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5화 (105/177)

Hindrance (7)

이미 어둠이 짙게 깔린 도로가 왠지 모르게 쓸쓸하게 느껴졌다. 

꼬리를 밝히는 차들의 붉은 불빛이 삼거리 앞에 길게 늘어져 있었다. 그 삼거리 입구에 있는 진욱 형의 약국만이 이곳과는 다른 세상인 듯 대낮처럼 환하게 불을 밝히고 있었다.

아내가 보내준 메시지를 확인하고 카페에서 출발할 때, 그에게 연락을 할까 하다가 나는 그러지 않았다.

오늘은 아닌 것 같았다.

그와 내가 준비한 그 오늘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루 할만치 신호는 쉽게 바뀌지 않았다.

약국 안쪽에 가만히 앉아 무슨 생각에 잠겨 있는 듯한 그의 얼굴이 멀리서 보였다. 그의 표정까지는 확인할 수 없었지만 아마도 그도 나와 같은 심경일 것 같았다.

차가 움직일 때 마다 내비게이션에서 안내되는 여자목소리가 흘러나왔고 나는 그 소리를 따라 갔다.

[목적지에 도착했습니다]

마침내 마지막 안내 멘트가 흘러나왔다.

내 차가 도착한 곳은 아내가 일하는 학교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의 어느 고깃집이었다. 

주차장은 이미 차들고 빽빽했다.

가장 안쪽 구석자리에 하나 남은 공간에 간신히 내 차를 끼워 넣었다.

유리로 된 2층 건물의 그 고깃집에서 내부를 밝히는 노란 불이 환하게 새어나왔다. 고기집의 규모나 시설을 볼 때 지친 직장인들이 회식을 하기엔 더할 나위 없는 장소 같아 보였다. 

차창을 굳게 닫고 있었지만, 숯불 위 그릴에 구워지는 고소한 소고기 냄새가 벌써 진동하는 것 같았다.

군침이 돌았다.

먹는 듯 마는 듯 했던 대충 먹은 점심 때문에 배고 무척 고팠다.

스마트폰을 열어 며칠 전 깔아두었던 어플을 열었다. 

잠시 후 붉은 점이 한 지점에서 반짝이는게 보였다. 그곳이 가르치는 곳은 아내의 학교였다. 

아마도 아내는 내가 자신을 데리러 온다는 소리에 차를 학교에 두고 이곳으로 온 것 같았다.

노란 빛의 넓은 유리창 넘어 고깃집 1층 내부를 찬찬히 둘러 봤지만, 사람로 북적이는 그곳에서 아내의 얼굴은 찾을 수가 없었다. 

아내를 데리러 온다고 약속을 한 시간은 아직 두 시간이나 남아있었다. 나는 차 실내등을 켜놓고 차 내부를 확인했다.

아내가 처음 내차를 타게 되는 오늘, 혹여나 그날의 흔적 남아 있지는 않을까 하고 걱정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내 차를 처음 탄 사람은 바로 양 선생이었다.

그날, 양 선생의 몸에서 흘러나와 자신의 허벅지를 타고 떨어지던 진한 흔적이 떠올랐다.

시간이 참 더디게 흘러갔다.

시간을 확인할 때 마다 불과 5분.....10분이 지나있었다. 잠깐 눈을 붙여 볼까하고 시도해봤지만 눈을 감아도 정신은 더욱 또렷해져가기만 했다.

고깃집 마당 한구석에 드문드문 사람이 드나들던 간이 천막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차에서 내려 그곳으로 향했다. 의외로 넓은 그 공간 중앙에 가스난로가 켜져 있었고, 몇 사람이 담배를 입에 물고 있었다.

구석에 서서 담배를 한껏 빨아들이니 빈속이어서인지 매캐한 연기에 단번에 속이 쓰렸다. 몇 모금만 피다가 차로 돌아갈 심산이었다.

반 이상 남아 있는 담배꽁초를 재떨이에 비벼 끄려는 순간 조금 소란스레 사람들이 들어왔다.

나는 한 남자의 얼굴을 확인하고는 황급히 뒤돌아섰다. 

“아이고....박 선생님 여기 괜찮네요”

“조 선생 여기 처음이야? 나는 교감하고도 몇 번 왔었는데....”

내 머릿속에는 조금 전 얼핏 본 남자의 얼굴과 이 목소리가 분주하게 매칭되어 갔다.

나는 담배를 입에 문 채, 남자들의 목소리가 들리는 그곳을 슬쩍 돌아봤다. 

세 남자의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불현 듯, 한 얼굴이 떠올랐다.

박 선생....

그날 경주....하얀 테라스가 쳐진 그 술집에서 울고 있던 아내의 어깨를 감싸 안던 그 사내......

“박 선생님. 오늘 정말 간만에 분위기 좋은데 2차는 어디로 갈까요?”

“글쎄....뭐 단란한데 가서 노래나 한 곡하러 가지 뭐....”

“하하하.......우리 이 선생 오늘 무슨 걱정있는지 좀 우울해 보이던데요. 잘됐네요.”

“그야 뭐....양 선생이 복귀하고 나서 또 해코지 할까봐 그러겠지. 근데 양 선생도 좀 이상해. 그렇게 죽일 듯 잡던 이 선생한테 아무 말도 안하고 조용히 있는 거 보면...”

“그렇죠? 양 선생이 뭔가 달라졌죠? 오늘 고기 먹으면서도 별말안하고 조용히 있던데....며칠 아팠다고 하던데, 집에 무슨 일 있었나.....”

“흐흐흐.....이제 학교에 평화가 찾아 왔나보지. 나는 양 선생 그 꼴 안 봐서 살만하다. 

양 선생 지가 며칠 학교 안 나오고, 이 선생이 양 선생 반애들 뒤치다꺼리 다했는데, 지도 양심이 있으면 이제 이 선생한테 뭐라고 못하겠지”

“박 선생님. 오늘 제가 분위기 한번 잘 만들어 보겠습니다.”

“뭘 어쩌려고?”

“요즘 이 선생 때문에 미치겠습니다.”

“왜?”

“학교서 볼 때 마다....이 선생 걸어갈 때, 뒤에서 엉덩이만 봐도.....내가 자주 가는 룸에 22살짜리 에이스보다 훨씬 낫다니까요. 

어제 채점한다고 상담실에 둘이 같이 있었는데요. 사근사근 말하는 거 하고....냄새는 또 얼마나 좋은지.....하마터면 덮칠 뻔했다니깐요.

솔직히 딱 깨놓고 학교에서 이 선생 한번 건드려 보려는 사람들이 한둘입니까? 어떻게 소문났는지 오죽하면 와이프 두고 일부러 이 선생 보려고 학교 찾아와서 상담하는 아버님도 한둘이 아니라니깐요.

이 선생 옷 입고 오는 거나, 하는 짓 보면 완전 발랑 까진 거 같으면서도....또 어떻게 보면 아닌 거 같고....

그리고 제가 예전에 양 선생하고 같이 퇴근 한 적이 있는데요. 그때 양 선생한테 제발 이 선생 좀 그만 잡으라고 했더니, 양 선생이 이상한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이 선생이 대학 때부터 그렇게 유명한 걸레였다고, 여기저기 다 대주고 다녔다고 하더라고요. 그리고 결정적인건 자기가 이 선생 그러는 거.....직접 본 게 있데요.

그래서 뭘 봤냐고 물어봐도 끝내 이야기는 안하던데.....

그때는 양 선생이 괜히 헛소리한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뭔가 느낌이......양 선생이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진 않았던 거 같은 느낌이 들어요.

이 선생이 뭔가 있기는 있는 것 같은데....

그나저나 이 선생이 교감하고 잤다는 소문 사실일까요?”

말을 하던 남자의 목소리가 은밀한 비밀을 이야기하듯 갑자기 한없이 낮아졌다. 

“그야 모르지.....처음에 양 선생이 소문내고 다닐 때, 나도 헛소리라고 생각했는데.....사람 속은 알 수 없지. 교감선생 지도 남잔데. 이 선생 같은 여자 한번 안아보고 싶지 않겠어? 고자새끼 아니고는 이 선생 같이 생긴 여자 앞에선 장사 없는 법이야.”

“박 선생님. 그렇죠? 희한하게 이 선생 늦게 퇴근할 때, 교감 차도 항상 주차장에 있고.....사실이라면....이 선생 취향 정말 독특하네요....

교감이 뭐가 좋다고.....이 선생이 늙은 사람 좋아하나....아니면....교감이 생긴거하고 다르게 좃대가리가 커서 그걸 잘하나......흐흐흐....

하여튼 박 선생님 오늘 저만 믿으세요. 오늘은 기어코 이 은비선생 실체를 알아보렵니다.”

“흐흐흐....지난주에 경주에서 기회였는데....이 선생 팔뚝이 얼마나 야들야들하든지....

야! 이 선생 기다리겠다. 그만 들어가자....”

사내들이 급하게 담배를 대충 비벼 끄고는 간이 천막을 빠져 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저런 새끼들이 선생이라는 사실과.....저런 천박한 놈들과 매일을 부딪쳐가며 아내가 학교에서 애들이 가르친다는 것이 믿어지지가 않았다.

차에 돌아와서도 그냥 멍하게 앉아 있었다. 

방금 전 아내를 대상으로 시시덕거리던 놈들 따위의 말들을 나는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내 머릿속에는 오직 하나 황 경태만이 가득 차있었다.

이미 황 경태가 울며불며 살려달라고 처절하게 애걸하는 모습이 반복되어 그려졌다.

스마트 폰이 울렸다. 

오랜 기다림을 끝내줄 아내의 전화일 것이라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형부! 언니는요?]

[아니 아직.....기다리고 있어]

[아....형부 나 부탁이 있어요]

[어? 먼데?]

[나 오늘 미나 집에서 자면 안돼요?]

[안돼]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자동적으로 대꾸했다.

[형부......하루만.....다른데 안가고 카페 마치면 미나 집에 바로 갈 거란 말이에요]

[언니가 절대 허락 안 할 거야. 그러지 말고 기다리고 있어. 언니만나면 너 태우러 같이 갈 거니까....]

[형부가 대신 말해주면 되잖아요. 으으응......형부,,,,,,,,]

처제는 한참동안 내게 애원하다 그렇게 전화를 끊었다.

시간을 보니 아내와 약속한 시간이 10분이 지나있었다. 스마트폰을 들고 아내에게 전화를 할까 말까를 망설이다 시간이 조금씩 흘러갔다.

갑자기 잔잔하던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그리고 머리가......깨질 듯 아파왔다. 

어두운 차속의 공간에 내 기억 속에 꼭꼭 숨겨져 있던 환영이 어느새 벌써 펼쳐져 있었다.

나는 고개를 돌려 조수석을 바라봤다.

은은한 핑크색 매니큐어가 완벽하게 발려진 아내의 발끝이........금방이라도 부러질 듯...안쪽으로 완전히 바짝 오므려져 있었다.

[아아아.....]

아내의 신음소리가 생생하게 들려왔다.

[흐으흡!!!]

황 경태가 신음이 터져 나오던 아내의 입술이 덮어 버리자 그 소리가 공허하게 입속에 맴 돌아 나지막이 세어 나왔다.

이미 한껏 휘어져 있는 아내의 허리를 황 경태가 더욱 바짝 끌어안았다.

벌어진 아내의 다리사이에 셀 수도 없이 들어가 박히며 살이 맞대며 나는 그 소리가 차안을 가득 채웠다. 

[하아....하아....하아]

[아아....아아앙.....]

아내의 입술을 막고 있던 황 경태의 입이 떨어지자 막혀있던 깊은 숨이 동시에 터져 나왔다.

[아...은비......]

눈을 꼭 감은 아내의 얼굴이 한없이 찌푸려져 있었다. 하지만 벌어진 입은 끊임없이 새어나오는 더욱 깊어진 그 소리에 닫혀 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금방이라도 부러질 듯...안쪽으로 완전히 바짝 오므려져 있던 아내의 발끝은 결국 풀어지지 않았다.

황 경태의 가슴을 밀어내던 아내의 두 손 또한 자신의 몸에 올라타 육중하게 짓누르는 것을 감당하고자 차 시트만을 꼭 쥐어 잡고 있었다. 

[으......싼다.........]

미친 듯 움직이던 황 경태의 몸이 갑자기 아내의 몸에 바짝 붙어 더 이상 움직이질 않았다.

[아.....아아앙....]

절대 떨어지지 않을 듯 엉겨 붙어 있던 두 몸이 경련을 하듯 동시에 떨렸다. 

어둡던 차가 조금씩 환해졌다. 그리고 희미하게 소리가 들려왔다.

방금까지 보이던 안쪽으로 말려있는 아내의 발가락이 연기처럼 사라졌다. 

스마트폰 화면에 아내의 얼굴이......나를 보며 환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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