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0화 (120/177)

Depravity (12)

또 다시 하루...그리고 또 하루가 지나가고 있었다.

희한하게도 그 지긋지긋했던 두통이 언젠가부터 말끔하게 사라져, 더 이상 고통스럽지 않았다. 그리고 언제 그랬냐는 듯 불면증에도 더 이상 시달리지 않았다

학교에서 퇴근한 아내는 서둘러 샤워를 마치고, 침대에서 기다리던 내 품을 파고들었다.

아내와 나는 잠들 때까지 서로를 꼭 껴안은 채, 진한키스를 나눴다, 

아내가 잔뜩 발기된 내 성기를 쓰다듬고, 나 또한 한없이 젖어있는 아내의 속살과 클리토리스를 매만졌지만, 이상하게도 뜨거운 섹스까지는 이어지지 않았다. 

생각해보니 참 이상한 일이었다. 

그리고 내 머릿속에 하나의 생각만은 떠나지 않고 며칠을 그렇게 머물러 있었다. 

어떻게 보면 간단한 것이었다.

둘 중 하나를 선택하면 되는.....너무나 쉬운 문제였다.

장 실장에게로부터 매일 황 경태의 동향이 내게 전해지고 있었다.

“은비야. 오늘 처제 카페로 좀 데려다 줄래? 낮에 세무서하고 볼일 볼게 좀 있어서....”

침실 화장대에 앉아, 살구색 립스틱을 바르던 아내의 화사한 얼굴이 화장대 거울에 반사되어 나를 향해 있었다. 

“그래요? 알겠어요.”

“그리고 오늘 카페서 저녁 같이 먹을까? 별일 없어?”

“음.....네. 지금 잡힌 일정은 없어요. 가서 다시 연락할게요.”

화장을 마친 아내가 자리에서 일어나 침대에 걸터앉아 있는 내게 다가왔다.

하늘하늘한 블라우스 위 아내의 볼록하게 솟은 젖가슴이 내 얼굴 바로 앞에 놓여 있었다. 

아내의 몸을 아래부터 천천히 쓸어 올렸다.

스타킹을 신은 아내의 무릎부터 타고 오르는 내 손길의 움직임에 따라 사각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스타킹위로 아내의 미끈한 다리의 탄력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짙은 남색 스커트로 타이트하게 감싸여져 있는 아내의 하체는 맛있는 것이 들어있는 화려한 선물 포장지 같았다.

“형부! 저 준비 다됐어요. 가요~”

갑자기 침실 문이 열리고 처제가 고개를 빼꼼히 내밀었다.

“어머!!! 미안....형부........미안.......”

처제가 나와 아내의 모습을 보고 놀라 서둘러 안방 문을 닫았다. 

내 두 손은 아내의 부드러운 엉덩이를 감싸고 있었다.

아내의 두 팔이 내 어깨에 살포시 올려져 있었다. 

눈빛으로 하는 대화였다.

아내와 나는 한동안 그렇게 말없이 뜨거운 눈빛으로 서로를 바라볼 뿐이었다. 

아내와 처제가 현관을 빠져나가고 한동안 거실에 가만히 앉아 있었다.

가끔 쳐다보는 벽시계는 볼 때 마다, 몇 십분 씩 빠르게 시간이 흘러가고 있었다.

긴 숨을 한 번 내쉬고 거실 소파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곧장 주차장으로 향했다.

트렁크 문을 열고 두터운 카펫으로 숨겨져 있던 바닥을 들어 올렸다. 그 속에 두툼한 서류 봉투 하나가 덩그러니 들어있었다. 

벌써 구깃구깃해진 서류 통투에 들어 있던 것을 하나씩 꺼냈다.

동일한 모양의 검은 USB 두개와 하얀색 봉투 그리고 지방교육청 로고가 새겨진 투명한 파일이 거실 테이블 위에 가지런히 올려져있었다.

노트북을 들고 와서 테이블에 있던 USB를 연결한 다음 반복해서 여러번 로우 포맷했다. 그리고 공구함에서 꺼낸 날카로운 리퍼로 그 USB를 조각조각 작게 잘라냈다.

하얀색 봉투에는 일억오천만원짜리 수표가 그대로 들어 있었다.

교육청 로고가 새겨진 파일을 들고 욕실로 향했다.

그 파일 속에는 아버님이 빽빽하게 써내려간 A4 용지와 선명하게 찍힌 사진들이 들어 있었다.

나는 그것을 하나씩 들고 라이터로 불을 붙였다. 

활활 타오르던 그것이 재가 되면, 변기에 밀어 넣었다. 그리고 또 다시 하나를 들고....그렇게 반복했다.

욕실 닫아 놓았지만, 거실에 매캐한 탄 냄새의 흔적이 스며있었다.

흠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새하얀 A4용지 몇 장이 테이블에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나는 그 곳에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하나뿐인 내 친구 승호에게...

항상 내 곁에서 나를 도와주던 미나...

너무나 착한 우리 처제 은설이.

그렇게 하나씩 거침없이 써내려갔다. 

그리고....마지막....단 한 사람...

[은비야...]

새하얀 A4 용지위에 힘겹게 아내의 이름을 쓰곤.....

시간이 멈춘 듯 했다.

“안녕하세요. 고객님. 어떻게 도와드릴까요?”

깔끔하게 핏 된 정장을 입은 사내가 기분 좋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개인 대여금고를 이용하려고 합니다.”

“아네. 그러세요? 우선 신분증 주시고요.

이건 설명서인데 한번 읽어보세요.”

사내가 작은 글씨가 빼곡하게 쓰인 안내서를 전해줬다.

“어....저기 고객님. 몇 달 전에 방문하신 거 같은데....고객님 명의 개인금고가 아직 만료되지 않았습니다.”

“네?”

“이 정길 고객님이 고객님에게 양도한 그 금고 사용 기한이 아직 남아 있습니다.”

뜻밖에 장인어른의 이름이 그 은행원에게서 전해지자 갑자기 숨이 막혔다.

은행을 빠져 나오자 마음이 홀가분했다.

오늘은 오랜만에 파티를 하고 싶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내가 좋아하는 나만의 공간인 카페에서 축배를 들고 싶었다.

백화점에 들러 아내가 평소에 좋아하던 비싼 와인 몇 병과 음식들을 한가득 샀다.

쇼핑을 하면서 기분이 너무나 좋았다

백화점 주차장을 빠져 나오니 이미 하늘이 검게 변해 있었다. 

“어! 형부......”

카페 문을 열고 들어가자, 처제가 생글거리며 다가와 내게 안겼다.

오랜만에 보는 처제의 활짝 웃는 얼굴이었다. 

나는 그 이유를 알고 있었다.

며칠 동안 쥐죽은 듯 마음조리며 나와 은비의 눈치를 보던 처제...

아침에 안방에서 보았던 나와 은비의 모습에 안심을 한 것일까?

“어머! 오빠. 이게 다 뭐예요?”

“저녁 안 먹었지? 오늘 좀 빨리 닫고 오랜만에 여기서 회식하자....”

“오빠.....안녕하세요?”

안쪽에서 홀로 나오던 세희를 보곤 깜짝 놀랐다. 거의 한달 만이었다. 

세희의 얼굴은 무척 야위어있었지만, 예상했던 것과는 달리 그리 나빠 보이지 않았다. 다행이라 생각했다. 

“내가 미나 언니 보고 싶어서 연락했어요.”

“그래 잘했다. 미나야. 승호한테 연락해서 8시쯤에 수연 씨하고 같이 오라고 할래?”

“네네...사장님...히....신난다.”

나는 서둘러 방으로 들어가 청소를 시작했다.

처음 아내를 이곳에 들이던 그때처럼.......

얼굴에 땀방울이 맺혀있었다.

청소를 마친 방이 생각했던 것처럼 그렇게 변해있었다.

다시 홀로 나가보니 테이블을 여러 개 붙여 그럴싸한 파티테이블이 준비되어 있었고, 그 위에 음식과 와인이 정갈하게 세팅되어 있었다.

“오빠!”

카페를 들어오던 아내가 놀란 눈빛으로 나를 봤다. 볼이 발그레하게 변해있는 아내의 얼굴이 오늘 유난히 예뻐 보였다. 

“당신 왔어? 빨리 왔네?”

“오빠. 오늘 무슨 날이에요? 뭐야 이게 다? 어머....이....와인...”

아내는 평소에 마시고 싶다고 했던 와인을 손으로 가리키며 내게 물었다.

“어이. 김 사장. 어! 뭐야 이거.....김 치우. 

오늘 무슨 날이냐? 은비 씨도 있네요. 안녕!”

퇴근하고 바로 오는 길인지 정장을 말쑥하게 입은 승호가 카페 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의 한 손은 뒤에 따르던 수연이의 손을 꼭 잡고 있었다.

“이야.......김 치우. 여기올 때 마다 없더니,

돈 쫌 버는 모양인데.....은비 씨는 좋겠다. 

능력 좋은 치우 같은 남편도 있어서요. 하하하.”

아카미 초밥을 하나 집어 이리저리 자세히 살펴보던 승호가 웃으며 말했다.

“호호호.....그럼요. 오빠도 빨리 결혼해요.”

옆에 앉아 있던 아내가 내 팔을 감싸며 말했다. 

그러자 수연이의 얼굴이 새빨갛게 변했다.

카페 안에서 듣기 좋은 웃음소리가 떠나지 않았다.

행복했다.

얼마 만에 느껴보는 행복인지....

얼마 만에 보는 아내의 숨김없는 환한 미소와 웃음소리인지, 너무 오랜만이라 잘 기억도 나지 않았다.

나는 환한 미소를 머금고 있는 사람들의 얼굴을 하나씩, 하나씩, 내 가슴에 담기에 여념이 없었다.

“세희야. 오빠한테 말하고 왔지?”

옆에 있던 세희에게 조용히 물었다. 

하지만 세희는 대답이 없었다. 대신 조용한 미소만 머금고 있던 얼굴이 조금씩 어두워졌다.

“오빠 걱정하겠다. 내가 여기 있다고 전화해줄까?”

세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치우야]

[형님. 세희 카페에 있어요. 혹시 찾았어요?]

[뭐? 거기 있어? 아휴.......녀석 연락도 안 되고 얼마나 걱정했는데....]

[저녁은요? 별일 없으면 카페로 와요]

[그래. 알았어]

잠시 후 카페 문이 조심스레 열렸다.

“간판이 꺼져있네? 벌써 닫은 거야?”

진욱 형이었다.

“어........오늘 무슨 날이야?”

그가 문 앞에 서서 둘러 앉아 있는 우리를 의아하게 보고 있었다.

“아이고 형님. 오랜만입니다. 왜 이제와요. 

어서와요 어서....우리 시작한지 얼마 안됐어요.” 

승호가 문 앞에 서있는 진욱 형을 끌고 왔다.

“어...그래 그래.....야! 세희 너.....연락을.....

아이고. 은....은비 씨 안녕하세요...”

진욱 형이 세희를 나무라려다 앉아 있던 은비를 보곤 급하게 인사를 했다. 

아내에게 잠시 머물러 있던 그의 시선이 다시 처제에게 향해 어색하게 인사를 했다.

처제를 바라보는 그의 난처한 표정은 아마도 며칠 전, 이곳에서 장 실장이 신나서 떠들던 동영상 속의 처제의 모습 때문일 것이다.

다시 본격적인 파티가 시작됐다.

나란히 앉아 있는 진욱 형과 세희를 보고 있자니, 파타야에서의 그 지옥 같은 일들이 다시 스멀스멀 기어 나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다행히도 내 머릿속에 그리 오래 머물러 있지 않고 이내 사라져버렸다.

“은비야. 우리 오늘 여기서 잘래?”

소란스러운 틈을 타 조심스럽게 아내에게 귓속말을 했다.

잠시 의아하게 나를 보던 아내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쉽게 이 파티가 마무리되고 있었다.

내심 자정을 넘겨 새벽까지 이 파티가 지속되길 바랐지만.......

“오빠. 나 오늘 미나하고 은설이하고 같이 잘 거야.” 

“안 돼. 가자....집에....” 

정리를 하다 보니 진욱 형과 세희가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 

“오늘만 저희 집에서 같이 잘게요. 오랜만에 할 이야기도 많고.....” 

미나가 거들었다.

모든 사람들을 보내고, 카페 문을 닫았다. 

조금 전까지 카페를 환하게 밝히던 불을 껐다.

그러자 그 행복했던 오늘의 파티가, 

달콤한 꿈같이, 

어둠속에 한꺼번에 사라져버린 것 같은, 

너무나 허탈한 기분이었다.

방으로 들어갔다. 

깔끔하게 정리된 침대 위 이불속에 아내가 가지런히 누워있었다.

아내를 처음 품던 오래전 그 날....

내 마음이 한없이 떨리던 그때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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