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6화 (126/177)

Un Ballo in Maschera (3)

아내의 얼굴을 빤히 들여다봤다.

아내의 눈가에 브라운 톤의 반짝이는 화장이 눈물로 더욱 번져가고 있었다. 

아내의 그 좋은 향기는 여전했으며, 

아내의 얼굴 또한.........아름다웠다.

내가 기억하는 아내의 마지막 얼굴을 떠올려 보려고 노력을 했지만, 여전히 내 머릿속에 남아 맴도는 아내의 얼굴은, 카페에서 환한 미소로 나를 바라보던 그 모습뿐이었다.

웨이브로 부드럽게 늘어트려져 허리까지 찰랑거리던 아내의 머리칼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있었다.

대신, 가르마펌을 한 것처럼 조금 부풀어 오른 머릿결이 곡선을 그리며 아내의 작고 하얀 얼굴과 목덜미 부분을 풍성하게 감싸고 있었다.

아내는....어린 소녀들이 가지고 놀던 바비인형 같았다.

아내가 앞쪽으로 흘러내리는 오른쪽 머리칼을 한쪽 귀 뒤로 넘겼다. 

짙은 금빛으로 반짝이는 그런 아내의 머리칼을 보고 있으니, 얼굴을 전체를 빼곡히 덮고 있는 새하얀 파우더와 붉은 립스틱이 대비되어, 백인여성이 지금 내 앞에 있는 듯한 착각마저 들었다. 

아내가 입고 있는 짧은 원피스가 무척 얇아 보였다.

원피스 소매는 아내의 어깨와 팔꿈치 즈음에 빈틈없이 착 감겨 있었으며, 아랫단은 무릎 한참 위를 타이트하게 둘러싸고 있었다.

병실에 에어컨이 틀어져 있는 걸로 보아, 이미 무더운 계절로 변한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

조금 옅은 블랙 원피스 전체에 아래 방향으로 아내의 몸을 타이트하게 감싸듯, 흰 스트라이프 무늬가 빙 둘러 새겨져 있었다. 

그 흰 색의 스트라이프 무늬들이 늘씬한 아내의 몸매를 더욱 부각되어 보이게 했다. 

브이 자로 깊게 파여 있는 원피스 사이로 아내의 가슴골 위쪽이 드러나 있었다.

천정에 달린 눈부시게 밝은 형광등 불빛이 아내가 입고 있는 그 얇은 원피스 섬유 사이를 간신히 비집고 나왔다.

원피스 속, 아내의 가슴을 숨 막히게 감싸고 있는 검은색 브래지어의 윤곽을, 흐려진 그 빛들이 어렴풋이 드러내고 있었다.

살이 빠진 건지 아내의 얼굴이 무척 야위어 있었다. 

하지만 수척해 보이기는커녕, 얼굴에 드러나 있는 날카로운 선들 때문인지 아내의 얼굴이 더욱 화려하게 변해있었다.

하지만 이해 할 수 없는 건.

아내의 눈빛이었다.

내가 기억하는 아내의 천사같이 초롱초롱하고 또렷한 눈빛은 찾아 볼 수 없었다.

아내의 눈빛이....눈물 때문에 흐려진 건지.....아니면 더욱 깊어지고 그윽하게 변한건지, 지금은 그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짙은 화장을 뚫고서, 아내의 두 뺨이 너무나 잘 익은 복숭아처럼 분홍빛 홍조를 띄고 있었다,

“은비야.....”

“오빠.......정말 깨어난 거예요?

꿈 아니죠?

정말 이젠 깨어난 거죠? 흐흡...”

아내는 믿기지 않는다는 듯, 재차 내게 물어왔다.

“얼굴이.......살이 많이 빠졌다.

나 때문에 고생했어....미안해....”

아내는 말없이 두 손으로 내 손을 꼭잡아주었다. 

그런 아내의 손이 너무나 따스하게 느껴졌다.

“오빠 사고 나고 언니......귀국했었어요....”

“누나가?”

“네. 한 달 정도 병원에 계시다가....다시 미국으로 돌아가셨어요.”

“그랬구나.....아버님, 어머님도 나 때문에 많이 걱정하셨지? 뵐 면목이 없네.”

“네...네?”

사랑스런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던 아내의 눈가가 일시에 찌푸려졌다.

“아버님, 어머님한테는 내가 직접 전화 드릴 테니까.....당신은.........”

아내가 갑자기 고개를 돌려 뒤에 서서 우리를 지켜보던 처제를 바라봤다. 

처제와 아내는 잠시 그렇게 말없이 서로의 눈을 맞추고 있었다.

내 손을 꼭 잡고 있던 아내의 가느다란 두 손이 아쉽게 떠나버렸다.

“그래요. 오빠. 그렇게 하세요.”

아내의 얼굴에 다시 좀 전의 미소가 돌아와 있었다.

아내가 내 곁에서 조금씩 멀어져갔다.

아내는 검은 핸드백에서 스마트폰을 꺼냈다. 

처제와 승호 그리고 승호와 함께 온 여자도 알 수 없는 표정으로 그런 아내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내가 어디론가 전화를 하려는 것 같아보였다.

[여보세요? 교수님 저예요.

네.....네네....

아...지금 조금 늦었는데, 퇴근 하셨나요?] 

누군가와 통화를 하는 아내의 목소리가 너무나 공손했다.

[아...그러세요. 급하게 드릴 말씀이 있어서요.

그러면 지금 바로 교수님 방으로 갈게요]

아내는 전화를 끊고서 나에게 더욱 환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하지만 그 것은 진심이 담긴 미소가 아니었다. 

“오빠. 조금만 계세요. 담당 교수님 잠깐 뵙고 올게요.”

아내는 내 대답을 듣기도 전에 뒤돌아서 병실 문을 향했다.

항상 듣기 좋은 아내의 또각거리는 소리를 따라가니, 병실을 급하게 빠져나가고 있는 아내의 뒷모습이 보였다.

스트라이프 무늬의 그 원피스가 불룩하게 부풀어 오른 아내의 엉덩이를 바짝 감싸고 있었다. 

“승호야.....카페는.....어떻게 됐어?”

“아...미...미나하고....세.....아니...미나가 잘 챙기고 있어 걱정하지 마.

너는 완전히 회복될 때까지 그런 걱정하지 말고 니 몸 걱정이나 해.”

내 시선이 승호 뒤에 있던 여자를 향했다.

여자는 빤히 자신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는 내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체형에 비해 여자의 가슴이 너무나 도드라져 보였다.

조금 전 보았던 아내의 얼굴과 몸이 떠올랐다.

아내는 모든 것이 너무나 진하게 변해있었다.

얼굴이 그랬고, 가슴골이 보이는 그 짧은 원피스와.......쉽게 잊혀 지지 않을 그 눈빛.....

머리 한쪽에 통증이 느껴졌다.

“처제...처제.....

나 또 머리가 조금 아프다.

잠들 거 같아.....언니 오면.....내가.....”

“형부......”

곁에 있던 처제가 급히 내게 다가오는 모습이 희미하게 보였다.

[윙....윙....윙.....]

암흑 속에 윙윙되는 알 수 없는 소리만 들려왔다.

그리고,

그 작은 소리들이....조금씩 희미하게 들렸다.

그 소리들은 사람들의 말소리였다. 

수십....수백 명이 동시에 작은 소리로 소근대는 것처럼 혼란스레 내 귓가에 맴돌았다. 

라디오 주파수가 맞춰지는 것처럼 그 소리의 강도가 높아졌다, 낮아지기를 반복했다. 

[이 선생님. 어떡해요.....어머......]

[아이구....이걸 어쩌나....이 선생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네요]

[어쩌다가 이런 사고가 나서.....남편 분은 어때요?]

[수술은 잘됐어요? 의사는 뭐래요?]

알 수 없는 남녀의 목소리가 반복되어 들려왔다.

[이 선생님 힘내요. 

저희도.....기도할게요. 

잘 될 거예요. 학교 걱정은 하지 마시고...]

[선....선생님....왜......] 

아내의 목소리였다.

아내의 목소리가 분명하다.

[다른 선생님들 먼저 보냈어요.

이 선생 이렇게 혼자 있는 거 보니까...

마음이 안 좋아서 좀 더 있다가.....]

[선생님....그만.....돌아가세요....]

[이 선생. 나는 이 선생 걱정돼서 그러는 건데.

좀만 있다가 갈 테니까....여기 앉아 봐요.

어서요......]

[치우는 좀 어때요?]

[오셨어요.]

[아.....치우 얼굴이 말이 아니네...

담당 의사는 뭐래요?]

[은비 씨도 이젠 좀 쉬어요. 

은비 씨 얼굴도 지금 말이 아닙니다.

치우 반드시 일어날 겁니다.

그리고....산사람은 살아야죠. 

은비 씨. 식사도 못했을 거 같아서... 

뭐 좀 사왔어요.]

[고맙습니다]

처음 들어보는 어떤 남자의 목소리와 아내의 대화였다.

또 다시 소란스럽게 윙윙거리기 시작했다.

[오늘은 안돼요...

분명히 말하지만 오늘은 안돼요]

아내의 날카로운 목소리였다.

[마음대로 해요. 이젠.......상관없으니까]

아내의 목소리만이 독백처럼 공허하게 울려 퍼졌다.

[흐으윽........흐윽.......흐으으.......]

너무나 서글피 우는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은비 씨. 오늘 동생 분은 안보이네요?]

[며칠 잠을 못자서 쉬라고 집으로 보냈어요]

[아휴......은비 씨하고 동생 분 둘 다 참....

그러다가 몸 상합니다. 

이제 간병인한테 맡기세요. 

이런 식으로 하다가 정말 두 분 다 병납니다.]

[신경써주셔서 감사해요]

[그리고 이거......약 좀 챙겨왔어요.

영양젠데 동생분하고 매일 챙겨 드세요.

그리고 이건....

비타민 수액인데, 

맞고 푹 자고 나면 몸이 좀 괜찮아 질 겁니다.

은비 씨, 이리오세요. 

한 시간 정도 맞으면 되니까.

제가 놔드릴게요.]

[아니요.....아니요....괜찮아요]

[은비 씨, 그러지 말고 이리오세요.]

[소파에.....편하게 누우세요]

[조금 따끔 할 겁니다]

[어때요? 괜찮죠? 

저도 몸 안 좋을 때 가끔 맞습니다]

[매번 고맙습니다....이렇게.....]

[음.....그리고 은비 씨한테 드릴 말씀이 좀 있는데요.]

[네...에?]

[저도 한참을 고민하다가......

사실은.....................]

[은비 씨. 며칠 잠을 못 잤을 건데....

잠 오면 좀 자요. 제가 보고 있을 테니까]

[으.....음.....] 

눈을 떴지만.

병실이 꿈속에서처럼 그렇게 깜깜하게 변해있었다.

항상 꿈속에서 누구인지, 그리고 알아들을 수 없는 소곤거리는 소리들이 귓가에 들려왔다.

그리고 가끔은.....

남녀가 뒤엉켜 움직이는 그런 꿈들이 희미하게 기억 속에 남겨져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생생하던 순간들이 잠에서 깨어나면 모든 것이 희미하게 변해 기억 할 수가 없었다. 

침대 주위를 둘러싸고 있던 알 수 없는 그 수많은 기구들이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거미줄처럼 복잡하게 내 손등과 팔뚝에 꼽혀있던 주사바늘도 사라져 있었다.

하얀 이불 천 조각에 올려진 내 손가락이 조금씩 움직였다.

뻣뻣하게 움직이던 그 손가락들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조금씩 부드러워졌다.

어둠속에 익숙해진 눈이 조금씩 밝아져 갔다.

침대 곁에 두 손을 다소곳이 모은 채로 아내는 잠들어 있었다.

한쪽에 간의 침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불편하게 내 곁에 잠들어 있는 아내의 모습에 너무나 가슴이 아팠다.

침대 위에 힘없이 놓여 있던 내 손이 들려......침대시트에 얼굴을 파묻고 자고 있는 아내의 머리로 천천히 향했다.

부풀어 올라 있는 아내의 머릿결이 부드러운 스펀지 같았다.

나는 아내의 머리를 쓰다듬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내 마음대로 쉽게 움직이지 않던 내 손이, 이젠 아내의 머릿결 촉감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변해갔다.

“으...음......”

아내의 목소리에 나는 또 다시 꿈속을 헤매고 있는 건 아닌지 두려운 생각이 들었다.

“오....빠......”

침대 시트에 의지해 있던 아내의 머리가 조금씩 움직였다.

그러자 아내의 머릿결에만 닿아 있던 내 손이.....아내의 뺨을 보듬고 있었다.

아내는 두 눈을 꼭 감은 채,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았다. 

“오빠.......”

아내가... 

또 다시 나를 찾고 있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