“정말요? 사장님은요?”
“조금 있다 승호 온다고 해서 보고....집에 가야지...”
“아.....그렇죠. 아직......같이 가면 좋을 텐데....”
“다음에 괜찮아지면 같이 가자....”
창가에 앉아있는 처제의 뒷모습이 보였다.
유리에 반사되어 보이는 처제의 표정이 왠지 조금 어두워 보였다.
좀 전 내 방에 머물렀던 여자가 방긋 웃으며 나를 보고 있었다.
[은비야. 승호 퇴근하고 온다던데.....조금 늦을 거 같아. 잠깐 만나고 갈게.]
아내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형부!!! 어디가요?”
창가에 앉아 있던 처제가 내가 카페 문을 열고 나가려고 하자 다급히 물었다.
“아.....여기 뒤에 가게에.....금방 와 걱정 마...”
불안한 표정의 처제를 뒤로하고 카페를 빠져 나왔다.
내가 다시 카페로 돌아온 건 20분 정도 지난 후였다.
“어!!!”
카페에 들어서자 한 남자가 놀란 눈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그는 퇴원 얼마 전 병원에 왔던 남자였다.
“어....치우야”
“아...네.”
“오늘부터 카페 나오는 거야?”
“네. 근데 어쩐 일로?
“나는.....세희 데리고 가려고 왔지....”
“아....오늘 애들 저녁 먹으라고 빨리 좀 보내려고 했는데....”
“오빠. 오늘 은설이 하고 미나하고, 저녁 먹을 건데....”
“아....그래? 그럼 어쩐다.....”
“그리고 어쩌면 저번처럼 미나 집에서 자고 갈지도 몰라. 걱정하지 말고 오빠 먼저 자.”
“아....”
여자의 말에 남자는 무슨 고민을 하는 듯했다.
안쪽에서 옷을 갈아입고 나오는 처제와 미나의 모습이 보였다.
“은설아. 나는 여기 정리 좀 하고 갈 거야.
언니한테 연락했어.
근사한데 가서 저녁 잘 먹고.....”
“네 알겠어요. 혹시 늦으면 형부한테 연락할게요.”
사람들이 한꺼번에 빠져나가자 카페의 분위기가 순간 어색하게 변해버렸다.
“저기....시간 괜찮으면 술이나 한잔 할까요?
물어볼 것도 많고.....기억도 안 나고 해서....”
“어? 너.....벌써 술 마셔도 돼?”
“와인 조금이야 괜찮을 겁니다.”
걱정스런 표정으로 잠시 나를 바라보던 그가,
다시.
사람 좋은 얼굴로 활짝 웃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