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 Ballo in Maschera (13)
“앗!!!”
좌변기가 있는 또 다른 문으로 이제 막 들어서려던 남자를 밀치자 그가 문 안쪽으로 쓰러질 듯 휘청거렸다.
그러자 남자의 목에 아슬아슬하게 걸려 있던 처제의 팔목이 아래로 힘없이 떨어져 내렸다.
여전히 처제의 한쪽 팔을 걸치고 있던 또 다른 남자가 고개를 돌려 나를 보고 있었다.
이제 갓 스물을 넘겼을 것 같은 어린 얼굴이었다.
말없이 그 눈을 쳐다봤다.
다소 공격적이었던 그의 눈빛이 사그라들어 시간이 지날수록 의아함으로 바뀌어갔다. 잠시 후 그가 내게서 시선을 거두었다.
“아.....씨발 누구야!!!”
문 안으로 밀려났던 남자의 살찐 얼굴이 보였다.
나는 자유로운 처제의 한쪽 팔을 낚아채 거칠게 끌어당겼다.
“아아!!!”
한 남자의 묵을 살포시 두르고 있던 처제의 팔이 빠르게 풀려버리자, 처제의 몸이 힘없이 끌려와 내 가슴에 부딪혔다.
이젠 두 남자의 시선이 모두 내게 향해있었다.
두 남자의 얼굴이 벌겋게 상기되어 있었다.
“아......수아야......놔......놔...이거...........난 괜찮아....”
처제의 흐트러진 몸짓과 같이, 부정확한 발음의 흐느적되는 목소리가 화장실에 크게 울렸다.
“이제....가자 집에.....은설아.....”
정리되지 않은 긴 머리칼이 서로 엉켜 아래로 길게 늘어트린 채, 고개를 숙이고 있던 처제의 얼굴이 천천히 위쪽으로 움직였다.
짙은 갈색의 서클렌즈를 하고 있던 처제의 맑은 눈망울이 무엇인가에 취한 듯, 흐릿하게 변해 있었다. 그리고 입술을 새빨갛게 물들이던 붉은 립스틱이 좀 전 남자의 입술과 혀에 빨려 엉망으로 번져있었다.
“어.......어.......”
처제는 한눈에 나를 알아보지 못하는지, 흐릿한 눈빛이 계속 내게 머물러 있었다.
“야!!! 씨발, 너 뭐야?”
문 안쪽으로 밀려들어 갔던 남자가 이제 막 주먹을 휘두를 듯 거칠게 내게 말했다.
나는 그 남자에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고, 비틀거리며 혼자 서있지도 못하는 처제를 내 등에 잠시 기대어 놓고 업어 올렸다.
내게 업혀있는 처제의 몸이 솜털처럼 너무나 가벼웠다.
나는 그게 더욱 슬펐다.
다행히도 아래로 축 처져 있던 처제의 두 팔이 내 목을 살며시 감아왔다.
“야! 너 뭐야 개새끼야!!!”
문으로 밀려들어갔던 남자가 거친 욕설을 뱉으며, 한발 앞으로 나오자 옆에 있던 다른 남자가 살며시 팔을 빼어 표시 나지 않게 그를 제지했다.
나는 그 모습을 보고 그대로 화장실을 빠져나왔다.
클럽에 있던 많은 사람들의 시선이 나와 내게 업혀 있는 처제에게 향해있었다.
그중에 몇몇은 킥킥 소리 내며 웃었다.
몇몇 사람들이 몰려있는 좁은 통로를 비집고 계단을 올랐다.
“어!! 야...저 여자 아까 룸에 있던 애 아니야?
존나게 취해서 니가 룸에 끌고 왔던 애.....
니가 룸에서 따먹으려고 했던 애...”
비좁은 계단에 서있던 두 남자를 뚫고 지나가자 목소리가 들렸다.
“어!!!
저년....젖탱이하고 몸매 죽였는데....
씨발련이. 오늘 따려고 존나게 챙겨줬더니.....
딴 놈이 업어가네....
아....씨발. 아까 룸에 있을 때, 술 좀 더 먹여서
바로 따먹는 건데.....존나게 아깝네.....
개 같은 년....
룸에서 보지 쑤실 때,
존나게 질질 쌌는데...
아..,,,,.좆같네....“
뒤에서 따라오면서 말을 하는지 계단을 올라오는 내내 뒤에서 한 남자의 소리가 들렸다.
클럽 밖으로 빠져 나오자 이제야 살 것 같았다.
구역질나던 클럽내부의 비릿한 냄새가 말끔히 가시고 깨끗한 공기가 연신 코로 들어왔다.
“아이 씨발....
몸매나 옷 쳐 입은 거 보니 룸빵이나 오피 창녀 같은데.....
저런 년은 거저 먹는 건데...
존나게 안 대주더니,
아까 룸에서 바로 강간이라도 치는 건데....
개 같은 년....”
밖에서 까지 계단에서 들렸던 남자의 목소가 들렸다.
처제의 깊은 한숨이 내 귓가를 따스하게 감싸왔다.
저기 앞에 내 차가 보였다.
나는 천천히 차로 걸어가 문을 열고 조수석에 처제의 몸을 실었다.
“으....음....”
두 팔로 내 목을 감싸고 있던 처제는 내게서 떨어지지 않으려 했다.
처제는 두 눈을 꼭 감은 채, 입에선 힘겨운 소리가 새어 나왔다.
차 문을 닫고 뒤를 돌아보니, 클럽 입구에서 두 남자가 이쪽을 보며 대화를 하고 있었다.
나는 다시 클럽 입구를 향해 걸어갔다.
그들과의 간격이 조금씩 줄어들었다.
처음에 재미있다는 듯이 나를 쳐다보던 두 남자의 눈빛이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
나는 그 중 왁스로 머리를 넘겨 깔끔하게 손질한 한 남자에게 바짝 다가갔다.
“짝!!!”
“아!!!”
순식간의 일이었다.
내 앞에 서서 내 눈을 똑바로 보던 그 남자가 바닥에 쓰러져 앉은 채, 자신의 한쪽 뺨을 두 손으로 감싸고 있었다.
내 손바닥이 방금 뜨거운 것을 만진 듯 화끈거렸다.
쓰러진 남자 옆에 서 있던 또 다른 남자가 믿을 수 없다는 듯, 떨리는 눈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내가 그 남자의 따귀를 온 힘을 다해 내리치는 순간.
클럽 앞,
어린 남녀들이 이리저리 무리 지어 낄낄거리던 소리가 일시에 멈춰, 주위가 고요해졌다.
“아......아.......이 씨발.....”
쓰러져 있던 남자가 바닥에서 일어났다.
뺨을 감싸고 있던 그 손이 떠나자 그곳이 새빨갛게 부어 있었다.
갑작스레 내게 뺨을 맞은 남자의 당황해하던 눈빛이 점차 분노로 변해갔다.
“이 미친......새끼가!!!!”
뒤쪽으로 조금 숨겨져 있던 그의 주먹이 내 얼굴 정면을 향해 날아들었다.
그 주먹이 내 얼굴 바로 앞을 아슬하게 스치며 지나갔다.
머리가 조금 흔들렸다.
깊게 눌러 쓰고 있던 내 검은 모자가 내 머리를 떠나 허공으로 날아가고 있었다.
비행접시처럼 공중에서 빙글빙글 돌던 내 모자가 나로부터 몇 미터 떨어진 곳에 살포시 안착하는 게 보였다.
답답했던 머리가 시원했다.
하지만 엉망이었던 내 머리칼이 신경이 쓰였다. 안 그래도 엉망이었는데, 모자에 눌린 내 머리는 얼마나 더 엉망일까 하는, 이 분위기완 맞지 않는 걱정을 나는 하고 있었다.
“흐으...흐으.....”
방금 내게 주먹을 휘두른 그가 분에 못 이겨 씩씩대고 있었다. 그의 뺨이 좀 전보다 더욱 빨갛게 부어 있었다.
한쪽 입술이 터졌는지 빨간 피가 턱을 타고 아래로 흘러내리고 있었다.
이젠, 남자의 눈빛이 나를 죽이려는 듯이 악마의 그것처럼 변했다.
“이.....개새끼가.....”
그가 다시 몸을 뒤로 틀어 주먹을 움켜쥐었다.
“끼아악!!!! 안 돼!!!!!!”
정신을 번쩍 들게 하는 절규에 가까운 비명이었다. 생전 처음 들어보는 날카로운 고함소리에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어쩌면 사람이 죽는 순간.....
그 마지막 순간에서만 낼 수 있는 그런 소리 같았다.
내게 다시 주먹을 날리려던 남자의 시선이 내가 다가왔던 쪽을 향해 있었다.
그 남자의 주먹이 허공에 멈춰있었다.
나도 그 남자의 시선을 따라갔다.
내 차 조수석 문이 열려 있었다.
그리고 지금 내가 서 있는 이곳과 차가 있는 거리 중간 즈음에...
처제가 서 있었다.
처제의 두 손이 덜덜 떨리는 게 여기서도 보였다.
“안 돼!!! 때리지 마!!! 안 돼.....흐흐윽.....”
멈춰있던 처제가 뛰다시피 이쪽으로 빠르게 걸어왔다.
조금씩 가까워지는 처제의 얼굴은 흘러내리는 눈물로 엉망이 되어 있었다.
“안돼요....때리지 마요....
우리 형부.....얼마 전에 머리 수술했어요....
때리면 안돼요.... 제발 때리지 마요....
흐흐윽....흐흐윽....“
조금 전 내게 주먹을 날리려던 남자의 몸을, 처제가 떨리는 두 손으로 조금씩 뒤로 밀쳐내고 있었다.
내게 바짝 붙어 있던 남자의 몸이 처제의 손길에 밀려 뒤로 조금씩 물러났다.
“제발 안돼요.....때리지 마요....흐으윽......”
이렇게 가냘픈 몸에서, 어떻게 이런 절규와 같은 소리가 계속 나올 수 있는지....
떨리는 목소리로 힘겹게 말을 이어가는 처제의 모습에 가슴이 아팠다.
웅성거리는 사람들의 소리가 들렸다.
클럽 입구에 있던 몇몇 가드들이 큰일이 난 건 아닌가하고 이쪽으로 모여들었다.
주먹을 쥐고 멈춰있던 남자의 손이 아래로 천천히 내려갔다.
나는 그 가냘픈 몸으로 나와 그 남자 사이를 가로막고 있던 처제의 손을 잡아끌었다.
처제가 내 바로 옆에 서서 여전히 몸을 들썩이며 울고 있었다.
“니가 했던 말.....
우리 처제한테.....
사과해.”
남자의 입술 한쪽에 뭉쳐있던 핏덩이가 결국 아래로 떨어져 내렸다.
“미....미안 합니다....
그런지...몰랐습니다....”
머리를 아래로 숙여 시선을 피한 채, 작게 떨리는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덩치가 좋은 한 클럽 가드가 바닥에 있던 내 모자를 짚어서 먼지를 털어내곤 내게 내밀었다.
그 가드의 시선이 엉망이 되어 있을 내 머리를 향해 있었다.
나는 처제의 손을 잡고 조수석이 열려 있는 차로 향했다. 그리곤 처제를 부축하여 조심스레 조수석에 태웠다.
시동이 걸리는 소리가 경쾌하게 느껴졌다.
“흐으윽....죄송해요....
죄송합니다.....죄송합니다..”
차가 도로에 접어들자마자 처제의 울음이 다시 터졌다.
처제는 계속 죄송하다는 말만 반복했다.
하지만 나는 그런 처제가 고마웠다.
조금 전 처제가 내게 보여준 모습은......
아내가 위협에 처했을 때,
내가 아내에게 보여줄 수 있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아내가 내게 보여줄 수 있는 그런 모습이었다.
그래서...더욱더 고마웠다.
한동안 운전을 하다 보니 서글피 울던 처제의 울음소리가 조금씩 잠잠해 져갔다.
나는 어느 편의점 앞에 차를 세우고, 그곳에서 미용 물티슈와 생수 그리고 숙취해소 드링크를 사왔다.
“은설아. 물 좀 마시고.....얼굴 좀 닦자.
언니 보면 놀라겠다.”
내가 내민 그것을 처제가 살며시 받아갔다.
처제의 자그마한 얼굴이 조금씩 예전의 빛을 찾아가고 있었다.
“형부....”
처제의 목소리가 떨렸다.
“응?”
“정말 기억이 안 나요? 아무것도?”
“응”
“나는 형부가 너무 불쌍해. 흐윽.....”
간신히 말라있던 처제의 눈물이 또 터져버릴까 노심초사했다.
“가끔 형부 눈을 보고 있음.....
마치 다 알고 있는 사람 같아.....
그게 너무 싫어.....너무 무서워.....
흐으흑....”
처제의 말이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나는......나는.......”
처제가 무슨 말을 하려는 것 같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처제의 입에서 오랫동안 맴돌던 그 말은 끝내 들을 순 없었다.
“은설아.”
“네.”
“내가 병원에 있을 때.....
언니 며칠 동안 어디 간 적 있어?”
“네?”
눈물로 젖어 있는 처제의 눈이 빨갛게 변해있었다.
“그...그건 왜요?”
“아니....병원에 있을 때....언니가 며칠 어디 갔다 왔다고 했는데. 꿈같은 걸 자꾸 꿔서....꿈인지....아닌지....헷갈려서....”
“형부 깨어나기 한 달쯤 전에....
언니 서울 갔다 왔어요.
교육부에서 하는 행사 때문에
3~4일 정도요....”
“아...그랬구나...”
나는 처제에게 더 물어 볼 말이 있었지만, 지금 상황에선 적절치 않은 것 같아 그만두었다.
지하 주차장에 도착해 시간을 확인하자 이미 자정이 지나 있었다.
“은설아. 언니 지금 자고 있는데, 조용히 들어가야 된다.
그리고 아침에 일어나서 언니 뭐라고 하면, 상가에서 친구 만나서 밥 먹고 밤 10시쯤에 들어왔다고 해. 알았지?”
“네...”
풀이 죽어 있는 처제의 목소리 때문인지 계속 마음이 쓰였다.
“은설아....그리고 고맙다.”
“네? 뭐가....요?”
다시금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바라보는 처제에게 그냥 웃어 보였다.
처제는 엘리베이터에 올라타 거울에 비치는 자신의 얼굴을 다시 정리했다.
눈이 너무 부어 있어, 아무리 정리를 해도 그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그리고 처제의 옷차림.....
그렇게 깔끔하던 시스루 블라우스는 남자들의 손길로 엉망으로 구겨져있었고, 타이트한 검은 핫팬츠를 뚫고 금방이라도 처제의 엉덩이 부위 맨살이 삐져나올 것 같아 보였다.
현관 앞에 서서 손가락 하나로 내 입을 가리자, 처제는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흔들었다.
번호키를 눌렀다.
현관문이 열리고 센서 등이 켜졌다.
다행히 거실은 내가 빠져 나올 때처럼 어둠이 깔려 있었다.
아내가 여전히 자고 있는 것 같았다.
처제가 신고 있던 하이힐을 소리 나지 않게 조심스레 벗었다.
안심을 하고 처제와 내가 거실에 들어서자,
환한 빛이 거실 입구 쪽을 밝혔다.
그 빛은 침실에서부터 전해진 빛이었다.
침실 문이 활짝 열려 있었다.
눈부시게 밝은 침실의 형광등 불빛이,
처제와 내가 서있던 거실 입구를 마치 암흑 속에서 빛나는 다리처럼 밝히고 있었다.
침실 문 입구에 아내가 우두커니 서 있었다.
“이 은설!!!”
소름 끼치도록 차가운 목소리였다.
처제의 얼굴을 빤히 보던 아내의 시선이 몸을 따라 아래로 타고 내려갔다.
잠시 후 아내의 시선이 내게로 옮겨오더니,
그 차디찬, 무표정한 눈빛이 어느새 내 눈 안에 들어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