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ndrance (10)
[자네 지금 이게 말이 되는 상황이라고 생각하나? 어기가 어디라고 함부로 찾아와!!!]
[우리 은비하고 만난 지 얼마나 됐다고? 5개월? 그런데 결혼 이야기가 벌써 나온다는 게 말이 되나? 은비야 어리고 철이 없다고 치더라고 자네는 말렸어야지.
자네는 20대 철부지가 아니잖아. 이렇게 불쑥 집으로 찾아오는 행동은 도대체 어느 집안 가풍이야? 그리고 자네 지금 뭐 한다고? 커피숍? 내가 기가 차서....]
결혼을 허락받기 위해 아내의 집을 처음 찾아 갔던 그날의 모습이 아련히 떠올랐다.
나에게 역정을 내시는 아버님의 얼굴과 목소리가 불과 며칠 전의 일처럼 생생하게 기억났다.
붉게 상기된 얼굴로 나에게 소리를 치던 아버님의 그 목소리가 통증으로 가득 찬 머릿속에 계속 반복되어 울렸다.
눈물이 핑 돌았다.
그날, 자리에 다소곳이 앉아 입술을 파르르를 떨며 흐느끼던 그때의 은비의 모습도 그려졌다.
그리고 파타야에서의 약혼 여행....
석양이 질 무렵 수십 척의 알록달록한 요트가 떠있는 파타야 비치를 호텔 룸에서 내려다보며 변치 않을 사랑을 끊임없이 내게 속삭였던 은비......
그리고 은비의 토트백을 낚아채 달리던 피부가 까만 소년을 쫓아가 가방을 찾아 멋쩍게 웃으며 우리에게 다가오던 황 경태의 얼굴이 내 시야를 가득 채웠다.
갑자기 머리가 깨어질 듯 아팠다.
“씨발쌔끼....”
옆에 숨죽여 있던 진욱 형이 놀라 나를 바라봤다.
“야...치우.....너...괜찮아?”
카페 가장자리 끝에 앉아 있던 아내가 이쪽으로 고개를 천천히 돌렸다. 거대한 유리창을 통해 아내의 얼굴이 완전히 드러나 보였다.
아내의 얼굴은 생기라고는 찾아볼 수 없을 만큼 섬뜩할 정도였다. 테이블위의 하얀 커피 잔은 직원이 놓아둔 모습 그대로였다. 아내는 그것을 입도 대지 않았다.
그 대신.
아내의 불안한 시선이 이쪽저쪽으로 옮겨다니고 있었다.
깔끔한 남색 정장에 까만 스타킹을 신고 있는 아내는 여전히 너무나 돋보였다. 하지만 내가 보기엔 오늘의 아내의 모습은 예전에 내가 알던 아내가 아니었다.
겁에 질린 듯, 그리고 초초하게....주위를 둘러볼 뿐이었다.
항상 당당하던 아내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처음 보는 아내의 모습이었다.
“저기....약 있어요? 두통약? 머리가......”
“어? 많이 아파?”
그가 승용차 뒷자리에 있던 가방을 가져와 뒤적였다. 그 속엔 수많은 약들이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그는 그중에 하나를 꺼내 내게 전해주었다.
아스피린이었다.
나는 서둘러 약을 까서 2개를 입에 털어 넣었다.
그는 아무 말 없이 걱정스런 표정으로 나를 유심히 보고만 있었다.
“치우야. 우리 계획대로 하면 된다. 너무 걱정하지마라.”
그가 말한 계획이 무엇인지 갑자기 기억이 잘 나지 않았다.
불안한 시선으로 주위를 살피던 아내의 시선이 한쪽을 향해 있었다. 그곳은 카페와 연결된 호텔로비로 통하는 통로였다.
유리로 된 아치형의 통로,
그곳에서 사람들이 카페로 들어오거나, 카페에 있던 사람들이 그 통로로 호텔 쪽으로 자유롭게 이동하고 있었다.
“치우야. 아마도 그 새끼 저 호텔에 묵는 모양이다.”
아내의 시선을 따라 그곳을 보던 진욱 형이 나지막이 말했다.
아내가 테이블에 있던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리곤 잠시 후, 두 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감싸다. 아내가 지금 울고 있는지 아닌지는 멀리선 분간할 순 없었다.
하지만 아내의 새하얀 두 손이 얼굴을 떠날 때.....아내의 한쪽 뺨이 조금 전보다 붉어진 것은 분명해 보였다.
“치우야. 이것밖에 방법이 없다. 힘들겠지만.....조금만 견뎌라....우리 계획대로 되면 모든게 좋아 질 거야.....”
카페에 있던 몇몇 남자들이 하이힐 위 다리를 모으고 다소곳이 앉아 있는 아내를 흘끔흘끔 쳐다봤다.
아내는 누군가 자신의 테이블 옆을 지나갈 때 마다, 깜짝 놀라며 그들을 경계하듯 바라봤다.
아내가 이젠 미지근히 식어 있을 커피 잔을 들고 한 모금 마셨다.
아내는 오늘 그를 만난다.
그리고 지금 저기, 카페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다.
[아....으아.......으아.......은비야......]
조수석에 있던 아내의 몸에 올라타 있던 황 경태가 몸을 부르르 떨었다. 아마도 마지막까지 남아 있던 정액을 아내의 몸속에 모두 쏟아내려는 것 같았다.
거칠게 흔들리던 차가 고요해지고도 한동안 황 경태는 아내의 몸 위에 바짝 붙어 그렇게 올라타 있었다. 그에게 깔려 있는 아내는 눈을 꼭 감은 채, 아무런 미동도 없었다.
가죽시트가 부스럭 거리더니 황 경태가 운전석으로 돌아와 있었다. 그러자 벌어져 있던 아내의 다리가 힘없이 천천히 아래로 내려왔다.
아무렇게나 풀려진 블라우스 사이로 아내의 가슴이 완전히 들어나 있었다. 방금 전까지 빨린 젖꼭지는 황 경태의 침으로 번들거렸고 여전히 빳빳하게 서있었다.
[은비야. 말도 없이 그냥 안에 싸서 미안하다]
황 경태가 차에 있던 티슈를 여러장 뽑아 자신의 정액으로 젖어 있는 아내의 속살에 가져가 몇 번 닦아냈다. 그러자 아내는 몸을 움츠리며 그의 손길이 닿지 않게 다리를 완전히 오므렸다.
[결혼한 몸인데 임신하면 안 되잖아. 오늘 위험한 날이면 내일 병원가고.....다음에는 너 생리 일정 보고 괜찮을 때....아니면 니가 피임약을 먹던지....]
운전석으로 넘어간 그는 여전히 바지를 입고 있지 않았다. 자신의 정액과 아내의 애액이 뒤섞여 하얗게 변한 성기를 천천히 쓰다듬고 있었다. 이미 사정을 했음에도 그의 성기는 위쪽으로 고개를 쳐들고 있었다.
[아직 급한 일 마무리할게 있어서 태국으로 넘어가야한다. 너하고 며칠 더 지내고 싶은데 아쉽지만, 그럴 수 없어.
대신....
매일아침 니가 학교에 출근할 때 사진 찍어서 나한테 보내. 매일 아침 그걸 보면 내가 조금 견딜 만 할 것 같다.
은비야? 알았지?]
그의 말에 아내는 아무런 대꾸도 없었다.
[은비야. 잘 생각해라. 너도 이제 내가 어떤 인간인지 잘 알거야. 수틀리면 내가 어떤 식으로 나갈 건지......니가 상상할 수도 없을 정도로.....
학교에 니 사진이나 동영상 보내는 거 따위는 장난이야. 쥐도 새도 모르게 니가 아끼는 사람을 죽여 버릴 수도 있어. 니가 가장 아끼는 사람.......]
[흐읍.....]
조수석 시트에 눈을 꼭 감고 있던 아내의 입에서 깊은 숨소리가 한번 새어나왔다.
[내가 바라는 건 오랫동안 너와 이런 식으로 지내는 거다. 니가 나한테 온다면 좋겠지만, 그건 힘 들겠지. 치우 녀석 때문에.....
모든 게 니가 하기 나름이야. 우리 모두가 잘 지낼 수 있는 방법은 모두 너한테 달렸어. 그러니까 서로 피곤하게 괜한 자존심이나 고집 부리지 말고.......]
황 경태가 손을 뻗어 아내의 젖가슴을 쓰다듬었다. 아내는 처음 그의 손이 가슴에 닿을 때 한번 움찔거렸지만, 더 이상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황 경태는 아내의 가슴과 허벅지를 사이를 자유롭게 만져댔다.
한 동안 차에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운전석 문이 열리고 황 경태가 밖으로 빠져 나갔다.
아내의 몸이 천천히 움직였다.
자신의 허벅지 위에 놓여 있던 티슈로 젖어 엉망이되 있는 자신의 몸속을 닦아 냈다.
[흐흐윽......흐윽......]
그제야 간신히 참아왔던 울음이 아내의 입에서 터져 나왔다.
시간이 지날수록 카페에 앉아 있던 아내의 행동이 더욱 불안해 보였다. 고개를 돌려 주위를 둘러보는 횟수가 이전보다 눈에 띄게 늘어났다.
나는 앞에 달려 있던 썬가드를 내려 작은 사각 거울에 비친 내 얼굴을 바라봤다.
내 눈가가 빨갛게 변해있었다.
나는 몰려있는 붉은 핏빛 피부를 풀기위해 손으로 눈 주위를 몇 번 부드럽게 어루만졌다.
차 문을 열었다.
“야! 치우야!”
그가 나를 불러 세웠지만, 나는 그대로 차 문을 닫았다. 카페 창가엔 여전히 혼자 앉아 있는 아내의 모습이 보였다.
“김 치우!!!”
그가 창문을 열었는지 그의 목소리가 차에 있을 때 보다 더욱 또렷하게 들렸다.
한발씩 발걸음을 내딛었다.
아내의 시선이 호텔과 연결된 그 통로로 향해 있었다.
나는 카페 뒤를 돌아 호텔 로비로 올라갔다.
체크인을 하려는지 몇몇 관광객 무리가 리셉션 데스크 앞에 서서 호텔 직원과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호텔 로비를 통과하고 아치형의 통로에 들어설 때, 내 결심은 더욱 명확해 졌다.
‘더 이상 속일 수 없다....’
아치형의 통로 중간쯤 왔을 때, 끝에 있는 가장자리 창가가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아내의 테이블과......그곳에 앉아 있는 아내의......얼굴이....
아내의 시선이 나를 향해 있었다. 멀리서 아내의 표정까지는 확인 할 수 없었지만....백지장 같은 창백한 얼굴인 것은 분명했다.
카페 입구를 지나고 넓은 홀을 한발씩 나아갈 때 마다 나를 보던 아내의 표정이 선명해졌다.
아내는 마치 귀신이라도 본 듯 그렇게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내가 내 표정을 확인할 수 있을 때 즈음 나는 활짝 웃어보였다.
그러자 아내의 입술도 나와 같이 천천히 올라갔지만, 한없이 사랑스럽던 눈웃음은 찾아 볼 수 없는 부자연스러운 미소였다.
“은비야. 너 여기서 뭐해?”
“오빠......”
아내가 입술을 적시며 내게 말했다. 아내의 숨소리가 고르지 않았다.
“승호가 오늘 여기 호텔에서 세미나 있다고 밥같이 먹자고 하더라고.....그래서 와서 밥 먹고....같이 있다가 여기 카페 유명하다고 해서 한번 둘러보러 왔지.”
초점 잃은 아내의 커다란 눈동자가 하염없이 떨리기 시작했다.
“멀리서 보니까 당신 같아 보여서....혹시나 했는데....맞구나....”
“아....저는.....오늘 빨리 마쳐서....다인이...다인이 만나러 왔어요.”
아내의 목소리 또한 몹시 떨렸다. 아내도 떨리는 자신의 목소리를 알아 차렸는지 당황해 울어버리기 일보 직전이었다.
“다인 씨는?”
“만나고.....갔어요.”
“그래? 그럼 우리....오랜만에 둘이 데이트하자....”
“네?”
나는 테이블위에 가지런히 올려져 있던 아내의 한 손을 잡아 끌었다.
아내의 손이 땀으로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나는 스마트폰을 열어 전화를 했다. 아내는 내가 이끄는 곳으로 말없이 따라왔다.
[그래...승호야]
[치우야.....너......]
진욱 형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 여기 호텔 옆에 카페에서 은비 만났어. 나 먼저 갈게.....밥 잘 먹었다]
[치우야. 너 어떡하려고....]
[그래그래. 내일 가게로 와.....내일 보자]
카페 밖으로 나오자 찬바람이 몇 번 불어 다행히 흠뻑 젖어 있던 아내의 손이 금방 말라갔다.
멀리서 진욱 형이 타고 있는 승용차가 보였다. 짙은 선팅 때문에 차 내부가 깨끗하게 보이진 않았다.
“여보. 차 어디 있어? 내가 운전할게...”
아내는 말없이 백에서 스마트키를 꺼내 내게 내밀었다.
아내의 얼굴이 핼쑥했다. 아마도 점심도 제대로 먹지 못한 그런 얼굴이었다.
아내가 기운을 차릴 수 있도록 무언가를 빨리 먹여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우리가 도착한 것은 시내에 있는 유명한 삼계탕 집이었다. 아직 저녁때가 되지 않은 이른 시간이여서인지 테이블이 많이 비어 있었다.
몹시 불안해하던 아내의 표정이 조금씩 풀려가는 듯 했다. 아내는 자리에 앉아 말없이 나를 한동안 뚫어져라 바라봤다.
아마 내가 아내에게 그런 것처럼 아내도 내게 할 말이 있는 것일까?
아내는 뜨거운 삼계탕을 호호불어 조심스레 몇 번 입에 넣었다. 그러자 백지장 같이 창백했던 아내의 얼굴에 붉은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여보....은비야.....아프지마.....내가 모든 걸 털어놓을게.....니가 더 이상 고통 받지 않고 자유로울 수 있도록....’
굳게 다짐했던 결심이.....
또 다시 흔들리고.....또 다시 흔들리고.....있었다.
스마트폰이 반짝였다.
[치우야. 괜찮니?
나....그 새끼 봤다.
니가 은비 씨 데리고 나갈 때...
그 새끼가 숨어서 다 보고 있었어...
그 새끼가............]
진욱 형으로부터 온 파일이 첨부된 장문의 메시지였지만, 더 이상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오빠....”
아내가 잘 발라낸 닭 가슴살을 집어 내게 내밀었다.
아내의 얼굴에, 내가 사랑하던 그 찬란한 미소가 완전히 돌아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