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9화 (129/177)

Un Ballo in Maschera (6)

지독한 가위에 눌려 있는 것 같았다.

여전히 꿈속인지, 불안한 램 수면 상태인지,

그것도 아니면 이미 현실 세계에 돌아와 있는지 도무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정신은 이미 돌아와 있었다. 

암흑 속에서도 또다시 반복되는 그 꿈을 꾸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몸을 움직일 수도, 눈을 뜰 수도 없었다.

시간이 지나자 더 이상 그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감당할 수 없이 벌렁되던 심장이, 시간이 갈수록 이전처럼 낮은 비트로 내 가슴을 때리고 있었다.

나는 조금 전 들렸던 그 목소리를 기억하기 위해 노력했다.

잠에서 깨어나면, 

생생했던 그 목소리들이 항상 내 기억에서 모두 지워져 버리기 때문이었다. 

눈꺼풀 속에서 방향을 찾지 못한 채, 흔들리던 내 동공이 점차 안정을 찾아갔다.

다시 몸이 포근해졌다.

[.....이건....제가 제조한 건데요.

피곤할 때, 하나씩 드세요.

그리고 이건....

비타민 수액인데, 

맞고 푹 자고 나면 몸이 좀 괜찮아 질 겁니다.

이리 오세요. 

한 시간 정도 맞으면 되니까.

제가 놔드릴게요.]

[아니요.....아니요....괜찮아요]

[은비 씨, 그러지 말고 이리 오세요.]

[소파에.....편하게 누우세요]

[조금 따끔할 겁니다]

[아....]

[손목은 여기 쿠션에 편안하게 올리세요]

[감사합니다. 이렇게.....신경써주셔서..]

[아닙니다. 별말씀을.....

그나저나....빨리 일어나야 될 건데.....

이제 며칠 있으면 벌써 3개월째죠?]

[네....]

[은비 씨 하고....처제 분하고 참....대단해요.

그런데 본인들도 건강 신경 쓰면서 그래야지...

예전보다 은비 씨, 살이 많이 빠진 거 같습니다.

병원에서 출퇴근하는 게 보통 일이 아닌데....

학교는 얼마 전부터 다시 나가신 거죠?]

[네....아무래도....반애들이 맘에 걸려서...

거의 3개월 동안 학교에서 편리 봐준 것도

미안하고 해서....지난주부터 다시 나가요.] 

[의사는 뭐라고 하던가요?]

[하아....]

절망이 담긴, 

깊은 한숨소리만이 공허하게 들렸다.

둘이 나누는 대화의 내용이 매우 조심스러웠다. 

그리고 정당한 선의 거리감도 느껴졌다. 

목소리는 차분했으며, 작지도 크지도 않은 그런 목소리였다. 

한참 동안 아무런 말도 들리지 않았다. 

[어때요? 괜찮죠? 

저도 몸 안 좋을 때 가끔 맞습니다.

우리 동생도 놔주고요.]

[네. 조금 나른해지네요....편해지고....]

[며칠 잠을 못 잤을 건데....

피곤하면 눈 좀 붙여요. 제가 보고 있을 테니까]

[저기....궁금한 게 있어요.

우리 오빠 하곤.....어떻게 아시는.....

예전에 오빠한테 얼핏 듣긴 했는데...] 

[아......그게....

음....은비 씨한테 드릴 말씀이 좀 있는데요.]

[네...에? 무슨....]

[저도 한참을 고민하다가......

사실은.....................]

[으.....음.....그건.....뭐예요?]

깊은 잠에서 방금 깨어난 듯한 완전히 힘이 빠진 목소리였다.

[영양제입니다. 

비타민 수액 반 정도 남았는데.

같이 맞으면 오래 누적된 피로 회복에 좋아요.

아마 내일 아침이면 개운할겁니다.

영양제 들어갈 때, 링거 꽂은 혈관에 조금 통증이 올 겁니다.

조금만 참으면 돼요.] 

[아...아아.....]

고통이 스며있는 그 소리에....

그렇게 노력해도 절대 떠지지 않던 눈꺼풀이 거짓말처럼 열려버렸다.

천정은 어두웠다.

하지만 눈을 감고 있을 때의 그런 지독은 암흑은 아니었다.

한쪽에서 빛이 새어 들어왔다.

목이 돌아가지 않았다.

몸은 여전히 움직일 수 없었다.

지금. 내 몸에서.....내가 움직일 수 있는 부분은....

내 눈 속의.......검은 동공뿐이었다.

구석....

어디에선가 등이 켜져 있는지 옅은 어둠이 깔린 주위가 시야에 들어왔다.

환하지는 않았지만 사물을 확인하는 데는 충분했다. 

자동적으로 내 동공이, 조금 전까지 작은 목소리가 들리던 오른쪽으로 향했다.

하지만 부드럽게 그것이 움직이지는 않았다.

조금씩...뻑뻑하게...오른쪽으로 이동했다.

동공의 움직임에 따라 시야에 들어오는 오른쪽의 각도가 조금씩 넓어졌다. 

사람이 서 있었다.

그리고 그 옆 링거에 노란색 주머니가 걸려 있었다.

사람의 손엔 주사기가 들려 있었고, 주사기 안에는 우윳빛 액체가 가득 들어 있었다.

주사기가 꽂혀있는 곳은 링거 바로 아래 걸린 수액 주머니였다. 

남자가 들고 있던 주삿바늘에 우윳빛 하얀 액체가 조금씩 줄어들어 노란 수액과 뒤섞였다.

[아....아아........]

또다시 내 눈을 뜨게 한, 그 소리가 들렸다. 

이번에 조금 전보다 그 소리가 더욱 크게 들려왔다.

[다됐어요. 조금만 참아요.]

서있는 남자와 링거에 머물러 있던 내 시야가 조금씩 아래로 향했다.

끝까지.....

내가 할 수 있는 끝까지.....

내 동공이 오른쪽 아래로 쏠려 있었다.

초점이 번져 있는 오뚝 솟아 있는 내 코의 형태와 함께 아래쪽에 푸른색 소파가 보였다.

소파 위엔,

여자가 가지런히 누워있었다. 

여자의 굴곡진 긴 머리칼이 푸른색 소파위에 흐트러진 채, 넓게 펼쳐져 있었다. 

쿠션 위에 올려진 여자의 새하얀 팔 중간에 링거와 연결된 주삿바늘이 꽂혀 있는 게 어렴풋이 보였다. 

[아....음....]

[이제 다 들어갔어요. 

처음 맞을 땐, 좀 아픈데.....

몇 번 맞으면 익숙해집니다.

지금도 계속 아파요?]

[아니....요.....하아.....]

[수액하고 같이 들어가면 잠이 올 겁니다.

은비 씨. 좀 자요]

[아까.......했던 말......그게....정말.....

정말이에요?]

아무런 말도 들리지 않았다.

서 있던 남자도 움직임 없이 그대로였다.

빔프로젝터를 타고 흐르던 오래된 영화가 멈춰버린 듯, 내 눈 앞에 펼쳐진 것들이 사진처럼 느껴졌다.

한쪽으로 완전히 쏠려 있는 내 눈이 따가웠다.

금방이라도 눈물이 새어 나와 따갑게 달아오른 눈 속을 부드럽게 적셔 줄 것만 같았다. 

하지만 나는 눈을 감을 수가 없었다.

눈을 감게 된다면, 또다시 암흑에 빠져, 다시는 눈을 뜰 수 없을 것 같은 불안감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하.....하......하아.....]

사진처럼 멈춰있던 그 정적을 깨고, 깊은 숨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남자는 서서 소파에 누워있는 여자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잠시 후 남자는 여자가 누워있던, 소파 끝 언저리에 소리 없이 앉았다.

[하아.....하아......하아......]

남자의 떨리는 숨소리가 커지더니 조용하던 이 공간을 조금씩 채워나갔다. 

한동안 조용히 소파에 앉아 있던 남자가 다시 움직였다.

링거에 걸려 있던 수액이 거의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남자가 머리를 숙여 여자의 팔뚝에 꽂혀 있던 긴 주삿바늘을 조심스레 빼어냈다.

그러자 주사바늘이 꼽혀 있던 피부에서 붉은 피가 방울져 흘러나와 새하얀 여자의 팔뚝을 적셨다.

남자는 그 피를 몇 차례 닦아내고서 밴드 같은 것을 피부에 붙였다. 

하지만.

남자의 다소 소란스런 그런 움직임에도 불구하고, 여자는 아무런 반응도......아무런 소리조차 내지 않고 그대로 소파에 누워있었다.

카키색으로 보이는 롱 플레어스커트가 소파에 누워있는 여자의 발목 바로 위, 한 뼘 정도까지 덮고 있었다. 그리고 상의는 속이 조금 비쳐 보이는 루즈한 흰색 블라우스를 입고 있었다.

남자가 여자의 얼굴을 조금 가리고 있던 흐트러진 긴 머리칼을 손으로 빗겨 뒤로 넘겼다.

깊은 잠에 빠진 듯, 눈을 꼭 감고 있는 여자의 얼굴이 완전히 드러났다. 

여자의 볼을 천천히 쓰다듬던 남자의 손이.....

아래로 내려와 여자가 입고 있던 루즈한 블라우스 단추를 위에서부터 하나씩 풀었다. 

블라우스 단추를 쥐고 있던 남자의 손이 표시가 날 정도로 심하게 떨렸다.

단추가 하나씩 열릴 때마다 위쪽에서부터 벌어지기 시작한 그 블라우스가 완전히 풀어헤쳐져 있었다.

여자의 속살에 하얀 브래지어만 가슴을 감싸고 있었다.

[하....]

브래지어 위쪽 열려있는 여자의 젖무덤 속으로 남자의 손이 깊게 들어갔다.

남자의 손이 가슴을 움켜쥐자 여자의 몸을 타이트하게 둘러싸고 있던 흰 브래지어가 끊임없이 들썩거렸다.

한동안 여자의 가슴속에 머물러 있던 남자의 손이 빠져나와 향한 곳은,

여자의 발목이었다.

여자의 발목 위를 둘러싸고 있던 그 플레어스커트 끝을 잡고 위쪽으로 천천히 들어, 여자의 배 부분까지 끌어 올렸다. 

소파에 가지런히 올려져 있는 여자의 쭉 뻗은 다리 전체가 드러났다.

여자의 골반 아래를 감싸고 있는 하얀 팬티까지 완전히 드러나 보였다.

남자는 소파에서 일어나 여자의 발목이 있는 아래쪽으로 가더니 여자의 얼굴이 있는 쪽으로 몸을 돌렸다.

순간, 남자의 얼굴 정면이 보였다.

남자의 얼굴이 흐릿했다.

남자의 두 손이 여자의 팬티를 끌어 내리자 하얀 그것이 힘없이 아래로 끌려 나왔다. 

검은 털...

여자의 둔덕 아래를 적당한 길이로 부드럽게 감싸고 있는 그 검은 흔적이......

여자가 입고 있던 하얀 팬티를 잠시 들여다보던 남자가 그것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하아.......]

남자가 두 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감싼 채, 잠시 그대로 있었다. 

내 눈에서 눈물 한줄기가 얼굴을 타고 흘러내렸다. 

시야가 흐려졌다.

얼굴을 감싸고 있던 두 손이 떠나자, 남자의 얼굴이 빨갛게 변해 있었다.

남자의 한쪽 무릎이 소파 위를 올라탔다.

남자는 여자의 종아리 안쪽을 잡고 옆으로 벌렸다.

남자의 얼굴이 여자의 허벅지 사이 벌어진 곳에 가까이 다가가 무방비 상태로 열려있는 여자의 음부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남자의 몸이 이젠 소파 위 여자의 벌어진 다리 사이에 들어가 완전히 자리를 잡았다.

[아음.....]

남자의 입술이 여자의 그곳....

속살을....빨기 시작했다.

[흐.....으....]

희미한 소리가 들렸다.

그러자 여자의 그곳을 빨아대던 남자의 움직임이 멈췄다.

남자는 서두르기 시작했다.

입고 있던 바지를 급하게 풀어헤쳤다, 완전히 벗지도 못한 바지와 속옷은 남자의 발목에 걸려 있었다.

남자의 몸 중앙에 위쪽으로 길게 뻗어 있는 그것이 덜렁거렸다.

남자가 소파 위를 무릎으로 기어 여자의 벌어진 다리 사이로 바짝 다가갔다.

[으........]

남자의 입에서 소리가 새어 나오자마자, 남자의 몸의 누워있던 여자 위를 쓰러지듯 덮었다.

[으.......하아.........]

여자를 덮고 있던 남자의 몸이 긴박하게 움직였다.

남자의 움직임에 벌어진 여자의 다리 한쪽이 소파 아래로 떨어져 남자가 움직일 때마다 힘없이 덜렁거렸다. 

남자가 여자의 목덜미를 완전히 끌어안았다.

그러자 여자의 얼굴이 위쪽으로 크게 젖혀졌다. 

들리지 않던 살이 맞대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으..........으....아......]

[아.......아........아.....]

여자의 소리가 희미하게 들렸다.

남자가 여자의 브래지어를 아래로 끌어 내리자, 여자의 한쪽 젖가슴이 흘러나와 출렁였다.

남자가 여자의 그 젖가슴을 한입에 입에 물고 정신없이 빨아댔다.

여자의 분홍빛 젖꼭지를 포함한 젖살이 남자의 입속에 빨려 들어가 한참을 머물다 뱉어지자, 다시 나온 그것은, 남자의 혓바닥이 차지해 정신없이 핥아지고 있었다.

[아아아.....]

갑자기 여자의 입에서 큰 소리가 터져 나왔다.

[아...아...아아......아앙......아아앙......]

여자의 신음소리가 너무나 짙게 변해있었다.

힘없이 아래로 쳐져있던 여자의 가냘픈 두 팔이.....

반사적으로 위로 올려져 허우적대기 시작했다.

남자는 소파아래에 떨어져 있던 여자의 허벅지를 손으로 감싸곤 다시 위쪽으로 바짝 들어올렸다.

그러자 남자의 몸이 여자의 그곳에 더욱 깊게 들어가 박혔다. 

[흐아......하.....하......하아...]

[아.....아아.......아아악!!!]

활짝 열려있는 여자의 붉은 입술에서부터 터져 나온,

짙은 신음소리와 뒤섞인 날카로운 비명이, 

깊게 막혀 있던 내 고막을 금방이라도 터트려버릴 것 같았다. 

멈추지 않는 눈물 때문에,

소파 위 그 움직임들이 이젠 무얼 하는지 알아볼 수 없게,

마치 혼란스런 만화경을 들여다보는 것처럼 번져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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