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32화 (132/177)

Un Ballo in Maschera (9)

‘진욱 오빠?’

미나가 이 사내를 오빠라고 불렀다.

하지만 미나가 오빠라고 부르기엔 이 사내와의 나이 차가 다소 애매했다.

여간 친한 사이가 아니라면 그렇게 자연스럽게 오빠라고 부를 수는 없었을 것이라 생각했다.

작은 침묵 속에 갇힌, 

병실의 분위기가 무척 불편하게 느껴졌다.

내 얼굴을 똑바로 보지 못하는 처제,

나를 보며 울고 있는 미나,

아내에게 인사를 하던 진욱이라는 남자,

그리고 볼이 빨갛게 물든 채, 나를 보고 있는 아내,

병실의 시계는 오후 9시를 넘겨 있었다.

“당신 왔어? 오늘 조금 늦었네?”

아내의 얼굴을 자세히 보고 싶어 아내를 불렀다.

“네. 저녁 모임 있었어요.”

아내는 나의 부름에 환하게 웃으며 침대 곁으로 다가왔다.

아내의 화사한 얼굴은 아침마다 병실을 나설 때, 나를 보며 미소 짓던 완벽한 모습 그대로였다. 

‘아내의 얼굴은 왜 항상 흐트러짐이 없는 것일까?’

문득 궁금해졌다.

내가 손을 내밀자 아내의 하얀 손이 내 손을 감싸왔다.

아내의 기다란 손가락엔 언제인지 기억이 나진 않지만, 내가 주었던 그 작은 다이아반지가 끼워져 있었다.

아내의 짙은 향기 사이를 뚫고, 옅은 술 냄새가 살며시 새어 나왔다. 

“오빠. 좋아하던 핫도그 사 왔어요!”

미나가 노란 봉투 안에서 설탕이 가득 묻어 있는 핫도그 하나를 꺼내 내게 내밀었다.

잘 튀겨진 핫도그 표면에 작고 하얀 결정체들이 보석처럼 반짝였다.

나도 모르게 빙그레 웃음이 나왔다. 

미나가 사 온 그것은 카페 앞에 있는 노점상에서 한 할머니가 파는 핫도그였다.

노란 봉지에 가득 담긴, 그 핫도그를 들고, 경쾌한 발걸음으로 카페로 향하던 내 뒷모습이 영화처럼 스쳐 지나갔다.

“조 미나! 아픈 사람한테 오면서......정성을 보여야지......핫도그가 뭐야. 내가 널 그렇게 가르쳤어?” 

내심 노력해 진지한 투로 미나에게 말했다.

하지만 돌아온 건,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은 웃음을 참고 있는 미나의 얼굴이었다.

아내 또한 자신이 가르치는 중1짜리 학생을 보듯 그렇게 웃고 있었다. 

“다행이다......이제 오빠 같다. 이제 사장님 같다....” 

미나가 독백처럼 조용히 속삭였다.

나는 미나가 건네 준, 너무나 그립 던 그것을 한입 크게 베어 먹었다. 

분주하던 병실에 또다시 고요해졌다.

처제는 처음 보는 그 진욱이라는 남자가 집까지 차로 바래다준다고 하여 미나와 함께 병실을 나섰다. 

한참 동안 생각에 잠겼다.

아무리 기억을 잃었다 해도 어떻게 누구인지조차 알아볼 수 없을까?

그런 내가 한없이 답답하게 느껴졌다.

아내가 병실에 있는 욕실에서 빠져나왔다.

아내의 얼굴에 수분이 깊게 스며 반짝거렸다.

“은비야?”

“네?”

“오늘 침대에서 같이 잘래?”

“안돼요. 오빠 아직 안돼요....”

“괜찮아. 안 불편해....”

고민하며 침대 앞에 서있던 아내의 손목을 잡아끌었다.

아내는 어느새 침대위 내 품에 깊게 안겨 있었다.

아내의 몸에서 풍기는 향긋한 클렌저 향이 너무나 달콤했다.

아내의 뭉클한 가슴이 내 옆구리 어딘가에 깊게 닿았다. 아내는 샤워 후, 브래지어를 하지 않고 편한 원피스만 입고 있었다.

아내의 옅은 숨소리가 귓가에 느껴졌다.

“은비야!”

“네?”

“아까 미나 하고 같이 왔던 사람 말이야?”

“네에?”

“그 사람 나하고 친했어? 나이는 좀 더 많아 보이던데...” 

“네에....”

“오빠!”

“응?”

“너무......기억이 안 난다고 해서 너무 조급해 하지 말아요.

우선 가장 중요한 건 오빠 건강이에요.

아직 오빤 아픈 사람이에요.

기억은......오빠 몸이 완전히 정상이 되면.....

언젠간......돌아올 거예요.” 

현명한 말이었다.

잃어버린 기억을 누군가에 묻는다고 한 들, 사라진 기억이 다시 돌아올 것도 아니다. 

단지 그런 과정 속에 혼란스럽고 괴로운 건 나 자신일 뿐이다.

아내의 허벅지가 내 허벅지를 천천히 타고 올랐다.

“하고 싶다...”

“오빠. 안돼요. 무리하면....”

“하고 싶다...”

투정을 부리듯 아내에게 말했다.

아내의 작은 웃음이 새어 나왔다.

“조금만......참아요. 나도....그러고 싶어요...오빠하고...”

아내의 손이 환자복 아래를 파고 들었다.

아내의 작은 손이,

아내가 욕실을 나올 때부터 바짝 서 있던 내 성기를 부드럽게 감싸곤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 따듯한 기운에....

눈이 스르륵 감겼다.

“오빠....사랑해요.....” 

아내의 목소리가 귓가에 아련하게 울렸다.

[으으으.....으으...으아....으아....으흐흐......]

마치 굶주린 짐승이 흐느끼는 소리 같았다. 

[아.......아....아...하아.....하아......하앙.......]

반면 몸으로부터 시작된 소리와 콧소리가 묘하게 뒤섞여, 진한 신음을 토해내는 다급한 소리도 들렸다. 

뿌연 화면 속에 알몸의 여자가 남자의 목을 바싹 두른 채, 안겨 있었다. 

여자의 두 다리는 남자의 두 팔에 걸려 공중에 떠 있었다.

여자의 긴 머리가 한없이 찰랑거렸다.

여자는 남자의 목을 깊게 두르고 매달려 있었다.

남자는 여자의 긴 두 다리를 휘어잡은 채, 자신의 하체를 빠르게 움직였다.

공중으로 들어 올려진 채, 여자의 활짝 열린 허벅지 사이를 남자의 중심이 강하게 부딪혀 튕겨내자, 밀려 나갔던 여자의 몸이 다시 돌아와 남자의 몸에 박히기를 빠르게 반복했다. 

남자가 거칠게 움직일 때마다, 남자에게 매달려 있던 여자의 몸이 조금씩, 조금씩 아래로 쳐졌지만, 여자는 다시 남자의 목을 끌어 잡고 위로 올라갔다. 

[아아앙!!!!!]

[으으으........]

남자의 몸에 매달려 있던 여자 허리가 뒤로 크게 휘어지면서 몸 전체가 뒤로 휘청 그렸다.

그러자 남자가 하얀 솜털 같은 것이 깔린 바닥에 급하게 여자를 내려놓았다.

바닥에 누운 여자의 알몸이 급하게 뒤틀렸다.

여자의 두 손은 머리 위쪽으로 향해 버둥거렸고, 두 다리는 길게 아래로 뻗어 간헐적으로 떨고 있었다.

[으......으....]

엉거주춤 서 있던 남자의 몸이 바닥에 누워있는 여자의 얼굴 쪽으로 향해 무릎을 꿇었다.

여자의 얼굴에 바싹 다가간 남자의 손이 빠르게 움직였다.

남자의 몸에서 누런 덩어리 같은 것이 새하얀 여자의 얼굴에 떨어져 내렸다.

짙은 눈 화장을 한 여자의 한쪽 눈 위에, 누런 덩어리들이 조금씩 쌓여 그곳을 흔적도 없이 완전히 덮어 버렸다.

활짝 열려 가쁜 숨을 토해내던 여자의 입에서 붉은 혀가 살며시 나와 움직이자, 그곳으로도 누런 덩어리가 튀어 혀를 타고 붉은 입속으로 흘러 들어갔다.

[하아.....아......아....]

남자가 여자의 얼굴로 더욱 바짝 다가가, 손으로 잡고 흔들던 그것을 여자의 입에 물려주었다.

[하음.....하음......하음.....]

그러자 여자가 남자의 그것을 입에 깊게 넣어 정신없이 빨기 시작했다.

여자의 입술 주위가 허연 거품으로 범벅이 되어가고 있었다.

[있었네?]

[어.....]

[근처서 모임 있어서 왔다가 들렸어

궁금하기도 하고.......]

[하아.....]

[왜 그래?]

[아니에요]

[좀 어때? 차도는 있어?]

[참 안됐어. 아직 젊은데....

벌써 3-4개월 됐지?

어쩌다가 그런 사고가 나서...]

[그만 돌아가세요....]

[그때 피곤했지? 갑자기 불러내서....]

[아니요]

[주말에 시간 괜찮아? 만날 사람이 있는데...

별일 없음 같이 가자고....

그리고 동생은 어디 있어?]

[갈게요.....]

[이리 와봐...]

[얼굴이 야위었네]

[흐음.....그만........]

[여기서 좀 더.....이야기할까?

아니면 차로 갈래?]

[으음......차로.......나가요....]

눈을 떴다.

수많은 꿈을 꾸고, 목소리들이 들렸지만, 대부분 얼마 가지 않아 지워져갔다.

하지만 쉽게 잊혀지지 않는 것들도 있었다.

너무나 생소한 공간에서 이어지는 바로 이 꿈, 

이상하게도 이 꿈만은 매일같이 반복되어 지워지지가 않았다.

그리고 그 목소리.......

새벽이 밝아 오고 있었다.

아내가 내게 안긴 채 잠들어 있었고, 아내의 한 손이 내 성기를 부드럽게 감싸고 있었다.

“두 분 다 얼굴 좋아 보이네요. 오늘 퇴원이죠?”

“네. 인사드리러 왔어요.”

담당 교수의 물음에 아내가 방긋 웃으며 말했다.

“지난 검사 결과는 완벽하고, 당분간만 조심하시면 생활하시는데 전혀 지장이 없을 겁니다.

카페하신다고 들었는데. 2-3주 정도는 일 하지 마시고 댁에서 쉬세요.

그리고 아침에 일어날 때나.....대변볼 때 조심하시고, 성관계 하실 때, 너무 무리하지 마시고.....” 

미소를 지은 채 교수의 말을 듣고 있던 아내의 얼굴이 갑자기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교수도 그런 아내를 보고 당황해 어색하게 웃었다.

“아......하하”

“오빠. 나 간호사분들 만나서 인사하고 갈게요. 먼저 가세요....”

“그래. 은설이는 안보이네?”

“집 정리 좀 하라고 보냈어요.”

아내는 신이 나 있었다.

생글거리는 아내의 얼굴엔 시종일관 빛이 났다. 

병실에 홀로 돌아와 6개월 조금 넘게 머물렀던 이 병실을 둘러봤다.

어떻게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복잡한 심경이었다.

“야! 너 거기 멍하게 서서 뭐해?”

승호가 병실 문 앞에 서 있었다.

그리고 그의 뒤엔 그때처럼 예쁜 여자가 서있었다.

“오늘 퇴원이지?”

“어? 어떻게 알았어?”

“야 임마. 내가 약쟁인데.....여기가 내 영업장소야. 하하하

집에 가면 먹을 것도 없을 건데, 너 좀 먹이려고, 음식을 싸왔지.

음식 많으니까, 점심은 여기서 먹고 남은 건 집에 들고 가.”

승호의 양손에 찬합 같은 것이 잔뜩 들려 있었다. 

“그래 고맙다. 너밖에 없다.”

“하하하....사실은 말이야......우리 와이프가 이러자고 했어. 

음식 준비한다고 어제 밤늦게까지 고생했으니까. 무척....아주 많이 고마워해라.....”

승호의 말에 옆에 있던 여자의 얼굴이 조금 달아올랐다.

“그런데 은비 씨는?”

“간호사들한테 인사한다고....곧 올 거야”

“나는 점심 밖에서 이미 먹었고. 우리 와이픈 아직 이니까 같이 먹고 있어. 나 강 교수님 좀 뵙고 올게....” 

승호가 병실을 빠져 나가자, 

승호 아내가 테이블에 올려져 있던 것을 하나씩 풀어 놓았다.

어느새 테이블에 펼쳐진 잦가지 음식만 봐도,

얼마나 고생했을지.....

얼마나 정성이 들어가 있는지.....알 수 있었다. 

“우와........”

나도 모르게 탄성이 흘러나왔다.

그 소리에 잠시 멈칫하던 승호 아내가 웃으며 내게 수저와 젓가락을 내밀었다.

“식기 전에 드세요.”

허리를 굽혀 내게 그것을 내미는 순간, 

파여 있는 원피스 사이.....

가슴이 완전히 들여다보였다. 

연약한 가슴살이 한없이 부풀어 올라 있었다.

그녀도 의자를 빼 내어와 내 맞은편에 자릴 잡고 소리 없이 웃으며 나를 보고 있었다.

“수연아. 고맙다. 잘 먹을게.....”

나는 양념 소고기를 한 젓가락 입에 넣었다.

“네...네?”

여자가 들고 있던 젓가락을 아래로 떨어트렸다.

그리고 떨리는 두 눈은 나를 향해 있었다.

“네? 왜....그러세요.....제가 무슨.....”

찰나의 순간, 

내가 그녀에게 무슨 실수를 한 것은 아닐까하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어. 언니 왔어요? 승호 오빤요?”

아내가 병실에 들어서 그런 우리를 보고 있었다.

아내가 퇴원할 때 입으라고 사온 반팔 스트라이프 셔츠와 적당한 길이의 슬랙스 입고서 병원을 빠져나갔다. 

날씨가 너무나 좋았다.

아내의 팔이 내 팔을 감싸, 팔짱을 껴왔다.

모든 게 완벽한 순간이었다.

하지만 왠지 모르게 내 마음은 복잡했다.

천천히 아래로 내려가다가,

내가 앉아 있던.

그리고 어느 날 새벽 아내가 앉아 있던,

그 벤치 앞에 나도 모르게 발길을 멈췄다.

나는 뒤를 돌아 우뚝 솟아 있는 병원 건물을 둘러봤다.

6개월여 동안,

여러 번 반복해서....

나를 죽이고....살려냈던 이곳....

왠지 이곳이 그리울 것 같았다.

기억을 잃어버린 채, 

아무 생각 없이 반년동안 머물렀던 이곳이 그리울 것 같았다.

어쩌면 현실 세계로 돌아가는 게 겁이 나서일지도 모르겠다.

바로 앞 그 벤치는 여전히 비어 있었고,

계단 아래에 펼쳐져 있는 곳엔 차들로 꽉 들어차 있었다.

“오빠!”

활짝 웃는 아내의 얼굴에 햇볕이 반사되어, 아내의 모습이 꿈처럼 너무나 화려하게 반짝였다. 

아내가 내 팔을 더욱 꽉 끌어안았다.

“가요....”

“응.....”

아내와 나는 한발씩 앞으로 내디뎠다.

한발, 한발..........

아내와 나는 발을 맞추어 계단을 내려갔다.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그 현실의 세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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