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12화 (112/177)

Depravity (4)

[오빠...여보....]

아내의 나지막한 목소리가 내 귓가를 간지럽혔다. 

침대 위, 아내의 몸이 내게 바짝 붙어있었다. 아내의 허벅지가 내 다리위에 살포시 올려져 있었고, 아내의 맨가슴 꼭대기에 부풀어 오른 유두가 내 어깨에 닿아 있었다.

[응?]

[오빠.....우리.....호주가서 살까요?]

나는 천정을 향해 있던 몸을 돌려 아내에게로 돌아 누웠다.

[호주?]

[네. 호주.....우리 거기 가서 살까요?]

따뜻한 눈으로 나를 응시하던 아내의 긴 속눈썹이 부드럽게 몇 번 깜빡였다.

[학교서 애들 가르치는 거 힘들지? 요즘 애들 우리 때와는 다르게 보통 아니라고 하더라......]

[아니....그냥 조용한 곳에서 오빠하고 둘이 살고 싶어요. 대학 때 호주 연수 갔을 때가 요즘 많이 생각나요.

매일 빡빡한 스케줄 따라 강의 듣다가 힘들 때, 시드니하버에 가서 거리공연을 보곤 했어요. 거기서 몇 시간을 그러고 나면 다시 마음이 편해졌어요]

나를 바라보는 아내의 커다란 눈망울 속에 아내가 말한 그곳이 펼쳐져 있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아내가 눈을 한번 깜빡이자 비가 내린 듯, 방금 보이던 시드니하버 거리가 젖어 있었다. 

[그럴까? 우리 그럼 그리로 갈까?]

[카페는요?]

[카페는.....미나.....있잖아......음....

당신이야 거기서 하던 대로 애들 가르치면 되겠지만, 

내가 문제네. 하지만 걱정 마. 

나도 적당한 일 찾아보며 되지 뭐...]

아내가 내게 꼭 안겨왔다. 

[오빠.....1년만......우리 반애들.....2학년 올라갈 때 까지만....우리 그때 까지만......]

숲속 가랑비 같은 아내의 예쁜 목소리가 아련히 들려왔다.

3주전 아내를 그 카페에서 데리고 나온 그날 밤, 아내가 내게 했던 말이 계속 떠올랐다.

우리 집 지하 주차장에 도착한지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나는 여전히 운전석에 앉아 있었다.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지 기억도 잘 나지 않았다. 

맞은편에 조용히 멈춰 있는 아내의 하얀 승용차가 보였다.

조수석에 내팽개쳐져있던 스마트폰이 흔들렸다.

[아이고....김 사장님.

제가 큰 실수를 했습니다.

최 약사님한테 이야기 들었어요.

나는 그것도 모르고

정말 미안합니다....]

장 실장의 문자메시지였다.

스마트폰 시간이 방금 27분으로 바뀌었다. 오후 10시 27분..... 

힘겹게 현관 번호키를 누르고 거실에 들어갔지만 집안은 쥐 죽은 둣 고요했다.

하지만 익숙한 아내의 향기와 더불어 처제의 향이 거실에 진하게 머물러 있어 비로소 안심이 되었다.

침실 문이 열렸다.

“오빠!”

아내가 방금 전 샤워를 하고 드라이를 했는지 우아하게 흔들리는 그 머릿결에 옅은 수분이 스며있었다. 

“그래...좀 늦었지?”

“저녁은요?”

아내는 걱정이 되는지 내 앞에 바짝 다가와 물었다.

“먹었지...처제하고 맛있는 거 먹었어?.......처제는?”

아내의 갈색 동공이 조금 크게 열렸다가 원래대로 돌아갔다.

“우린 잘 먹었어요.......은설이 자요. 몸이 좀.....안 좋데요....”

“많이 안 좋아? 

“아니요. 그냥 몸살 같아요.......오빠 주려고 거기서 포장 해온 거 있는데.....오빠 먹을래요?”

아내가 서둘러 주방으로 향했다.

하지만 나는 거실을 지나쳐 곧장 작은방으로 향했다. 

어느새 내 손에 작은방 손잡이가 쥐어져 있었지만......나는 차마 그 문을 열 수가 없었다.

침대 위 잠들어 있는 아내의 얼굴이 유난히 피곤해 보였다. 그 모습이 안 돼 보여 아내의 이마를 짚어 열이 있는지 확인하고, 아내의 뺨을 몇 번 감쌌지만 아내는 깨어나지 않았다.

드레스 룸에 있을 아내의 분홍색 캐리어를 열어 보고 싶었지만, 움직일 수 없었다. 

힘든 건, 몸이 아니라.....정신이 한발자국도 움직일 수 없을 만큼 무엇인가로 꽉 막혀 있었다. 

노란 불을 밝히던 침대 곁 키다리 스탠드를 껐다.

[참 신기해요. 우연이란 게 말이죠. 그날.....

차도 하나 다니지 않던 그 새벽, 시골 국도에서...

치우 씨가....그 시간에 그곳을 지나가고.....

나를 도와줬다는 게...]

들릴 듯 말 듯, 귓가에 속삭이는 어느 여자의 목소리에 눈이 떠졌다.

아내는 내게 등을 돌린 채, 색색거리며 잠들어 있었다.

2층 건물에서 내려다보던 학교 주차장.....그리고 지하주차장에 서있던 아내의 차가 계속 떠올랐다.

아내의 차 속을 몰래 들여다보고 있을 그것이, 연속 저장할 수 있는 한계가 평균 5일이다. 

엘리베이터가 지하 주차장에 도착해 문이 열리는 순간 그 앞에 한 사내가 서있었다.

“어이구.....안녕하세요. 새벽부터 어디가십니까?”

아내가 항상 이것저것 살갑게 챙겨주던 경비 아저씨였다. 

“아...안녕하세요. 차 정리 좀 하려고요.....”

“지금요?........아...그러시구나....”

순찰을 돌던 경비아저씨가 머리를 갸웃거리더니 내게 인사를 하곤 엘리베이터를 타고 이내 사라졌다. 

주차장엔 입주자들의 차들로 가득 차 빈공간이 잘 보이지 않았다.

아내의 차 뒷자리에 올라탔다.

뒷자리 정중앙 시트 가장 놓은 곳에 박혀 있는 로고가 보였다. 시트를 앞으로 당겨내 담뱃갑만한 검은 플라스틱 박스에서 마이크로SD 카드를 빼어냈다. 

내 스마트폰에 그 마이크로SD 카드를 꼽아 놓고서 한동안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새로 열린 폴더에 10분 간격으로 쪼개어 녹화되어 있는 가장 오래된 파일, 첫 번째 파일의 저장 시간을 확인하고 실행했다.

운전을 하고 있는 아내의 뒷모습이 보였다.

통화 연결 음이 들렸다.

[응. 은비야!]

내 목소리였다.

[오빠. 나 지금 마쳤어요. 카페에 도착하면......5시 조금 넘을 거 같은데요. 오빠 뭐 먹고 싶어요? 거기서 오빠하고 애들하고 같이 먹게요]

[음....피자? 갑자기 피자 먹고 싶은데.....블랙타이거 슈림프 어때?]

[어머! 어떡해. 나도 그거 생각했거든요. 나 이럴 때 보면 너무 신기해.......호홋....]

며칠 전 아내가 퇴근길에 사온 피자를 처제와 미나가 맛있게 먹던 것이 떠올랐다. 

나와 통화하며 깔깔대는 아내의 소리가 한동안 차에 울려 퍼졌다.

저장된 파일 시간을 하나씩 확인했다. 

그리고......그 시간을 찾아냈다.

차 문이 열리는 찰칵 거리는 소리와 함께 영상이 시작되었다.

어둠이 깔린 시간이었다. 정면에 노란 가로등불 빛, 아내의 학교 뒷건물이 보였다. 

왼쪽 끝에서 회색 투피스 정장을 입고 백을 든 여자가 다가왔다. 

아내였다.

차 문이 열리고 아내가 운전석에 올라탔다.

[휴우.,,,,,]

깊은 한숨이었다.

아내가 스마트버튼을 누르자 엔진이 켜지면서 동시에 환한 라이트가 정면 건물 벽면에 쏘아졌다.

잠시 머뭇거리던 아내가 사이드브레이크를 풀려는 순간,

정면에 한 남자가 급히 지나가더니 조수석 문이 벌컥 열렸다.

순식간에 누군가가 조수석에 올라타 있었다.

[박 선생님! 지금 뭐하시는 거예요?]

아내의 다소 신경질적인 목소리가 그를 향했다.

[아이....이 선생. 한참 이야기 하다가 그렇게 가면 어떡해요.....]

[박 선생님. 저는 더 이상 박 선생님하고 할 말이 없어요]

아내의 목소리가 떨렸다.

[이 선생. 자꾸 이러지 말고.....좋은게 좋은거 아닙니까.......내가 지금 좋게 이야기를 하잖아요]

어두운 벽면을 때리던 환한 불빛이 부담스러웠는지 아내가 시동을 껐다. 그러자 화면이 어둡게 변해 노란 가로등 불빛만이 화면에 가득 찼다.

차 속에 잠시 침묵이 흘렀다. 남자의 얼굴이 움직이더니 운전석에 앉아 있는 아내를 향해 있었다.

[이 선생. 좀 솔직해 집시다. 나도 이 선생에 관한 소문 들어서 다 알고 있어요. 

대학 다닐 때, 이 선생이 교수하고 만나고 둘이 술 마시고.....연애하고.....그래서 학점 잘 받고.....유학까지 갔다는 거....이거 모르는 사람 우리학교에 아무도 없어요. 다 알아요....다...

이 선생 학교에 옷 입고 오는 거나, 하는 행동 보면......그런 소문 몰라도 남자라면 이 선생이 어떤 여잔지 알 수 있어요]

순간, 조용하던 차에 옅은 아내의 숨소리가 가빠졌다. 하지만 아내의 시선은 여전히 정면을 향해있었다.

[나는 이 선생이 발랑까져서.....아니아니....미안.....그렇게 했다고 해도 이해를 해요. 왜냐하면 이 선생도 알다시피 학교에 있으면 별의별 일들이 벌어지잖아요.

양 선생 처음 우리학교 왔을 때....그 여자 어쨌는지 알아요? 순진한 건지 알면서 모른 척 하는 건지 영감들이 회식에 부를 때 마다 꼬박꼬박 가서 뒤치다꺼리하더니...

교장이고 교감이고......술자리 끝나고 양 선생 안 건드린 선배들이 없었어요. 돌아가면서 그랬다니까요. 

심하게 말하면....학교에서 양 선생 안 건드린 남자들이 없을 정도였어요. 양 선생도 술만 마시면 취한건지 그런 척 한 건지 따라갔고....

그렇게 해서 윗사람들한테 이쁨받고......위에서 오냐오냐하니까. 지금 양 선생이 그 모양이지만....]

[박 선생님. 지금 무슨 말씀 하는 거예요? 왜 그런 말을.....제게 하는 거죠?]

정면을 향하던 아내의 시선이 조수석을 향했다. 

[하하하......이 선생. 학교에 있다 보면 결혼을 했던 안했던 매일 매일 보는 동료들하고 정도 쌓이고, 그렇게 되다보면 이성으로써 감정이 생기게 되고.....데이트도하고 연예도하고....몰래 만나 잠자리도하고....

이 선생은 아는지 모르겠지만 우리학교에도 그런 사람들 수두룩해요. 

작년에 3학년 주임 김 선생이 자기 밑에 왔던 교생하고......대낮에 미술실 잠가놓고 그 짓하다가 수위한테 걸려서 난리 난 적도 있어요.

뭐...나는 그런 거 나쁘다고 생각 안 해요. 선생들 싸가지 없는 애새끼들한테 시달리다가 정신병 걸릴 정도고.......스트레스 풀 때도 없고...

내가 이 선생한테만 고백하는 건데.....딱 깨놓고 나도 그래요.

예쁘장한 교생들 오면 연구수업 준비한다고 밖으로 불러내서 데이트하고 모텔가고......요즘 젊은 애들은 시원시원하두만......기브앤테이크가 확실해. 하하하.... 

그리고 요즘 젊은 엄마들 얼마나 유별난지........식사 대접한다고 불러놓고, 자기 애 잘 부탁한다고 몸으로 정성을 다하는 경우가 한두 번인지 알아요? 

이 선생도 알겠지만, 내가 와이프하고 애들 캐나다로 보내놓고 혼자 지내는 게 얼마나 지루한 건지 잘 알겁니다.

나는 이 선생이 마음에 너무 들고, 그리고 서로....좀 더 친해지고 싶어서 이러는 거잖아요. 

그리고 이 선생도....]

[내려요. 당장!]

아내의 목소리가 이전과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둘의 시선이 멈춘 듯 서로를 향해 있었다.

[이 선생. 자꾸 나한테 이렇게 계속 쌀쌀맞게 굴래요?]

[박 선생님! 지금 무슨...]

[이 선생. 너.....애인 있지?]

아내의 눈가가 찌푸려졌다.

[지난번 회식할 때 데리러온 남편 보니까 훤칠하게 괜찮던데.....결혼 한지 일 년도 안돼서...그럼 쓰나.....여 선생이.....]

[네?]

남자의 얼굴이 아내가 앉아 있는 운전석으로 바싹 다가갔다.

[이 선생 애인 있잖아. 우리 조용한데 가서 술이나 마시면서 마저 이야기 합시다.......]

남자가 운전석 쪽으로 몸을 완전히 돌려 오른 손이 천천히 아내가 앉아 있는 곳으로 향했다. 

그리고 잠시 후 뭔가 사각 거리는 소리가 작게 들리기 시작했다.

[오늘 이 선생한테 할 말도 많고.....그리고 둘이.....]

남자의 숨소리가 떨렸다. 

남자의 손이 아내의 허벅지.....허벅지를 감싸고 있는 스타킹 위를 쓰다듬고 있는 것 같았다.

표면이 거친 천 조각을 쓰다듬는 듯한.......그 사각거리는 그 소리가 시간이 지날수록 조금씩 잦아지고....대담해져 갔다. 

[이 선생 자꾸 이러지 말고 우리 친하게 지냅시다. 응?]

어디인지 불명확 하지만.....아내는 자신의 몸 어딘가를 쓰다듬는 남자의 손을 말없이 그냥 내버려 두고 있었다.

남자의 얼굴이 이젠, 아내의 어깨 바로 옆까지 가깝게 다가가 있었다.

[이 선생. 저기 수위아저씨 온다. 저 새끼 하도 말이 많아서.....나는 별 상관없는데......이 선생은 괜찮겠어요?]

시동이 걸리고 헤드라이트가 번쩍 켜졌다.

아내의 차가 앞으로 나아가더니 왼쪽으로 크게 회전을 했다.

수위복을 입은 사내가 아내의 차를 확인하곤 머리를 숙여 인사를 했다.

아내의 차는 말없이 그를, 빠른 속도로 지나쳐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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