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ndrance (9)
온몸이 녹초가 되어, 침대 속으로 내 몸이 한없이 떨어져 내리는 기분이었다.
아득했던 정신은 서서히 돌아오고 있지만, 여전히 움직일 수도 눈을 뜰 수도 없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아내는 차안에서 한참동안 내게 봉사했다. 아내는 절대 서두르지 않고 내가 천천히 즐기며 사정할 때 까지 그 부드러운 입놀림을 멈추지 않았다.
아내의 입속에 한차례 사정을 하고, 집에 들어오자마자 우리는 다시 거실에서 뒤섞였다.
거실은 아내와 내가 입고 있던 옷들이 아무렇게나 내팽개쳐져 있었고, 몸이 땀으로 범벅이 되어 거실 바닥에 비 오듯 떨어져 내릴 때 까지 정신없이 서로를 탐했다.
마치 오랫동안 섹스에 굶주린 수컷과 암컷처럼....
내 성기가 아내의 몸속에 깊숙이 들어가 박힐 때 마다, 동영상에서 봤던 아내의 찌푸려진 얼굴이 계속 떠올랐다.
어떻게 샤워를 했는지 언제 침실로 들어와 잠들어 버린 건지 기억나지가 않는다.
몇 번의 노력 끝에 잠겨 있던 눈꺼풀이 조금씩 열렸다.
감각이 서서히 돌아오자 이상한 냄새가 났다.
탄내가 났다.
악취와 뒤섞인 무엇인가 타는 냄새가 났다.
내 손을 꼭 잡은 채 잠들어 있는 아내의 보드라운 손이 느껴졌다.
아직 새벽인지 창가를 통해 새파란 빛이 연하게 새어 들어와 침실의 형체들이 천천히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아!!!!]
분명히 소리를 질렀는데 다시 내 귀로 들려오지 않았다.
아내의 배위에 누군지 알 수 없는 검은 형체가 서있었다.
가슴을 터지듯 두드려대는 내 심장 소리가 진공관처럼 내 몸을 흔들어 댔다.
여자였다.
발목 조금 위까지 오는 찢어진 새 까만은 드레스를 입은 여자가 아내 배위에 서서 아내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여자의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더럽게 서로 뭉쳐진 검은 머리칼이 아래로 길게 늘어트려 진 채, 여자의 얼굴을 완전히 감싸고 있었다.
검은 드레스는 새까만 흙이 묻어서인지 아니면 불에 타서 그을린 것인지 분간할 수 없었다.
[여보!!! 은비.....은비야!!!]
내지른 고함소리가 또다시 공허하게 뭉개졌다.
내손을 꼭 잡고 잠들어 있는 아내의 손을 다급하게 흔들었다. 하지만 아내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좀 전까지만 해도 따뜻했던 아내의 손이 갑자기 얼음장 같이 식어 있었다.
아내의 몸 위에 올라서 있던 그 여자가 공중에 뜬 채, 서서히 내가 있는 오른쪽으로 이동했다.
[아.....아....]
더 이상 움직일 수도 소리 낼 수도 없었다.
여자가 내 배위에 천천히 내려앉자 숨을 쉴 수 없었다.
여자의 길고 새까만 발톱이 보였다. 여자의 머리에서 흑색의 구정물이 내 몸 위로 하나둘씩 떨어져 내리기 시작했다.
여자의 검은 눈이 똑바로 나를 향해 있었다.
여자의 입이 천천히 벌어져 소리 없이 미친 듯이 웃기 시작했다.
[으아악!!!!!]
처제와 미나가 카페 창가에 딱 달라붙어 앉아 따스한 햇볕을 맞으며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둘은 동갑이고 수시로 연락을 할 정도로 원래 친했지만, 미나의 집에서 함께 보낸 하루 밤사이 더욱 친밀해진 것 같았다. 마치 사이좋은 친 자매처럼....
매일 그랬듯, 일상처럼 카페에 오는 손님을 받고, 커피를 내리고, 안부를 물어오는 그들과 간간히 웃으며 이야기를 했지만 내 머릿속은 다른 생각들로 가득 차 있었다.
“처제...”
Bar 안쪽에서 접시를 닦던 처제를 불렀다.
“네?”
“어제 오후에 말이야....저기 창가에 왔던 손님......여자들 5명.....생각나?”
“아....네. 왜요? 아시는 분들이에요?”
“아니...그게 아니라....그때 나이 좀 들어 보이는 여자가 처제한테 뭐라고 하던 것 같던데......그냥 궁금해서....”
잠시 동안 의아한 눈빛으로 처제는 나를 봤다.
“음.....그 여자 분이 언니 있냐고 해서요. 그렇다고 했어요. 저하고 똑 닮은 사람을 예전에 본적이 있다고 그래서 물어본다고......근데 그건 왜요 형부?”
처제의 물음에 나는 대수롭지 않은 듯 그냥 고개만 몇 번 가로저었다.
오후 2시...
[오빠. 오늘은 빨리 들어갈게요. 우리 집에서 은설이하고 맛있는 거 해먹어요]
아내를 학교에 바래다줄 때, 웃으며 말하던 아내가 떠올랐다. 아내의 얼굴은 간밤의 기억조차 나지 않는 뜨거웠던 섹스 때문인지 평소완 달리 조금 까칠하게 변해 있었다.
스마트폰이 달그락 소리를 내며 떨렸다.
[아저씨! 안녕하세요. 저 윤 승현인데요]
아내의 옆 반. 그 녀석이었다. 나는 잠시 고민하다 녀석에서 답장을 보냈다.
[그래. 승현아 안녕]
[헤헤헤.....근데요. 지금 영어 수업중인데요.
이 은비 선생님 말고 다른 영어 선생님 들어왔어요]
[응? 그게 무슨 말이야?]
[지금 들어온 선생님한테 물어보니까요.
이 은비 선생님 아파서 조퇴 했대요.
오전에 복도에서 선생님 만나서 인사했는데...
그때는 괜찮았는데....
아저씨가 걱정하실까봐 연락했어요]
스마트폰 자판을 두드리던 내 손이 조금씩 떨리기 시작했다.
[그래 승현아. 고맙다.
근데 수업 중에 스마트폰 쓰면 안 된다.
주말 잘 보내라]
[히히히.....안녕히 계세요...]
잠시 얼음처럼 멈춰있던 내손이 다시 분주하게 스마트폰을 터치하고 있었다.
화면에 아내의 전화번호가 띄어져 있었다. 통화버튼으로 거침없이 다가가던 내 손가락이 멈췄다.
내 손가락이 닿은 곳은 통화버튼이 아니라 엉뚱한 곳이었다.
스마트폰에 새 창이 띄워지자 지도가 펼쳐져 보였다. 방향을 찾지 못해 멈춰있던 지도가 순식간에 바뀌고 한 곳을 붉은 점으로 가르치고 있었다.
그 붉은 점이 천천히 움직여 우리 집으로부터 조금씩 멀어져 가고 있었다.
나는 서둘러 카페안쪽 방으로 들어가 급하게 옷을 갈아입고서 다시 홀로 나왔다.
“형부. 어디 가세요?”
처제가 내게 물었다.
“아. 그래. 일이 좀 있어서 잠깐 볼일 좀 보고 올게”
나는 처제의 대답을 듣기도 전에 출입문 쪽으로 향했다.
“오빠!!! 어디가요?”
뒤에서 미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내 차가 멈춰선 곳은 집 주차장이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집으로 올라가는 그 짧은 시간이 유독 길게 느껴졌다.
현관문을 열고 거실에 들어서자 아내의 짙은 향기가 느껴졌다.
조금 전까지 아내가 이곳에 머물렀다는 것을 직감했다.
드레스룸은 멈춰진 그림처럼 매일 보던 모습이었다.
나는 아내와 똑 닮은 예쁜 20인치 캐리어를 떨리는 손으로 열어젖혔다.
없었다.....찾을 수 없었다.
나를 몇 번이고 지옥으로 몰아넣었던 액정에 금이 간 아내의 스마트폰을 찾을 수가 없었다.
나는 멍하니 바닥에 앉아 그 캐리어만 바라봤다.
[움직여야 된다.....빨리 움직여야 된다!!!]
머릿속에서 누군가의 외침이 반복되어 들려왔다.
다시 스마트폰을 열었다.
집에서 멀어지던 그 붉은 점이......이제는 도시 정 중앙을 관통하고 있었다.
그의 번호를 눌렀다.
[그래. 치우야....]
그의 목소리에 잠시 목이 메었다.
[여보세요? 치우야?]
[으음.....접니다]
꽉 막혀 있던 목을 한번 정리하며 그에게 말했다.
[가야될 것 같아요. 지금.....]
[뭐?]
잠시 동안 그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알았다. 지금어디니? 내가 갈까?]
그가 눈치를 챘다.
[아니....내가 그쪽으로 갈게요]
어떻게 도착했는지 벌써 그의 약국 앞에 내차가 서있었다. 조제실 옆에 앉아 밖을 보던 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떻게 된거야? 왔어?......그 새끼......”
약국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불게 상기된 얼굴로 그가 말했다.
“모르겠어요. 아직.....은비가.....”
약국 문을 잠그고 나는 그의 차에 올라탔다. 그리고 스마트폰을 다시 확인했다.
움직이던 붉은 점이 한곳에 멈춰 반짝였다.
그의 운전이 유독 거칠었다. 빠르게 움직이는 차들 속에서 급브레이크를 밟을 때 마다 몸이 앞으로 쏠렸다.
그의 차가 들어선 곳은 도심에서 벗어나지 않은 한 유원지입구였다.
항상 관광객들이 북적이고, 넓은 강을 사이에 두고 좋은 음식점과 카페가 즐비한 곳....그리고 고급 호텔 몇 개와 모텔들이 몰려있는 곳.....
스마트폰 지도의 붉은 점이 바로 앞에 있는 것처럼 가까워져 있었다.
“이 근처인거 같은데.....”
그가 혼자 말을 내뱉었다.
바로 앞에 얼마 전 새로 리모델링한 특급 호텔의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그 호텔과 인접한 곳에 유명한 대형 프랜차이즈 카페 몇 개도 보였다.
그의 차가 속도를 줄여 카페와 주차장 사이를 천천히 이동하기 시작했다.
강이 내려다보이는 통유리로 된 카페 테라스에 주말을 시작하려는 사람들이 띄엄띄엄 테이블을 차지하고 있었다.
“자...잠깐만.....잠깐....”
내 말에 그가 급하게 브레이크를 밟았다.
“왜? 은비 씨 찾았어? 보여?”
그의 목소리 또한 나와 같이 떨리고 있었다.
카페입구와 조금 떨어진 강 쪽에 주차선에 하얀 준중형 승용차가 눈에 들어왔다.
아내의 차였다.
“후진해요. 뒤쪽에 주차해요. 저기 입구에 은비 차....”
차가 급하게 후진하여 아내의 차가 주차해있는 곳과는 반대방향 제일 끝에 멈춰 섰다.
붉은 빛을 띤 목조로 지어진 카페를 찬찬히 둘러봤다. 테이블에 자리 잡고 있는 여자들만을 세밀히 훑어 봤지만 아내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벌써....다...다른데 들어간 거 아니야?”
한동안 조용히 카페 쪽을 둘러보던 진욱 형이 매우 조심스럽게 내게 말했다.
그의 말에 카페 반대쪽을 바라봤다.
카페와 연결된 아치형 통로가 보였다. 그곳은 바로 옆에 자리 잡고 있는 특급호텔 1층 로비와 연결되어 있었다.
아내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차에서 내려 아내를 찾아다닐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아내가 자신을 찾고 있는 나를 보게 된다면.....
시간이 조금씩 흘러가자 입이 바싹바싹 말라왔다. 10여분도 안 되는 어찌 보면 짧은 시간이었지만, 내겐.......처참했던 어느 날의 하루 같이 길게 느껴졌다.
그때.
“치우야! 저기.....은비 씨 아니야?”
내 시선이 서둘러 그가 향해 있는 곳을 향했다.
카페 가장 끝 가장자리....창가에 한 여자가 자리를 잡고 앉는 모습이 보였다.
남색 정장,
검은 스타킹,
그리고, 움직일 때 마다 부드럽게 어깨 넘어 흘러내리는 짙은 갈색 머리....
아내였다.
나도 모르게 입술을 꽉 깨물었다.
“치우야. 지금 니 심정 이해한다. 침착해....침착해라.....”
나를 바라보는 그의 뜨거운 눈빛이 느껴졌지만, 내 시선은 테이블에 홀로 앉아 있는 아내의 얼굴에 고정되어 있었다.
아내의 행동 모두가 부자연스러웠다.
무엇인가를 경계하듯 주위를 자꾸 둘러보는 아내의 얼굴이...
불안해하는 아내의 얼굴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